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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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연의 말에 지한이 바닥을 보았다.

바닥에 붉은 별이 있었다.

“우와.”

“저 별이 전부 다 유명한 사람들이래.”

붉은 별이 이어진 보도를 보고 지한이 입을 벌렸다.

잔뜩 상기된 얼굴로 지한이 영훈의 손을 잡아끌었다.

“형, 형! 빨리!”

#하하하. 지한도 역시 배우군요. 할리우드에서 일하는 사람 중에 이 거리를 보고 가슴이 떨리지 않을 이는 없죠.#

“어, 뭐라구요? 지한이 배우냐고요?”

“할리우드 사람들은 이걸 보고 다 좋아할 거래요.”

“그렇지.”

“형 빨리. Hurry up!”

#어서 가죠. 우리 배우가 기다리는군요.#

들뜬 지한을 웃는 얼굴로 지켜보는 이들이 걸음을 빠르게 옮겼다.

뛰듯이 걷던 지한의 눈앞에 거대한 사원의 입구가 나타났다.

커다란 용을 올려다보던 지한이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누나.”

“응?”

“여기 너무 멋져.”

용을 보고 감탄한 지한이 원래의 목적인 핸드 프린팅 된 바닥을 보았다.

바닥에 주저앉아 스타들이 남긴 손자국 위에 손을 대 본 지한이 싱긋 웃었다.

바닥에 그려진 별이 지한의 눈에 스며드는 것처럼 동생의 두 눈동자에 별이 박혔다.

“누나. 나는 진짜 멋진 스타가 될 거야.”

다짐하듯이 말하는 동생의 옆에 같이 주저앉은 지연이 프린팅 된 손 위에 자신의 손을 얹은 지한을 보고 말했다.

“넌 꼭 될 거야.”

* * *

명예의 거리와 차이니즈시어터에 다녀온 지한은 그날부터 맹연습을 하기 시작했다.

원래도 하루에 정해진 시간만큼 꾸준히 연기 연습을 하던 동생이었는데 이제는 먹는 것도 잊고 연습에 몰두했다.

“오빠, 빨리 밥.”

“알았다. 챙겨올게.”

지한이 연습에 몰두하느라 바빠진 것은 지연과 영훈, 둘이었다.

#평소에도 지한이 저렇게 연습합니까?#

지켜보던 애런이 눈을 동그랗게 뜨고 물었다.

#하루에 4시간 이상 연습하곤 해요.#

#아직 어린데 정말 열심히 하네요.#

#드라마 촬영할 때는 하루 종일 했어요.#

아무리 좋아하는 거라고 지한의 나이대의 어린아이가 한 가지 일에 몰두하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었다.

천방지축으로 날뛰는 제 조카들을 떠올리던 애런이 진지하게 대사를 말하는 지한을 바라봤다.

#그런데 지연도 연기를 꽤 하는 것 같던데요.#

지한의 대사를 받아주던 지연을 모습을 떠올린 애런이 슬쩍 물었다.

#하지만 전 연기 별로 안 좋아해요.#

그 말에 애런이 묘한 미소를 짓고 대답했다.

#제가 알기로 연기를 잘하는 이들의 공통점이 있었죠.#

#뭔데요?#

#그런 이들은 다들 연기를 진심으로 좋아했습니다.#

마치 너도 그렇지 않냐는 듯이 애런이 웃는 얼굴로 지연을 보았다.

변태 아저씨 같은 시선에 지연이 시선을 돌렸다.

지한이 간식이나 가지러 가야겠다.

* * *

오디션이 있는 4월 25일.

며칠 더 일찍 입국해서 미리 시차 적응을 한 이들이 오디션이 열리는 M&M 스튜디오로 향했다.

“오늘 오디션 보는 배우가 지한이 한 명뿐이라고 들었습니다.”

“맞습니다. 에밀리한테 듣기로는 오랫동안 시나리오에 맞는 배우가 없어 제작을 포기하고 있었다고 하더군요.”

“과연 저도 지한의 연기를 봤는데 저 나이에 저 정도 연기를 요구하는 거라면 찾기 힘들었을 겁니다.”

제가 맡은 배우의 가능성을 본 애런이 환한 얼굴로 말했다.

“하지만 할리우드는 동양인에게 장벽이 높죠.”

“맞습니다. 아직까지도 백인 배우들에게 더 좋은 배역이 가는 것은 공공연한 비밀이죠.”

“그래서 사실 저는 지한이가 붙을 거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지정 오디션인데도 그렇게 생각하십니까?”

오직 지한에게만 주어진 오디션 기회인데도 탈락을 걱정하냐는 듯이 물었다.

“할리우드는 할리우드니까요.”

이곳에서 일하는 본인이 더 잘 알지 않는가, 라고 말하는 것처럼 주민이 애런과 시선을 마주쳤다.

뒤에서 그들의 대화를 듣고 있던 지연이 고개를 끄덕였다.

자신이 돌아오기 직전에도 할리우드의 화이트 워싱은 유명한 일이었다.

약 20년 전인 지금이라고 해서 심하면 심했지 완화되지는 않겠지.

“이런. 다 왔군요.”

“…그렇군.”

“그럼 과연 주민의 말이 맞을지 제 말이 맞을지 오늘 한 번 확인해 볼까요?”

“얼마든지. 이번 내기라면 내가 져도 좋아.”

“그 말 기억하고 있겠습니다.”

두 아저씨들의 신경전에 관심을 끄고 지연은 지한의 옷을 여미고 가방을 들었다.

M&M 스튜디오에 도착한 이들이 건물을 들어가자 화려한 금발머리를 한 미녀가 두 팔을 벌리고 맞이했다.

#안녕, 모두들. 그리고 오랜만이야 공주님.#

#그 말 하지 말라고 했을 텐데.#

만나자마자 들은 기분 상하는 말에 주민이 미간을 찌푸렸다.

일만 아니었다면 다시 돌아 나가고 싶은 심정이었다.

#에이. 너무 딱딱한 거 아니야? 얼마 만에 보는 건데.#

#지금은 일에 집중해 줘.#

#공주님은 너무 딱딱하다니까.#

#에밀리.#

낮게 경고하는 주민의 말에 에밀리가 얄밉게 입을 합 다물었다.

#알았어, 알았어. 자, 다들 위에서 기다리고 있으니 올라와요.#

에밀리가 등을 돌려 앞섰다.

“후우.”

“사장님 친구예요?”

“아니다.”

“친해 보이던데.”

“절대 아니란다.”

호기심 가득한 지한의 말에 주민이 깊은 한숨을 내쉬고 말했다.

저러다 터지겠네.

주민이 빡치기 전에 지연이 지한의 손을 잡고 에밀리의 뒤를 따라갔다.

#잠시만.#

커다란 회의실 앞에서 에밀리가 말했다.

문을 열어 안에 있는 이들과 무슨 대화를 나눈 에밀리가 작게 열었던 문을 활짝 열고 모두에게 손짓했다.

#다들 들어와도 된대. 대신 옆에서 아무 말도 하지 말기.#

#물론이죠.#

회의실로 모두 발걸음을 옮겼다.

* * *

“저 아이가 그 아입니까?”

“물론! 내가 무려 물 건너가서 찾아온 배우야.”

“잘생겼네요.”

“미남 배우들의 어린 시절을 보는 것 같네요. 혹시 혼혈입니까?”

“아니야. 지한은 순수 한국인이라구.”

펜을 빙글 돌리며 에밀리가 말했다.

그녀의 말에 시나리오를 쓴 데이빗 앤더슨 감독이 에밀리를 흘겨봤다.

“네 말대로 물 건너간 보람이 있는 배운지는 오디션을 보고 확인하지.”

“기대해도 좋을걸?”

“그건 두고 보면 알겠지.”

마음에 드는 배우가 없어서 무려 10년을 묵힌 시나리오였다.

너무 어린 배우를 주연으로 설정한 게 아닌가 고민했지만 이 시나리오의 주인공은 무조건 어린 나이의 자폐아여야 했다.

“준비됐나?”

데이빗이 앞에 서 있는 어린아이에게 물었다.

“네!”

“뭘 연기해야 하는지 알고 있겠지?”

“알고 있어요.”

지한이 자신 있게 대답했다.

아직까지는 자신이 그리던 주인공의 모습이 아닌 어린아이를 보고 데이빗이 신호를 주었다.

“큐!”

지한이 자신만의 세상에 갇힌 천재를 연기하기 시작했다.

바닥에 주저앉아 바닥에 손가락으로 원을 그렸다.

배역에 집중한 모습에 심사를 보는 이들이 몸을 당겨 앉았다.

한순간에 배역에 빠져드는 모습이 심상치 않았다.

“리온 뭐 하는 거니?”

“….”

리온이 된 지한이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고 손가락을 움직였다.

이번에는 원을 그리지 않고 불분명한 곡선을 그리고 있었다.

“리온?”

스태프의 목소리에 지한은 또 반응하지 않았다.

“엄마가 부르잖니!”

“우으어어!!”

스태프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지한의 몸이 휘청하더니 입 밖으로 괴성을 토해 냈다.

갑자기 변한 지한에 심사원들이 깜짝 놀라 고개를 뒤로 뺐다.

그러거나 말거나 자신의 세계를 침범당한 리온이 소리를 지르며 몸을 버둥댔다.

자신을 제압하는 손을 밀어내기라도 하듯이 손을 뻗은 리온이 누군가와 힘겨루기를 하는 모습을 보이던 아이가 이내 얌전해졌다.

“하악. 학.”

거친 숨을 내쉰 리온이 눈을 이리저리 굴리더니 몸을 굴려 바닥에 엎드렸다.

엎드린 리온이 손에 무언가를 쥐고 그림을 마저 그리기 시작했다.

“컷!”

완전히 리온이 된 것 같은 지한의 연기에 데이빗 감독이 자신도 모르게 컷을 외쳤다.

그 신호에 지한이 자리에 일어나 옷에 묻은 먼지를 털었다.

“…혹시 41씬도 해 볼 수 있나?”

“지금 바로 할까요?”

“그래.”

이번에는 모두가 앞으로 바싹 당겨 앉으며 지한에게서 시선을 떨어트리지 않았다.

리온이 자리에 앉아 표정 하나 없는 얼굴로 누군가를 올려다봤다.

“어… 으아.”

아이가 힘겹게 입을 벙긋거렸다.

물 밖에서 처음으로 호흡을 하는 것처럼,

태어나 처음으로 울음을 토해 내듯이,

입을 벌려 가녀린 소리를 뱉던 아이가

드디어 한 단어를 입 밖으로 내었다.

“어마.”

단어를 성공적으로 말한 아이의 눈이 서서히 가늘어졌다.

베시시 웃는 아이가 이번에는 더욱 확실하게 단어를 말했다.

“엄마.”

아이가 처음으로 자신만의 세계에서 바깥 세계로 한 걸음 내디뎠다.

“…컷.”

데이빗 감독의 목소리가 먹먹하게 들려왔다.

시나리오를 직접 쓰고 연출을 하는 감독이기에 머릿속에 있던 장면을 현실로 소환한 지한을 보고 감동에 젖지 않을 수 없었다.

10년을 기다렸다.

이 장면을 직접 볼 수 있다면, 그리고 보여 줄 수 있다면.

오랜 기다림에 이제는 포기해야 하는 게 아닌가 마음을 정리하려 했건만 눈앞에 시나리오에 생명을 부여해 줄 이를 만났다.

“다들 더 볼 필요 있습니까?”

“…아니요.”

“크흠. 저는 찬성입니다.”

다들 지한의 연기를 보고 같은 생각을 했는지 눈시울과 콧방울이 붉어진 채로 대답했다.

“어때요? 내가 멀리서 지한을 찾아올 만했죠?”

눈가가 빨간 에밀리가 가슴을 내밀고 당당하게 말했다.

“그래, 이번에는 에밀리, 네가 맞았어.”

“이제 메가폰을 잡을 마음이 들었나요, 감독님?”

장난스러운 에밀리의 말에 데이빗 감독이 단단한 시선으로 지한을 보며 말했다.

“저만한 배우를 두고 메가폰을 잡지 않으면 감독을 때려쳐야지.”

“그럼 가제 Moonlight의 제작 준비 들어간다?”

“Okay.”

31. 새로운 재능

“어떤가요, 주민. 내 말이 맞죠?”

애런이 실실 웃는 낯으로 주민에게 말했다.

오디션을 보고 모든 심사위원의 만장일치로 주연에 발탁된 지한을 본 주민이 입꼬리를 올리고 말했다.

“네. 이번 내기는 제가 졌습니다.”

“하하하. 제가 이겼다지만 승자도 패자도 없는 내기였습니다.”

“그렇군요. 그러면 앞으로 촬영은 어떻게 되나요?”

“주연을 캐스팅했으니 다른 배우들을 캐스팅해야죠.”

“투자자는 안 구하나요?”

“에밀리가 해결하기로 한 모양이던데요?”

애런의 말에 주민이 심사위원석에 앉아있는 에밀리를 돌아봤다.

그 시선을 느낀 건지 에밀리가 손가락으로 V를 만들고 웃었다.

“캐스팅이 시작되어 봐야 알 것 같습니다. 촬영 스케줄이 나오면 바로 말씀드리죠.”

“회사로 연락 주시죠. 저희는 다시 한국으로 돌아가 보겠습니다.”

“알겠습니다. 여기서 일정 조율은 저희에게 맡겨주시죠.”

주민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오디션 결과를 들은 이상 이제 바쁘게 움직여야 했다.

지한이 주연으로 캐스팅된 이상 다른 배우를 캐스팅하는 데 어려움이 있을 수 있다.

하지만 그 부분은 에밀리에게 맡겨봐야지.

촬영이 너무 늦어지지만 않았으면 좋을 것 같았다.

“돌아가자.”

한국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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