♬나는 정말정말 너를 좋아해♬
“와아아아!”
앙왕!
애옭!
지연이 노래를 끝내자 관중들이 열렬한 환호를 보냈다.
앵콜을 부르며 다음곡을 요청하는 관객에 보답하려는 순간 영훈이 현관을 열고 들어왔다.
“다녀오셨어요.”
“다녀왔어요.”
“너희들! 마침 잘 됐다!”
들어오자마자 아이들을 찾은 영훈이 활짝 웃으면서 성큼성큼 다가왔다.
거친 기세에 인절미와 모짜가 울음소리를 내며 영훈을 경계했다.
경계하는 동물들을 신경도 안 쓴 채, 영훈이 아이들 앞에 털썩 주저앉아 말했다.
“지한아. 다시 짐싸자.”
“웅? 왜?”
“오스카에 가 초청됐대.”
“어?”
오스카?
69. 오스카
[뮤지컬 영화 ‘시카고’ 돌풍! 아카데미 13개 부문 후보.]
[‘오스카’의 선택은 누구에게?]
[‘Moonlight’ 미술감독상, 아역배우상 노미네이트]
[배우 오지한 아카데미에 간다]
통칭 오스카라고 불리는 시상식은 미국 영화업자와 영화예술 아카데미 협회가 수여하는 미국 최대의 시상식이다.
아카데미상은 회원에 의해서 뽑히는데 미국 영화제작에 직접 관여하는 이들만 투표권이 있는 말 그대로, 영화인에 의한, 영화인을 위한 상이다.
다른 때였으면 먼 나라 얘기였을 아카데미 시상식에 대한 관심으로 대한민국이 떠들썩했다.
그 이유로는 자랑스러운 대한민국 배우인 오지한이 출연한 영화 가 미술과 아역부문으로 노미네이트되었기 때문이다.
아직 월드컵으로 인한 국뽕이 빠지지 않은 국민들은 또 한 명의 대한민국을 빛낼 스타의 등장에 불타올랐다.
“이게 다 무슨 일이래. 지한이가 오스카에 간다니.”
소식을 전한 영훈도 정신이 어리둥절하기는 마찬가지였다.
오스카라고?
미국 영화인들의 전유물이었던 그 오스카?
동양인으로 후보에 드는 것조차 어렵다는 그 오스카를?
지한이가 할리우드에 진출하긴 했지만 오스카는 아직도 꿈같은 일이었다.
심지어 그 유명한 레오나르 역시 후보에 들었으나 아직 수상하지 못했던 그 아카데미상에 지한이가 후보로 선정되다니.
“이게 꿈이야 생시야.”
지연이 정신 사납게 같은 말을 중얼거리는 영훈의 볼을 꼬집었다.
“악!”
“오빠 꿈이 아닌가봐.”
“그래. 아프네. 고맙다.”
“그래서 지한이 언제 가는데?”
“글쎄다. 나는 오스카가 어떻게 진행되는지도 모르는데.”
“애런한테 물어봐.”
“그러네.”
그쪽 동네를 잘 아는 현지민을 두고 왜 고민한 거람.
지연은 이내 애런의 이름과 오스카만 반복하는 영훈을 보고 고개를 저었다.
아마 정신을 차리려면 며칠 더 걸릴 상 싶었다.
어차피 시상식은 한 달 정도 남았으니까 우리는 우리 일이나 해야지.
“지한아 다음 곡은 뭐로 할까?”
“champions!”
“지한이랑 조수경 선생님 노래네. 같이 할래?”
“응!”
앙앙!
먕!
지금 아이들에게는 받을지도 모르는 오스카상보다 지연이가 어떤 노래를 부르느냐가 중요했다.
자신에게 가장 잘 맞는 장르를 찾아나가기 위해서 다양한 장르의 노래를 불렀지만 지연의 곡 소화력은 장르를 불문하고 이어졌다.
“나중에 누나가 영화 노래도 불러줬으면 좋겠어.”
“OST말이지? 지한이가 원한다면.”
“정말이야?”
“내 동생이 하는 말인데. 부르고 싶다고 하면 어른… 들이 도와줄거야.”
하고 싶은 거 다 하라고 했으니까 이 정도는 도와주시겠지?
지연이 확신이 들지 않아 눈동자를 데굴데굴 굴렀다.
아 몰랑!
“champions 갑니다!”
“가즈아!”
와앙!
먀앙!
열광하는 관중들 앞에서 지연은 신나게 노래를 불렀다.
* * *
[마틴 감독, 이번에는 오스카 감독상을 품에 안을 것인가?]
[‘오스카’의 선택은?]
[벼랑 끝에 몰린 오스카]
[이라크 전, 아카데미 시상식 개최 여부는?]
[영화 전문 채널 OBN, 아카데미 생중계. 영화제 특집]
케이블 위성 영화전문채널 OBN은 미국 LA 코닥 극장에서 열리는 제75회 아카데미 시상식을 24일 오전 8시(한국시간)부터 6시간 동안 생중계한다.
…또 24일 오후 10시와 30일 오전 10시에는 시상식 하이라이트도 마련한다.
시상식이 열리든 말든 아이들은 새 식구가 된 인절미와 모짜와 평온한 한 때를 보냈고, 지연은 여러 곡들을 불러보면서 자신의 장르 소화력을 늘렸다.
회사에서는 지한의 첫 아카데미 시상식이 이대로 연기될 것인지 진행될 것인지를 두고 하루하루 미국 내의 분위기를 살피느라 정신없었고, 현지 에이전시와 연락을 하느라 바빴다.
힘겹게 일하는 어른들의 사정을 알아주었을까.
다행히 오스카는 일정에 차질 없이 개최되었다.
미국 내에서 반전 분위기가 심상치 않기에 시상식 프로듀서는 레드카펫에서의 인터뷰와 사진 촬영을 하지 않겠다는 결정을 내렸고 엄숙한 분위기에서 아카데미 시상식이 진행되었다.
아카데미 중계권은 치열한 협상 끝에 OBN이 가져갔다.
영화 전문 채널이라는 자존심을 세우기 위해서 본사에서 힘을 썼다는 모양이다.
반전 분위기와 톱스타들의 불참소식 그리고 연기될지도 모른다는 사실에 머뭇거리다 중계권을 뺏긴 지상파들의 입장에서는 피눈물이 나는 상황.
몇몇 분들이 시말서를 썼다는 소식이 자자했다.
“오빠. 다리 좀 그만 떨어.”
“어떻게 안 떨 수가 있어! 우리 지한이가 오스카를! 오스카를 갔는데!”
“맞아. 무려 아카데미라고! 한국 배우가 그곳에 간 건 처음이란 말이야!”
“하지만 지한이는 벌써 할리우드 주연만 두 번이나 한 걸?”
“두 번.”
전대미문의 기록에 영훈이 멍하니 지연의 말을 되풀이했다.
말할수록 현실감이 들지 않았다.
직접 할리우드에 와서 오디션도 보고, 촬영도 하고, 영화가 개봉한 것도 봤는데 왜 이렇게 현실감이 없지?
너무 대단한 일을 겪으면 현실감이 사라지는 건가?
지연이 입을 벌리고 지한과 밖을 번갈아 보는 두 사람을 보고 고개를 저었다.
“하하하. 두 사람이 저렇게 긴장하는 것도 이해가 갑니다. 저도 다 떨리는 걸요?”
“애런도요?”
“연. 제가 할리우드에서 유능한 에이전트이긴 하지만 맡은 배우 중에서 아카데미 시상식에 가는 경우는 매우 드뭅니다.”
“드드드드드들었지? 우리 지한이가.”
“아카데미를!”
“그래도 두 분은 진정을 좀 하셔야겠네요.”
저렇게 정신없는 상태로 용케 시상식장까지 왔다 싶었다.
그렇다.
지금 우리는 아카데미 시상식이 열리는 코닥극장으로 향하고 있다.
“너무 걱정하지 마십시오. 같이 촬영했던 팀별로 앉으니까요. 가면 익숙한 얼굴들이 있을 겁니다. 그 옆에 꼭 붙어 있으세요.”
애런이 팀에 꼭 붙어 있으라며 신신당부를 했다.
“한. 여기는 미국입니다. 이곳에서 지한은 이방인에 불과합니다. 아마 한을 질투하는 자도, 못마땅해하는 자도 있겠죠. 특히 저 아카데미에 가는 걸로 더 그런 사람들이 나올 겁니다.
“알고 있어요.”
“네. 한은 똑똑하니까 이미 알고 있겠죠. 제가 하고 싶은 말은 한은 혼자가 아니라는 겁니다. 그런 사람들한테 쫄지 마세요. 한은 당당한 배우니까요.”
“지한아. 그런 사람들은 신경 쓰지 마. 알았지?”
“그래. 우리 지한이는 가서 축제를 즐기고 와. 누가 뭐라고 해도 아카데미는 영화인들의, 영화인들을 위한 축제니까.”
영훈과 미나가 긴장에 떨던 것도 잊고 지한에게 조언을 했다.
어른들의 걱정에 지한이 힘차게 고개를 끄덕였다.
“지한아.”
“응. 누나.”
지연이 동생의 손을 꼭 잡았다.
그날 하얀 뱀은 만났을 때처럼 붉은 자국이 남은 손을 맞잡은 남매가 허공에서 눈빛을 마주쳤다.
“지한이 너는 지금보다 훨씬 더 대단해질 거야. 더 높은 곳으로 올라갈 거고, 그 자리에는 누나가 함께 할 거야. 그러니까 절대 기죽지 말고 당당하게 즐겨. 누가 뭐라고 해도 저 자리는 지한이 네 자리야.”
“응!!!”
손을 타고 전해지는 누나의 마음에 지한이 크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 모습을 보고 절대 기가 죽지 않을 것 같아서 지연이 뿌듯하게 웃었다.
누구 동생인지 몰라도 어쩜 이렇게 잘 컸데.
“그럼 한. 즐길 준비가 되셨나요?”
차가 코닥 극장에 가까워졌다.
* * *
미국 내 반전 여론 때문에 레드카펫 행사와 인터뷰가 생략되거나 축소되었다.
엄숙한 분위기 속에서 사회자의 이라크전 풍자로 시상식이 진행되었다.
쟁쟁한 경쟁자들을 물리치고 <센과 치히로의 실종>이 장편애니메이션상을 수상해 일본의 저력을 보였다.
지켜보고 있던 시청자들은 일본의 선전에 이를 악물고 지한을 응원했다.
“지한아, 홧팅!”
“제발제발제발.”
오전 8시부터 아카데미 시상식을 보느라 TV앞에 모여든 사람들이 손을 모으고 응원했다.
학교, 회사, 가게 어느 곳이든 OBN채널을 틀어 먼 나라에서 열리는 시상식을 시청했다.
“그런데 왜 저렇게 수상소감 시간을 짧게 준데?”
“몰라요.”
“우리 지한이한테도 저렇게 짧게 주려나?”
“일단 상부터 받아야 하지 않을까요?”
“뭐?! 너 지금 우리 지한이가 상을 못 받을 거라고 말하는 거야?”
“그런 말이 아니잖아요!?”
예민해진 사람들이 초조하게 지한의 차례가 오기를 기다렸다.
“제발. 일본은 이겨야 한다고.”
“애니메이션인지 뭔지. 그게 뭐라고 상을 받았대?”
“그래도 축구는 우리가 이겼으니 됐어.”
“지금 축구가 문제예요? 우리 지한이 상이 문제지.”
화면에는 남우조연상을 받은 배우가 나왔다.
훤칠한 인상의 배우는 떨리는 목소리로 감사를 전한 후, 반전(反戰)을 기원하고 무대에서 내려갔다.
이어 미술상을 시상할 차례가 왔다.
“이제 왔다!”
“지한이 차례야!”
“아니야. 지한이가 아니라 미술감독이라고.”
“뭐가 됐든 우리 지한이가 주인공인 작품 아니냐고.”
“그건 그래.”
가 후보에 오르자 사람들이 화면에 바짝 붙어 앉았다.
화면 속으로 들어갈 것 같은 사람들이 후보작들을 보고 탄식을 뱉었다.
“상대가 <시카고>야.”
“저걸 어떻게 이겨.”
“아니야. 도 미술부분은 대단하다고!”
뮤지컬 영화 대 미술 영화였다.
흥행 면에서 뒤지더라도 미술 부분에서는 절대 뒤처지지 않았다.
사람들이 두 손을 모았다.
[오스카 미술상 수상자는…의 메리 존스!]
“우아아아아아악!!!!!”
수상 소식에 사람들이 환호성을 질렀다.
드디어 한국인 배우가 출연한 영화가 상을 받았다.
“이대로 아역 배우상도 가즈아!”
“가즈아!”
화면에 무대에 올라서 상을 받고 환하게 웃고 있는 메리 존스의 얼굴이 나타났다.
45초로 제한된 수상소감 시간에 메리가 울컥한 감정을 추스르고 입을 열었다.
[감사합니다. 정말 제가 이 상을 받게 될 줄 몰랐네요. 이 상을 같이 고생해준 팀에게 바칩니다. 사랑하는 내 가족들, 같이 촬영한 식구들. 그리고 미술 고문을 맡아준 헨리 교수님. 오지연. 모두 감사합니다.]
“우리 지연이가 나왔어!”
“지연아! 으아아악!”
수상자 입에서 나온 익숙한 이름에 사람들이 울부짖었다.
만약 이번에 지한이가 아역 배우상까지 받게 되면 어떻게 되는 거지?
남매가 나란히 아카데미에서 뜻깊은 발자취를 남기게 되는 것이다.
지연은 아카데미 미술상을 받은 영화에 미술고문의 역할을,
지한은 아카데미 아역 배우상을 받은 것으로.
할리우드에 ‘한국인’으로서 위업을 남기는 것이다.
사람들이 설레는 마음으로 다음 상을 기대하기 시작했다.
제발 우리 지한이도 상 받게 해 주세요.
2002월드컵 이후로 오랜만에 사람들이 한마음이 되어 응원했다.
* * *
수많은 수상자들이 무대 위를 올랐고, 내려갔다.
‘빅5’ 라고 불리는 주요 상도 일부 발표가 되고 사회자가 드디어 다음 상을 소개했다.
“할리우드에 무수히 많은 스타들이 있지만 우리는 이 배우들에게도 주목해야 합니다. 다음으로 아역 배우상을 수상할 후보들을 만나보겠습니다.”
드디어 기다리던 시간이 다가왔다.
지연이 객석에서 구경하면서 후보로 올라간 이들을 지켜봤다.
‘아무리 봐도 지한이가 제일 유력해. 하지만 여기는 오스카야.’
오스카소화이트(OscaSoWhite).
훗날 백인들의 잔치로 불리며 후보에서 유색인종들이 노미네이트되는 것조차 힘겨웠던 아카데미시상식을 일컬어 조롱하는 의미로 쓰이던 문구.
지연은 동생이 아역 배우상에 노미네이트되었다고 얘기를 들었을 때부터 같이 후보에 오른 작품을 모두 구해서 봤다.
다른 모든 것을 제외하고 보면 지한이가 유력한 수상후보였다.
하지만 여기는 오스카.
후보에 오른 이들 중 동양인을 포함한 유색인종은 지한이 한 명뿐이었다.
‘만약 인종차별적인 이유로 지한이가 상을 못 받으면 내가 지옥에 가는 한이 있더라도 절대 가만히 안 둘 거야.’
지연의 눈이 이글이글 타올랐다.
수상자가 적힌 봉투를 불태울 듯이 노려봤다.
“제발제발제발.”
“다른 모든 것을 제외하고 연기력만 본다면 한이 될 가능성이 높습니다.”
“그렇겠죠? 정말 우리 지한이가 받겠죠?”
“상은 받아봐야 알겠죠.”
애런이 지연이처럼 봉투를 뚫어져라 쳐다보며 말했다.
마침내 봉투가 열리고 발표자가 씨익 웃으며 제작진들이 앉아있는 곳을 쳐다봤다.
설마
설마!
수상자를 발표하는 사회자의 입술이 슬로우 모션이 걸린 것처럼 느리게 보였다.
“제 75회 오스카 아역 배우상은! 오.지.한!”
지한의 이름이 불렸다.
화면에 동그란 눈을 크게 뜬 지한이 잡혔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아침 일찍부터 TV를 보고 있던 이들이 자리를 박차고 일어났다.
으아아아아아!
월드컵 경기를 응원했던 만큼 온 국민이 한마음이 되어 지한의 소리 질렀다.
그때의 영광이 다시금 되살아나는 것 같았다.
머나먼 땅에서 국민들에게 불을 끼얹은 지한이 데이빗 감독과 조지아의 축하에 자리에서 일어났다.
모두의 박수를 받으며 자리에 올랐지만 아직도 어안이 벙벙한 얼굴이었다.
짝짝짝짝
모두가 박수를 쳤다.
이번 시상식은 엄숙한 분위기로 진행된 만큼 거품이 많이 빠졌다.
다른 후보 작품도 지한의 연기에 비하면 손색이 있었으니 운과 실력이 이루어낸 성과라고 할 수 있었다.
지한이 박수를 받으며 무대로 올라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