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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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래라.

고민하는 지연의 다리에 모짜가 올라와 앉았다.

“모짜야. 언니가 잘할 수 있을까?”

왜옹

“그래. 일단 해 보는 거지.”

모짜가 잘 생각했다는 듯이 지연의 뺨을 핥았다.

까끌까끌한 고양이의 혓바닥에 지연이 조금 따가웠지만 자신을 칭찬하려는 모짜의 마음을 알았기에 얌전히 있었다.

“좋아! 일단 해 보자.”

* * *

다행히 탑엔터 직원들은 아이들이 동물을 데려오는 것을 허락했다.

다만 알러지가 있는 사람들은 미리 약을 먹어야 했다.

민폐가 아닐까 생각했으나 우리 품에 안긴 인절미를 보고 주저앉아 ‘좋아…!’라고 하는 걸 보고 그 생각을 접었다.

“지연아 너 왜 진작 가수를 안 한 거니?”

“왜요?”

“너무 잘해서!”

“저 잘해요?”

“그러엄! 너무 잘해서 계속 듣고 싶어.”

보컬 트레이너가 더 가르칠 게 없다며 지연에게 엄지손가락을 치켜들었다.

그동안 회사 이곳저곳을 돌아다니면서 언니 오빠들이 배우는 걸 구경한 보람이 있었다.

“우리 회사가 가수 쪽이 약했는데 이번에 지연이 네가 노래한다고 해서 열심히 보강했어.”

“저 때문에요?”

“아니아니. 널 탓하려는 게 아니라. 헤나도 그렇고 MAX도 그렇고 좋은 가수들이 있는데 후속 주자가 없었거든. 안일했던 거지. 지연이 네 덕분에 회사가 정신 차렸어. 데뷔조 애들도 좋아하고 있어. 곡이랑 앨범 구성이 더 좋아졌거든.”

탑엔터 보컬 트레이너 기주가 지연의 어깨를 토닥였다.

지한이한테 말하거나 다른 사람들을 도와줄 때는 강단이 있더니

유독 자신에 대해서는 엄격한 잣대를 들이대거나 사람들의 눈치를 보는 것 같아서 안쓰러웠다.

“이만하면 녹음해도 되겠다.”

“녹음요? 뭘 녹음해요?”

“지연이 네가 부른 자장가지. 저작권 등록은 했는데 아직 음반으로 안 나왔잖아.”

“자장가로 CD 만들어요? 한 곡밖에 없는데요? 너무 낭비 아닌가?”

“걱정 마. 어떻게 팔지는 어른들이 생각할 테니까. 지연이 너는 녹음만 생각해.”

트레이너의 말에 지연이 곰곰이 생각했다.

겨우 자장가 한 곡으로 뭘 어떻게 하겠다는 건지.

연습하라는 뜻에서 말한 걸까?

“녹음. 어려워요?”

“다른 애들은 녹음하는 데 한 달 넘게 걸리기도 하지.”

“그렇게 걸려요?!”

“앨범 하나에 보통 8~10곡 정도 들어가거든. 목도 쉬어줘야 하니까. 그런데 지연이 너는 어쩌면 하루 만에 끝날지도 모르겠다. 아니 한 시간인가?”

“왜요?”

“지연이가 잘해서?”

이 아저씨가 계속 내 얼굴에 금칠하네.

그래봤자 일반인인데.

이번에는 지한이랑 같이 연습한 적도 별로 없는데.

“해 볼래?”

“네!”

지연이 주먹을 꼭 쥐고 대답했다.

* * *

녹음실에 회사 임원들이 다 모였다.

“변 실장. 자네는 왜 왔어. 여기는 배우 1실 실장이 올 곳이 아니야.”

“김 실장. 너야말로. 너희는 지한이 있잖아. 여기서 좀 꺼지지 그래?”

“어이. 거기 배우실 아저씨들. 지금 여긴 가수실 공간이야. 왜 여기까지 와서 난리야.”

“그걸 몰라서 묻나? 지연이가 연기도 할 텐데 나랑 변 실장네 팀 중에서 어디로 갈지 물어보려고 온 거 아니야.”

“그걸 왜 물어봐. 지연이가 우.리 가수실에 오게 될 텐데.”

“…지연이는 곧 연기도 할 거야.”

“그거야 두고 볼 일이지. 사장님이 애한테 억지로 시키지 말라고 하신 말 기억 안 나?”

가수 1실 실장 천동우가 배우실 실장들에게 승자의 미소를 지어 보냈다.

그동안 자기들한테는 지한이가 있다고 얼마나 놀렸던가.

자기 소속도 아닌 변 실장도 넓게 보면 지한이는 자기 소속이라고 놀려댔다.

이번 기회에 나도 어깨 좀 펴자.

“지연아 할 수 있어?”

“네!”

“지한아 누나 옆에 꼭 붙어 있어야 해.”

“알았어요!”

녹음 부스에는 아이들이 함께 들어가 있었다.

누나의 녹음 소식에 지한이 자기도 가고 싶다고 했기 때문이다.

지연이도 동생과 함께 있으면 더 잘 되기도 했고, 오늘은 누군가의 온기가 필요했기 때문에 지한의 출입을 허락했다.

아이들이 손을 꼭 잡고 마이크 앞에 서 있었다.

“그럼 지연아 반주에 따라서 편하게 불러. 알았지? 힘들면 바로 말하고.”

“네.”

지연이 눈을 감고 심호흡했다.

맞잡은 손에서 동생의 온기와 마음이 전해졌다.

준비가 된 지연이 눈을 뜨고 신호를 보내자 밖에서 지켜보고 있던 어른들이 긴장을 했다.

“우리 지연이 잘 하겠지?”

“누가 천 실장 지연인가.”

“쉿. 지금 노래합니다.”

세 어른들이 주책없게 다리를 떨고 있을 때 지연이 반주에 맞춰 노래를 시작했다.

♬고요한 어둠 아래

달님이 떴어요.

잘 자라 우리 아가.

조용한 이불 속에

요정이 찾아왔어.

자장자장 우리 아가.

꿈속에서 만나면

즐겁게 놀아요.

어서와 함께 놀자.

달님이 활짝 웃죠.

이제 헤어질 시간

안녕 내일 또 만나♬

짧은 곡이었지만 그 순간이 천년과도 같았다.

다리를 떨며 초조하게 지켜보던 어른들이 넋을 놨다.

부스 안에서 아무런 신호가 없자 지연이 눈치를 보며 조심스럽게 물었다.

“한 번 더 해요?”

“…아니. 완벽해.”

프로듀서의 말에 지연이 활짝 웃었다.

누나가 멋있다며 달려드는 동생을 안정적으로 받아 꼭 안아줬다.

짝… 짝짝짝!

짝짝짝짝!

“크흑. 지연아. 완벽하다!”

“한 방에 통과라니.”

“역시 우리 애야. 장해! 멋있어!”

이미 자신의 가수라고 생각하는 천 실장이 벅차오르는 가슴을 안고 손바닥에 불이 나도록 박수를 쳤다.

이제 우리 팀 소속이라고 마음속으로 정해버린 천동우는 지연과 함께하는 창창한 미래가 눈앞에 펼쳐지는 듯했다.

빨리 곡부터 가져와야했다.

A&R팀 팀장을 닦달해서라도 어떻게든!

* * *

집으로 돌아온 지연은 아이들의 밥을 챙겨주고 화장실을 치우고 놀아준 다음 작업실로 들어왔다.

모짜에게 작업실 간다고 말하니 노란 고양이는 알아들은 것처럼 소파 위에 올라가 벌러덩 누웠다.

지한과 형석이 인절미를 데리고 마당에서 노는 사이 지연은 생각을 정리할 겸 자신이 가장 편한 공간에 왔다.

‘지연이는 뭘 부르고 싶니? 네가 부르고 싶은 대로 준비해 줄게.’

아무것도 모르는 사람한테 뭘 부르고 싶냐고 말해봤자.

그쪽은 전문가들이니까 알아서 해 달라고 했지만 지연은 내심 자신이 뭘 부르고 싶은지, 어떤 장르를 좋아하는지 몰라 도망친 것이란 걸 알고 있었다.

“내가 하고 싶은 거.”

사장님도 그렇고 실장님들도 그렇고.

내가 하고 싶은 걸 하라고 했는데 뭘 해야 할지 모르겠다.

지한이한테 뭐하고 싶은지 물어볼까?

“아니. 그래선 의미가 없잖아.”

지연이 복잡한 마음을 풀기 위해서 작업실로 한복판에 놓인 의자에 앉았다.

작업을 하다보면 머릿속이 정리되지 않을까.

물감이 묻지 않게 앞치마를 하고 팔 토시를 한 지연이 캔버스 앞에 앉았다.

“…뭘 그려야 할지 모르겠어.”

지연의 머릿속이 캔버스처럼 하얗게 물들었다.

“내가 이렇게 욕심도 없는 존재였나?”

한참을 캔버스를 노려봤다.

내가 하고 싶은 거.

돌아온 직후에는 있었던 거 같은데.

그게 뭐더라.

지연이 붓을 들었다.

아무런 스케치도 없이

그저 손이 가는대로 움직였다.

처음에는 화가 났다.

돌아오기는커녕 없애버리고 싶었던 과거였다.

도려낼 수 있으면 도려내고 싶었고

지울 수 있으면 지우고 싶었다.

그런데 동생을 만났다.

마지막 순간에

자신을 두고 가는 나에게 악담을 퍼부은,

두 번 다시 보지 말자고 말하던 동생.

네가 나에게 상처를 준만큼 나도 너를 돌아보지 않겠다.

그렇게 결심했는데

돌아오고 나서 또 동생의 손을 잡고 대나무 숲으로 도망쳤다.

그렇게 욕했으면서

그렇게 서운했으면서

그다음엔

동생이랑 그 지긋지긋한 집을 탈출하는 거였다.

역시 돈이 필요했었지.

생각보다 일이 잘 돌아가서 일찍 엄마 아빠를 제거할 수 있었다.

그 암덩어리보다 더 지독한 사람들을 떼어내니 얼마나 속이 후련하던지.

백화점 가봤냐고 놀리던 사촌 동생들

부모의 직업으로 선을 긋고 놀던 사촌 언니 오빠들

이번에는 얼굴도 안 보고 살 수 있었다.

지금은 돈도 잘 벌고 있다.

비록 꾸준한 수입이 아니더라도 에밀리가 사 준 그림값도 있고,

지한이 출연료도 통장에 꼬박꼬박 쌓이고 있다.

이렇게 많은 돈을 받아도 되나 싶지만 회사에서 알아서 정산해주겠지.

사장님이 이런 푼돈 때문에 속일 거라는 생각이 들진 않는다.

그러면 지금은 뭘 하고 있느냐.

지한이를 저 높은 곳에서 빛나는 별로 만들고 있다.

어느 역할이든 소화할 수 있게 자신만의 캐릭터를 조형하는 법을 가르치고

좋은 작품을 선정하고

먹고 입고 자는 것을 살핀다.

지연의 손이 빠르게 움직였다.

이 세상 가장 높은 곳

지한이가 가장 빛나는 별이 되면

난 뭘 하지?

“….”

하늘과 땅이 맞닿아 있는 광활한 그림.

지연의 몸통만한 그림에는 넓은 황토빛 대지와 하얀 모자를 쓴 산맥, 높은 하늘,

그리고

하늘과 이어진 우주가 있었다.

구름 몇 점 없는 하늘이 우주에 맞닿았다.

잉크를 떨어트린 듯 섞여 있는 경계 너머 누구보다 빛나는 별이 찍혀 있었다.

“스타.”

다른 별들보다 빛나는 가장 밝은 별.

분명 동생을 가장 높은 곳으로 올리는 것이 목표지만 그곳에 지연, 자신은 없었다.

지연이 다시 손을 들었다.

그 별 옆에 붓으로 하얀 점을 찍었다.

다시 붓을 내려놓자

가장 밝은 별 옆에는 또 하나의 별이 찍혀 있었다.

그 별 옆에 있어도 존재감을 드러내는 또 다른 가장 밝은 별.

나란히 있는 두 별을 보고 지연의 입꼬리가 서서히 올라갔다.

“나도 할 수 있어.”

캔버스에 담긴 세상 속에서 밝은 별 두 개가 한 쌍처럼 빛났다.

“나도 저 높은 곳에 가고 싶어.”

지연의 눈이 별처럼 빛났다.

* * *

작업실에서 복잡한 생각을 정리한 지연은 더 즐거운 마음으로 노래를 부를 수 있었다.

때로는 동요를, 때로는 가요를, 때로는 애니메이션 주제곡을 부르면서 지연은 장르에 구애받지 않고 자유롭게 노래를 즐겼다.

리미트가 제거된 거 같은 지연의 긍정적인 변화에 모든 이들이 손을 들고 환영했다.

특히 지한이 좋아했는데,

“누나 또 불러줘.”

“또?”

“응.”

어떤 노래라도 자신에게 맞게 재해석해서 부르는 지연을 보고 시도 때도 없이 노래를 부탁했다.

노래를 부를 때마다 옆에 앉아 홀린 듯이 보고 있으니 안 부를 수가 없었다.

동생의 부탁에 지연이 머릿속 리스트에서 곡을 선곡한 뒤, 노래를 시작했다.

♬만날 수 없어

만나고 싶은데

그런 슬픈 기분인걸

말할 수 없어

말하고 싶은데

속마음만 들키는걸♬

지연의 입에서 애니메이션 주제가가 나왔다.

어린 미성이 멜로디와 아름답게 어우러졌다.

“우와, 합.”

지한이 절로 튀어나오는 감탄을 두 손으로 막았다.

지연이 노래를 부를 때면 인절미랑 모짜도 귀를 쫑긋 세우고 옆으로 다가와 앉았다.

짖지도 않는 것이 노래를 감상하는 것 같은 모양이었다.

노래 부르는 건 즐거웠다.

마이크를 쥐고 있으면 기분이 좋아졌다.

스트레스 받을 때마다 코인 노래방에 가서 몇 시간을 노래했던 기억 때문일까?

뭐가 됐든 노래를 부르는 건 재밌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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