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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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준호 오빠, 고마워.”

“아니야. 여기서 오빠가 도와줄 수 있는 게 없네.”

“여기까지 데리고 와 줬잖아. 그거면 충분해.”

사촌 동생의 말에 준호가 머리를 쓰다듬어줬다.

고모네에 있었던 일을 전해 듣긴 했지만 그런 일이 있어도 의젓하게 제 동생의 촬영을 준비한 동생이 기특했다.

“아! 지한이 왔어요?”

막내 스태프에게 맡겨 배우 픽업을 맡긴 장산이 무사히 도착한 아이들을 보고 반색했다.

추가 촬영이 지한의 연기를 보고 결정 난 만큼 오늘 촬영에서 지한은 필수였다.

장산이 남매와 그들의 보호자로 보이는 젊은 청년 앞에 섰다.

“안녕하세요, 지한이 보호자십니까?”

“네. 오늘은 제가 아이들 보호잡니다.”

“저는 조감독 최장산이라고 합니다. 혹시 무슨 일 생기면 저한테 말씀해주세요.”

“우리 애 잘 부탁합니다.”

보호자와 가볍게 인사를 나눈 장산은 시선을 돌려 지한을 바라봤다.

며칠 안 본 사이에 아이의 얼굴이 더 잘생겨진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안녕 지한아?”

“안녕하세요!”

“지한이 누나도 안녕?”

“안녕하세요. 오랜만이에요.”

여전히 또래에 비해 성숙해 보이는 지연을 보고 장산이 웃었다.

“대본 미리 봤지?”

“네! 이메일 주셔서 봤어요.”

“너희들이 이메일이 있어서 다행이야.”

사촌들 때문에 억지로 만든 이메일이 지금 와서 도움이 될 줄이야.

이메일로 온 대본에는 지한의 분량이 추가되어 있었다.

그리고 생각보다 주연과 붙어 있는 씬이 많아서 관객들에게 인상을 남기기 쉬워 보였다.

“어때? 오늘도 저번처럼 연기할 수 있겠니?”

장산이 몸을 낮춰 지한과 눈을 마주치며 말했다.

지한이 자신만만하게 대답했다.

“네! 누나랑 같이 연습했어요.”

“그래. 너라면 잘할 수 있을 거야. 분장실은 저기야. 오늘도 잘 부탁한다.”

“네에!!”

멀리서 온 배우를 챙긴 장산이 아이들을 분장실로 안내하고 현장으로 돌아갔다.

정중한 장산의 태도를 보고 오늘 처음 촬영장에 따라온 준호가 입을 열었다.

“지한이 네가 연기를 꽤 잘하나 봐.”

“에? 왜 그렇게 생각하는데 형?”

“저 사람 촬영장에서 꽤 높은 사람인데 지한이 너한테 인사하러 왔잖아.”

“장산 아저씨 착해. 저번에도 나보고 연기 잘한다고 해 줬어. 카메라로 찍을 때도 나한테 막 이거 괜찮냐면서 계속 물어봤어.”

지연도 지한의 생각에 동의하는 바였다.

영화판에 대해서 잘 모르는 지연도 뉴스나 가끔 다른 이들을 통해서 배우를 혹사시키는 촬영장이 있다는 얘길 들었다.

그런데 지한의 첫 촬영장에는 배우와 싸우지도 않고 스태프들끼리 협력도 잘 되고, 제작사 사람들이 나와서 참견하는 것도 없었다.

“다들 좋은 사람들이야.”

“그래. 들어보니까 지한이랑 같이 촬영하는 배우도 성격 좋다면서?”

“응! 정승우 아저씨 진짜 멋져.”

“모르는 거 있으면 물어보랬어.”

본인도 아닌데 나서서 자랑하는 아이들을 보고 준호가 웃음을 참지 못하고 터트렸다.

“잘됐네. 지한이 너는 연기 배우는 선생님도 없으니까.”

“선생님 없어도 돼. 누나가 다 알아.”

“그래도 지한이 네가 연기 계속하고 싶으면 제대로 된 선생님한테 배우는 게 좋아.”

“…누나만 있으면 되는데.”

어렸을 때부터 뭐든 누나한테서 배운 지한이 어린아이다운 고집을 보이자 살짝 안쓰러운 마음이 들어 준호가 지한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지연이가 모르는 것도 있을 거야. 그때는 다른 사람들에게 도움받아야지.”

“그치만.”

“괜찮아, 오빠. 내가 배워서 지한이 가르쳐 줄게.”

지연이 동생의 고집을 들어주자 준호가 엄한 표정을 지었다.

“지연아, 너 혼자서 모든 걸 다 할 수 없어.”

“오빠, 우리는 둘이 함께 있으면 뭐든 다 할 수 있어.”

“맞아! 누나랑 같이하면 나 전부 할 수 있어.”

어린아이의 치기가 어린 말에 준호가 결국 손을 들었다.

“그래. 알았다. 그래도 힘든 일 있으면 형이나 누나한테 언제든지 말해.”

“알았어.”

“응!”

저렇게 두 사람이 서로를 강하게 의지하는 건 주변에 의지할 사람이 없어서겠지.

파국을 향해 가는 고모네 사정을 떠올리며 준호가 쓰린 속을 다스렸다.

“자아. 이제 분장해 볼까?”

“네에!”

아이들의 말을 기다려준 분장사들이 지한을 의자에 앉혔다.

“너무 두껍게 바르는 거 아닌가요? 애들 피부에 좋지 않을 거 같은데.”

“어머, 무슨 소리예요? 이래 봐도 배우들 분장도 한다구요. 클렌징만 잘하면 문제없어요.”

“그래도 너무 두껍지 않게 부탁드립니다.”

“걱정 마세요. 우린 프로예요.”

지연이 분장사와 투닥이는 사촌오빠를 보았다.

흠. 역시 똑 부러지는 오빠를 데려오기 잘했어.

군 휴학하고 복학할 때까지 조금 남았는데 그때까지 오빠를 데리고 다닐까?

오형우와의 이혼 준비에 정신없는 이미란을 떠올리며 지연이 매의 눈으로 준호를 쳐다봤다.

“클렌징은 어떻게 하죠?”

“그건 이 오일을 묻혀서….”

흠. 역시 잘 데려왔어.

* * *

며칠 전 형사들의 얘기를 듣고 사건을 파던 안 기자는 파면 팔수록 흥미가 솟았다.

자신의 기자로서의 감이 이 사건이 대박 날 것이라고 말하고 있었다.

-안 기자! 요새 뭐 하고 다니는 거야?

“뭐 하고 다니긴요. 취재하고 다니지.”

-내 말은 그게 아니잖아? 사회부 기자가 왜 연예인들 뒤를 쫓아다니는 거냐고?

편집장의 잔소리에 안 기자가 휴대폰을 멀찍이 떨어트렸다.

거 같이 늙어가는 처지에 목청만 좋아서는.

“편집장님. 이거 큰 건입니다.”

-연예인들 뒤나 파는 게 뭐가 큰 건이라는 거야? 걔들이 뭐 마약이라도 했대?

“그건 아닌데 살인 미수 피해자일지도 몰라요.”

-뭐라고?!

살인이라는 단어가 주는 무게에 편집장이 깜짝 놀라 소리쳤다.

더 이상 자신을 방해하지 말아 달라는 의미로 던진 미끼에 편집장이 덥석 물고 파닥거리는 게 느껴졌다.

“무튼 저 이거 끝까지 팔 겁니다.”

-어어. 취재 열심히 하고. 안 기자 무슨 일 있으면 연락해. 알았지? 꼭이야!

“네이. 네이.”

뚝-

무정하게 전화를 끊은 안 기자가 귀찮다는 듯이 휴대전화를 주머니에 넣었다.

지방경찰서에서 형사들의 얘기를 듣고 아이들이 제 아버지를 신고했다는 것에 흥미를 느껴 조사를 계속했다.

조사를 하다가 아이들이 사는 도시까지 왔고, 거기서 주변 탐문을 하다가 아이 중 하나가 아역 배우라는 사실을 듣게 됐다.

워낙 작은 도시여서 가스 자살 소동이란 키워드만으로 아이들의 아버지나 그들이 사는 곳까지 순조롭게 올 수 있었으나 정작 중요한 사건의 당사자와는 아직 만나지 못했다.

아이에 관한 것을 조사하는 것도 힘들었다.

아니, 그 아이들에 대해 조사하는 것이 어려운 것은 아니었지만 이런저런 소문들이 너무 많았다.

“촬영장에서 한 번에 스카우트 됐다거나 연기를 너무 잘해서 서울로 곧 이사 갈 거라든가 어린애 연기를 보고 어른들이 전부 다 울었다든가. 이거 원, 어디까지 믿어야 하는지.”

고작 9살, 7살 아이들이라고 들었다.

그중에서 연기한 아이는 고작해야 7살.

아무리 천재라고 해도 7살이 소문에 나오는 것 같은 연기를 보여줬다고?

눈으로 보지 않는 이상 믿기 힘들었다.

“역시 작은 도시라서 과장된 거겠지.”

우선 어른들의 말부터 들어보고 싶었다.

안윤한이 손에 들린 메모를 보았다.

○○시 ◇◇면 △△리 1924-7번지

아이의 아버지가 일하고 있다는 곳이었다.

* * *

“자, 슛!”

멀리서 조명 아래에 있는 동생을 바라봤다.

조명 아래서 동생의 연기가 빛나고 있었다.

“지한이 진짜 연기 잘하네.”

“오빠가 봐도 그래?”

“응. 아무것도 모르는 내가 봐도 이렇게 감탄하게 되는걸.”

두 사람의 시선이 열연을 하고 있는 두 사람에게 향했다.

“허억, 허억.”

“쯧쯧. 내가 그래서 저 여인네한테 함부로 다가가지 말라고 하지 않았나.”

“아니 무슨. 아까는 얌전했는데.”

“한을 품고 죽은 여인을 무시해서는 안 돼.”

태수의 옆에서 창백한 얼굴의 어린아이가 턱을 괴고 말했다.

즐겁다는 듯이 웃는 아이의 두 눈이 빨갰다.

“너, 눈이 왜.”

“아아. 조금 흥분했나봐. 내 앞에서 날뛰는 잡귀는 오랜만이거든.”

감히.

내 영역에서.

아직까지도 날뛰는 놈들이 남아있을 줄이야.

아이의 입이 귀까지 찢어진 것처럼 섬뜩하게 올라갔다.

“어, 어이. 야, 너 괜찮은 거지?”

제게 닿지 못한 손이 또다시 몸통을 통과했다.

그 기묘한 감각에 아이가 고개를 돌려 태수를 쳐다봤다.

“왜, 왜 그렇게 무섭게 봐? 지, 지리겠네.”

무서우면서.

자신의 눈을 피하지 않고 지껄이는 태수를 보고 흥미가 생긴 동자귀의 화가 조금씩 가라앉았다.

“저걸 난리치게 둔 건 너니까, 네가 처리해.”

“엑?! 나 무당이랑 퇴마 쪽은 전혀 관계가 없는데.”

“보이잖아. 이제 관계가 생긴 거지. 내가 가르쳐 줄 테니까 어디 한번 해봐.”

“어이, 동자님 우리 이러지 맙시다.”

“자, 힘내라. 힘.”

“살려줘!”

자신의 손을 매정하게 거절하는 동자님을 보고 태수가 애절하게 외쳤다.

쩌억―!

“히익!”

부적을 붙여 귀신의 출입을 막아주던 문이 불길한 소리와 함께 금이 갔다.

“커엇트―! 오케이!”

“이야. 감독님 지한이가 나온 게 훨씬 나은데요?”

“그렇지? 솔직히 이 장면 지한이 없이 승우 씨 혼자 찍은 것보다 지한이가 같이 있는데 더 괜찮지 않냐?”

“정 배우가 갑자기 혼자 귀신 퇴치하는 것보다 동자귀가 조언을 해 준다는 게 더 좋네요. 그림도 더 사는 것 같고요.”

카메라에 찍힌 두 사람의 연기를 보고 감독과 조감독이 만족스럽게 웃었다.

추가 촬영에 살짝 불만스러운 기색을 보이던 스태프들도 두 사람의 연기에 고개를 끄덕이며 납득했다.

더 좋은 장면을 찍는다면 납득할 만했다.

영화 성적에도 이편이 더 좋을 테니까.

“마 감독님.”

“어어. 김 부장 웬일이야?”

“잠시 얘기 좀 해도 괜찮을까요?”

추가 촬영 때문인가?

그 건에 대해서라면 예전에 미리 다 얘기가 끝난 걸로 기억하는데.

갑자기 말을 건 제작부장 때문에 마 감독이 의아해하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김 부장. 왜 그래? 우리 추가 촬영 하는 거 이미 얘기 다 끝난 거 아니었어?”

“예. 다 끝났죠. 저도 추가 촬영 하는 데 찬성했고요.”

“근데 무슨 일이야?”

“배우 문제 때문입니다.”

“배우? 정 배우? 최 배우?”

혹시라도 배우들과 관련해서 사건이 터졌을까 봐 마 감독이 인상을 찌푸렸다.

오늘내일 있을 추가 촬영이 끝나면 모든 촬영이 다 끝나는데 이제 와서 배우들에게 문제가 생기면 곤란했다.

“그게 아니라. 오지한 배우요.”

“지한이?”

제작부장의 말에 마 감독의 시선이 지한에게 향했다.

방금 찍은 장면을 모니터링하느라 정 배우의 옆에서 화기애애하게 대화하고 있는 지한의 얼굴이 두 눈에 가득 들어왔다.

15. ‘그 아역 배우’를 찾아라! (3)

연예 관계자들 사이에서 갑자기 나타난 한 찌라시 때문에 작은 소란이 번졌다.

[아역 배우 A군. 영화 출연 후, 가정불화.]

찌라시 내용만 보자면 영화 출연 후, A군의 진로 때문에 부모님들의 마찰이 일어났고, 그 때문에 칼부림까지 난 것으로 되어있었다.

영화 한 번 출연했다고 칼부림이라니.

흡사 영화가 가정불화의 원인이 된 것 같이 쓰여 있었다.

영화 관람객들 중 연인과 가족이 대부분을 차지하는 특성상 이러한 종류의 찌라시는 영화에 좋지 않았다.

“김 부장. 그래서 이 찌라시 내용에 나오는 아역 배우가 지한 군이라는 증거 있어?”

“아직 없습니다. 하지만 지금 개봉 전인 영화 중에 아역 배우를 쓰는 영화가 거의 없기도 하고, 만약이라는 것도 있지 않습니까.”

마 감독이 보호자와 함께 있는 지연을 보았다. 그리고 시선을 돌려 카메라 앞에서 촬영한 장면을 돌려보고 있는 지한도 보았다.

AD가 얘기하기를 오늘 아이들의 부모가 일이 있어 사촌이 대신 왔다고 했지.

어딘가 찝찝한 구석이 들어 마 감독의 안색이 딱딱하게 굳었다.

“만약을 대비해서 우리도 아이들에게 확인하지.”

“부탁드립니다. 감독님.”

“아니야. 현장 지휘하는 사람으로서 배우 사정 정도는 알고 있어야지.”

“뭐든 알아내는 대로 꼭 연락 부탁드립니다.”

“알았어.”

김 부장이 신신당부를 하고 자리를 떠났다.

그가 자리를 비우자 왕석이 장산을 불렀다.

“장산아!”

“네, 감독님!”

멀리서 스크립트를 들고 감독들과 얘기하던 장산이 마왕석의 부름에 단숨에 뛰어왔다.

왕석이 제 앞에 선 장산을 끌고 조용한 곳으로 이동했다.

주위를 둘러본 왕석이 장산의 귓가에 손을 대고 작게 속삭였다.

“장산아 너 혹시 애들 엄마랑 통화했을 때 뭐 느낀 거 없었냐?”

“글쎄요? 딱히 촬영에 부정적인 것도 아니었고, 애들 잘 부탁한다고 당부하긴 했는데 그것 외에는 별말씀 없었어요.”

“흐음.”

감독님이 왜 이러시지?

괜히 조심스럽게 묻는 왕석을 보고 장산도 의문이 들었다.

무언가 고민하는 듯한 마 감독의 모습을 본 장산이 물었다.

“감독님 무슨 일 있어요?”

“그게….”

왕석이 장산에게 김 부장에게 들은 얘기를 전해줬다.

장산의 얼굴이 덩달아 심각해졌다.

“감독님. 그게 사실이면 우리 영화 이미지가 완전 똥 되는 거 아닙니까?”

“그래. 개봉 전에 이런 얘기가 돌면 좋지 않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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