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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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가서 알아보겠습니다.”

“부탁한다.”

“넵!”

장산이 왕산에게 경례를 하고 아이들의 보호자가 있는 곳으로 뛰어갔다.

그의 뒷모습을 보면서 왕석은 부디 장산이 무언가를 알아보기를 빌었다.

* * *

프린트한 대본을 쥐고 방금 찍은 촬영을 분석하던 지연이 자신들에게 다가오는 장산을 보았다.

무슨 일 있나? 촬영 스케줄이 바뀌는 건가?

조감독이 전달할만한 상황을 떠올리며 지연이 묵묵히 그가 올 때까지 기다렸다.

“저기 오지한 배우 보호자 분?”

“네.”

“잠시 저랑 얘기 좀 할 수 있을까요?”

“무슨 일이신데요?”

“별일 아닙니다. 그냥 영화와 관련된 일이에요.”

갑자기 찾아온 낯선 이에 준호가 의아해하면서도 장산이 이끄는 대로 움직였다.

어찌 됐든 자신은 두 아이들의 보호자로 이곳에 와 있는 거니까.

“지연아. 잠시 혼자 있을 수 있어? 아니면 저기 지한이 옆에 가 있어도 되고.”

“혼자 있을 수 있어.”

“그래.”

지연에게 무슨 일 있으면 바로 부르러 오라고 당부하며 준호가 장산의 뒤를 따라 분장실로 들어갔다.

텅 빈 분장실에 들어온 장산이 주위를 살피더니 기척이 없는 것을 확인하고 입을 열었다.

“다름이 아니라 제가 어떤 소식을 들었는데요. 그 아이들 부모에게 무슨 문제가 있습니까?”

조감독의 말에 준호의 얼굴이 딱딱하게 굳었다.

“그건 어디서 들은 얘깁니까?”

“사실입니까?”

“…문제가 있긴 하지만 그건 영화에 지장이 없을 겁니다.”

문제가 있다는 게 사실로 확인되자 최장산의 안색이 어두워졌다.

“제가 들은 얘기로는 저희 영화 때문에 문제가 생겼다는데 그게 어떻게 영화에 지장이 없습니까.”

전혀 사실무근인 소리에 준호가 황당해하며 대답했다.

“이 영화 때문에요? 죄송하지만 어떤 얘긴지 저한테도 알려주시겠습니까?”

“아이의 영화 촬영 때문에 부모 사이에 불화가 생겼고, 누가 애를 데려가는 지로 싸우다가 살인사건이 일어날 뻔했다고….”

준호의 인상이 팍 찌푸려졌다.

뭐지 이 사실이 1% 섞여 있는 혼종은?

소문의 내용 중 맞는 게 살인사건이 일어날 뻔했다는 사실, 딱 하나밖에 없었다.

이러니 소문은 믿을 게 하나 없는 거라며 준호가 냉소적인 얼굴을 했다.

“그건 어디의 아침 드라마 시나리옵니까.”

“아닙니까?”

“사실과 전혀 다른데요?”

“그래요?”

장산의 안색이 펴졌다.

찌라시의 내용과 다르다면 이쪽에서 얼마든지 대응할 수 있었다.

준호의 대답에 한숨이 놓인 장산이 밝은 얼굴로 물었다.

“그러면 아이 부모에게는 문제가 없는 거지요?”

“아까도 말했다시피 문제가 있긴 하지만 그건 영화와 관련이 없는 겁니다.”

찌라시 내용과는 관계가 없지만 문제가 있는 건 맞다는 소리에 장산이 애매한 얼굴이 되었다.

작은 불안이라도 남기지 않기 위해서 장산이 준호에게 매달렸다.

“그래도 무슨 문젠지 알면 저희가 나중에 대처하기 편한데.”

“아이들의 사적인 문젭니다. 제가 왈가왈부할 수 있는 게 아닙니다.”

“오빠아.”

“! 지연아.”

분장실 문틈 사이로 고개를 빼꼼 내민 지연의 울먹이는 얼굴을 보고 준호가 깜짝 놀라 뒤를 쳐다봤다.

문제의 당사자의 등장에 준호가 심란한 얼굴이 되었다.

지연이 문을 분장실로 들어서고 문을 닫았다.

“아빠 때문에 지한이 연기 못 하는 거야?”

“아니야. 그 얘기는 이 영화랑 아무 상관이 없는 일이야. 오빠가 얘기할게. 나가 있어.”

“싫어. 아빠 때문에 지한이 연기 못 하는 거 싫어!”

“지연아. 그런 거 아니야.”

제 사촌의 말에 준호의 얼굴에 고민이 가득 찼다.

준호가 커다란 눈물을 매달고 있는 지연을 품에 안고 등을 토닥였다.

심상찮은 두 사람의 대화에 장산이 눈을 굴렸다.

이거 자신이 괜한 얘기를 꺼낸 건가?

지연이 장산의 앞에 섰다.

“장산 아저씨. 혹시 아빠 때문에 지한이 연기 못해요? 아빠가 술 먹고 엄마 때려서 안 되는 거예요?”

“지연아!”

“!! 어.”

지연의 폭탄 발언에 준호가 큰 소리를 내며 동생을 말렸고, 장산이 깜짝 놀라 두 눈을 깜빡였다.

“아빠가 술만 먹으면 다 부수고, 엄마 때리고 그랬는데. 우리도 죽이려고 그랬는데. 그러면 지한이 연기 못 해요?”

“하아….”

제 사촌 동생의 말을 막지 못한 준호가 깊은 한숨을 쉬었다.

아직 어린 동생의 입에서 나오는 그날의 일은 참고 듣기 힘들었다.

“우린 여기 오는 거 좋아요. 아빠도 안 보고, 지한이는 연기도 할 수 있으니까 좋아요. 저는 지한이가 연기하는 게 좋아요. 너무 좋아요. 지한이가 계속 연기했으면 좋겠어요.”

“….”

어른스러워 보였던 아이의 말에 장산이 말을 잃었다.

왜 아이가 어른스러워 보였는지 알 것 같은 기분이었다.

무릎을 꿇어 아이의 눈높이에 맞춘 장산이 아이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말했다.

“말해줘서 고마워. 네 오빠 말대로 정말 영화와 관련이 없는 일이네. 지한이가 연기하는 데 아무 문제 없을 거야. 지한이가 계속 연기할 수 있도록 아저씨가 노력할게. 지연아, 정말 고마워.”

“정말요?”

“그래.”

배우의 길을 걷게 된다면 언젠가는 가족사에 대해서 말이 나올 때가 있겠지만.

장산은 그런 날이 오더라도 이 아이들의 편에 서겠다고 결심했다.

“괜찮아. 아저씨가 지한이 편 들어 줄게.”

좋았어.

이걸로 순조롭게 최장산을 아군으로 만들었다.

이쪽에 대해서 무지라고 할 정도로 아무것도 모르는 지연은 어떻게 하면 든든한 조력자를 얻을 수 있을지 고민했다.

굳이 걱정하는 사촌 오빠의 말을 무시하면서까지 말한 이유는 자신들에게 우호적인 관계자를 만들기 위해서였다.

지연이 따로 조사한 바로는 마왕석 감독이 꽤 여러 편의 영화를 만들었고 그중에서는 지연도 들어본 영화가 꽤 있었다.

최장산은 그런 마왕석의 밑에서 조감독을 하고 있으니 그의 인맥이나 미래를 믿어볼 만했다.

“제 동생 잘 부탁드려요.”

“그래. 아저씨만 믿어!”

다른 배우들에게는 절대 하지 않을 말을 하면서 장산이 의기양양하게 말했다.

“저도 애들 보호자로서, 우리 애 잘 부탁드립니다.”

“예에.”

아이와 다시 품에 안은 준호가 정중하게 말했다.

두 사람에게 걱정하지 말라며 안심시킨 장산이 먼저 분장실을 나섰다.

“지연아.”

“응.”

“다음에도 혹시 고모부가 고모 때리고 너희한테 손대려고 하면 오빠한테 전화해.”

“오빠 공부하느라 바쁘잖아.”

“공부하고 있더라도 너희들이 전화하면 언제든지 달려올게.”

다음 학기 복학하는 대학생이면서 어떻게 언제든지 달려온다는 거지?

이 오빠 원래 이렇게 우릴 걱정했었나?

아무래도 사촌 오빠가 이전과는 달라진 거 같다.

좋은 거겠지?

* * *

탑엔터 사장 공주민은 최근 친한 기자 몇 명한테서 들은 정보 때문에 배우들이 들어간 작품을 전반적으로 다시 체크하고 있었다.

“임 본부장. 최근 우리 회사에서 아역 배우와 같이 어디 출연하는 배우 있나?”

“정승우 배우의 영화 <오싹한 집>, 민세라 배우의 드라마 <여우누이전>, 최시우 배우의 <못 말리는 왕가네>에서 아역 배우와 같이 출연하고 있습니다.”

“세 명이나 된단 말이지. 당분간 배우들 촬영 현장에 팀장들 잘 붙여서 보네.”

“네. 그런데 무슨 일 있습니까?”

“내가 최근 들은 게 있단 말이지. 아역 배우가 출연 잘못했다가 죽을 뻔했다고.”

공 사장의 말에 본부장이 깜짝 놀라 반문했다.

죽을 뻔했다는 말에 박 본부장의 머릿속에서 온갖 상상이 날개를 펼쳤다.

“나도 건너 들은 얘기야. 그래도 아역 배우 때문에 우리 배우들 커리어에 흠집 날 순 없잖아. 촬영장에 팀장급 같이 보내서 현장 분위기 좀 알아봐.”

“알겠습니다. 저도 방송국에 한번 알아보겠습니다.”

“그래. 영화 쪽은 내가 알아보지. 이거 당분간 간이 남아나질 않겠어.”

“좋은 해장국 집 알아보겠습니다.”

본부장의 말에 고개를 끄덕인 공 사장이 관자놀이를 짚었다.

무슨 일이든 제 소속 배우들에게만 아무런 영향이 없었으면 했다.

“아. 그러고 보니 정승우 배우 쪽에 그 아역 배우 있잖나.”

“네. 오지한이라고 했던가요?”

“그래. 그 아이. 이번 추가 촬영 때 반응 어땠나?”

“아직 촬영 중일 텐데요. 현장에 나간 팀장한테 전화해볼까요?”

본부장의 말에 주민이 잠시 생각했다.

지금 들을 것인가 아니면 촬영이 무사히 끝나고 나서 보고받을 것인가.

잠시 고민한 주민이 고개를 저으며 대답했다.

“아니야, 됐어. 지금 한창 촬영 중일 텐데 지금 전화해도 내가 원하는 걸 듣기는 어렵겠군.

대신 팀장에게 전화할 때, 현장 반응이랑 스태프들 사이에 떠도는 얘기라든가 그런 것 좀 확실하게 알아오라고 해.”

“알겠습니다.”

물러나려는 본부장에 공 사장이 잠시 그를 멈춰 세웠다.

“잠시만. 오지한 배우, 나중에 우리랑 계약할 수 있게 미리 좀 떡밥 좀 뿌려 놓으라고 해.”

“하지만 사장님 저희는 아역 배우를 키운 적이 없습니다만.”

“배우를 키운 적은 있잖아. 그리고 승우가 관심을 보인다며.”

“그렇긴 한데.”

사장의 말에 본부장의 마음이 흔들렸다.

내심 회사 시스템상 힘들다고 생각하면서도 머리는 공 사장의 말을 따르기 위해 아역 출신 배우나 학원을 떠올리고 있었다.

“승우가 아역 배우한테 흥미를 보인 적은 처음이야. 키워서 손해 볼 일은 없을 거야.”

“정승우 배우의 안목이라면. 그렇겠죠.”

연기에 대해 깐깐한 만큼 그가 인정한 연기력을 지니고 있다면 회사에 새로운 시스템을 만드는 걸 고려해볼 만했다.

공 사장과 정승우. 두 사람에게 설득당한 본부장이 사장의 말에 수긍하며 사장실을 나섰다.

“알겠습니다. 팀장에게 연락하도록 하겠습니다.”

16. 길거리 캐스팅

“오빠! 우리 서울 올라왔는데 놀이공원 가보면 안 돼?”

“안 돼. 일 끝나고 바로 내려가기로 약속했잖아.”

“하지만 내려가 봤자 이모 집에 가 있어야 하잖아. 지한이 너도 놀이공원 가보고 싶지?”

“응. 혀엉. 안 돼?”

“안 돼?”

남매가 간절한 표정으로 보호자로 따라온 사촌 오빠(형)을 올려다봤다.

제 동생들의 안타까운 사정에 더해 버림받은 고양이 같은 얼굴에 준호가 움찔했다.

“…고모한테 허락받고.”

“아싸!”

“예에!”

반은 넘어온 준호의 말에 두 사람이 폴짝폴짝 뛰면서 좋아했다.

그렇게도 좋을까.

생일 선물을 받은 것처럼 좋아하는 두 사람을 보고 준호가 호텔 전화기를 들었다.

“여보세요? 고모? 있잖아요….”

정해진 게 있으면 머뭇거리지 않는 성격의 준호답게 곧바로 이미란에게 전화를 걸자 지연이 지한을 데리고 짐 가방이 있는 곳으로 갔다.

“자, 얼른 잠옷 갈아입어야지?”

“응! 누나 빨리! 빨리!”

이미 놀이공원 가는 것을 기정사실화한 두 남매가 시시덕거리며 옷을 꺼냈다.

정신은 이미 놀이공원에서 놀이기구를 타고 있는 것 같은 동생을 붙잡고 지연이 재빨리 옷을 갈아입혔다.

“자, 다 됐다. 누나도 옷 갈아입고 올 테니까 조금만 기다려.”

“응. 누나도 빨리!”

지연은 발을 동동 구르는 지한의 어깨를 쳐준 다음 가방에서 손에 잡히는 옷을 집어 들고 화장실로 들어갔다.

잠옷을 벗고 들고 온 옷으로 갈아입으려는 지연에 손에 들린 옷을 보고 황망하게 중얼거렸다.

“왜 이딴 옷을 가져왔지.”

동생이 챙겨준다고 주는 대로 다 가방에 넣었더니 딸려 온 모양이다.

가슴 한복판에 노란 꽃이 그려진 분홍 티를 입으면서 지연이 동생의 코디를 떠올렸다.

심플하게 파란색 스트라이프가 들어간 티셔츠에 남색 반바지.

흠. 좋군.

“누나 다 입었어?”

“어어. 나가.”

밖을 나가니 준호가 통화가 끝났는지 지한의 옷매무새를 정리해주고 있었다.

“오빠. 엄마가 뭐래?”

“조심해서 잘 다녀오래. 오빠 말 잘 듣고, 손 꼭 잡고 다니래.”

“그럼 우리 놀이공원 가도 되는 거네?”

“어. 고모가 카드 쓰라더라.”

지연은 미란이 준호의 손에 들려 보낸 카드를 떠올렸다.

이미란이 신용 불량자가 되는 게 얼마 남지 않았으니 쓸 수 있을 때 써버려야지.

언제 또 지한이를 데리고 놀이공원에 갈지 모르니까.

“놀이공원 도착하면 오빠 손 놓으면 안 된다?”

“알았어.”

“형, 빨리빨리.”

“너희 정말 알아들은 거지?”

자신을 보채는 동생들의 손에 끌려가면서도 준호는 잔소리를 끊지 않았다.

오빠 꼼꼼하고 성실한 게 좋긴 한데 거 잔소리가 너무 심해.

“얘들아, 진짜 오빠 옆에 꼭 붙어 있어야 한다.”

“응! 알았어.”

“오빠 얼른 가자.”

길 가다가 아이들을 보고 아동 모델이냐는 소리를 한두 번 들은 게 아닌 준호는 서울에서도 빛나는 외모를 한 제 사촌 동생들 걱정에 입이 쉴 틈이 없었다.

그의 잔소리는 놀이공원에 도착할 때까지 그치지 않았다.

* * *

KM엔터 캐스팅 매니저인 민기는 소문의 샤롯월드 아이스크림 알바생을 캐스팅하기 위해서 홀로 놀이공원에 왔다.

“하아. 이번에는 잘돼야 할 텐데.”

매번 다른 경쟁 회사에 인재를 뺏기는 것도 한두 번이지.

그럴 때마다 왜 그렇게 발이 느리냐면서 혼난 것은 한 손으로도 셀 수 없었다.

“아니야. 이런 생각 하지 말자. 힘을 내 김민기! 너는 미래에 대스타의 매니저가 될 몸이라고!”

샤롯월드 한복판에서 자신의 뺨을 내리치며 민기는 의지를 다졌다.

사람들이 멀찍이 민기를 돌아갔다.

주위 사람들이 자신을 어떻게 보는지 알지 못한 채, 민기는 소문의 아이스크림 알바생을 찾기 위해서 샤롯월드를 돌았다.

판매대는 알바들이 매번 로테이션을 돌기 때문에 공원 안에 있는 아이스크림 판매점을 전부 돌아야했다.

그 알바생은 잘생긴 걸로 유명했으니 인기 놀이기구 근처에 있겠지.

목표를 잡은 민기가 놀이공원 마스코트의 인형 탈을 쓴 알바생의 옆을 지나갈 때였다.

“안녕!”

“나도 손! 손잡아 줘!”

공휴일도 아닌 평일 낮부터 마스코트 인형 근처에 어린애들이 몰려 있었다.

아이들과 부딪히지 않게 주의하던 민기의 눈에 자그마한 아이들 사이에서도 눈에 띄는 남매가 들어왔다.

“누나. 이거 봐!”

“귀엽다.”

“자, 얘들아 잠시 여기 볼까?”

준호가 인형 탈 주위를 빙글빙글 도는 남매를 보고 손을 흔들며 주위를 끌었으나 들은 척도 안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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