뜨거운 한여름부터 지한이에 대한 기사가 사라질 새가 없었다.
사람들은 드라마보다 더 드라마 같은 현실에 부모를 욕했고, 아이들을 걱정했다.
부모를 욕하는 것은 상관없었으나, 이대로 아이들을 또다시 친척들의 손아귀에 넘길 생각이 없던 주민은 빠른 속도로 아이들의 미니다큐 촬영을 진행시켰다.
“우와! 그럼 우리 이제 놀러가는 거예요?”
“그래.”
“그런데 우리 놀러가도 돼요? 촬영하는 건데.”
“괜찮아. 다큐 촬영팀은 없는 사람이라고 생각하면 돼.”
“진짜 아무것도 안 해도 돼요?”
“자연스럽게 있어. 그런데 지연이는 괜찮니? 카메라에 나오는 거.”
“괜찮아요. 지한아. 원래 다큐는 그런 거야. 있는 그대로 보여주는 거.”
“그런 거야?”
“응.”
예전에 아이돌들이 팬유입 겸 홍보로 관찰예능을 찍기도 했었지.
그거랑 비슷한 거라고 보면 될 거다.
“그것보다 어디 가고 싶니?”
“계곡!”
“계곡 좋은 거 같다. 이제 여름방학도 끝났으니까 계곡에 사람도 많이 없을 거야.”
“너희들 놀이공원은 안 가고 싶어?”
“놀이공원?”
“놀이공원?”
주민의 말에 아이들이 귀를 쫑긋 세웠다.
준호와 같이 갔던 놀이공원 재밌었지.
그때는 사람들이 지한이 많이 모를 때여서 편하게 놀다 왔는데,
지금 가면 늑대 무리 앞에 떨어진 양 한 마리처럼 둘러싸이지 않을까?
“가고 싶긴 한데.”
“사람 너무 많은 건 좀 무서워.”
아이들이 풀이 죽었다.
지난 며칠 동안은 밖에 나가기만 해도 사람들이 괜찮냐면서 이거 먹으라고 손에 뭘 주지 못해서 안달이었다.
이미란이랑 오형우가 욕을 먹는 건 좋았지만 그렇다고 우릴 너무 동정하는 건 좀.
우린 불쌍한 아이가 아니라고.
탈출한 걸 축하해줘야 하는 거 아니야?
“괜찮아. 사람들 없을 거야.”
“어. 그런데 놀이공원에 사람 없으면 안 되는 거 아녜요?”
“내가 빌렸어.”
어. 우리 사장님 Flex하셨네.
“그럼 사장님도 같이 가요!”
지한이 천진난만하게 말했다.
그거 좋은 생각이네.
역시 놀이공원은 복작복작해야 제맛이지.
“영훈 오빠랑 미나언니도 같이 가자.”
“형석이 아저씨도.”
“헨리랑 엠마도 있으면 좋을 텐데.”
“헨리랑 엠마 보고 싶어.”
“애런도!”
“헤나 언니들도 같이 가자고 해요.”
“그래 알았다. 모두 올 수 있도록 초대장을 보내볼게.”
이러다가는 회사 사람들 전부 부를 것 같아서 주민이 아이들을 말렸다.
그러면 단합대회 같이 되는 건가?
그것도 나쁘지 않은 생각 같아서 주민이 진지하게 계획을 세웠다.
* * *
다큐팀은 사장님이 말한 다음 날 바로 찾아왔다.
“안녕하세요, 강만수입니다.”
“안녕하세요.”
“안녕하세요.”
<사람극장>의 PD가 아이들에게 인사했다.
“지금 바로 찍는 거예요?”
“맞습니다.”
미팅이랑 그런 것은 회사에서 이미 다 알아서 진행했다.
KBC측에서도 지한의 출연에 쌍수를 들고 환영했다.
“우와. 신기하다.”
자신들을 찍는 카메라에 아이들이 신기하게 카메라 렌즈와 눈을 마주쳤다.
예능이랑 드라마는 촬영이 다르다고 하더니 다큐도 예능 같은 느낌으로 진행되는구나.
“그런데 너희 지금 어디 가니?”
“아! 우리 계곡 가요!”
지한이 앞니가 빠진 얼굴로 환하게 웃었다.
영훈과 경호원인 형석아저씨가 차에 짐을 실었다.
촬영팀과 우리들까지 모두 차에 타자 곧바로 계곡으로 향했다.
“오빠. 휴게소 꼭 들러야 해.”
“나 호두과자 먹고 싶어.”
“그래그래.”
“너희들 선크림 발랐어?”
“응! 누나가 발라줬어.”
“어디보자. 지한이 너는 연예인이니까 살 타면 안 돼.”
“미나 누나도 발랐어?”
“그러엄!”
차 안에서 간식을 나눠 먹으며 테이프에서 흘러나오는 노래를 따라 부르는 것이 영락없이 놀러가는 가족들의 모습이었다.
혼자 운전하는 영훈이 심심하지 않게 말을 걸어주는 지연의 모습에서 놀러 갈 때마다 조수석에 앉아 있던 엄마의 모습이 떠오르는 것 같았다.
“아! 휴게소다!”
“자, 선글라스 끼고. 모자도.”
“언니 이게 더 눈에 띄지 않을까?”
“누나 나 이제 모자 쓰면 조금 평범한 사람처럼 연기할 수 있을 거 같아.”
“오? 지한이 많이 늘었네.”
“엣헴!”
“그래도 어디 갈 때는 혼자 가면 안 된다.”
“누나랑 같이 갈 거야.”
“그래.”
으스대는 지한을 보고 영훈과 미나가 한 마디씩 했다.
매번 밖에서 사람들이 알아보는 덕에 그렇게 빨리 배우고 싶어 하더니 드디어 평범한 사람처럼 연기하는 법을 익힌 모양이다.
‘평범한 사람?’
그들만이 아는 대화에 카메라를 들고 있던 감독이 의아해했다.
지연이 카메라맨과 눈이 마주쳤다.
“아. 그런데 카메라가 따라오면 일반인인 척 못 할 텐데.”
“오늘은 안 돼?”
“안 되겠다. 다음에 하자.”
저렇게 눈에 띄는 카메라를 들고 따라다니는데 안 들킬 리가.
겨우 익혔는데 오늘은 써먹을 수 없다는 말에 지한이 시무룩해졌다.
그 모습이 귀여워서 미나와 영훈이 웃음을 터트렸다.
“오늘은 촬영이 있으니까 어쩔 수 없지. 다음에 보여줄래?”
“응….”
“촬영 끝나면 같이 슈퍼 가 볼래?”
“응!”
지연이 능숙하게 동생을 달랬다.
그 모습에 영훈과 미나가 엄지를 치켜들었다.
아이들과 어른들이 한꺼번에 내렸다.
웅성웅성
휴게소에 있던 사람들이 카메라를 보고 돌아봤다가 곧 지한이의 얼굴을 확인했다.
촬영 중인걸 알기에 달려들지는 않았지만 곳곳에서 ‘오지한이다.’, ‘누나도 함께 있나봐.’, ‘촬영하나?’ 등이 들려왔다.
“너무 신경 쓰지 마. 우리는 지금 놀러가는 거잖아?”
“아, 그랬지.”
“얘들아. 너희 아까 먹고 싶다고 한 거 있지 않았어?”
“나, 나! 호두과자.”
“나는 핫도그.”
“그래. 마실 건?”
“물?”
“주스?”
“그건 형이 알아서 사 올게. 형석 씨. 애들 잘 부탁드립니다.”
“다녀오십시오.”
아무 말 없이 따라오던 경호원, 형석에게 아이들을 부탁한 영훈이 자리를 비웠다.
사람들이 평범하게 휴게소에서 간식을 사는 아이들을 멀리서 둘러싸고 카메라로 사진을 찍었다.
“얘들아! 찐감자도 맛있어!”
“식혜 먹을래!? 식혜 사줄까?”
“김밥! 김밥 좋아하니?”
간식을 먹는 아이들을 보고 몇몇 팬들이 참지 못하고 소리쳤다.
“다 먹는 얘기네요.”
PD가 아이들에게 물었다.
“다들 우리가 못 먹고 다니는 줄 아나 봐요. 지한아 핫도그 먹을래?”
“응. 냐암.”
“아하하하.”
“저 사람들은 너희가 뭘 먹기만 해도 좋아서 그래.”
“왜?”
“좋아하니까. 잘 먹고 잘 크는 모습만 봐도 좋은 거지.”
“그렇구나.”
귀가 좋은 사람들이 아이들과 영훈의 말을 옮기자 팬들이 크게 소리쳤다.
“많이 먹어.”
“잘 먹어야 한다!”
우리가 먹는 모습만 봐도 좋다니 팬들의 마음이란 알다가도 모르겠다.
미래에는 먹방이 유행해서 그렇다고 치지만 여기는 아직 유행하지 않을 텐데.
좋아하는 사람이 뭘 먹기만 해도 좋은 건가?
지연이 아리송하게 고개를 기울였다.
“형, 나 사진 찍어줘도 돼?”
“카메라 없는 사람도 있으니까 사인해주는 게 좋지 않을까?”
“둘 다 하면 안 돼?”
“괜찮을 거 같은데.”
“사인이랑 사진이라. 흐음.”
“안 돼?”
자신들을 좋아하는 팬들을 보고 지한이 사진을 찍어줘도 되냐고 물었다.
매니저인 영훈은 과연 막는 것과 찍어주는 것, 어느 것이 지한이에게 좋을지 고민했다.
이번 촬영 기획이 지한이의 이미지 변신과 동정여론을 잠재우려는 것도 있으니까
친근하게 다가가 사진을 찍어주는 것도 괜찮지 않을까?
“안 돼?”
“형, 안 돼?”
아이들이 올망올망한 눈동자로 영훈을 올려다봤다.
“읏, 치사하게.”
그런 눈빛을 할 때마다 져 줄 수밖에 없던 영훈이 힘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알았다. 형이 차에 가서 A4용지 가져올게.”
“와아!”
“해냈다.”
짝-!
우와아아악!
아이들이 하이파이브를 했다.
주위에서 구경하고 있던 이들이 아이들과 영훈의 협상을 들은 모양인지 크게 함성을 질렀다.
“그런데 여기서 사인회를 열어도 될까?”
“오빠, 여기 직원한데 말해야 되는 거 아니에요?”
“그렇겠지?
미나의 물음에 영훈이 힘없이 대답했다.
놀러 와서도 일하게 되다니.
이것이 매니저의 숙명인가?
물론 카메라가 붙은 시점에서 일의 연장이긴 했지만.
“그럼 갔다 오는 동안 잘 부탁드립니다, 형석 씨. 미나야. 애들 잘 보고 있어.”
“알겠습니다.”
“응. 잘 갔다 와.”
“다녀오세요.”
“다녀오세요오.”
아이들이 뜨거운 햇살 아래로 걸어가는 영훈의 등 뒤로 손을 팔랑거렸다.
“매니저분과 사이가 좋으시네요.”
“형 좋아요.”
“같이 사니까요.”
“그래도 뭔가 매니저와 더 친해 보이네요.”
“가족 같은 사이니까요.”
“맞아. 영훈이 형은 우리 가족이야.”
정작 피로 연결된 이들과는 파탄에 가까운 관계면서 일로 맺어진 사이를 더 가족같이 느낀다니.
옆에서 아이들을 챙기는 미나와 아이들의 부탁에 번거로운 일을 감수하는 영훈을 보면서 카메라맨은 가족의 정의란 무엇인가 생각했다.
55. 이게 힐링이지.
“으아. 드디어 도착이다.”
“고생했어요, 오빠.”
“형, 힘들어?”
“얘들아. 모자 쓰자.”
휴게소에서 깜짝 팬미팅을 열고 계곡으로 출발했다.
순식간에 사람들이 몰려 꽤 오랜 시간을 잡아 먹었지만 일찍 출발한 덕분에 물놀이 하는 데는 지장이 없을 것 같았다.
“들어드리겠습니다.”
“어머나, 고맙습니다.”
“아닙니다.”
“미나야. 애들 데리고 먼저 들어가. 사장님 이름 대는 거 잊지 말고.”
“네에. 자, 가자. 얘들아.”
“네에!”
“네에!”
아이들이 화음을 넣어 대답했다.
누가 천재 남매 아니랄까 봐.
미리 맞춘 것도 아닌데 화음이 꽤 듣기 좋았다.
통 큰 사장님이 고른 숙소 아니랄까봐, 커다란 통나무집에 정문까지 고급스럽기 그지없었다.
“허허. 서울에서 온 손님들인가?”
“안녕하세요!”
“안녕하세요, 할아버지.”
“그래그래.”
“안녕하세요, 어르신. 공주민 이름으로 예약했는데요.”
“알아. 들어와.”
“예?”
숙소의 주인이 현관으로 들어가며 말했다.
어어. 주인집이었나?
“뭐 해? 안 들어오고.”
“어, 저희 방에 짐 먼저 풀고 싶은데요.”
“주민이가 말 안 했어? 이 집에서 자면 돼.”
아니 이 집 전체를?
주인 어르신은 그럼 어디서 주무시는 거지?
“들어가자.”
미나가 떡 벌어지는 입을 닫으며 아이들의 손을 잡고 들어갔다.
“우와.”
“우리 숙소보다 넓다.”
“응. 그러게.”
안은 밖에서 보던 것처럼 넓었다.
나뭇결이 보이는 벽과 천장에 미나와 아이들은 꼭 숲속 오두막에 온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먼 데서 왔는데 뭐 하러 서 있어? 와서 앉아.”
“넵.”
“마실 거 좀 내 올 테니까 잠시 기다려.”
“옙!”
어르신이 부엌으로 들어갔다.
할아버지가 사라지자 남은 이들이 집을 더 둘러봤다.
“우와. 멋있다.”
“여기가 집이면 좋겠다.”
“지한이는 몇 년 만 더 일하면 이런 집 가질 수 있을걸?”
“정말?”
“그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