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럼 형은 까까 먹어.”
“오냐.”
“형석 아저씨 계란 먹을래요?”
“감사합니다.”
강아지를 만나러 가는 길이 여행을 가는 것만 같았다.
지한이 강아지의 이름을 뭐라고 할지 고민하며 새로운 이름을 계속 내뱉었다.
“인절미. 백설기. 꿀떡. 시루.”
“지한아 그런데 왜 다 떡 이름이야?”
“강아지 사진 봤는데 말랑하고 몽실해보였어!”
“떡이랑 비슷하게 생겨서 그래?”
“응!”
“아마 지한이 네 생각보다 딴딴할걸?”
“딴딴해? 강아진데 근육 있어?”
“지한이 너도 근육 있잖아. 여기.”
지연이 동생의 팔, 다리, 옆구리를 손가락으로 콕콕 찔렀다.
누나의 손가락에 지한이 간지럽다며 꺄르르 웃었다.
영훈의 차가 고속도로에서 나와 산으로 향했다.
구불구불 올라가는 길에 논밭이 넓게 펼쳐져있었다.
“영훈 오빠. 오빠 할머니는 어떤 사람이야?”
“우리 할머니? 대단하신 분이지. 할아버지가 조금 일찍 돌아가셨거든. 그래서 혼자 우리 아빠랑 고모, 삼촌들을 전부 다 키우셨대.”
“진짜 대단하다.”
“그렇지? 지금은 자식들 다 내보내고 시골에서 강아지랑 같이 오순도순 살고 계셔.”
그렇게 말하는 영훈의 얼굴에서 할머니에 대한 애정이 흘러나왔다.
좋은 사람이구나.
“자, 저 집이야.”
차가 파란 지붕 집으로 향했다.
* * *
영훈의 할머니, 서순옥 여사는 자신의 집 앞에 서는 자동차를 보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내 새끼가 왔네.”
굽은 허리에 뒷짐을 지고 마루에서 일어난 순옥이 대문을 바라보고 있을 때, 씩씩한 목소리와 함께 문이 열렸다.
“할머니! 저 왔어요.”
“그래. 어서 와. 내 새끼.”
영훈이 빠른 걸음으로 다가와 순옥을 껴안았다.
조손이 해후를 나누고 영훈이 할머니에게 일행들을 소개했다.
“할머니 여기 애들이 내가 말한 애들이에요. 누나가 지연이. 동생이 지한이.”
“안녕하세요, 할머니!”
“안녕하세요. 오지연입니다.”
“그리고 저기 서 있는 분이 경호원인 형석 씨에요.”
“안녕하십니까, 어르신.”
“그래. 다들 먼 길 오느라 수고가 많았네. 여기 앉아 있어라. 마실 거 꺼내 올게.”
“할머니, 제가 할게요. 할머니도 앉으세요.”
“됐다. 손님들 왔는데 주인이 대접해야지.”
“어어. 할머니 허리도 안 좋으면서. 제가 도와드릴게요.”
영훈이 부엌으로 들어가는 순옥의 뒤를 따랐다.
아이들은 빨리 강아지를 보고 싶었으나 남의 집에서 함부로 돌아다닐 수 없어 얌전히 마루에 앉았다.
지한이 발을 동동 움직였다.
“강아지 데려가면 진짜 잘해 줄 거야.”
프로포즈도 아니고 잔뜩 기대한 얼굴로 내뱉는 말이 저런 거라니.
지연이 웃음을 빵 터트렸다.
누나의 웃음이 꼭 자신이 강아지를 얼마나 잘 돌볼지 두고 보자는 것 같다고 느낀 지한이 볼을 부풀렸다.
“진짜야! 나 누나가 말한 것처럼 잘 먹이고, 훈련도 시키고, 산책도 잘 시킬 수 있어.”
“그래. 알고 있어.”
“정말이야. 나 잘 키울 거야.”
“믿어. 너는 잘할 거야.”
지연이 부드럽게 웃는 얼굴로 말하자 누나가 정말 자신을 믿고 있는 것을 느낀 지한이 배시시 웃었다.
“그래서 누나. 누나는 백설기. 인절미. 꿀떡, 시루 중에 뭐가 나아?”
“흠. 보면 바로 떠오르는 이름이 좋지 않을까?”
“응! 그럼 보고 정해야겠다.”
아무래도 동생은 떡 종류로 이름을 지을 생각인 거 같았다.
나쁘지 않지.
“자, 이거 마셔라.”
“와! 식혜다. 감사합니다.”
“잘 먹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아이들이 식혜를 들고 마셨다.
식혜가 따뜻했다.
‘우리 온다고 만드셨나 봐.’
할머니의 배려에 지연이 단숨에 들이켰다.
“서울서 강아지 보러 왔다면서.”
“네!”
“할머니. 지금 바로 봐도 돼요?”
“그럼.”
순옥의 허락에 아이들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말하지 않아도 당장 강아지를 보고 싶어서 안달이 난 게 보여 순옥이 웃으면서 마루에서 일어났다.
“딱 좋을 때 왔어. 젖도 다 뗐어.”
할머니의 옆에서 나란히 서서 따라가자 낑낑거리는 소리와 함께 개집이 보였다.
“우와!”
“귀엽다.”
아이들이 멀찍이 서서 어미 개와 새끼들을 구경했다.
형석의 손바닥을 두 개 합친 정도의 작은 강아지들이 순한 눈망울로 폴짝폴짝 뛰어다녔다.
“자, 너희들 눈에 들어오는 애로 골라 봐.”
“진짜 우리가 데려가도 돼요?”
“그래. 내가 혼자 다 키우는 건 힘드니까. 너희들이라면 잘 키울 것 같네.”
할머니가 부드럽게 웃으며 아이들을 돌아봤다.
그 믿음에 아이들이 신중하게 강아지를 쳐다봤다.
“귀엽다.”
“응.”
아이들이 넋을 놓고 강아지들을 구경했다.
호기심이 많을 때여서 그럴까?
강아지들이 아이들에게 쫄래쫄래 다가왔다.
앙! 왕!
아이들을 둘러싸고 짖는 모습이 귀엽기 그지없었다.
“어떡하지? 누나 너무 귀여워. 못 고르겠어.”
“네가 못 고르겠으면 얘들한테 물어볼까?”
“그래도 돼?”
아이들의 말에 어른들이 빙그레 웃었다.
동물들이 사람 말을 알아들을 수 없는데 물어보겠다는 말이 너무 귀엽게 들렸다.
마음씨 곱고 친절한 아이들을 보고 순옥은 이 아이들에게 강아지를 보내도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얘들아. 나랑 같이 갈래?”
지한의 말에 강아지들이 주위를 빙글빙글 돌다가 어미에게로 돌아갔다.
다른 강아지들이 떠난 자리에 한 마리의 강아지만 남았다.
“너 나랑 같이 갈래?”
앙!
“히힛. 좋아! 앞으로 너는 인절미다!”
앙! 왕!
하얀 떡에 콩고물을 묻힌 것 같은 강아지가 지한의 손을 핥았다.
지연이 동생에게 강아지를 안는 법을 알려줬다.
훗날 세상에 나쁜 개는 없다는 말을 설파하신 분이 알려준 방법이었다.
“자, 여기 이렇게 팔을 넣고 안아야 해.”
“이렇게?”
“응. 안 그러면 애들 관절에 안 좋대.”
“그렇구나. 히힛. 인절미야. 너 생각보다 안 말랑하다.”
“누나가 말했지? 생각보다 딴딴할 거라고.”
“맞아. 얘들 근육 있다고 했었지.”
지한은 누나의 말에 대답하면서도 시선을 강아지에게 고정되어 있었다.
친구와도 떨어지고 친구 하나 없이 서울 생활을 하다가 만난 소중한 친구였다.
“앞으로 잘 지내자.”
“내 동생 잘 부탁해.”
왕!
아이들과 강아지를 본 어른들은 그 모습을 보고 놀라는 한편 마음이 따뜻해졌다.
“진짜로 지한이 말을 알아들은 것 같네.”
“말 못 하는 짐승이라고 무시하지 마렴. 그리고 애들이니까 더 말이 통한 걸지도 모르지.”
순옥이 지한에게 다가온 한 마리의 강아지를 보고 푸근하게 웃었다.
* * *
강아지를 데려온 날부터 아이들의 관심사는 모두 강아지, 인절미에게 집중되어 있었다.
“배고픈가 봐.”
“지한아 가서 사료 가져올래?”
“응!”
“밥그릇 챙겨가야지!”
“응!”
누나의 대답에 착실하게 대답하며 지한이 사료가 있는 곳으로 달려갔다.
데려온 지 며칠 만에 거실은 강아지 집이 되었다.
“여기가 사람 집인지 개집인지.”
“조금 더 크면 마당으로 내보내야죠.”
“그래.”
지한의 코디인 미나는 흩날리는 개털을 보고 결연한 표정을 지었다.
우리 애가 방송에 나가거나 사진에 찍힐 때 털이 묻은 옷을 입힐 순 없었다.
강아지가 아직 2층 옷 방에는 갈 수 없다는 게 큰 위로였다.
“어라? 저 고양이 또 들어왔네.”
“어디?”
“밖에요. 평상 위에.”
“진짜네.”
지연의 취향으로 마당에 평상을 놓은 이들이 그 위에 드러누운 고양이를 보고 어이가 없다는 듯이 말했다.
이사한 날부터 고양이 한 마리가 기웃거렸다.
꼬질꼬질한 때가 낀 녀석은 거리 생활을 오래 한 것 같은데 이 집을 자기 집처럼 드나들었다.
“응? 누나 노란 고양이 또 왔어.”
“그러네.”
사람들의 시선을 느낀 건지 고양이가 고개를 들더니 평상에서 내려왔다.
거실 한 면을 차지한 커다란 창은 발코니와 연결되어 있었는데 노란 치즈냥이는 그 발코니가 있는 쪽으로 걸어왔다.
지연이 고양이와 눈을 마주쳤다.
예쁜 눈동자가 지연을 바라봤다.
꿈뻑
꿈뻑
눈을 깜빡이며 인사하자 고양이가 유리에 머리를 비볐다.
“쟤는 내가 만지려고 할 때는 도망치더니.”
미나가 아이와 고양이의 교감을 보고 입을 삐죽였다.
지연이 거실 창을 열었다.
고양이가 기다렸다는 듯이 안으로 들어왔다.
“안녕? 또 왔네.”
꿈뻑
고양이가 눈을 깜빡이고 지연의 다리 위에 앉았다.
그 자리가 자신의 자리라는 듯이 식빵을 굽는 고양이를 보고 지연이 본능적으로 알았다.
얘가 내 고양이구나.
“오빠. 나 얘 키워도 돼?”
“뭐? 길고양이를 기르겠다고?”
“응. 안 돼?”
지연이 장화 신은 고양이 눈으로 영훈을 쳐다봤다.
그 눈을 할 때마다 영훈을 져 줄 수밖에 없었다.
영훈이 마지막으로 지연이에게 물었다.
“지연아 다른 애가 아니어도 되겠어?”
“응. 얘가 좋아.”
“그래. 알았다. 대신 병원부터 데려가는 거야.”
“응.”
지연이 고양이를 품에 꼭 안고 대답했다.
헤헷. 이제 나도 있어 고양이.
먀앙
지연의 품에 안긴 고양이가 나른하게 울었다.
68. 내가 하고 싶은 건.
이사하고 새로운 식구를 보살피느라 아이들은 정신이 없었다.
새 가족이 된 강아지, 인절미와 고양이, 모짜는 아이들의 좋은 동반자가 되어 주었다.
그러느라 지연은 자신이 노래하고 싶다고 한 사실도 까먹었다.
그래서 어느 날 영훈이 녹음하러 가지 않겠냐고 물었을 때 영문을 모른다는 얼굴로 고개를 기울였다.
“지연아. 저번에 노래하고 싶다고 했잖아. 그래서 지연이가 노래할 수 있도록 준비 다 해 놨어.”
“어?”
맞다. 그랬었지.
크리스마스 날 있었던 일을 떠올린 지연이 고개를 끄덕였다.
내가 그때 무슨 정신으로 그런 말을 했더라.
예상치 못한 아이의 반응에 영훈이 조심스럽게 물었다.
“지연아 혹시 노래하는 거 싫어?”
“아니, 좋아.”
“그러면 우리가 준비한 게 마음에 안 드는 거니?”
“그런 거 아니야. 그냥 갑작스러워서.”
“그래. 오빠가 너무 급하게 물었지? 지연이 네가 준비가 됐는지 먼저 물어볼 걸 그랬다.”
자신의 말 때문에 준비했을 텐데 미안하다고 말하는 영훈을 보고 지연이 고개를 저었다.
“그게 아니라. 난 괜찮아. 까먹고 있어서 그래.”
“그렇구나. 그러면 언제 회사로 갈래?”
지연이 인절미랑 모짜를 내려 보더니 곰곰이 고민했다.
“얘들 혼자 두고 갈 수 있을까?”
“회사로 데려가도 되는지 물어볼게.”
“응. 개랑 고양이 싫어하는 사람이 있을 수도 있으니까. 그러면 맡기고 갈래.”
애들 예방접종이랑 검사를 맡았던 동물병원에 맡길 수 있는지 물어볼까?
이 시대에 개랑 고양이용 호텔은 없겠지?
“정 안 되면 회사에 잘 보는 사람 있는지 물어보든가 할게. 어디 맡길지는 걱정하지 마.”
“응. 알았어.”
“그래. 오빠 잠시 전화 좀 하고 올게.”
“다녀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