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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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의 눈을 그려 그림을 완성했다는 이야기처럼.

지연은 조지아의 눈만 빼고 그림을 완성시켰다.

부모가 아이를 바라보는 눈빛이란 어떤 것일까.

돌아오기 전에도, 돌아오고 나서도 신뢰와 애정과 다정함과 응원이 담겨 있는 시선 따윈 알지 못했다.

선생님께 물어봐도 내가 풀어가야 할 문제라고 할 뿐, 답을 내려주진 않았다.

그래서 그림의 완성을 지한이에게 맡겼는데 화면으로 본 그림은 완벽했다.

지한이 정말 완벽한 마무리를 한 것이다.

주변에서도 지한이가 눈을 그려 넣는 것에 우려를 표했지만 연기에 몰입하고 조지아의 눈을 완성한 지한을 아무도 뭐라 할 수 없었다.

“역시 너희들은 대단하다니까.”

“저도 그렇게 생각합니다. 저도 누나와 동생이 있긴 하지만 절대 한과 연 같은 사이는 아닙니다.”

“저는 언니가 있는데요. 어후. 우리 집이었다면 내가 감히 자기 그림에 손댔다고 난리가 났을 듯.”

“우선 제 누나는 절대 동생을 위해서 무언가를 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아주시죠.”

영훈 오빠와 미나 언니, 애런까지 모두 우리를 보고 한마디씩 했다.

나도 원래는 그런 사이었습니다, 여러분.

남보다 못한 웬수였죠.

어쩌다 같은 배에서 나왔는지 두고두고 모른 척하는 사이었는데.

‘그 뭣 같은 집안에서 유일한 정상인이 지한이였죠.’

나도 동생을 버렸으니 오형우나 이미란과 다를 바 없는 사람이었다.

지켜주고 아껴줘도 부족했다.

정말 아름다운 보석이었는데 진흙 속에 묻혀 꺼내주는 이 없었다.

‘이제는 내가 갈고닦아 줄게.’

진흙 속에서 건져, 오물을 닦아내고, 조심스럽게 닦아서 찬란한 빛을 내게 해줄 것이다.

“얘들아. 이제 집에 가자.”

영훈이 말했다.

아무런 탈도 없이 성공적으로 첫 할리우드 촬영을 끝냈으니 다시 돌아가야 했다.

“가면 어마어마하게 놀랄걸? 지금 지한이가 엄청 HOT하거든.”

“벌써 돌아가는 겁니까? 더 이상 한과 연을 볼 수 없어서 아쉽군요.”

“지한이는 다음에 또 할리우드 올 건데요?”

어디 감히 원 히트 원더 스타 같은 취급을 하고 있어?

“하하. 맞는 말입니다. 제 말은 영화가 개봉하면 모든 에이전시에서 한을 주목할 거란 말이었습니다. 그때에도 저를 선택해 주실 건가요?”

“물론이죠! 애런 덕분에 편하게 지냈어요.”

에이전시에서 좋은 집을 구해주긴 했지.

아직 신인인데 어디서 그렇게 전망 좋은 집을 빌렸나 몰라.

“영광입니다. 다음에도 꼭 절 찾아주시죠.”

“네!”

“여기서 바로 헤어지는 것도 아니잖아요? 우리 추운데 밖에서 이러지 말고 얼른 집으로 돌아가요.”

“미나가 말 잘했네. 얼른 가자고. 춥다.”

“네에!”

“네.”

아이들을 둘러싸고 다 같이 차에 올라탔다.

LA에서의 생활이 끝나갔다.

* * *

“어이. 오늘 오는 거 맞아?”

“맞아. 내가 공항 직원한테 직접 알아낸 정보야.”

공항에 사람들이 바글바글했다.

어디서 정보가 샜는지 지한이 돌아온다는 소식이 기자들 사이에 쫙 퍼진 덕분이었다.

아무리 할리우드 진출이 대단하다지만 아직 어린 지한의 보호를 위해서 비밀리에 입국 준비 중이었는데 도로 아미타불이 되어 버렸다.

공항 보안 직원과 탑엔터에서 고용한 경호원들 사이에 긴장이 고조되었다.

“세상에 이런 스타의 탄생은 처음 봐. 국내에서 고작 영화 한 편이랑 드라마 한 편 찍고 바로 할리우드라니.”

“솔직히 연기는 인정. 영어도 잘한다더라. 다른 배우들도 영어 공부 좀 미리 해 뒀으면 진즉 할리우드 갔을걸?”

“말이 되는 소릴 해라. 할리우드에서 동양인 배우를 쓰는 일이 흔할 줄 아냐? 내가 알기로는 제일 잘된 게 창룡일걸?”

“어쩔 수 없지. 일단 언어가 너무 다르잖아.”

기자들이 할리우드의 높은 벽에 고개를 저었다.

그리고 그런 벽을 한 방에 뚫어버린 지한을 다시 한번 대단하다고 생각했다.

“저기 온다!”

“찍어!”

누군가의 목소리에 제대로 확인도 안 하고 기자들이 카메라 셔터를 눌렀다.

모자를 깊게 눌러쓴 어린 체구에 사람들이 몰려들자 보안 직원과 보디가드들이 아이를 둘러쌌다.

“비켜주세요.”

“찍지 마세요!”

아이가 카메라를 피해 빨리 걸었다.

태풍의 눈처럼 아이를 중심으로 지키려는 자와 찍으려는 자가 둘러쌌다.

“할리우드 촬영은 어땠습니까?”

“촬영장에서 스태프들의 칭찬을 받았다고 하던데 소감이 어떠신가요?”

“지한 군의 진출로 많은 배우들이 자극을 받고 있습니다. 그들을 위해서 조언을 해 주실 수 있으신가요?”

“첫 영화 주연인데 어떠셨습니까? 문제는 없었나요?”

“너무 어린 나이에 주연을 맡았다는 말이 있습니다. 거기에 대해 해 주실 말 없으십니까?”

아이에게 하기에는 지나치게 자극적인 질문에 주위에 있던 이들이 눈살을 찌푸리고 있을 때 아이가 멈춰 섰다.

드디어 목소리를 들을 수 있다는 생각에 기자들이 마이크와 녹음기를 들이댔다.

“저한테 왜 이러세요?”

남자아이라고 하기에는 목소리가 묘하게 높았다.

모자를 벗은 아이가 두려운 눈으로 주위를 둘러싼 기자들을 쳐다봤다.

“아저씨들 누구예요? 왜 갑자기 저한테 물어요? 엄마 아빠랑 왜 떨어트린 거예요?”

머리카락이 짧긴 하지만 여자아이였다.

자신들이 찾던 이가 아니자 기자들이 당황하며 웅성거렸다.

“이게 뭐야? 오지한이 아니야?”

“어, 어. 어떡하지?”

“진짜 여자애야?”

“혹시 지한의 누나 아니야?”

용을 찾았다고 생각했는데 알고 보니 용이 그려진 족자를 잘못 봤다는 것처럼 기자들이 허망하게 말했다.

어느 기자가 그래도 포기하지 않고 의심을 뱉었다.

“엄마아!”

“정아야!”

아이가 자신을 둘러싼 어른에 놀라 울먹일 때, 아이를 찾는 여인의 목소리가 들렸다.

어른들의 다리 사이를 요리조리 가로질러 간 아이가 젊은 여성의 품에 안겼다.

여성의 품에 안겨 엉엉 우는 아이를 본 기자들이 뻘쭘하게 그들을 바라보다 고개를 돌렸다.

“이 비행기가 아니었나 봐.”

“어. 음. 미안하네.”

정아라는 아이를 품에 안고 기자들을 째려본 여성이 그대로 아이를 들고 공항 밖으로 나갔다.

기자들을 지나갈 때 슬쩍 욕을 하는 것도 있지 않았다.

“갑자기 왜 달려들고 난리야. 미친놈들.”

욕을 먹어도 할 말이 없었다.

여인이 빠르게 공항 밖을 나가자 앞에 서 있던 검은 차가 클랙슨을 울렸다.

그 차에 올라탄 여인이 아이를 내려놓고 한숨을 쉬었다.

“휴우. 그냥 들어왔으면 진짜 난리 날 뻔했네.”

“두 사람 모두 고생했어.”

영훈이 미나와 지연을 칭찬했다.

두 사람이 이목을 끌어준 덕분에 무사히 빠져나올 수 있었다.

공항에 몰린 기자들이 어마어마하게 많다는 말에 지연이 아이디어를 냈다.

어차피 지연과 지한의 머리 길이는 그리 차이나지 않았다.

그남그녀 때 같이 삭발했으니 차이나지 않는 게 당연했다.

‘제가 지한인 것처럼 하고 나갈게요.’

일부러 모자를 푹 눌러쓰고 지한이가 된 것처럼 연기를 하자 기자들이 순식간에 몰려들었다.

뒤에서 나올 영훈과 지한이 빠져나갈 수 있게, 그들을 이끌고 출국장에서 멀어지는 것도 미리 계획된 것이었다.

“누나. 괜찮아?”

“응.”

“나 때문에 미안해.”

“왜 너 때문이야? 다들 네가 너무 잘해서 찾아온 건데.”

자신 때문에 누나가 고생했다는 생각에 지한이 침울해졌다.

지연이 지한을 옆구리에 꼭 당겨 앉혔다.

“누나는 지한이가 잘해서 좋아. 앞으로 저런 사람들을 더 많이 데리고 다녔으면 좋겠어.”

“그건 좀….”

태클을 걸려던 영훈을 사이드 미러 너머로 째려봐줬다.

강제로 입을 다물게 한 후, 지연이 다시 말했다.

“저 사람들은 일종의 스타의 상징? 부록? 떨거지? 같은 거야.

“떨거지?”

옆에서 미나가 ‘그건 좀 아니지. 거머리가 낫지 않니?’라고 하는 걸 무시하고 지연이 점점 기운을 차리는 지한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말했다.

“누나는 지한이가 더더더더더 스타가 돼서 많은 사람들의 주목을 받았으면 좋겠어.”

“어. 그럼 조금 힘들지 않을까? 내가 갈 때마다 저렇게 많은 사람들이 오면 무서울 거 같은데.”

“괜찮아. 지한이는 연기 잘하니까 방금 누나가 한 것처럼 연기해서 빠져나올 수 있을 거야.”

“얼굴이 같은데 어떻게 연기만으로 빠져나올 수,”

하여튼 영훈 오빠는 입이 문제야.

“당분간은 분장을 한다든가 모자를 써서 가리면 될 거 같은데. 나중에는 모자나 마스크만으로 다른 사람처럼 보일 수 있게 연기하도록 하자.”

“응! 나 누나처럼 열심히 연기할게.”

“그래. 지한이 넌 할 수 있을 거야.”

아무렇지 않게 무시무시한 목표를 세우는 아이들을 본 영훈과 미나가 어이없어 웃음을 흘렸지만 어찌 됐든 무사히 공항을 빠져나온 것을 축하했다.

“어우 한국에 돌아왔으니 이제 바빠지겠네요.”

“응? 왜? 나 촬영 다 했는데.”

“지한이 또 뭐 들어가요?”

천재성을 보이다가도 가끔 보이는 아이들 같은 모습에 영훈이 웃으며 말했다.

“이제 곧 연말 시상식 시즌이잖아. 지한이는 아마 KBC에서 뭐라도 받을걸? 그쪽에서 못 줘서 난리라고 하더라.”

“아.”

그게 있구나.

44. 휴식이 필요해

“최 PD! 김 PD! 신 PD!”

KBC 예능국의 문을 거칠게 열고 두툼한 체구의 사내가 목청을 높이며 들어왔다.

예능국에 들어온 국장을 보고 안에 있던 이들이 기겁을 하며 시선을 피했다.

“국장님 왜 부르십니까?”

“김 PD. 마침 잘 됐어. 다른 애들은 어디 갔어?”

“아마 편집실에 있을 겁니다.”

“지금 당장 나 좀 보자고 해.”

알았지?

제 할 말만 하고 나가는 국장을 보고 김 PD가 허망하게 말했다.

“아니, 무슨 일인지는 알려주고 가야지.”

피곤한 얼굴로 떡진 머리를 긁는 김 PD에게 막내 PD가 슬쩍 다가와 입을 열었다.

“아마 오지한 배우 때문일걸요?”

“뭐? 왜?”

“우리 국장님 며칠 전부터 오지한 배우 잡아야 한다면서 난리였거든요.”

“그래? 난 왜 몰랐지.”

“지방 촬영 다녀오셨잖아요. 그리고 최 PD님이랑 신 PD님은 국장님 피해서 편집실에 있는 걸걸요?”

“그래? 이것들이 나만 빼고 또!”

치사하다면서 편집실로 달려가는 김 PD를 보고 막내 PD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재촬영 때문에 지방에 갔다 와서 바로 편집실에 틀어박혀 있더니 방송국 돌아가는 사정이 어두운 것 같았다.

“이미 오지한 배우한테 섭외 전화 안 넣은 방송국이 없을 텐데. 뭐, 됐나?”

다시 밀린 업무를 시작한 막내 PD는 태연히 소동을 넘겼다.

오늘도 평화로운 방송국이었다.

* * *

“지한아 인터뷰가 많이 들어왔는데, 어때? 할래?”

“안 돼요.”

“지연아, 그런데 지금 지한이를 궁금해하는 사람들이 많은데. 언제까지 숨길 순 없어.”

“왜요?”

“이렇게 화제가 많은데 말을 안 하다가는 기자들에게 찍힐 수도 있고, 팬들이 서운해 할 수도 있어서.”

“팬이라면 이해해 주지 않을까요? 지한이 이제 막 촬영하고 돌아왔는데.”

“윽.”

지연이 처량한 얼굴을 하자 그 얼굴에 영훈의 마음이 흔들렸다.

그 말도 사실인 게 지한이는 이제 막 귀국을 한 참이고,

시차 적응이며 촬영하느라 소모된 체력이며 스케줄을 할 컨디션이 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주먹구구식으로 운영하거나 소속된 연예인들을 쥐어짜는 소속사 같은 경우는 이 모든 기회를 놓치지 않으려고 배우를 갈아 넣으려고 하겠지만 탑엔터는 달랐다.

소속 연예인을 최대한 배려해 주는 것도 있지만, 공 사장이 무리한 스케줄을 짜는 걸 지양하기도 했다.

물론 연예인 측에서 먼저 스케줄을 잡아 달라고 하는 경우가 있긴 했지만 그럴 경우에도 최대한 컨디션을 위해서 일정을 조정하곤 했다.

“안 돼요? 지한이 이제 막 왔는데. 혹시 돈 필요해요? 우리가 미국에서 돈 많이 썼어요?”

“아니, 절대 아니야. 그런 생각은 하지 마렴.”

“형, 진짜야? 우리 돈 없어?”

“아니야앜!!!!!”

지연의 말에 영훈이 재빨리 부정했다.

가뜩이나 회사에 얹혀산다고 빚진 것처럼 불안해하는 지연인데, 그런 쪽으로 생각하게 해서는 안 된다.

회사 사람들은 저렇게 재능이 넘치는데 착하고 귀엽고 예쁘기까지 한 두 아이에게 홀딱 빠져있었다.

오늘 지연이가 저런 말을 했다는 것을 알면 자신을 쓰레기 보듯이 볼지도 모른다.

“그런데 인터뷰가 얼마나 많은데?”

“지연아 절대 돈 없는 거 아니야. 우리 회사 돈 많아. 아니, 정확하게는 사장님이 돈 많아.”

구구절절 변명하는 영훈을 지연이 짜게 식은 얼굴로 봤다.

그러게 누가 일하고 돌아오자마자 일 얘기 꺼내래?

어린 애에게는 휴식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모르는 거야?

“어흐흑, 진짜 아니야. 얘들아 봐줘.”

바닥에 엎드려 통곡할 거 같은 지연이 지한을 돌아봤다.

봐 줄까? 라는 신호에 지한이 고개를 끄덕였다.

“봐줄게. 지한이 인터뷰할게. 한 일주일 뒤에 해도 돼?”

“되지! 물론 되고 말고!”

“히힛. 인터뷰 재밌을 거 같아.”

“그래도 전부 다 하는 건 안 돼.”

“누나, 난 괜찮은데.”

“정말?”

“응!”

괜찮다고는 하지만 지한이는 좋아하는 사람한테 뭐든 다 해 주려고 하는 성격이니까 적당히 잘라야지.

“오빠가 골라줘. 모두 다 하는 건 힘들지도 모르니까 적당히.”

“지연아. 세상에 적당히라는 게 제일 힘든 거란다.”

“으음. 그러면 하루에 20개 이상은 안 돼.”

“열심히 해볼게.”

그런데 인터뷰는 몇 분 정도 하는 거지?

뭐가 됐든 일주일 동안 우리는 푹 쉴 거다.

반론은 안 받겠어.

우리에게도 휴식을 달라.

* * *

지연과 지한은 돌아오고 나서 평안한 생활을 보냈다.

정해진 시간 동안만 촬영하는 할리우드에서 촬영하고 왔다.

첫 주연에, 어린 나이임이 감안되어 지한은 꽤 넉넉한 스케줄로 촬영할 수 있었다.

집에 돌아오면 지연이 항상 따뜻한 물에 씻을 수 있게 준비해 두었고, 기력이 딸릴까봐 보양식도 주기적으로 해서 먹였다.

‘그렇다고 해서 피로가 아예 쌓이지 않은 것은 아니지.’

한국으로 돌아오고 삼일은 잠만 자면서 보냈다.

하루 종일 자다가 배고프면 일어나고, 밥을 먹고 나면 또다시 자는 것이 반복되었다.

“아아- 좀 살 것 같다.”

뻐근한 어깨와 허리를 이리저리 움직이며 몸을 푼 지연이 상쾌한 얼굴로 말했다.

역시 나 같은 내향인은 침대 위에서 벗어나지 않는 것이 휴식이지.

“누나! 우리 오늘 스키 타러 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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