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고
모두가 기다리면 <사람극장> 오지한 편이 방영됐다.
57. 미국으로 가버렷!
[오늘도 월드 스타는 바쁩니다.]
[PD: 지금 어디 가요?]
“아! 우리 계곡 가요!”
지한이 시원한 얼굴로 웃었다.
화면 가득히 잡힌 아이들의 얼굴은 티 하나 없이 맑았다.
물놀이를 가는 것에 신이 난 아이들은 어느 집 자식과 다를 바 없었다.
팬들은 화면에 나오는 아이들의 얼굴에 그늘 한 점 없다는 사실에 다들 편안한 마음으로 시청할 수 있었다.
이윽고 화면에 팬미팅장이 되어 버린 휴게소와, 휴가철 놀러 가는 가족들의 흔한 차 안 풍경, 그리고 숲속 오두막 같은 집이 나타났다.
꺄하하하하
[PD: 애들이 잘 노네요.]
“그렇죠? 쟤들이랑 같이 놀다가는 진이 다 빠진다니까요.”
그 말을 하는 매니저의 얼굴에서는 힘든 기색이 전혀 보이지 않았다.
말로는 그렇게 힘들어하면서도 아이들이랑 함께하는 그의 얼굴에서는 기쁨과 행복만 보였다.
“오빠. 물이 너무 찬데. 애들보고 나오라고 할까?”
“그래.”
“너희들 수박 먹을래?”
“수박 좋아!”
“먹을래!”
코디와 매니저의 계략으로 물에서 나온 아이들이 맛있게 수박을 먹었다.
누나가 길쭉하게 쪼개진 수박을 들고 카메라로 다가왔다.
[카메라: 어? 저 왜요?]
“이거 드세요.”
[카메라: 괜찮아요. 누나 많이 먹어요.]
아이가 카메라맨의 말에 잠시 수박과 카메라맨을 번갈아 쳐다보더니 들고 온 수박을 들고 돌아갔다.
잠시 후, 아이가 또 수박을 들고 왔다.
이번에는 더 잘게 쪼개진 수박으로 거기에 이쑤시개가 꽂혀 있었다.
“언니한테 잘라 달라고 했어요. 여기 둘 테니까 드시면서 하세요.”
두 손으로 카메라를 들고 있기 때문에 거절했다고 생각한 모양이다.
아이는 친절하게 집어먹기 편하게 몸통 옆에 수박을 두고 돌아갔다.
화면에 동생이랑 서로 수박을 먹여주는 누나의 모습이 가득 들어왔다.
* * *
공 사장의 사심과 지한의 이미지 메이킹을 위한 목적으로 제작된 <사람극장> ‘오지한 편’은 상당한 관심을 모았다.
방송이 나가고 사람들은 하나같이 마음이 편해지는 영상이라고 극찬했다.
계곡, 벌레 소리, 별이 쏟아질 것 같은 밤하늘, 아이들의 웃음소리, 둘러앉아 밥을 먹는 사람들, 강아지의 재롱.
모든 것들이 화제가 되었다.
지한이와 관련해서 가슴이 터질 듯이 화가 나는 일이 가득했던 한 달을 <사람극장>이 치유해줬다.
굳이 지한이의 팬이 아니더라고 많은 사람들이 아이들이 웃는 모습을 보며 함께 웃었다.
거기서 또 조명되는 것이 있었으니 바로 남매의 천재성이었다.
[BSET]탑엔터 사장님께 건의드립니다.
지은이 오씨남매012
사람극장 다큐 제작님 감사합니다.
덕분에 이번 주는 행복하게 보냈어요.
우리 다음주, 다다음주, 다다다음주까지 함께하는 거죠?
제발 부탁드려요.
우리 애들 죽을 때까지 나와조.
그리고
탑엔터 사장님.
아니 참, 우리 지연이 같은 보물을 두고 어떻게 데뷔를 안 시킬 수가 있어요?
노래도 잘하고, 연기도 잘하고, 그림도 잘 그리는데.
당장 지연이도 데뷔시켜 주세요.
이왕이면 남매가 같이 나올 수 있게 부탁드립니다.
얘들아 같이 데뷔해조♥
└건의드립니다.
└└건의드립니다222
└└└건의드립니다33333
└여러분 우리 공 사장님을 믿어요.
└└믿습니다. 사장님.
└지한이는 먼저 데뷔했어요.
└음반 내조 얘들아.
└춤도 춰 줘.
└노래해!
└우리 애들은 연기해야죠!
└가수하면 콘서트로 직접 볼 수 있잖아요!
└└오?
└└오?!
탑엔터로 지한의 누나, 오지연의 데뷔에 대한 문의가 끊이질 않고 들어왔다.
“죄송하지만 지연이는 아직 연예계에 발을 들일 생각이 없습니다.”
“저기요! 똑바로 알아보고 말씀하세요. 우리 지연이는 동생 인기 등에 업고 연예계 진출하려는 거 아니거든요? 어디 기자라고 하셨죠? 앞으로 우리 애들 기사는 하나도 못 쓸 줄 아세요!”
“지연이는 배우도, 가수도 데뷔할 예정이 없습니다.”
홍보팀뿐만 아니라 지한이 소속된 배우 2실도 바쁘긴 마찬가지였다.
“광고요? 아, 누나와 같이 말입니까? 알아보고 다시 연락드리겠습니다.”
“예. 예. 어디요? 한국관광공사요? 아아. 네. 넵.”
“아, 안녕하세요. 방 PD님. 그간 평안하셨죠? 네. 맞아요. 지한이 우리 팀 소속이에요.”
기자들은 지한의 이름과 연관해 아이들의 부모를 언급하는 것 보다
빛나는 재능을 가진 남매 그 자체에 주목하기 시작했다.
공 사장의 의도대로 아이들의 휴식과 이미지 재고, 두 마리 토끼를 다 잡은 것이다.
“다들 고생이 많군.”
“사장님!”
“사장니임!”
직원들을 격려하기 위해서 나타났던 주민을 보고 다들 사장님을 울부짖었다.
이러려고 놀이공원에 데리고 가 줬구나!
우릴 더 부려먹으려고 그런 거였어.
불과 며칠 전 놀이공원에서 신나게 하루를 보낸 직원들이 그 은혜를 잊어버린 채, 사장을 원망스러운 얼굴로 쳐다봤다.
“다들 고생하는 거 같아서 치킨이랑 족발 사 왔습니다. 드시면서 하세요.
“사장님. 사랑해요!”
“사랑합니다. 사장님!”
먹을 것 앞에 직원들이 빠르게 태도를 돌변했다.
적절한 당근과 채찍을 이용할 줄 아는 참된 재벌 2세 경영인인 주민이 웃으며 들고 있던 음식을 내려놨다.
뒤따라 온 사람들이 회의실 테이블을 비워 음식을 펼쳤다.
“다들 이번만 고생해주세요. 끝나면 보너스 나올 테니까요.”
“네에에!”
“저는 고생이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회사를 위해서라면 뼈를 묻겠습니다.”
“죽는 시늉이라도 하겠습니다.”
“됐고, 얼른 드세요.”
“네에!”
맛있는 음식과 보너스에 충성심이 MAX가 된 직원들이 좀비처럼 달려들었다.
하루 종일 전화기를 붙들고 씨름하느라 밥때도 놓치고 허기가 졌다.
달려들어 음식을 해치우는 직원들을 보는 주민의 뒤로 본부장이 다가왔다.
“사장님. 오늘 지한이 방송 마지막 날 아닙니까?”
“그렇지.”
“그럼 오늘 나오겠네요. 그 내용.”
“그래.”
“그렇군요….”
임 본부장이 아귀처럼 음식을 먹고 있는 이들을 안쓰러운 눈으로 쳐다봤다.
아직 폭탄은 다 터지지도 않았다.
오늘 방송이 나가면 대한민국은 지한에 대한 관심으로 타오를 것이 분명했다.
* * *
“국장님. 광고 끝났습니다.”
“그래. 모니터링 잘하고.”
<사람극장>을 방영하는 KBC 주조정실에는 교양국 국장과 <사람극장>을 연출했던 강만수 PD가 함께하고 있었다.
“어제 시청률이 얼마 나왔지?”
“어제 25% 나왔습니다.”
“25%라. 배우 하나 잘 썼더니 웬만한 드라마 시청률이 나왔구만.”
교양국 방 국장이 높은 시청률에 얼굴이 환해졌다.
탑엔터의 제안을 받아들인 것이 서로 윈-윈의 결과를 만들어냈다.
“오늘은 그 얘기가 나온다면서?”
“네.”
“이거 게시판 터지겠구만.”
“미리 서버 관리해 달라고 요청해 놨습니다.”
“잘했어. 요즘 게시글이 하루에 몇 백 개가 쌓인다면서?”
“네. 주로 오지한 편을 연장해 달라는 글입니다.”
“오늘 방송 나가면 다음 편 내놓으라고 하겠군.”
하하하. 방 국장이 기분 좋게 웃었다.
“배우 오지한에 대한 사람들의 관심이 뜨거워. 공 사장한테 후속편 찍을 생각이 없는지 물어봐야겠어.”
“아마 깜짝 놀랄 겁니다.”
“지금까지만 해도 충분히 놀랐는데 말이지.”
“저도 더 놀랄 일이 있는지 몰랐습니다.”
두 사람이 오늘 터트릴 결과가 어떻게 될지 기대하며 기분 좋게 마지막 화를 시청했다.
“22% 넘었습니다!”
“이거 오늘도 대한민국이 시끄럽겠어.”
* * *
“소희야. 안 자니?”
“이것만 보고요. 어차피 내일 토요일이잖아요.”
“아무리 수업이 일찍 끝난다지만 고등학생이 그래도 되겠니?”
“아아. 엄마. 지한이 오늘이 마지막이잖아요.”
“알았어.”
소희가 엄마와 함께 거실에 앉았다.
미리 깎아 놓은 과일을 포크로 찍어 먹으며 소희가 <사람극장> 오지한 편 마지막을 시청했다.
[PD: 오늘 놀이공원 간다면서요?]
“네! 형, 누나들이랑 같이 가요.”
[PD: 회사 분들이랑 친한가 봐요.]
“형이랑 누나들 좋아요. 그런데 요새 저 때문에 많이 바쁘대요. 그래서 사장님한테 다 같이 놀러 가도 되냐고 물어봤어요.”
[PD: 사장님이 허락하셨나 보네요.]
“네! 모두 좋은 사람들이에요.”
지한이 두 팔을 크게 움직여 기쁜 마음을 드러냈다.
말할 때마다 팔랑이는 손짓이 꼭 어린 새의 날개짓 같았다.
“수학여행 가는 거 같다.”
“난 수학여행 경주로 갔어.”
“나는 집이 시골이라서 서울로 수학여행 왔어요.”
“아. 지방 사람들은 다들 서울로 수학여행 온다고 하던데.”
“그게 뭐야. 오빠 지금 서울 사람이라고 우리 무시함?”
“아니, 아니야.”
“수상해.”
“내가 왜 무시해.”
미나와 영훈이 티격태격했다.
“저 두 사람 잘 어울린다.”
“그러게. 저러다 사귀겠는걸?”
소희가 엄마랑 사과를 베어 먹으면서 두 사람을 평가했다.
지한의 생활이 방송되면서 그의 누나뿐만 아니라 소속사, 코디, 매니저, 경호원까지 모두 유명해졌다.
이제 지한의 팬은 길 가다가도 코디와 매니저, 경호원을 구분할 수 있는 지경이 됐다.
“수학여행이 뭐야?”
“음. 현장학습 같은 거랄까. 여행인데 선생님이랑 같이 가는 여행?”
“그렇구나.”
“지한이도 수학여행 가고 싶어?”
“으음. 잘 모르겠어. 난 원하면 어디든 갈 수 있잖아.”
“맞아.”
“그러네. 그래도 친구들이랑 같이 수학여행에 가서 쌓을 수 있는 추억도 좋은 건데.”
“그러면 학교 가야 하잖아.”
아이의 말에 놀이공원으로 가는 차 안이 조용해졌다.
부모에게서 떼어놓기 위해서, 촬영을 위해서, 다른 사람들의 관심에서 떨어트리기 위해서 아이들에게 홈스쿨을 제안했다.
그게 아이에게서 친구를 뺏은 게 아닌지 걱정됐다.
[PD: 지한 군, 학교에 가고 싶어요?]
“가끔은 친구들 만나고 싶은데 저 때문에 다른 사람들이 피해 보는 건 싫어요.”
아이의 말에 어른들은 왜 지한이 학교를 피하는지 알았다.
“예전에 학교에 기자들이 찾아온 적이 있었어요. 그 사람들이 이것저것 물어봐서 친구들이 무섭다고 했어요.”
“으응. 나는 그런 거 싫어.”
“우린 괜찮아요. 친구야, 나중에도 사귈 수 있으니까.”
남매의 말에 어른들은 더 이상 학교에 가고 싶지 않냐는 말을 삼갔다.
“기자들도 참. 아직 어린 애들인데 뭘 그렇게 괴롭혔대.”
“저거 애들 아빠 때문이잖아.”
“아빠? 소희야, 넌 무슨 일인지 알고 있어?”
소희가 오형우 때문에 일어났던 일을 간략하게 설명했다.
엄마는 당연하게 분노했다.
“세상에! 뭐 그런 아빠가 다 있어!?”
“그러니까 말이야. 지금은 아빠랑 엄마 둘 다 없어서 저렇게 잘 웃잖아.”
“그러네. 어쩜. 저 두 사람이 잘 돌봐서 그런 거겠지?”
“그것보다는 누나가 동생을 잘 챙겨.”
“맞아. 그런 거 같더라. 누나가 대견하네. 소희 너도 동생한테 좀 잘해.”
“엄마가 지한이 같은 동생을 낳아줬으면 그랬을 텐데.”
“지금 엄마 탓이란 거니?”
“아니, 아빠 탓.”
소희가 현명하게 아빠에게 책임을 돌렸다.
딸의 말에 고개를 끄덕인 여사가 다시 화면에 집중했다.
화면에는 어느새 놀이기구를 타고 즐겁게 놀고 있는 아이들이 잡혔다.
조금 전에 있었던 대화를 까먹은 것처럼 해맑게 놀이기구를 타는 모습을 보기 마음이 편해졌다.
[PD: 그런데 오늘은 사람이 별로 없네요.]
“아, 사장님이 전세냈어요.”
영훈의 대답에 소희와 엄마는 오밤중에 소리를 지를 뻔했다.
‘뭐어!?’
‘사장님이 또!?’
이미 팬들 사이에서 사장님의 남매에 대한 사랑은 유명했다.
그 전부터 보였던 낌새를 <사람극장>이 확인시켜줬다.
“어쩐지 사람들이 지한이를 봐도 사진을 안 찍더라니.”
“다 탑엔터 직원이었구나.”
미친 듯이 웃고, 놀다가 아이들이 벤치에 앉으면 이것저것 사와 안겨주고 사라지는 직원들을 보고 웃음을 터트렸다.
딱 봐도 연예인-소속사 직원의 관계가 아니라 친한 동네 형, 누나 같은 모습이었다.
소속사에서 남매들을 어떻게 대우하고 있는지 한눈에 보여서 소희와 엄마는 아이들 주변에 도움이 되는 어른들이 있다는 사실에 안도했다.
“뭐야. 아직도 보고 있어?”
“아아. 벌써 시간이.”
“어머나. 언제 시간이 이렇게 됐지?”
거실로 나온 아들의 목소리에 소희와 엄마가 시간을 확인하고 깜짝 놀랐다.
“왜 나왔냐.”
“물 마시러.”
“얼른 마시고 들어가라.”
“시른데? 화장실도 갈 건데?”
저걸 그냥!
부엌으로 들어가는 동생의 뒷모습을 보고 소희가 주먹을 불끈 쥐었다.
‘저런 거에 한눈을 팔 새가 없지!’
소희가 다시 TV를 보았다.
“어?”
회의실에 둘러앉아 있는 남매와 코디, 매니저. 그리고 직원의 모습이 보였다.
“그럼 다음 작품은 이걸로 하는 거지?”
“네! 그걸로 할래요. 그게 좋아요.”
“그래. 알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