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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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착한 일을 한 게 없는데.”

“아니, 충분히 착한 일을 했어.”

“제가요?”

“그럼. 지연이 우리한테 큰 행복을 줬거든.”

“네? 행복이요? 제가 언제요? 저는 뭐 한 게 없는데.”

“지연이 네가 딱히 뭘 한 게 없어도 우리는 너흴 보면 행복하단다.”

주민의 말에 지연이 눈을 깜빡였다.

“사장님 말씀이 맞아.”

“고럼고럼. 우리 귀염둥이들은 보면 기쁘고 행복하고 자부심을 느낀다구.”

“형, 누나. 나도 기쁨과 행복을 줬어?”

“그러엄. 특히 우리 지한이는 내 월급을 주었지.”

“월급은 사장님이 주는 거잖아.”

“지한이가 좋은 연기를 해 줘서 형이 돈을 받을 수 있었어.”

“그런 거야?”

“그래.”

“이 누나 월급도 우리 지한이가 줬지.”

“정말이에요?”

지한이 주민에게 대답을 구했다.

그렇다고 하지 않으면 품에 안고 있는 선물을 도로 내밀 것 같아서 주민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하지만 다들 돈보다 행복을 준 걸 더 고맙게 여길걸?”

“사장님 말씀이 맞아. 지한이가 우리랑 함께 있어줘서 얼마나 고마운지 몰라.”

“정말?”

“정말.”

“어어. 그럼 나 촬영 더 많이 할까?”

“지한이가 하고 싶으면 모르지만 우리 때문에 굳이 억지로 할 필요는 없어.”

“맞아. 우리는 지한이 네가 연기를 하면서 즐거웠으면 좋겠어.”

“왜? 돈 많은 게 더 좋은 거 아니야?”

“돈도 좋지만 역시 지한이가 네가 좋아하는 걸 하면서 기쁜 모습을 보는 게 더 행복해.”

어른들의 말은 이해할 수가 없었다.

돈보다 우리가 행복한 게 더 우선인가?

왜?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우리를 좋아할 수 있나?

지한이 이상한 느낌에 품에 있는 선물을 꼭 안고 누나의 뒤로 숨었다.

등 뒤에서 느껴지는 온기에 지연이 입을 열었다.

“그! 고마워요. 고마운데.”

“지연아.”

“네에.”

“고맙다.”

주민의 말에 지연의 눈이 커졌다.

잠시 우물쭈물하던 지연이 대답했다.

“선물 고맙습니다.”

“그래. 지금은 그걸로 된 거야. 그렇지?”

“…그림! 선물 못 사서 그림이라도 그려서 드릴게요. 잠시만 기다리면,”

“그것보다 오늘은 너희들이랑 같이 크리스마스를 보내고 싶은데 그림은 나중에 그리면 안 될까?”

이상하다.

나는 어린애가 아닌데 품에 가득 안긴 선물을 안고 들뜨는 마음을 억누를 수가 없었다.

“내년에는 선물 꼭 미리 준비할게요.”

“꼭 준비 안 해도 괜찮아.”

“하지만.”

“그냥 받고 기뻐해주면 안 될까? 우리 진짜 아침에 일어난다고 고생했거든.”

주민의 말에 지연이 고개를 돌려 주위를 둘러봤다.

그렇게 잠을 잘 못 자던 영훈이 아침부터 쌩쌩한 모습으로 일어나 있다.

저렇게 말끔하게 정돈하고 준비하느라 더 일찍 일어났겠지.

미나도 마찬가지였다.

형석도 체육복 차림이 아닌 캐주얼한 복장이었다.

모두가 우리를 위해서 아침 일찍부터 일어나 준비한 거였다.

지연이 울컥 치밀어 오르는 무언가를 삼키고 허리를 숙였다.

“고맙습니다.”

“고, 고맙습니다.”

누나를 따라 지한도 같이 허리를 숙였다.

아이들의 모습에 어른들이 뿌듯한 웃음을 터트렸다.

“그럼 아침 먹으러 갈까?”

“네!”

“좋아요!”

어른들이 아이들의 손을 잡고 식당으로 향했다.

* * *

호텔 서비스를 부른 건지 식탁에는 이미 맛있는 음식이 가득했다.

아이들 앞에 음식을 덜어주자 지연이 눈을 동그랗게 떴다.

“아침부터 이렇게 많이! 이거 다 먹을 수 있어요?”

“다 못 먹으면 남기면 되지.”

“그러면 아까운데.”

“괜찮아. 오늘은 너희가 하고 싶은 거 다 해도 돼.”

“오늘은요?”

“아, 오늘이 아니지.”

주민의 말에 지연이 조금 시무룩해졌다.

역시 하고 싶은 거 다 하라는 말은 취소할 건가봐.

“앞으로도 계속.”

“계속?”

“너희들이 하고 싶은 건 전부 다 하렴. 우리가 도와줄게.”

“어어. 하지만 우린 돈 없는데.”

“지연아. 돈 걱정은 하지 않아도 돼.”

“그치만.”

“아마 지연이 네가 평생 버는 것보다 내가 가진 돈이 더 많을걸?”

재벌 2세 도련님의 말에 지연의 입이 꾹 다물렸다.

이렇게 써도 주민의 재산에는 흠집 하나 안 갈 거다.

지연이 수긍한 듯하자 주민이 잽싸게 화제를 돌렸다.

“자 어서 먹어. 어서.”

“아직 안 식었을 거야.”

“뭐 먹고 싶은 거 있어?”

오늘따라 집요하게 묻는 어른들에 지연의 정신이 쏙 빠졌다.

크리스마스라고 축하를 받은 것도 처음, 선물을 받은 것도 처음, 다 같이 맛있는 요리를 먹는 것도 처음이었다.

몸이 어려서 그런지 자꾸 붕 뜨는 마음에 지연이 엉덩이를 들썩였다.

“저, 저어기. 저거.”

“이거?”

“형. 나도 저거 먹을래.”

“그래그래. 또?”

“저거랑 저거.”

영훈이 바지런하게 움직여 지한의 앞에 접시를 대령했다.

“잘 먹겠습니다.”

“잘 먹겠습니다.”

아이들이 접시에 담긴 음식을 먹었다.

두 볼을 가득 채우고 열심히 씹는 아이들을 어른들이 입꼬리가 찢어져라 웃으며 지켜봤다.

“지연아, 이것도 먹을래?”

“지한아. 목 막히겠다. 이거 마셔.”

어른들의 세심한 보살핌 속에서 아이들은 배가 터지게 음식을 먹었다.

“이제 못 먹어어.”

“후우. 후우.”

너무 심했나?

아이들이 배가 불러 숨도 가늘게 쉬었다.

* * *

잘 먹인 다음에는 잘 놀아주기로 작정했는지 식당에서 거실로 이동했다.

“그래서요. 다람쥐 봤어요.”

“미국에서 다람쥐 볼 줄 몰랐어요.”

“그런데 겨울인데 다람쥐가 갑자기 왜 나타났을까?”

“왜요? 겨울에 나타나면 안 돼요?”

“다람쥐는 동면이란 걸 하거든.”

“동면?”

“추운 겨울을 잠으로 버티는 거야. 봄이 되면 깨어난단다.”

생각해보니 다람쥐는 동면을 하는 동물이었다.

가을까지 먹이를 잔뜩 저장해두고 보금자리에서 잠을 잔다지?

“그럼 그땐 어떻게 나타난 거지?”

“누나 얼굴에 떨어졌는데. 이렇게 착, 하고.”

“지연아 안 놀랐어?”

“놀랐는데 걔가 내 얼굴에 찰싹 붙어서 어떻게 할 수 없었어. 그리고 조금 따뜻했기도 했고.”

“보온 마스크였네.”

“아무튼 그래서 지한이가 동물 키우고 싶다고 했는데.”

지연이 말꼬리를 늘어트렸다.

영훈을 통해서 말을 해 보기로 했는데 이렇게 직접 말하려고 하니 뭔가 머뭇거리게 됐다.

섣불리 말을 꺼내지 못하는 지연을 대신해서 주민이 물었다.

“지한이는 무슨 동물을 키우고 싶어 했는데?”

“개요! 같이 산책하고 싶어요.”

지한이랑 개라니.

엄청 잘 어울리는 조합이 아닌가.

특히 지금도 하얀 머리칼이라 어른들의 머릿속에 백구가 저절로 떠올랐다.

“좋네.”

“좋다.”

“지한이랑 백구.”

“하얀 지한이랑 하얀 강아지.”

“이건 찍어야해!”

미나가 당장이라도 카메라로 찍을 것처럼 손가락을 꼼지락거렸다.

“지연이는?”

“네?”

“너는 키우고 싶었던 동물 없어?”

모두의 시선이 지연이에게로 향했다.

66. 이사 가자.

“어. 동물 키우는 건 돈이 많이 들어요. 하나만 있어도 될 거 같은데. 배변훈련이랑 산책도 자주 가야 하고, 예방접종도 맞혀야 하고.”

원하는 대답이 아니었다.

영훈이 지연의 말을 가로챘다.

“그런 거 말고.”

“그러면요?”

“지연이도 개 좋아해?”

주민의 물음에 지연이 눈동자를 굴렸다.

“…이.”

“응?”

“고양이.”

지연의 얼굴이 빨개져서 고개가 떨궈졌다.

고양이 좋아.

젤리 만지고 싶어.

친구네 고양이가 러시안 블루라서 눈이 진짜 예뻤는데.

맨날 랜선집사만 하고.

나만 없어 고양이.

“지연이는 고양이가 좋아?”

“어쩜. 너희는 어떻게 너흴 닮은 동물들만 골랐니?”

“미나 누나, 내가 개 같아?”

“그래. 개 같, 아니. 강아지 같아.”

똥꼬발랄한 점이 특히 그렇지.

인상도 순하고 누나 뒤만 쫄쫄 따라다니는 거 하며, 가끔 예상치 못한 사고를 친다는 점에서 완전 똑같았다.

“누나, 나 개 같대. 누난 고양이 같아.”

“그래. 잘 됐다. 그치?”

“응! 좋아.”

지한이 꺄르르 웃었다.

“지연이는 고양이, 지한이는 강아지란 말이지?”

“네에.”

“네!”

“좋아. 그럼 한국으로 가면 숙소를 옮겨야겠네. 지금 있는 곳은 동물 키우면 안 되니까.”

“어? 둘 다 키워도 돼요?”

“그럼. 너희가 키우고 싶다며.”

“그렇긴 한데.”

“그리고 또?”

“또?”

“뭐 더 하고 싶은 건 없어?”

지연이 커다란 눈을 깜빡였다.

오늘 진짜 무슨 날인가?

아, 크리스마스였지.

그렇다고 이렇게 선물을 한가득 받아도 되나?

정말로?

나 좀 운 거 같은데.

나쁜 짓도 하고.

“안 그래도 묻고 싶었어. 지한이는 연기하는 거 좋아해서 우리가 도와줄 수 있었지만 지연이 너는 좋아하는 걸 딱히 말 안 해서 뭘 해 주면 좋아할지 알기 힘들었단다.”

“사장님 말씀이 맞아. 선물 고르기 엄청 힘들었어.”

“지연아. 언니는 그래도 네가 자주 쓰는 거 골랐다.”

“언니 선물은 스케치북이구나.”

“헙!”

미나의 격하게 숨을 들이켰다.

어떻게 알았지?

본인이 결정적인 힌트를 준 것도 모르고 미나가 눈을 데굴데굴 굴렸다.

“하고 싶은 게 있으면 편하게 말해도 돼.”

“맞아맞아. 지연이 네가 말 안 하면 우린 평생 모를걸?”

아이가 어찌나 감정을 숨기는 게 능숙한지.

오늘같이 갑작스러운 일이 아니라면 물어보지도 못할 거다.

미리 며칠의 시간을 걸쳐서 지연의 경계심을 낮춰 놓은 것이 효과가 있었다.

“그러면.”

“그러면?”

끈질기게 따라오는 시선에 지연이 입을 열었다.

“나 노래… 불러도 돼?”

혼심의 힘을 다해 말을 한 지연이 고개를 푹 숙였다.

영훈과 미나의 고개가 주민이 있는 곳으로 빠르게 돌아갔다.

‘사장님!’

‘해냈어요, 사장님!’

‘그래. 잘했어.’

지연의 입에서 자신이 하고 싶은 게 튀어나왔다.

주민의 얼굴에 방긋 웃음이 걸렸다.

노래라니!

그거야말로 우리가 해 줄 수 있는 게 아닌가!

지연의 입에서 튀어나온 전공 분야에 탑엔터 식구들이 환하게 웃었다.

“노래하고 싶으면 해야지.”

“노래하고 싶었구나.”

“우리 지연이라면 문제없지! 암!”

지연의 자장가를 엿들었던 영훈과 미나가 적극적으로 찬성하고 나섰다.

이미 지연이 무엇을 선택하든 전부 다 해 줄 예정인 공 사장의 광대가 하늘 높을 줄 모르고 솟았다.

지연의 입에서 자기가 하고 싶은 것이 나왔다.

드디어 마음이 놓였다.

“누나가 노래하면 나도 노래할래.”

“같이 해.”

“같이 해도 돼?”

“당연히 같이해야지.”

“히힛. 누나 좋아!”

어딜 가나 껌딱지처럼 누나의 옆에 찰싹 달라붙는 지한이 자신도 노래를 하겠다고 나섰다.

‘어어. 이래도 되나?’

‘안 돼요! 우리 팀장님이 아니면 역적이라고 날 죽이려 들 거야!’

영훈과 미나가 잽싸게 눈빛을 주고받았다.

이러다가는 배우실 최고의 스타를 가수실에 빼앗기게 생겼다.

“너희들 하고 싶은 거 다 해.”

사장이 웃는 얼굴로 영훈의 등에 비수를 꽂았다.

가수실이든 배우실이든 어차피 공 사장의 아래였다.

영훈이 배신당한 얼굴로 공 사장을 쳐다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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