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 귀엽다.”
“만져 봐도 돼?”
“왕!”
“히힛. 고마워.”
조금 전까지만 해도 이를 드러내던 녀석이 아이들 앞에서 배를 보이고 있었다.
어르신도 자신의 개가 다른 이들에게 살갑게 대하는 것이 처음인지 작은 눈을 크게 뜨고 아이들과 개를 쳐다봤다.
“오빠. 동물도 잘생긴 사람 좋아하나 봐요.”
“아. 그래서.”
“그럴 리가 있겠습니까. 애초에 개들과 사람들의 미의 기준이 같을 리가 없지 않습니까.”
개가 사람 얼굴 가릴 리가 없다면서 영훈과 형석이 부인했다.
미나가 슬쩍 손을 내밀었다.
으르르르르.
“안 돼. 그러는 거 아니야.”
“씁. 하면 안 돼.”
“됐다. 치사해서 내가.”
개한테 외면당한 미나가 입을 삐죽였다.
“할아버지 얘 이름이 뭐예요?”
“뭉치.”
“우리 뭉치랑 놀아도 돼요?”
“그럼. 그래 주겠니?”
“네!”
“뭉치야. 물 좋아해?”
“물은 별로 안 좋아할 텐데.”
“왕!”
작은 치와와가 아이들의 품에 안겨 계곡으로 갔다.
평소 목욕 한 번에 온 진을 다 빼게 만들었던 놈의 애교에 어르신이 배신당한 표정으로 아이들의 뒷모습을 바라봤다.
56. 스타
“얘 생각보다 귀여운 거 같다.”
“그치? 착해.”
“왕!”
“너 예뻐.”
“왕왕!”
뭉치가 혀를 내밀고 대답하듯이 짖었다.
“나도 강아지 키우고 싶어.”
“지한이가 너무 바빠서 힘들지 않을까? 강아지 키우는 게 보통 일이 아니라던데.”
“히잉.”
영훈의 단호한 말에 지한이 귀여운 척을 했다.
“지한이 강아지 잘 키울 수 있어?”
“응!”
“정말로?”
“네!”
“그럼 강아지 잘 키울 수 있게 공부부터 해야겠네.”
“열심히 배울게!”
“좋아. 지한이가 준비가 되면 형이 알아볼게.”
“형 좋아!”
결국 영훈이 아이들에게 져 줬다.
개를 키우게 된다면 돌보는 건 자신의 몫이 될 가능성이 크니 본인도 열심히 공부해야 했다.
“이거 먹어.”
“강아지가 참외 먹어도 돼?”
“할아버지. 뭉치 참외 먹어도 돼요?”
“껍질이랑 씨는 빼고 먹여.”
“네에!”
“너무 많이 먹이지는 말고.”
“네에에에!!”
“누나가 깎아줄게. 줘봐.”
“응!”
아이들의 말을 듣던 미나가 참외를 깎아 씨를 제거했다.
“이거 먹어.”
아득, 찹, 찹.
뭉치가 참외를 받아먹었다.
“잘 노네요.”
“그러게. 뭉치가 저렇게 애들을 좋아하는 줄 몰랐어.”
“혹시 다른 아이들에게도 잘 따르지 않던가요?”
“내 손주 놈들은 뭉치 때문에 다른 개들도 안 좋아해.”
“역시 지한이랑 지연이가 예외인가 보네요.”
영훈이 고개를 저으면서 그릴에 고기를 뒤집었다.
낮 동안 실컷 물놀이를 했으니까 저녁은 단백질을 먹어야지.
“너도 고기 먹을래?”
“왕!”
“뭉치는 안 돼.”
“왜?”
“사람이 먹는 건 개한테 안 좋대.”
“그렇구나.”
“뭉치 사료 가져올 테니. 그거 먹이자구나.”
“네에!”
뭉치의 밥까지 준비한 뒤, 남매가 평상 위에 준비된 밥상에 앉았다.
“자, 고기 나왔다.”
“와아! 고기!”
“잘 먹겠습니다.”
“잘 먹겠습니다.”
물놀이를 하느라 적지 않은 체력을 썼던 아이들이 게 눈 감추듯이 고기를 흡입했다.
그 모습을 본 어른들이 절로 엄빠미소를 지으며 아이들이 체하지 않게 돌봤다.
우물우물
“형이랑 누나도 먹어.”
“언니 이거 내가 싼 쌈이야.”
“정말? 이거 정말 언니한테 주는 거야?”
“응.”
“고마워어! 내 생애 최고의 쌈이야.”
“형! 형은 내가 싸 줄게.”
“진짜? 고맙다.”
아이들이 좋아하는 것만 잔뜩 넣어서 그런지 미나의 쌈에는 구운 마늘과 고기가 가득했고, 영훈의 쌈에는 아예 고기만 있었다.
“아저씨! 아저씨는 뭐 좋아해요?”
“저도 주시는 겁니까?”
“네!”
“파절이 좋아해요? 넣어 줄까요?”
“뭐든 다 잘 먹습니다. 가지 빼고요.”
“앗. 가지는 저도 싫어요.”
“맞아. 물컹해.”
“저도 그래서 싫습니다.”
싫어하는 채소로 공감대를 형성한 남매와 형석이 쌈과 고기를 주고받았다.
벌레 소리가 가득한 숲에 둘러싸여 고기를 구워 먹으니 이곳이 무릉도원이었다.
입에 넣어주는 고기를 먹으면서 카메라맨이 편안한 얼굴이 되었다.
“어린 나이에 할리우드에서 주연으로 영화를 찍었다고 해서 엄청 대단한 사람일 줄 알았는데 보통 아이들과 다를 게 없네요.”
“그쵸? 놀 때는 다른 집 애들이랑 똑같아요. 잘 먹고, 잘 놀죠.”
“뭔가 월드스타의 일상은 특별할 줄 알았는데 우리랑 똑같아서 놀란 거 같아요.”
“똑같은데 왜 놀라세요?”
“예상하던 장면이 나오면 놀라지 않는데 예상하지 못한 곳에서 의외의 장면이 나오면 놀라잖아요?”
“아, 알겠어요. 무슨 말인지.”
영훈과 만식이 대화를 주고받으면서 아이들을 바라봤다.
하루 종일 카메라를 들고 있던 감독도 잠시 카메라를 내려놓은 채, 아이들과 화기애애하게 고기를 나눠 먹었다.
다 같이 둘러앉아 밥을 먹으니 평온하기 그지없었다.
“좋네요. 촬영하러 와서 저까지 휴식하는 기분입니다.”
“이게 재충전이겠죠? 배우들은 작품이 없을 때, 이렇게 재충전하는 시간을 갖긴 해요.”
“재충전. 중요하겠네요.”
“맞아요. 아무래도 자신과 전혀 다른 인물로 살다가 온 거니까 휴식이 필요하죠. 감정 소모가 심한 역할을 하고 나면 1년 넘게 쉬는 배우도 있다고 들었습니다.”
“1년이 넘어도 그 역할에서 빠져나오지 못하면 어떡하나요?”
“그러면 대중들에게 잊히는 걸 감수해야죠. 물론 그 정도 쉰다고 해서 대중들에게 잊히지 않는 배우들도 있긴 합니다.”
“탑스타들 말이죠?”
“맞아요. 몇 년에 한 작품을 한다고 해도 대중들은 그 배우를 기억하죠. 누구도 넘볼 수 없는 별이니까요.”
“별이라.”
만식이 별이란 말을 중얼거리며 아이들을 쳐다봤다.
저 아이들은 저 하늘에 빛나는 별이 될 수 있을 것인가.
“그렇다면 저 아이들도 별이 될 수 있겠네요.”
아니, 이미 별인가?
저렇게 편안하게 웃고 있는 모습도 사람들의 시선을 잡아끄는 분위기를 가졌으니까.
잘 놀고, 잘 쉬어서인지 평소에도 빛난다고 생각했던 얼굴들이 더욱 빛났다.
“네. 저도 그렇게 생각합니다. 그리고 놀 때 다른 아이들과 별반 다를 게 없다고 했었죠.”
“그랬지요.”
“아마 애들이 연기 연습하는 걸 보면 깜짝 놀라실 겁니다.”
영훈이 자신만만한 얼굴로 만식을 돌아봤다.
제 새끼라 칭찬하는 것을 감안하더라도 저 얼굴에 가득한 자신감은 확고한 믿음에서 나오는 것이었다.
만식이 갈망에 타오르는 눈으로 대답했다.
“그거 빨리 보고 싶네요.”
* * *
빨리 보고 싶다고 한지 얼마나 됐다고.
만식은 어제까지만 해도 뭉치랑 헤어지기 싫다며 눈물의 이별식을 한 아이들에게서 영훈이 자신만만하게 말했던 모습을 두 눈으로 볼 수 있었다.
“저언하! 그건 아니되옵니다!”
“어허! 중전은 과인이 하는 일에 나서지 말라!”
“제 오라비는 죄가 없사옵니다. 이건 모함입니다!”
“시끄럽다. 여봐라! 거기 누구 없느냐? 어서 와서 중전을 뫼시어라.”
“전하! 저언하아!”
제 연령에 맞지 않는 연기를 하면서도 전혀 어색해 보이지 않았다.
심지어 지한이 중전, 지연이 왕을 맡아 연기하고 있음에도 아이들의 연기에서 나오는 박력은 웬만한 사극 전문 배우 못지않았다.
“지한이 앞으로 들어온 새 대본입니까?”
“하하. 아니요? 저거 지연이가 만든 거예요.”
“네?”
무슨 초등학생이 동생 연기 연습을 시킨다고 대본을 직접 써!
“그렇게 보지 마세요. 대사를 쓰는 건 아니고 아! 얘들아.”
“어어. 방해하려고 한 건 아닌데.”
“괜찮아요. 그냥 노는 거니까요.”
“연기 연습이 아니고요?”
“쟤들은 노는 게 연습하는 거예요.”
상식을 벗어난 연습 방법에 만식이 눈을 깜빡였다.
자신이 교양국에서 일한다고 하지만 스타들을 대상으로 다큐를 찍은 적도 있고, 방송국을 오가면서 안면을 튼 연예인들도 많았다.
하지만 자신이 아는 한에서 저런 식으로 연기 연습을 하는 이들은 한 명도 없었다.
영훈의 부름에 앞에 온 지연이 고개를 들었다.
“왜 부르는데?”
“아, PD님이 촬영하는데 궁금한 점이 있대.”
“뭐가 궁금하세요?”
“저기. 연기 연습하는데 누나가 직접 대본을 쓴다는 게 정말인가요?”
“아하. 그게 궁금하셨구나. 보실래요?”
“그걸 보여줘도 되나요?”
“네. 별거 아니니까요.”
지연의 대답에 만식이 묘한 표정을 지었다.
할리우드에 진출해 최연소로 주연을 맡은 한국 배우면서 특별한 게 없다고?
방금 본 장면만으로도 엄청 특별하던데?
어느 아역 배우가 성인 연기자들이 맡을 만한 배역을 저렇게 능숙하게 연기하겠는가.
“이거예요.”
“이건 사람이네.”
“네.”
지연이 보여준 스케치북에는 누군가의 인물화가 그려져 있었다.
아, 지한이 더 크면 이런 모습이 될 것 같긴 했다.
“제가 지한이 배역을 상상하면서 그려요. 이번에는 조선시대 왕비에요.”
“히히. 왕자 말고 왕비 해보고 싶었어요.”
“역시 왕자보다는 왕비가 더 세지.”
“응응!”
“그런데 대사는 없네요.”
딴 길로 새려는 아이들의 말을 강PD가 자연스럽게 이끌었다.
“대사는 그때그때 생각나는 걸 말해요.”
“애드리브란 말인가요?”
“애드리브?”
“즉석으로 지어내는 걸 말하는 거야. 맞아요. 애드리브에요.”
무슨 애드리브가 사극 대본 뺨쳐.
계곡에서 놀 때와는 전혀 다른 모습에 만식이 눈을 깜빡였다.
‘특별하긴 특별하구나.’
지한의 어른 모습을, 그것도 성인 여성으로 상상해서 그린 지연이나, 그 모습을 보고 대사를 즉흥적으로 만들어 낸 지한이나. 또 그걸 받아주는 지연이나!
이 아이들은 천재였다.
“그러고 보니 누나는 그림 잘 그리네요?”
“네.”
“히히. 이번에 에서 나오는 거 누나가 그려줬어요.”
“네!? 정말인가요?”
장애를 가진 어린 천재 화가를 그린 영화 .
화면에 담은 그림이 너무 예뻐 그 그림을 사고 싶다고 나서는 자들도 많았다.
오죽하면 그림을 엽서로 만들어 상품으로 팔기까지 했겠는가.
그 그림을 지연이 그렸다고?
“그 얘기 자세히 해주실래요?”
“한국 사람들은 잘 몰라요.”
“그거야. 한국에는 월드컵으로 홍보해서 그래. 미국이랑 다른 나라에는 지연이 네 그림으로 홍보했어.”
“정말?”
“응. 개봉 전 말고 개봉 후긴 하지만. 할리우드 주연 배우로 출연한 천재 동양인 배우 오지한, 그 영화의 그림을 전부 그린 천재 동양인 화가 오지연으로. 동생 덕분에 어린 천재 화가를 발견했다는 식으로 홍보했지.”
“그랬구나.”
홍보는 신경 안 써서.
그쪽 에이전시가 어련히 알아서 잘하겠거니 생각했다.
워낙 사건이 많이 터져서 정신이 없기도 했고.
“저기 그럼 그림 그리는 모습 볼 수 있을까요?”
만식이 양 볼을 빨갛게 물들이고 물었다.
이거 촬영 때문에 부탁하는 건 아닌 거 같은데.
“PD님 그림 좋아해요?”
“…제 취미가 미술관 가는 겁니다.”
우와 교양PD 아니랄까 봐.
취미가 미술관 가는 거라니.
“그럼 작업실 보여 드릴게요.”
“여기 작업실이 있습니까?”
“사장님이 만들어 줬어요. 사장님도 제 그림 좋아하거든요.”
“탑엔터 사장님이 부럽네요. 이렇게 두 천재들을 만나게 됐으니까요.”
만식의 말에 지연과 지한이 서로를 마주 보고 개구지게 웃었다.
우리야말로 사장님을 만나서 행운이지.
* * *
[할리우드 스타, 오지한의 연기 비법은?]
[동생은 연기 천재. 누나는 미술 천재? 두 천재 남매의 일상]
[KBC <사람극장> 오지한 편]
5부작으로 예정된 <사람극장> 오지한 편에 대한 예고 영상이 나갔다.
사람들은 잘 지내고 있는 남매의 모습에 걱정을 한결 덜어냈다.
지한의 팬카페에서도 예고 영상을 보고 좋다는 반응이 대다수였다.
[BEST]지한아 다큐 계속 찍어줘
글쓴이 love한이
지한아 잘 지내고 있는 것 같아서 누나가 기분이 좋아.
우리 지한이 노는 것도 잘하고 연기도 잘하고 얼굴도(이런 누나라 미안해ㅎㅎ)
아무튼 화면에 웃는 모습이 나와서 너무 좋다.
다큐 100편, 1000편 찍어주면 안 되겠니?
└저도 같은 마음이에요. 지한아 다큐 100000편 찍어줘.
└매주 보고 싶어 지한아.
└지한아 누나야아아아악!
└사랑해 지한아. 앞으로도 계속 행복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