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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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확실히 애들이라서 그런지. 음색이 맑고 좋아.’

음색이 좋다는 것은 그것만으로도 특색이 생긴다.

노래에 지문이 남는다고 해야 할지.

특색을 가진 보컬은 남들보다 더 좋은 경쟁력을 가진다.

이 아이들이 자신에게 어울리는 노래를 부르게 된다면 어떻게 될까?

그 모습을 기대하며 기주가 설레는 마음으로 아이들을 가르쳤다.

* * *

“어때? 애들은 잘 배우고 있나?”

“트레이너 말로는 빠른 속도로 배우고 있다고 합니다.”

“그래? 그쪽에 우리가 영상을 찍어서 보내줘야 할 거 같은데 언제쯤이면 될까?”

“안 그래도 오늘 찍을 거라고 했습니다.”

“벌써?”

“애들이 배우는 게 빨라서 그렇답니다.”

“하여튼 대단한 애들이라니까.”

주민이 입가에 미소를 그리며 말했다.

아직 일주일도 지나지 않았는데 벌써 그렇다니.

해도 그만, 안 해도 그만인 일이라 아이들의 시간을 방해하고 싶지 않았는데 그 짧은 시간만으로도 아이들이 새로운 재능을 개화하기에 충분했던 모양이다.

“그렇다면 그냥 있을 수 없지. 한 번 보러 가야겠어.”

“직접 가시겠습니까?”

“우리 회사의 기둥이 될지도 모르는 아이들인데 내가 직접 가야지.”

아직 영화 성적도 안 나왔는데 너무 과한 반응이 아닌가 싶었지만 주민의 뒤를 따르는 본부장도 별달리 반대하지 않았다.

그 역시도 지한이라면 회사뿐만 아니라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스타가 될 거라고 생각하는 사람이었으니까.

‘그 누나도 심상찮지.’

보는 것만으로도 마음을 움직이게 하는 그림을 그리다니.

게다가 공식적으로 본 적은 없지만 지한이나 영훈을 통해 지연의 연기 또한 만만찮다고 들었다.

‘연기는 안 하려나?’

단호하게 고개를 저으며 언제나 동생을 따라다니는 여자아이가 떠올랐다.

무슨 짓을 하는지 다 알고 있다는 듯한 눈빛을 볼 때면 가끔씩 염라대왕을 눈앞에 두고 있는 것 같은 기분이 들 때가 있다.

사장의 뒤를 따라가면서 이번에는 두 아이의 노래 실력을 직접 확인할 수 있다는 생각에 본부장의 생각이 많아졌다.

“실례하지.”

어느새 아이들이 연습하고 있는 연습실 앞에 도착한 주민이 문을 열었다.

“어, 사장님!”

“안녕하세요.”

“안녕하세요.”

막 촬영을 시작하려고 했는지 카메라를 설치하고 있는 기주가 공 사장을 보고 벌떡 일어났다.

탑엔터는 군기를 잡지 않을 텐데 각이 제대로 잡혀 있었다.

“나는 신경 쓰지 말게. 그냥 지나가는 김에 아이들이 연습하는 걸 보러왔으니.”

시간을 내서 직접 보러 온 거면서 주민이 핑계를 댔다.

평가가 있는 날도 아닌데 그가 직접 내려와서 아이들의 연습을 볼 이유가 없다는 것은 여기 있는 모두가 알았다.

‘사장님이 애들을 좋아한다는 말이 사실인가 보네.’

제 새끼처럼 과하게 돌보는 모습에 다들 그럴 거라고 생각했지만 눈으로 직접 소문의 실체를 확인하게 될 줄은 몰랐다.

혹시라도 애들한테 큰소리를 낸 적은 없는지 지난날을 돌아본 기주가 녹화 준비를 했다.

“저어. 그럼 녹화 시작해도 될까요?”

“그래.”

영훈이 재빠르게 의자를 가져왔다.

2명이 앉을 자리가 생겼다.

‘저렇게 앉아 있으니까 꼭 아이돌 연습생이 받는다는 월말평가 자리에 온 것 같네.’

심사 위원처럼 앉은 공 사장, 본부장, 기주 트레이너, 영훈 매니저를 본 지연이 심드렁하게 생각했다.

저 사람들이 뭐라고 하든지 지한이가 노래 부르고 싶다는 것이 중요한 지연이 동생을 돌아봤다.

“지한아 떨려?”

“응? 아니.”

지연의 물음에 지한이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이 말했다.

실제로 지한은 지금 이 상황을 재밌는 놀이처럼 생각하고 있으니까.

물론 그쪽 위원회의 평가에서 떨어질 생각은 절대 없지만.

“연습한 대로만 부르자.”

“응!”

“선생님이 말하면 바로 촬영할 거야.”

“촬영 오랜만인 거 같다.”

“얼마 전에 상 받는 것도 촬영이었잖아.”

“그건 촬영 같지 않았는데.”

“오늘은 촬영하는 거 같아?”

“응.”

“그럼 오늘 잘하겠네.”

지연의 말에 지한이 자신만만하게 웃어보였다.

“응!”

아이들의 준비가 끝나자 공 사장이 주민에게 물었다.

“무슨 곡을 부르기로 했나?”

“길(Road)입니다.”

공 사장과 본부장이 놀라서 기주를 돌아봤다.

아이들이 그 노래를 부르겠다고?

잘 부르는 건 둘째 치고 아이들이 그 노래를 부르는 것이 상상이 가지 않았다.

“아마 깜짝 놀라실 겁니다.”

“조금 더 아이들에게 맞는 노래를 하는 게 좋지 않을까.”

“사장님. 애들은 뭘 해도 잘 부를 겁니다.”

옆에서 연습을 지켜봤던 영훈이 두 사람에게 당당하게 말했다.

아직 말단이 영훈으로서는 사장과 본부장에게 자신의 의견을 피력하는 것이 어려운 일임에도 불구하고 그의 눈빛에는 주저함이 없었다.

강한 확신이 깃들 그 눈동자를 보고 주민이 시선을 다시 앞으로 돌렸다.

“들어보면 알겠지. 두 사람이 그렇게 자신하는 이유를.”

보지 않고 평가하는 것만큼 어리석은 일이 없으니까.

공 사장의 말에 본부장이 고개를 끄덕였다.

이 애들에게 한계를 정해 두는 것만큼 의미 없는 일은 없으니 들어보면 알겠지.

“얘들아. 그럼 시작해.”

“네, 선생님!”

“네에.”

선생님의 신호와 함께 노래 반주가 틀어졌다.

반주가 시작되자 아이들의 눈빛이 달라졌다.

지한의 입이 먼저 열렸다.

♬내가 가는 이 길이 어디로 가는지

어디로 날 데려가는지 그곳은 어딘지♬

지한의 아련한 눈빛과 함께 맑은 음성이 연습실에 울려 퍼졌다.

심사 위원처럼 앉아있던 이들의 허리가 앞으로 당겨졌다.

그들의 눈앞에 지한이 걸어가는 길이 서서히 보이기 시작했다.

♬나는 왜 이 길에 서 있나

이게 정말 나의 길인가

이 길의 끝에서 내 꿈은 이뤄질까♬

지연이 노래를 시작하자 네 사람 모두 숨을 들이켰다.

지한의 길이 홀로 걸어가는 쓸쓸한 길이었다면

지연의 길은 폐허가 된 곳에서 이정표를 잃고 여기저기 무너져 있는 길이었다.

‘이제 무슨!’

허무하고 절망이 가득한 길에 다리에 힘이 풀릴 것만 같았다.

이미 지연의 노래를 들은 기주와 영훈 역시 온몸에 소름이 돋는 것을 어쩌지 못했다.

충격과 경악에 빠진 네 사람이 조용히 두 아이의 노래를 들었다.

이미 아이들의 나이나 아이들의 목소리가 노래와 잘 어울리는지는 상관없었다.

그저 관객이 되어 아이들이 전하는 심상의 폭풍을 몸 깊숙이 받아들이는 수밖에.

♬그 꿈을 이루면 난 웃을 수 있을까♬

“….”

“….”

“….”

“….”

노래가 끝났지만 보고 있던 이들은 아무런 말도 하지 못했다.

눈을 감고 노래가 준 여운에 빠져 있을 뿐이었다.

‘누나. 어떡하지?’

어른들의 눈치를 보는 지한이 지연에게 눈빛을 보냈다.

노래가 끝났는데도 녹화가 계속되자 지연이 입을 열었다.

“저기. 노래 끝났어요.”

“어?”

“그래.”

“크흠.”

“…킁.”

얼음이 녹아내리듯이 아이들의 노래에서 풀려난 이들이 잠긴 목을 가다듬었다.

다들 아이들의 노래에서 지난날 방황했던 자신들을 떠올렸기 때문이리라.

“노, 큼. 노래 잘 들었다. 지한이랑 지연이. 노래 잘하네.”

“정말요? 히힛. 열심히 연습했어요.”

“그래. 그리고 혹시 힘든 일 있으면 언제든지 말하렴.”

“없어요. 영훈 오빠가 잘해줘요. 사장님이 우리 잘 챙겨주는 거 알아요. 고맙습니다.”

“아니야. 내가 더 고마워.”

별로 해 준 것도 없는데 고맙다는 말을 들었다.

주민이 직원들 앞에서 추태를 부릴까 봐 눈에 힘을 줬다.

“혹시 다른 노래도 들을 수 있을까?”

앵콜 신청에 아이들이 즐거운 얼굴로 신청곡을 받았다.

“네!”

“네!”

이때부터 연습실이 노래방이 된 것처럼 흥분과 열기로 가득 차기 시작했다.

* * *

지한이와 지연이의 노래가 담긴 영상을 보고 회의가 열렸다.

“지한이는 가수를 시켜야 합니다!”

“무슨 소리! 지한이는 대배우가 될 아입니다.”

“아까 봤잖습니까!”

“그럼 지연이라도 주세요.”

“어허, 지한이 말로는 누나가 자기보다 연기를 더 잘한다고 했어요.”

“하지만 아직 배우로 데뷔하지는 않았잖습니까! 배우실에서 지한이를 데려갔으니 지연이는 우리한테 주세요!”

아이들은 아무런 생각도 없거늘 어른들이 나서서 문제가 생겼다.

배우실과 가수실이 한 치의 물러섬 없이 대립했다.

대립하는 두 파벌을 본 공 사장이 손을 들었다.

“왜 다들 싸우는지 모르겠군. 배우실, 지연이 연기를 본 적 있나?”

“직접 보진 못했지만 고 매니저 말로는 지한이한테 밀리지 않는 실력이랍니다.”

김 실장의 말에 배우실이 의기양양한 표정을 지었다.

“가수실, 아이들의 실력은 어떻지?”

“조금만 손본다면 지금 바로 가수로 데뷔해도 문제없습니다.”

가수실 실장의 말에 팀원들이 고개를 끄덕였다.

양 팀의 의견을 들은 공 사장이 중재안을 내놓았다.

“그럼 둘 다 시키면 되지. 배우 중에서도 앨범 낸 이들이 있고, 가수였다가 연기로 빠지는 경우도 있는 걸로 기억하는데.”

공 사장의 말에 배우실과 가수실이 꿀 먹은 벙어리가 되었다.

“아무튼 지금 중요한 건 그게 아니지.”

“하지만.”

“아이들은 언제든지 데뷔할 수 있어. 지한이의 경우는 변성기도 생각해야 하고.”

피해갈 수 없는 2차성장의 영향에 가수실 사람들이 시무룩해졌다.

반면 배우실은 으쓱한 얼굴이 되었다.

“아무튼 이 영상을 적당히 편집해서 조직위원회에 보내는 게 먼저지. 다들 어떻게 생각하나. 그쪽에서 지한이를 거절할까?”

“거절하면 제가 직접 병원으로 보내겠습니다. 청력을 상실한 게 틀림없으니까요.”

“제가 운전하겠습니다.”

우리 애를 거절한다면 어떻게 해서든 병원으로 보내겠다며 너도나도 나서서 대답했다.

그러면 안 된다고 말리면서도 내심 흡족한 대답이라 공 사장이 온화한 분위기로 말했다.

“그럼 영상 편집해서 보내는 걸로 하고, 아. 거기에 지한이만 간다고 꼭 말해. 지연이 찾는다고 하면 절대 안 된다고 하고.”

“왜 지연이는 안 됩니까?”

“애초에 지한이에게 온 제안이기도 하고, 지연이가 싫다더군.”

“네? 왜에. 아깝게.”

“괜찮아. 노래하는 걸 싫어하진 않더군. 다만 이번에 자신이 나설 일이 아니라고 했어.”

저번 영화에서는 잘 나서줬으면서 이번에는 왜.

에서도 지한이 아니었다면 그림을 그리지 않았을 테지만 아직 지한을 미끼로 지연을 끌어들이는 짓까지는 어른의 양심상 하지 못한 주민이 단호하게 말했다.

“아이가 싫어하니 다음 기회를 노리지.”

“알겠습니다.”

수긍하면서도 아쉬워하는 직원들을 보고 주민이 당근을 던져줬다.

“다음에 지한이 작품 들어가는 곳에 ost나 둘이 같이 노래할 수 있는 곡을 알아보도록 하지.”

“네!”

공 사장의 당근에 가수실이 환하게 웃으며 대답했다.

“저기, 사장님. 혹시 동반 출연은.”

“그쪽도 알아보지. 동생이랑 같이 하는 걸 싫어하지는 않는데 지금은 카메라 앞에 나서는 걸 싫어하더군.”

책임감이 강한 아이라서일까.

동생을 챙기는 것 외에 지한이가 하고 싶어 하는 일 외에는 관심을 주지 않는 지연을 보고 주민이 단단히 마음먹었다.

‘언젠가 지연이가 하고 싶어 하는 일이 생기면 뭐든지 하게 해 줘야지.’

다른 이들이 봤다면 ‘아빠…?’라고 부를 만한 생각이었다.

47. 준비

2002년 한일 월드컵 조직 위원회.

그곳에서는 자신의 제안에 답장에 첨부된 동영상을 보고 있었다.

“….”

“….”

“….”

아무런 말도 없이 1절만 편집되어 온 메들리를 듣는 이들은 하나같이 멍한 얼굴이었다.

장르를 불문하고 곡을 소화하는 능력.

화면을 넘어 전해지는 진한 감정.

어린아이 특유의 맑은 음성.

그 모든 것들이 어우러져서 감상하고 있는 이의 몸 깊숙이 스며들었다.

어찌 이렇게 어린아이가 이렇게 노래를 부를 수 있을까.

경력 10년 이상이 된 가수가 이러할까.

비교할 대상을 찾지 못한 위원 중 한 명이 떨어지지 않는 입을 열어 말문을 텄다.

“무조건 섭외하죠.”

“동의합니다.”

“저도 동의합니다.”

“이 아이의 노래를 듣고도 쓰지 않는다면 평생 비웃음당할 겁니다.”

“물론이죠.”

찬성으로 돌아선 조직 위원들을 보고 처음부터 강력하게 오지한을 추천했던 손 위원이 뿌듯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역시 내 눈은 틀리지 않았다. 우리 성ㅈ, 지한이는 뭘 하든 잘 될 거야!’

할리우드에서 영화도 찍었다고 했는데 그건 언제 개봉할까?

빨리 보고 싶은데.

월드컵 전에 볼 순 없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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