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 많이 안 났어요.”
“아니 여자애 얼굴이 이게 뭐야.”
주민이 속상하다는 듯이 손도 대지 못하고 울상을 했다.
처음보는 낯선 모습에 지연이도, 누나의 손을 꼭 잡고 옆에 앉아있던 지한이도 공 사장을 멍하니 쳐다봤다.
“사장님. 울지 마요.”
“울지 마세요.”
“안 울어.”
“진짜요?”
“킁. 그래.”
지연이 미심쩍은 눈으로 공 사장을 쳐다봤다.
“사장님. 여기 손수건입니다.”
“고마워, 남 비서.”
공 사장이 손수건을 들고 땀을 닦았다.
눈가도 조금 닦는 거 같은데?
아무튼 고작 머리 좀 까진 거 가지고 사장님이 올 줄 몰랐다.
“남 비서. 지연이 할 수 있는 검사는 모두 다 해.”
“알겠습니다.”
“고 매니저. 당분간 지연이 입원시키고 기자들 접근하지 못하게 막아.”
“넵!”
“사장님. 지한이 카메오는요.”
“지금은 그럴 때가.”
“지한이 하게 해 주세요.”
지연의 말에 주민이 지한을 돌아봤다.
제 누나의 옆에서 눈이 빨간 상태로 딱 달라붙어 있는 아이가 보였다.
“지한이 너는 어떻게 하고 싶니?”
“저는.”
공 사장의 말에 지한이 그와 누나를 번갈아 바라봤다.
하고 싶은 마음은 있는데 오늘 촬영장에서 안 좋은 일이 있어서 망설여지는 것 같았다.
아니면 누나 옆에서 떠나고 싶지 않은 건가?
“지한이 하고 싶은 거 해. 누나 괜찮아. 안 아파.”
“그치마안.”
지한의 시선이 지연의 머리에 붙어있는 거즈로 향했다.
그걸 보고 동글동글한 지한의 눈에 눈물이 맺혔다.
“누나. 아프잖, 아. 끅.”
“아니야. 이거 밴드 붙이면 돼. 병원에는 밴드가 없어서 이거 붙인 거야.”
“정말?”
“응. 떼서 보여줄까?”
“아니이!”
“지연아!”
“떼면 안 되지!”
아니 진짜 조금 까진 건데
왜들 이렇게 호들갑이야?
“지연이 넌 뇌진탕 검사부터 하고, 혹시 넘어졌을 때 어디 금 갔을지도 모르니까 x레이에다가.”
“병원에서 할 수 있는 검사는 모두 다 할 수 있도록 지시하겠습니다.”
“그래. 검사받고 쉬어.”
“촬영해야 하는데.”
“그건 좀 미뤄도 돼.”
아니 우리 일정도 아닌데.
카메오 곧 출연해야 하는 거 아니야?
“방송국 놈들은 지연이 너보다 내가 더 잘 알아.”
그렇게 말하는 공 사장님이 믿음직스럽게 보였다.
오! 다시 내가 아는 사장님으로 돌아왔네?
“지금 지한이랑 지연이 네가 어마어마한 화제야. 그리고 지한이가 카메오 출연하기로 한 것 때문에 드라마팀에서도 난리라더라.”
“그래요?”
“그래. 사람들이 지한이가 출연하기로 한 드라마가 뭔지 다 아니까.”
노이즈 마케팅이란 건가?
어찌됐든 그쪽에 피해가 안 갔다면 다행이다.
“최대한 지한이 촬영 장면을 뒤로 미뤄달라고 할 테니, 너는 검사받고 쉬어. 아이들은 아프지 않는 게 일이야.”
“네.”
지연의 상태를 보고 조금 안심이 되었는지 공 사장이 아이들을 다독였다.
일이 있어 곧 돌아가야 했지만 공 사장은 남 비서가 가지고 있던 빵이랑 아이스크림 음료수 등을 건네주고 또 먹고 싶은 거 있으면 말하라고 하고 병실을 나섰다.
“지연아. 지금 너한테 여기저기서 연락 온다.”
“누가 연락왔는데?”
“기자들이.”
그래서 꺼 놨어.
“오빠 지한이 매니저면서 전화 안 받아도 돼?”
“괜찮아. 지금 기사는 회사에서 대응하고 내 개인 휴대폰은 켜 놨으니까. 회사에서 무슨 일 있으면 나한테 연락 올 거야.”
“오오.”
업무용이랑 개인용이라니.
맞다. 이때는 휴대폰 여러 대 개통할 수 있었던가?
“너희도 오늘은 이만 자자.”
“오빠는?”
“오빠도 여기 있어야지. 병실에 너희만 둘 수 없잖냐.”
“으응.”
“지한이 너는 형이랑 같이 누울래?”
“아니. 누나랑 같이 잘래.”
“나 많이 안 아프니까 우리 같이 잘게. 오빠는 거기 안 딱딱해?”
“안 딱딱해. 1인실이라 좋구만.”
영훈이 실실 웃으며 아이들에게 말했다.
나도 1인실은 처음 써 보는데.
되게 신기하게 생겼다.
갑자기 입원해서 병실 둘러보지도 못했는데 잘 때 되니까 보게 되네.
“그럼 얼른 자라. 아픈 사람은 잘 자고 잘 먹어야해.”
“알았어.”
“누나. 필요한 거 있으면 말해. 내가 갖다 줄게.”
“고마워. 일단 오늘은 자자.”
부담스럽다 이 사람들아.
지연이 웃음을 터트리고 누웠다.
53. 저 아이야.
[아이들이 무슨 죄? 배우 오지한 母 체포]
[미행에 잠입까지 “내 애예요.”]
[돈 되는 아들은 납치, 돈 안 되는 딸은 폭행…배우 오지한 母 구속]
지난 13일 배우 오지한을 납치하고 이를 막으려던 딸을 폭행한 A씨(31세)가 구속됐다.
서울 남부지방법원에서는 A씨에게 아동학대, 아동방치 및 납치혐의로 구속영장을 발부했다.
…배우 오지한의 누나, 오지연(10세)은 신촌 세브란스 병원에 입원해 뇌진탕 및 정형외과 검사를 진행했으며, 전치 3주의 진단 결과가 나왔다. 경찰은 A씨가 어떻게 배우 오지한의 행적을 알았는지 조사하기 위해 A씨의 행적을 추적하겠다고 발표했다.
이미란에 대한 기사가 봇물 터지듯이 쏟아져 나왔다.
그런데 그 기사에 지한이의 이름이 꼭 붙었다.
조회 수 올리기에 눈이 벌게진 기자들이 평범한 사회면에 쓸 일을 배우의 이름을 붙여 퍼 나르고 있었다.
오죽하면 연예면에서도 이미란에 대한 기사를 볼 수 있으니 지금 이 화제로 대한민국이 얼마나 뜨거운 질 알 수 있었다.
“그래도 지한이 이름은 좀 빼주지. 꼭 지한이가 나쁜 일 한 거 같잖아.”
“원래 기자들이란 저래. 화제라면 눈에 불을 켜고 달려들지.”
“취재를 하라고 취재를.”
“너희들을 건들 수 없으니 안 건드는 선에서 조회 수를 뽑아 보려고 저러는 거야.”
“저렇게 달려드는데 우리 왜 안 건드는데?”
“지금 너희들 건들면 길가다가 돌 맞아서 죽어.”
“아.”
전국민이 우리 집 사정을 알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이제 오형우랑 이미란은 우리 이름을 팔아먹는 일조차 쉽지 않을 것이다.
“그래서 오빠 지한이 언제 촬영한대?”
“그쪽에서는 빠르면 빠를수록 좋다고 하던데.”
“지한아 대본 다 외웠어?”
“응!”
좋아. 우리 동생은 문제가 없군.
“그럼 가자. 계속 병실에 있는 것도 좀 그렇고.”
아무리 지한이가 영화 몇 번 찍고 잘 나간다고 해도 아직까지는 출연료가 적다.
할리우드 영화 아니었으면 어쩔 뻔했어.
“조금 더 쉬지.”
“벌써 딱지까지 앉았는 걸. 의사 선생님도 나 건강하다고 했잖아.”
“그랬지.”
공 사장의 극성에 종합 검사를 받았다.
하는 김에 지한이도 같이 받았지.
우리 둘 다 아무 이상 없음.
오히려 튼튼하다고 하더라.
“그냥 지한이 혼자 갔다 오면 안 될까?”
“난 누나랑 같이 있을래.”
“거 봐. 나도 가야한다니까?”
“끄응. 너희들 사이가 좋은 건 좋지만…. 아니다. 우애가 좋으면 좋은 거지. 그래. 알았다. 형이 알아볼게.”
“예에!”
“와아!”
자신을 보채는 아이들에 결국 영훈이 항복했다.
그래 너희들을 내가 어떻게 이기겠냐.
하고 싶은 거 다 해.
병원에 있는 것보다 촬영장에 가는 게 나쁜 일을 잊기에 더 좋겠지.
영훈이 휴대전화를 꺼내 들었다.
매니저로 일할 시간이었다.
* * *
아무리 화제가 되어도 아이들이 화면에 나오지 않으면 화제를 소화할 수 없다.
내심 빠른 촬영을 바라던 <선고하겠습니다> 메인 PD는 탑엔터에서 연락이 오자마자 두 팔을 들어 환호했다.
“상식아! 왔냐?”
“PD님 아직이에요. 제가 오면 바로 말씀드린다고 했잖아요.”
“그래도 임마. 애들이 촬영장에서 그 난리가 났는데 우리가 버선발로 나가서 마중해야 하지 않겠냐?”
“그렇죠. 걔들 엄마가 미행했어도 우리 촬영장 보안이 좋았으면 그날 그런 일이 있었겠어요?”
“씁. 안 그래도 그거 때문에 윗분들이 간 떨어질 뻔했다더라. 기사가 애들 엄마에 모조리 집중돼서 다행이지.”
“맞아요. 그래도 그 일 덕분에 경비 강화한다고 하더라고요.”
“그래. 잘 됐지 뭐.”
연예인들이 그런 사람들한테 해코지라도 당하는 날이라면 방송국은 폭파당할 거다.
분노한 팬들이 어찌나 무섭던지.
그때 촬영장 한구석이 시끄러웠다.
“뭐야, 또 무슨 일이야.”
“오지한 배우가 온 게 아닐까요?”
“뭐? 그럼 내가 가야지!”
<선고하겠습니다>메인 PD 박수만이 벌떡 일어나 스태프들이 모여 있는 곳으로 향했다.
혹시나 했는데 역시나였다.
오지한이 누나, 오지연과 매니저와 코디, 그리고 낯선 남자를 대동한 채 촬영장에 와 있었다.
수만이 재빨리 다가가 아이들 앞에 허리를 숙였다.
“아이고 와 줘서 감사합니다. 몸은 괜찮나요?”
“안녕하세요.”
“안녕하세요. 몸 괜찮아요.”
“그래. 참 다행입니다.”
말투 이상해.
지연이 지한을 잡아 옆구리에 딱 붙였다.
아이들이 경계하는 것도 모르고 수만이 저자세로 아이들에게 굽신거렸다.
“그럼 오늘 촬영 잘 부탁드립니다.”
“네! 잘 부탁드립니다.”
메인 PD와 인사를 나눈 지한을 데리고 분장실로 향했다.
분장실에 들어오자마자 영훈과 미나가 웃음을 터트렸다.
“푸핫! 아까 박 PD님 봤어?”
“아니 도대체 왜 그러신대요. 아 저 웃음 참느라 배 터지는 줄 알았어요.”
통통한 체구에 허리를 굽혀 볼록한 배를 보고 미나와 영훈은 시선을 애써 다른 곳으로 돌려야했다.
그렇게 볼록한 배로 아이들에게 정중하게 인사하는 모습이 간신배 같아서 평소에 불도저로 소문난 박 PD를 떠올릴 수 없었다.
시청률을 올려줄 공신인데다가 어찌됐든 저번 일에 방송국의 보안 책임도 있으니 저렇게 나오는 거겠지.
아이들을 따라와서 좋은 구경했다.
“지한이는 이 옷으로 갈아입고 나오자.”
“응!”
“오렌지 주스 마실래?”
“오늘은 포도 주스 마시고 싶어.”
“알았다. 지연이는?”
“나는 복숭아 주스.”
“그래. 아, 형석 씨는 뭐 드시겠습니까?”
“저는 괜찮습니다. 지금은 경호중이라.”
업무 중이라 정중히 거절하는 형석을 보고 영훈이 어색하게 고개를 끄덕이고는 가방에서 보온병을 꺼냈다.
도우미 아주머니가 아이들을 위해서 매번 다양한 과일 주스를 준비해주시기에 촬영장에 챙겨왔다.
지연이 복숭아 주스를 받아들고 형석을 올려다봤다.
촬영장 간다고 하기에 공 사장이 오늘부터 붙여준 경호원이었다.
“경호원 아저씨.”
“네.”
“계속 서 있으면 다리 안 아파요?”
“괜찮습니다.”
“운동 많이 했어요?”
“평소에도 단련을 하고 있습니다.”
“오오.”
“지연아 이 아저씨는 특전사 출신이래.”
“오오오오!”
특전사!
막 허공에 날아다니고 맨손으로 적들을 슉샥빡 해치우는 그 사람?
유단자에 총도 잘 쏘고 눈빛으로도 기세를 꺾어 놓는다는 그 특전사?
지연이 초롱초롱한 눈으로 형석을 올려다봤다.
아이의 눈빛에서 특전사에 대한 존경을 읽은 형석이 치솟는 자부심을 억누르며 대답했다.
“맞습니다. 몇 년 전까지 특전사로 근무했죠.”
“우와! 그런데 왜 지금은 지한이 경호하는 거예요?”
“정확하게는 오지한, 오지연 두 분이 제 경호 대상입니다.”
“왜요?”
“이유까지는 모릅니다. 그저 저는 고용된 입장이고, 두 분을 경호하라는 임무를 받았을 뿐입니다.”
“오오오!”
멋있다.
특전사 출신 경호원이라니.
딱 봐도 뭔가 엄청 대단한 느낌.
“그럼 우리 숙소에 들어갈 때까지 경호하는 거예요?”
“네.”
“맞다. 지연아 숙소도 옮길 거야.”
“왜?”
“왜긴. 노출됐으니까 그렇지.”
“아하.”
이미란이 우리를 숙소 앞에서부터 미행했었지?
경찰이나 기자들도 이번 일로 우리가 어디 있는지 알았겠다.
“우리 어디로 가는데?”
“일단 후보지를 알아보는 중이야. 정해지면 알려줄게.”
“거기 가면 오빠랑 미나 언니 방도 있어?”
“우리는 같이 살 필요는 없지. 나야 뭐 일이 일이다 보니 숙소에 머물 때가 많은 거고.”
“오빠도 같이 살자.”
이번 기회에 그냥 아예 들어와서 살지.
“형 우리랑 같이 살아?”
마침 옷을 갈아입고 나온 지한이 누나의 말을 듣고 영훈의 앞에 섰다.
지한의 손에 포도주스를 들려주면서 영훈이 고개를 저었다.
“형은 다른 사람도 봐 줘서 아예 들어가서 사는 건 힘들 거 같은데.”
“오빠 지원 가는 거라며.”
“다른 사람 봐 주는데 왜 같이 못 살아? 형 일해. 가끔은 밖에 나가서 친구도 좀 만나.”
“…지한이 너 어디서 그런 말 배워왔어.”
“507호 아줌마가 그랬어.”
“507호? 숙소?”
“응. 숙소 아래층 아줌마.”
아주머니. 애들 앞에서 무슨 소릴 하신 겁니까.
영훈이 이마를 짚었다.
목청이 좋은 아주머니를 탓해야 할지 학습 속도가 좋은 아이를 탓해야 할지 몰랐다.
“아, 아무튼 숙소 정해지면 알려줄게.”
“네에.”
“네!”
“지한아 와서 화장하자.”
“응!”
미나가 화장대 앞으로 지한을 불렀다.
지연이 복숭아 주스를 꼴깍꼴깍 마시며 다음 숙소에 방이 몇 개일지 생각했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