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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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수가 팅팅 부은 눈으로 친구들을 비웃었다.

자막이니 뭐니, 가수를 해야 한다느니 뭐니, 라고 하면서 심드렁했던 친구들이 빨간 눈으로 코를 훌쩍이는 꼴이 된 게 웃겼다.

“해수 너도 울었으면서.”

“훗. 나는 내가 울 거라고 예상했었지.”

“치사하게. 혼자 휴지를 준비해 왔겠다.”

“아니 어떻게 알았는데.”

“우리 지한이는 연기를 진짜 잘하거든.”

첫 등장 때는 아프지도 않았는데도 누나를 걱정하며 울음을 터트린 지한이 때문에 눈물을 흘렸었다.

이번에는 대놓고 포스터부터 눈물 폭탄을 예고했었기에 미리 휴지를 챙겨왔었다.

“너희 영화를 보고 나서는 내가 생각이 달라질 거라고 했지?”

“…이건 어쩔 수 없어.”

“맞아.”

“우리 지한이는 대사가 별로 없어도 행동만으로 너네 눈에서 눈물을 뽑아낼 수 있다고!”

지 동생도 아니면서 말끝마다 우리 지한이, 우리 지한이 하기는.

똑같이 눈이 팅팅 부은 주제에 혼자서 잘난 채 떠드는 해수를 소희와 서림이 도끼눈을 했다.

“너네 빨리 가서 포스터 챙겨.”

“포스터는 왜?”

“기념으로 가져야지. 무려 우리 지한이 첫 할리우드 영환데. 나중에 가면 없을지도 모른다?”

“!”

“간다!”

해수의 말에 친구들이 부은 눈을 크게 뜨며 티켓 박스로 달려갔다.

그 모습을 보고 해수가 두 손을 모으고 기도했다.

“지한아. 오늘도 누나가 2명을 새로 영입했어.”

해수가 입꼬리를 말아 올렸다.

* * *

“사장님, 터졌습니다!”

“뭐가.”

“지한이 영화 말입니다.”

본부장의 말에 주민의 입가에 진한 미소가 그려졌다.

지한의 영화가 개봉한 지 벌써 2주째.

내심 먹히지 않으면 어쩌나 걱정했었는데 잘 먹힌 모양이었다.

아직 월드컵 열기가 남아있고, 사람들은 영웅을 좋아하니까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배우라는 명목으로 홍보하길 잘한 것 같았다.

“이번 주말도 매진입니다.”

그렇다고 하더라도 벌써 2주째였다.

가 미술이라는 친숙하지 않은 장르에도 불구하고 터졌다는 것은 그만큼 지한의 연기가 사람들에게 먹혔다는 소리였다.

대중들은 냉정하니까.

“미국에서도 반응이 좋다고 하더군.”

“네! 이대로라면 할리우드에 성공적으로 정착할 것으로 예상됩니다.”

“그래야지. 지한이라면 결코 다른 할리우드 배우에 밀리지 않으니까. 그 뭐지? 할리우드의 미남 배우라는 사람들 있잖아. 그 사람들도 나중에는 지한이에게 그 타이틀을 넘겨줘야 할 거야.”

우리 애는 연기도 잘하고 얼굴도 잘생겼다.

앞으로 할리우드를 씹어 먹기에 부족함이 없지!

똑똑.

“들어와.”

남 비서가 안으로 들어왔다.

본부장이랑 얘기 중이라는 것을 알 텐데 무슨 일이지?

의아해하는 주민의 곁으로 남 비서가 다가와 귓속말로 속삭였다.

“아이들의 어머니가 움직였습니다.”

주민의 얼굴이 대번에 험악하게 구겨졌다.

50. 작전 개시!

“이미란이?”

“네. 이미란의 언니가 도와주는 모양입니다.”

“그럼 아이들한테 이모가 아닌가.”

“조카보다는 동생이란 거죠. 그리고 아이들이 있으니 자신이 이미란을 돌볼 일도 없어지는 거구요.”

“이미란은 나이가 벌써 30이 넘었어.”

한창 일할 나이란 뜻이다.

그 나이가 돼서 아직 초등학생인 아이들에게 빌붙겠다고?

심지어 아이가 촬영하고 있을 때 버리고 간 사람이다.

버리고 가서 하는 일이 호텔 청소부였던 거 같은데.

거기서 일하던 사람이 갑자기 왜 아이들을 찾겠다면서 올라오는 거지?

“아. 월드컵 영상을 봤나 보군.”

모든 매체에서 지한과 조수경 선생님의 노래가 사용되었으니 알아볼 만했다.

월드컵 경기는 전 국민이 봤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니까.

더더욱 불쾌했다.

지한은 앞으로 더욱 높이 비상할 거다.

그런 와중에 아이의 비상을 도와주지는 못할망정 지하로 끌고 가려는 어미라니.

“지금 이미란은 어디 있지?”

“서울로 오는 중이랍니다. 그녀를 감시하고 있던 직원이 지금 함께 버스에 타서 올라오고 있습니다.”

“올라오기 전까지 이미란한테 무슨 일이 있었는지 낱낱이 보고해. 그리고 이미란이 바로 회사에 찾아올 수 없도록 방해하라고 해.”

“알겠습니다.”

“애들은 지금 어디에 있지?”

“숙소에 있을 겁니다. 한동안 밖으로 나갔다가 알아보는 팬들 때문에 되도록 집에서 안 나가려고 한답니다.”

“내가 직접 가야겠군.”

“아이들에게 이미란에 대해서 말할 생각이십니까?”

“아니. 미국에서도 분위기가 좋으니 한번 가보는 게 어떠냐고 물어볼 생각이야. 아이들이 알아서 좋을 건 없으니까. 지한이 다음 작품은 할리우드에서 찍어야겠어.”

“알겠습니다. 에이전시에 연락하겠습니다.”

주민이 휴대전화와 지갑을 챙겨 나갔다.

가는 길에 아이들이 좋아하는 간식을 사 갈 생각이었다.

‘절대 아이들을 만나게 하진 않겠어.’

주민이 부글부글 끓는 속을 가라앉히며 아이들의 얼굴을 떠올렸다.

* * *

‘수상하다.’

갑자기 찾아온 주민을 보고 한 생각이었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지연은 지한이와 이런저런 캐릭터 설정을 가지고 연기하는 놀이를 하고 있었다.

화면 속에 나오는 사람들을 크로키로 빠르게 그리고 지연이 이런저런 설정을 덧붙인다.

그러면 지한이 그 설정에 맞게 캐릭터를 상상하고 연기한다.

그야말로 놀이와 연기를 둘 다 잡는 방법이었다.

옆에서 지켜보던 영훈이

‘노는 거 맞아? 아니 재능 낭비가 따로 없네.’

라고 하는 말이 들렸지만 무시했다.

아무튼 갑자기 찾아온 공 사장 때문에 놀이를 겸한 연기연습이 멈췄지만 그가 들고 온 딸기케이크가 있었기에 납득할 수 있었다.

그런데 갑자기 사장님이 왜 찾아왔을까.

이렇게 뇌물까지 들고.

‘수상해.’

지연이 눈을 가늘게 뜨고 주민을 올려다봤다.

자신을 바라보는 지연의 눈빛을 애써 무시하면서 주민이 아무렇지 않은 척 아이들에게 물었다.

“얘들아, 지금 Moonlight가 엄청 인기가 많대.”

“진짜요?”

“그럼. 에밀리한테서 들었는데 점점 소문이 나서 사람들이 많이 구경하러 온대.”

입소문이 난 것만큼 영화 흥행에 좋은 것은 없지.

결국 홍보비를 아무리 때려 박아도 직접 보고 온 사람의 감상만큼 좋은 건 없거든.

괜히 SNS나 리뷰 이벤트가 성공했던 게 아니다.

“그래서 에밀리가 미국에 한번 오라고 하더라. 직접 두 눈으로 보래.”

“지한이가 홍보하는 건 없다고 하지 않았어요? TV 나가래요?”

“음, 그건 아니지. 그래도 내가 한번 알아볼까?”

스케줄이 있는 것도 아닌데 굳이 우릴 미국으로 보내려고 한다고?

더 수상한데.

“지한아 방에 가서 스케치북이랑 파스텔 좀 가져올래? 아까 종이 다 썼더라.”

“응! 알았어.”

“아니, 더 먹고 가도 되는데.”

“금방 갔다 올게요.”

말리는 영훈의 말에도 지한이 누나의 부탁에 신이 나서 작업실로 달려갔다.

얼마 만에 누나의 부탁이야.

스케치북이랑 파스텔.

다른 것도 가져갈까?

연필! 연필은 안 필요한가?

점점 가져갈 목록이 늘어나는 지한이 방으로 들어가자 지연이 영훈을 돌아봤다.

“오빠, 가서 지한이 도와줘.”

“어. 왜?”

“지한이 아마 다른 것도 엄청 들고 올걸?”

“그렇겠네.”

필요한 것뿐만 아니라 혹시나 하고 다른 것들도 왕창 챙겨올 거다.

지한이는 누나의 부탁이라면 과하게 생각하는 경향이 있으니까.

사장님이랑 같이 있기 조금 불편했는데 갔다 와도 될까?

“괜찮아. 나 케이크 먹고 있을게.”

“그래. 금방 갔다 올게.”

영훈이 불안해하면서도 사장님이 있는 식탁에서 벗어난다는 생각에 들뜬 기색이 되어 작업실로 들어갔다.

오빠를 보냈으니 잠시 시간을 끌어주겠지.

영훈 오빠라면 작업실을 얌전히 두지 않을 테고, 지한이 그걸 말리고 정리한다고 시간을 쓸 거다.

문이 닫히는 걸 보고 지연이 주민을 똑바로 바라봤다.

“그래서. 우리가 왜 갑자기 미국으로 가야 해요?”

“방금 말한 것처럼 영화가 반응이 좋아서. 그쪽에 있는 편이 나중 일이나 홍보를 위해서도 좋다고 판단했어.”

공 사장이 갑자기 우릴 미국으로 보내려는 이유라.

아직 시나리오에 대한 것이 아니기 때문에 지한이 작품에 관한 건 아닐 거고.

우리가 한국에 있으면 안 되는 이유라도 생긴 모양인데.

그거라면 짚이는 것이 있긴 하지.

“사장님. 혹시 엄마가 찾아왔어요?”

“!”

정확한 이유를 짚은 지연에 주민이 깜짝 놀란 마음을 숨기지 못했다.

맞구나.

이미란.

지연이 올 게 왔다는 심정으로 포크를 내려놨다.

“왜 그렇게 놀라요?”

“그거 어떻게 알았니?”

“내가 이미란의 딸이니까요. 이 세상에서 엄마에 대해서는 누구보다 잘 알아요.”

오형우보다 더 잘 알걸?

함께 했던 시간이라면 오형우한테도 밀리지 않는다.

지연의 말에 애써 숨기려고 했던 주민이 한숨을 쉬고 말했다.

“그래. 네 말대로 너희 엄마가 찾아올 거야.”

“지한이가 많이 유명해지긴 했죠. 월드컵 때문에 TV에 많이 나와서 그런가?”

“나도 아마 그럴 거라고 생각해.”

아이지만 냉정하게 상황을 파악하는 지연에게 주민이 자신의 생각을 털어놨다.

“걱정하지 마렴. 너희들은 미국으로 가 있어. 너희 엄마가 접근하지 못하게 사장님이 잘 막아볼게.”

“그러면 안 될걸요?”

이미란은 대책 없고 생각도 짧은 사람이지만 자신이 필요하다고 생각되는 일에는 모든 방법을 다 찾아보는 타입이거든.

우리한테 찾아오기 전에 법적으로 문제가 있는지 없는지 다 살펴봤을 거다.

실제로 예전에도 우리를 버리고 갔으면서도 오형우의 핑계를 댔고, 나중에 돈을 벌어서 돌아오려고 했다는 말로 넘어갔던 것으로 기억한다.

지금은 오형우 핑계까지는 안 대겠지만 어쨌든 짧게라도 일한 건 사실일 거다.

그러다가 월드컵의 경제 효과 어쩌고저쩌고하는 기사 때문에 광고 효과가 얼마나 되는지 알고 찾아올 결심을 했겠지.

“이미란을 두 번 다시 찾아오지 못하게 하려면 양육권을 박탈해야 할 거예요. 하지만 우리나라는 그게 힘들잖아요.”

“네가 그런 걸 어떻게 아니?”

“저도 알 건 다 알아요.”

어린애 무시함?

어른들은 이게 문제라니까.

애들이 다 모를 거라고 생각하는 거.

물론 내가 미래에서 돌아왔다는 것도 있지만.

“이미란. 보게 해 줘요.”

“…엄마가 보고 싶니?”

“아니요.”

“그러면 왜 만나게 해 달라고 하는 거니.”

“이미란은 우리 둘 다 데려가겠다고 하겠지만 목적은 지한이에요.”

“그래. 나도 알아.”

얼굴을 보지도 못한 사장님이 다 알다니.

이미란이 얼마나 단순한 건지.

아니면 행동이 뻔한 건지.

아, 같은 말인가?

“그러니까 제가 지한이 못 데려가게 하면 엄청 화낼 거예요.”

“그래서?”

“지한이 인터뷰한다고 기자들 좀 불러주세요. 기자들이 모여 있을 때 만날래요.”

“! 기자를 이용할 생각이니?”

“현장에서 현행범으로 잡게 하는 게 더 좋아요. 그 전에 사장님은 이미란이 도망쳤을 때, 생활을 알려주세요. 분명 다른 사람들한테 돈을 빌렸거나 할 거예요. 그리고 일도 오래 못 했을 거구요. 사장이나 고용주에 대한 욕도 엄청 했을걸요?”

자신이 보고받은 내용을 그대로 본 것처럼 말하는 지연을 보고 주민이 눈을 크게 떴다.

정말로 이미란을 가장 잘 아는 사람은 지연일지도 몰랐다.

“그리고 양육권을 박탈할 수 있는 조건에 대해서 알아봐 주셨으면 해요. 저는 법은 잘 몰라서.”

“이미 충분히 많은 걸 알고 있는 거 같구나.”

정말 이게 어린아이가 할 법한 생각인 건지.

‘다시 말하면 그만큼 이미란에게서 벗어나고 싶었는지도 모르지. 자신의 친엄마이면서.’

지연이 일찍 철이 든 이유를 알 것 같았다.

아마 동생을 위해서 그 집에서 벗어나기 위해서 아이는 일찍 어른이 되어야 했던 거겠지.

유복한 집안의 막내로 자라 온 가족의 사랑을 받으면서 자란 주민에게는 조금 낯선 일이었다.

“그래. 내가 알아볼게. 그럼. 언제 만나겠니?”

“일단 지한이가 촬영장에 갈 일이 있었으면 좋겠네요. 사장님 회사 사람이나 영훈 오빠가 나서면 분명히 회사에서 애들을 못 만나게 했다면서 난리 피울 여자예요.”

“그래. 일하러 가는 곳에서 난동을 피우게 하라는 거지?”

도대체 얼마나 막장인 건지.

지연의 입에서 듣는 이미란은 최악이었다.

“이왕이면 지한이랑 친한 배우들이 좋겠지?”

“네. 그러면 더 좋아요.”

“그것도 내가 알아보마.”

이미란을 보내기 위한 판을 준비하겠다고 말하는 주민을 보고 지연이 든든한 심정이 되었다.

손발이 잘 맞는 파트너가 있다면 이런 기분일까.

그가 판을 준비해 준다면 그 위에서 최선을 다해 연기할 자신이 있었다.

“누나! 가져왔어.”

“응. 고마워.”

지연의 심부름을 간 지한이 작업실에서 나왔다.

역시나 손에 스케치북이랑 파스텔뿐만 아니라 다른 것도 가득했다.

지한의 눈을 피해 지연과 주민이 시선을 주고받았다.

‘지한이한테는 비밀이에요.’

‘알았다.’

주민이 판을 벌리기 위해서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럼 또 올게.”

“맛있는 거 해 놓을게요.”

“그래. 아주머니 있으니까 너 혼자 다 하지 말고.”

“네.”

“사장님 가요?”

“그래. 다음에 올 때는 지한이가 좋아하는 대본 잔뜩 들고 올게.”

“좋아요!”

“들어가십시오!”

아이들의 배웅을 받으면서 주민이 집을 떠났다.

* * *

“진짜. 대단하군.”

“뭐가 말입니까, 사장님?”

“지연이가 말해준 그대로야.”

이미란의 동태를 파악한 보고서를 읽으며 주민이 감탄했다.

정말로 이미란에 대해서 모든 걸 다 알고 있는지 아이가 말한 것이 보고서에 그대로 적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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