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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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 뒤에서 들린 목소리에 지한의 얼굴이 새파랗게 질리는 것이 보였다.

그래.

이미란을 보는 것만큼 우리에게 섬뜩한 일은 없어.

“얘들아 엄마야.”

이미란이 모자를 쓰고 아이들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 * *

“얘들아 왜 아무 말도 없어? 엄마라니까?”

반갑게 맞이할 줄 알았던 아이들이 아무런 반응이 없자 이미란이 인상을 찌푸렸다.

“엄, 마. 여기 왜.”

“엄마가 너흴 보러 온 게 이상해?”

“그게 아니라.”

“여기 왜 왔어?”

얼어붙은 지한을 등 뒤로 숨긴 지연이 미란을 쏘아붙였다.

“지연이 너 엄마한테 무슨 말버릇이야.”

“우릴 버리고 갔으면서.”

“버린 거 아니야. 엄마가 돈 많이 벌어오려고 그런 거야.”

“거짓말!”

지연의 말에 미란이 다정한 말투를 집어치우고 본색을 드러냈다.

“시끄러워. 그냥 따라와.”

이미란이 성큼성큼 다가와 아이들의 팔을 낚아챘다.

반항하는 딸을 본 미란이 무섭게 일그러진 얼굴로 지연을 나무랐다.

“엄마가 말하는데 따라와야지. 어디서 대드는 거야?”

“어, 엄마.”

“이거 놔! 지한이한테 손대지 마!”

온몸을 비틀어서 지연이 미란의 손에서 벗어났다.

“엄마가 자식을 데려가겠다는데 왜 그래! 지연이 너도 엄마 방해할 거면 따라오지 마. 너는 내 딸도 아니야!”

“너도 내 엄마 아니야! 지한이 내놔! 손대지 마!”

지한을 억지로 잡고 끄는 미란을 말리려고 지연이 악착같이 달라붙었다.

누군가 납치하려고 할 때는 죽음을 각오하라고 했던가?

상대방이 익숙한 장소에 가면 무슨 범죄든 이루어진다고 했던 말을 들은 것 같다.

‘그러니까 절대 못 보내!’

퍼억!

“아악!”

“누나!”

이미란에게서 머리를 맞고 쓰러진 지연이 다시 일어섰다.

처음에 이미란을 만나고 몸이 굳어 있던 지한도 누나가 나동그라지는 모습을 보고 적극적으로 발버둥을 치기 시작했다.

“엄마! 이거 놔요! 놔주세요!”

“너까지 엄마 말 안 들을래?”

반항하는 지한을 보고 이미란이 손을 들어 올렸으나 차마 지연처럼 아이의 얼굴을 때릴 생각을 하지 못했다.

그때였다.

지연이 이미란에게 달려들어 그녀의 손을 깨물었다.

콰득!

“아악!”

인간의 몸에서 가장 단단한 곳이 이라고 했던가?

온 힘을 다해 깨물었던 지연의 이가 미란의 살을 파고들었다.

입 속에서 비릿한 맛이 났다.

“이게!”

이미란이 손을 들었다.

지연 때문에 지한을 놓친 미란이 아이의 머리카락을 쥐고 떼어내려고 힘썼다.

‘누가 놓칠 줄 알고? 이미란 넌 오늘 여기서 끝이야.’

부디 오늘 오기로 한 기자가 이 장면을 잘 찍었으면 좋겠다.

영훈 오빠는 언제 오려나.

얼른 와서 지한이 데려갔으면 좋겠다.

이신성 배우한테 미리 현장을 보러 와도 되냐고 물어봐서 다행이다.

오늘 지한이가 촬영하는 날이었으면 펑크가 날 뻔했어.

“이거 안 놔?”

“어어앙아(절대 안 놔).”

“너네 진짜 이렇게 할 거야?!”

“이어크아어어(이렇게 할 거야).”

너는 절대 엄마가 될 자격이 없어.

지난 생에서 네 딸로 25년을 살아줬으면 됐잖아.

그때까지 내가 널 뒷바라지 해 줬으니 이제 그만 우릴 놔 달라고!

“지연아! 지한아!”

“혀어엉!”

“윽!”

멀리서 영훈이 우릴 찾는 소리가 들렸다.

영훈의 목소리에 지한이 크게 그를 불렀다.

목이 막히는지 억눌린 목소리였지만 절박한 지한의 마음 때문인지 영훈이 단번에 아이의 목소리를 듣고 달려왔다.

“너희들 어디, 당신 누구야!!”

영훈의 고함이 터졌다.

얼핏 본 영훈 오빠의 얼굴이 괴수처럼 무시무시했다.

52. 잘 가라, 이미란

‘다행이다.’

영훈의 외침을 들었는지 그의 뒤에서 스태프들이 고개를 내미는 것이 보였다.

이윽고 영훈과 함께 소란을 느낀 스태프들이 이쪽으로 달려왔다.

점점 몰려드는 사람들에 이미란이 낭패한 얼굴이 되었다.

‘이렇게 된 이상.’

이미란이 뻔뻔하게 울상을 지었다.

그래봤자 눈에서 눈물 한 방울 안 나왔다.

역시 지한의 연기력은 이미란에게서 나온 게 아닌 것 같다.

“당신 누구야! 지연아! 지한아!”

“혀어엉.”

“지한아 괜찮아? 지연아!”

달려오는 지한을 안은 영훈이 재빨리 등 뒤로 아이를 숨겼다.

그리고 지연에게 물려 있는 미란에게 다가갔다.

그 사이 스태프들은 이미란을 둘러싸 도망칠 곳을 막았다.

몇몇은 경비원을 부르러 갔다.

“여긴 관계자 외 출입금집니다. 경찰이 올 때까지 얌전히 있고 아이를 풀어주세요.”

“아니에요. 저는 애들 엄마예요.”

“엄마?”

이미란의 말에 스태프이 웅성거렸다.

“오지한 배우 엄마라면?”

“그 애들 두고 도망쳤다던 그 사람 아니야?”

“무슨 낯짝으로 뻔뻔하게 여길 들어 온 거지?”

“뻔하지. 애가 유명해지니까 뭐 주워 먹을 거 없나하고 찾으러 온 거지.”

“뭐야, 미친 거 아니야?”

속닥거린다지만 주위를 둘러싼 스태프들의 말이 들리지 않을 리 없었다.

이미란이 뻔뻔한 태도로 피해자 코스프레를 했다.

“다른 곳에서 돈 벌어서 아이들을 찾으러 왔더니 애가 글쎄 서운했는지 이렇게 물었어요. 정말이지. 이게 다 내 탓이에요.”

그래봤자 안 통한다.

여기 있는 사람들은 연기를 직업으로 삼는 이들과 함께 일하는 사람들이다.

저딴 허접한 연기 따위에 넘어가지 않는다는 말이었다.

그래도, 뭐.

증인들이 모였으니 한마디 해 줘야지?

입에 있던 피를 퉤 뱉어낸 지연이 진정한 메소드 연기를 보여줬다.

“아니야! 지한이가 싫다고 했는데 억지로 끌고 갔어. 그리고 나는 돈도 안 되니까 필요 없다고 했어!”

“지연아, 어떻게 엄마한테 그런 말을!”

“나보고 딸 아니라고 했잖아! 너는 필요 없다고! 지한이만 필요하다면서 때렸잖아!”

실제로 이미란의 손을 물고 있는 모습도 보았고 그녀에게 맞아서 여기저기 엉망이 된 지연을 보자 현장에 있던 이들의 얼굴이 대번에 험악해졌다.

어디 감히 때릴 곳이 어딨다고 애를 때려.

그것도 지 혼자 살겠다고 애를 버리고 간 사람이!

“막내야. 소품으로 쓰는 밧줄 있지? 가져와. 수갑도.”

“넵!”

“상식아. 경찰에 신고해라.”

“이미 전화했습니다.”

“잠시! 잠깐만! 나는 애들 엄마예요!”

이미란의 변명에 아이가 있는 사람들이 격하게 반응했다.

마침 드라마가 법정물이라 죄인을 포박한 수갑과 포승줄이 소품으로 준비되어 있었다.

“당신은 엄마도 아니야!”

“어떻게 제 새끼를 버리고 간 것도 모자라서 애를 패? 애를!?”

“네가 그러고도 사람이야?!”

“아니, 난.”

자신을 둘러싼 사람들의 날선 비난에 이미란이 우는 척하는 것도 잊고 억울한 표정을 지었다.

도대체 뭘 잘했다고 억울한 표정을 짓는 건지.

잘못한 것이 없다는 이미란의 태도에 사람들이 더욱 뿔이 나 그녀를 도망가지 못하게 했다.

“얘들아, 가자. 우리 저쪽으로 가 있자.”

양팔에 지한과 지연을 품은 영훈이 화를 억누르는 목소리로 아이들을 조심히 끌어안았다.

아이들을 한 팔씩 든 영훈이 분장실이 있는 곳으로 향했다.

‘평소에 맨날 바람 빠진 풍선처럼 흐느적거리더니 의외로 힘이 좋구나.’

영훈의 팔에 안겨 있던 지연이 태평하게 생각했다.

“히끅. 흐응. 끕.”

영훈의 목을 껴안고 왼쪽 팔에 안겨 있던 지한이 지연을 보고 눈물을 방울방울 떨어트렸다.

“왜 울어.”

“나, 때문에. 끅. 누나가아아아앙.”

으아아앙!

지한이 결국 울음을 터트렸다.

뭐가 그렇게 서럽던지

영훈의 목을 껴안은 지한이 몸을 들썩이며 펑펑 울었다.

“미안하다. 형이 너무 늦게 왔지?”

“으아아아앙. 형아아아.”

“미안, 미안해. 흡.”

아니 오빠까지 왜 울어?

조금 전까지만 해도 듬직한 모습을 보이던 영훈이 평소의 감수성이 풍부한 영훈으로 돌아왔다.

“한아, 오빠. 나는 괜찮아. 오빠가 바로 찾으러 와 줬잖아.”

“지연이, 네가. 킁. 우리가 안 보이면 바로 찾으러 오라고 했잖아. 흐윽, 엄마 오는 거 어떻게 알았어?”

“몰랐어. 그냥 오늘 느낌이 좀 안 좋아서.”

“그래. 네가 감이 좋긴 했지. 아이고 우리 지연이이이이. 커허헙. 크흐흐흑.”

월드컵 경기 결과를 족집게처럼 맞추던 지연을 떠올린 영훈이 젖은 얼굴로 지연을 바라봤다.

아 진짜.

왜 울어?

미안하게.

공 사장과 둘이서 짠 계획 때문에 의도치 않게 영훈과 지한을 울린 지연이 미안한 얼굴로 영훈을 쳐다봤다.

“나 진짜 괜찮아.”

“괜찮긴 뭐흐가아아아.”

이미란에게 쥐여 잡혀 흔들린 덕분에 산발이 된 머리와 빨갛게 달아오르는 이마를 보고 영훈이 울음을 터트렸다.

“미안해에에에에.”

“누아아아앙.”

양옆에서 시끄럽게 울음을 터트리는 두 사람 덕분에 지연이 잠시 귀를 막을 뻔했으나 영훈의 어깨를 잡고 있는 팔을 풀지 않았다.

자신 탓에 오늘 하루 마음고생 했을 두 사람을 위해서 얌전히 둘의 고막테러를 들어줬다.

* * *

이미란은 스태프들이 부른 경찰 덕분에 바로 경찰서로 갔다.

혹시라도 나중에 회사에서 아이에게서 엄마를 떼어놓기 위해 일부러 그런 게 아니냐는 말이 나올까봐 이 모든 일을 우연처럼 꾸며야 했다.

지한이의 카메오 출연

할리우드 영화에 대한 인터뷰 겸 카메오 출연에 대한 홍보 인터뷰

이미란이 몰래 출입하기 좋게 경비원들의 교대시간에 맞춰서 찾아온 촬영장

이 모든 것이 주민이 짠 판이었다.

그리고 자신은 사장님이 짠 판 위에서 움직이는 말이 되어 이미란을 잡았다.

주민이 부른 기자가 타이밍을 잘 맞췄는지 이미란에 대한 기사가 바로 나갔다.

[부모 같지 않은 부모. 버릴 땐 언제고, 이제 와서?]

[‘너는 필요 없어.’ 버린 것도 모자라 아이 가슴에 비수를 꽂는 비정한 엄마.]

[촬영장에 나타난 母. 이유는?]

[배우 오지한을 납치하려던 존재는 친엄마?]

이혼 후 빚 독촉에 잠적한 것으로 알려졌던 배우 오지한 군의 어머니 이 모씨(31세)가 오늘(13일) 오후 촬영장에 난입해 오지한군을 납치하려다가 관계자에게 붙잡혔다.

이 모씨는 촬영 스태프로 위장해 방송국에 침입했으며, 오지한군이 누나와 둘만 있을 때 납치를 시도한 것으로 밝혀졌다.

…오지한 군의 누나 오지연 양은 이 모 씨를 막으려다 여러 차례 맞았으며 어른들이 올 때까지 이 모 씨의 발목을 잡았다.

…현장에서 체포된 경찰에서 조사 중이며, 도주의 위험이 있어 구속 수사를 할 방침이라고 전해졌다.

대한민국이 난리가 났다.

박스오피스에서 1, 2위를 하는 영화의 주연이자 월드컵 응원곡을 부른 배우.

어린 나이지만 할리우드에 진출한 월드스타인 오지한의 기사였다.

그것도 자극적인 내용의 기사에 사람들이 너도나도 할 것 없이 뉴스를 보았고, 하나같이 이미란의 행태에 격분하며 아이들을 걱정했다.

“아니, 세상에 저런 엄마가 다 있어?”

“납치? 버리고 갈 땐 언제고!”

“분명 돈 때문이겠지. 지금 지한이가 돈 얼마나 잘 벌어. 게다가 할리우드잖아! 미국에서도 꽤 순위가 높지 않았어?”

“그렇지.”

“쯧쯧쯧. 애들이 어쩜 저렇게 부모복이 안 좋은지. 아빠는 술 먹고 애들 죽이려고 했다고 하지 않았어?”

“잘 모르겠는데. 아무튼 알콜 중독이라고 하지 않았어?”

“누나가 진짜 기특하다. 아이고 제 동생 납치될 뻔한 걸 어른들이 올 때까지 막았다잖아.”

“세상에. 아이고 애는 괜찮대”

“모르지. 머릴 맞았다고 하던대.”

사람들이 이미란에 대한 분노와 오지연에 대한 걱정으로 들썩였다.

이 일이 얼마나 커졌으면 9시 뉴스에 이 일이 보도됐다.

“히잉.”

“많이 아프니?”

“아니, 그냥 조금 따가워.”

“오빠가 늦어서 미안하다.”

“괜찮다니까.”

“누나아.”

사람들이 난리가 나거나 말거나 지연은 병원에서 소독을 받았다.

영훈 오빠가 입에 거품을 물고 입원해야 한다고 난리를 부려서 병실에 앉아있었다.

큰 상처도 아닌데 왜 다들 이렇게 호들갑인지.

“뛰시면 안 돼요!”

“죄송합니다, 아이가 다쳐서!”

병원에서 누가 뛰는 거야?

그런데 목소리가 아는 목소린데?

“지연아! 지한아!”

공 사장님이다.

옆에 있던 고영훈을 보고 아이들의 위치를 파악한 공 사장이 헐레벌떡 뛰어왔다.

깜빡깜빡

“사장님?”

“다, 다쳤다면서.”

“조금 다치긴 했는데.”

“아니 머리가. 피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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