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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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거 조금 더 알아보면 살인 미수로 엮을 수 있지 않을까?

이전에는 알지 못해서 그냥 넘어갔지만 이제 내가 그 사실을 알고 있는 한 예전처럼 쉽게 끝나지 않을 거야.

반드시 내 동생의 앞길에서 없애주겠어.

‘이번에는 확실하게 보내주마. 오형우.’

지연이 오형우의 미래를 상상하며 살벌하게 웃었다.

* * *

지연의 생각을 읽기라도 한 것처럼 요 며칠 오형우는 얌전했다.

아니, 정확하게 말하면 자살 소동을 피우지 않았다.

술만 먹으면 죽을 거라고 술병을 깨고 병 조각을 쥐어 잡던 인간이 요즘은 술병이나 반찬통을 깨는 일이 적었다.

“이 새끼 알고 피하는 건 아니겠지?”

“아, 아니야! 나 너 피한 거 아니야!”

“뭐야, 박찬성. 너 나 피했었냐?”

책상에서 혼잣말하던 것을 주워들은 찬성이 녀석이 묘하게 찔린 게 있는 모습을 보였다.

“뭐냐? 솔직하게 말해라.”

“그게에.”

몸을 베베 꼬는 녀석을 지연이 짜게 식은 눈으로 봤다.

내 동생도 아니고 그딴 짓 해 봐야 하나도 안 귀엽거든?

“저기이. 지연아 혹시 나 숙제 외상 해 줄 수 있어?”

“…용돈 다 썼냐?”

“으, 응.”

“너 또 오락실 갔지.”

“아, 아니야! 그냥 학원가기 전에 문구점 앞에 있는 게임 딱 1판만 했어!”

“뻥치지 마!”

“…매일 10판씩 했습니다.”

으이구.

지연은 찬성을 앞에 두고 그의 어머니에 빙의해 잔소리를 늘어놨다.

누군가의 잔소리를 떠올린 찬성이 몸을 뒤틀며 피하려 했지만 지연의 매서운 눈초리에 꼼짝없이 잡혀 있어야 했다.

“오늘부터 당분간 숙제는 혼자 해!”

“에엑-?!”

그러면 나 왜 잔소리 들은겨?

“안됐네, 박찬성.”

“흐흑. 역시 말하지 말걸 그랬어.”

* * *

학교에서 찬성이 녀석의 기 좀 죽이고 돌아온 그날 밤 지연이 기다리고 있던 사건이 일어났다.

와장창! 챙! 쨍그랑-!

한동안 얌전하다고 했더니 오늘도 뭘 깨부수는군.

날카로운 소리에 지연은 슬며시 눈을 떠 고개를 돌렸다.

잠을 방해받았는지 눈꺼풀이 움찔대는 지한의 눈을 덮어주었다.

“이럴 거면 갈라서! 갈라서자고!”

“이거 어디 하늘 같은 서방 앞에서 그딴 소릴 해!”

“내가 뭐 못 할 말 했어? 갈라서자고! 대신, 애들은 내가 데리고 갈 거야. 알겠어?!”

“이! 이익!!”

평소보다 더 격하게 싸우는 두 사람의 목소리에 지연이 미간을 찌푸렸다.

오형우의 반응이 이상한데?

이미란에게 말로 밀리는 건 항상 있는 일이었지만 그럴 때마다 오형우는 폭력으로 그녀의 입을 막았다.

지지 않는 성격인 이미란도 한 대 맞기 시작하면 똑같이 주먹으로 갚아줬고.

그런데 오늘은 그런 살과 살이 부딪치는 소리가 들리지 않았다.

“갈라서겠다고?”

“당신? …지금 뭐 하는 거야?”

“이거 놔!”

쿠당탕!

“지, 지연이 아빠. 지금 뭐 하는 거야?! 그거 내려놔! 정신 차려.”

“내 새끼는 아무도 못 데려가. 너도! 이혼할 바에는 죽는 게 나아. 그래, 살기 힘들다고? 그럼 같이 죽자.”

심상치 않은 반응에 지연이 재빨리 자리에서 일어나 지한을 깨웠다.

이미란의 반응과 오형우의 말을 들어보니 오늘 오형우가 지랄하는 날인 것 같았다.

“지연이 아빠, 안 돼! 그거 자르지 마!”

“오지 마!!!!”

“아악!!”

바깥에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던 지연의 귀에 흘려들을 수 없는 말이 들렸다.

자른다?

오형우. 자살. 자른다.

재빨리 머리를 굴려 한 가지 가정을 도출해 낸 지연이 다급해졌다.

‘가스 호슨가!’

예전에 듣기로는 가스 밸브가 잠겨 있어서 큰일로 번지지 않았다고 했지만 이번 일이 그때처럼 흘러갈지는 모르는 일이었다.

지연의 다급한 손길에 지한이 눈을 비비며 일어났다.

“우음. 누나?”

“쉿. 지한아 빨리 일어나. 도망쳐야 해.”

“어, 으응.”

“방을 나서면 바로 현관을 열고 나가는 거야 알겠지?”

“알았어.”

영문을 알 수 없지만 누나의 반응을 보아하니 무슨 일이 생긴 모양이다.

지한이 순순히 누나의 말을 들으며 문 뒤에 붙어 섰다.

우리 방은 현관 바로 옆. 현관을 열면 바로 거실이고 거실 양쪽으로는 부엌과 손님방이 있다.

지금 두 사람은 부엌에서 난리를 피우고 있을 테니 조용히만 하면 현관문을 열 때까지 눈치채지도 못할 거다.

지연이 천천히 손잡이를 돌려 문을 열었다.

좁게 열린 틈으로 난동을 피우는 사람과 말리는 사람의 목소리가 천둥처럼 들려왔다.

“그만해!!”

“으윽! 이년이!”

쿠당, 쾅.

이미란이 오형우를 붙든 모양이다.

지금이야!

방을 나오자마자 바로 옆에 있는 현관으로 뛰어 집을 나갔다.

빨리, 빨리 관리실에 가서 119를 불러야!

아까 나올 때 맡은 냄새가 착각이 아닌 거라면 빨리 사람들을 대피시켜야 해.

“누나. 누나 왜 그래?”

“119, 불러야, 해.”

“119?”

“이번엔 진짜, 다른 사람들까지, 위험할지도 몰라.”

달리느라 말이 중간중간 끊어졌지만 동생은 제 누나가 하는 말을 알아듣고 하얗게 질린 얼굴이 되었다.

서둘러 비상구 계단으로 내려간 우리는 관리실로 들어갔다.

“아저씨!”

“아저씨!”

“어라? 너희들 305호 애들 아니냐. 이 밤에 무슨 일이니?”

한울아파트 관리인 김 씨는 잠옷 차림에 맨발로 뛰어온 아이들을 보고 아이들이 숨을 고를 수 있게 도와줬다.

컵에 물을 따르며 애들 손에 들려준 김 씨가 애들을 의자에 앉히려 했다.

지연은 그의 손을 거절하며 다급하게 말했다.

“119! 불러주세요! 빨리!”

“그게 무슨,”

“아빠가 다 죽이려고 해요!”

“뭐어? 얘야, 우선 진정하고,”

“아저씨이 빨리요.”

“아빠가 엄마 죽일 거예요.”

“뭐?”

애들 입에서 나온 죽는단 소리에 관리인도 깜짝 놀라 되물었다.

“죽는다는 게 무슨 말이냐?”

“아빠가 가스호스 잘랐어요!”

“뭐어어?!”

급해 죽겠는데 계속 되묻는 관리인에 말에 지연이 다급하게 외쳤다.

그제야 사태가 꽤 심각해질 수 있다고 느낀 관리인이 전화기를 들어 119에 신고했다.

“아저씨 빨리 대피하라고도 해야죠!”

“아차!”

처음 겪는 사태에 당황한 관리인이 허둥지둥 대자 지연이 옆에서 참견했다.

“아아-안내 말씀드립니다. 지금 아파트 내에….”

* * *

한밤중 한울아파트 주민들은 대피를 해야 했다.

가스가 누출되었을지도 모른단 소리에 신발도 제대로 신지 못하고 모두 허겁지겁 뛰어나왔다.

자는 아이를 그대로 안고 잠옷에 구두를 꿰어 신고 나온 이도 있었고 상의를 홀딱 벗고 있는 아저씨도 보였다.

그 속에서도 이미란과 오형우는 보이지 않았다.

“아직도 싸우고 있는 건가?”

“누나아.”

지연은 지한을 꼭 끌어안았다.

오형우는 담배를 피우지 않기 때문에 집에 라이터 같은 건 없지만 작은 불티가 어디에서 생길지 모르는 일이니까 안심할 수 없었다.

“너희 부모는 없구나.”

관리인으로서 주민들을 파악하고 온 아저씨가 관리사무소 앞에 서 있는 아이들을 보고 말했다.

방송까지 해 모든 사람들이 대피해 내려왔는데 305호의 부부만 보이지 않았다.

혹시 벌써 두 사람에게 무슨 일이 생긴 건 아닌지.

지금이라도 올라가서 확인해야 하나 관리인이 고민하고 있을 때, 요란한 사이렌 소리가 들렸다.

애앵-!!

멀리서 소방차가 오는 소리가 들렸다.

이윽고 여러 대의 소방차가 아파트 주차장에 가득 찼다.

소방차 뒤로 경찰차도 보였다.

이렇게 많이 올 줄은 몰랐는데.

자신의 생각보다 많은 인원에 지연이 지한을 뒤에서 안고 한 걸음 뒤로 물러났다.

소방차에서 완전 무장 한 소방대원들이 내렸다.

“신고하신 분?”

“접니다.”

“가스가 누출되는 곳은 어딥니까?”

“305홉니다.”

“알겠습니다.”

소방관들이 두꺼운 옷을 입고 3층으로 올라갔고, 뒤이어 온 경찰관들이 주민들을 통제했다.

한밤중에 일어난 소동에 다른 아파트에서도 불을 켜고 베란다로 지켜보고 있었다.

대원들이 현장으로 뛰어올라 가자 경찰관이 신고자를 찾았다.

“신고자분?”

“네.”

“어떻게 알고 신고하셨습니까?”

“아이들이 뛰어와서 119를 불러달라고.”

“아이들이요?”

“네. 지금 가스 호스 자르고 죽겠다고 소동 피우는 사람이 이 애들 부몹니다.”

“아.”

경찰이 관리 아저씨의 배려에 슬리퍼를 신고 있는 우리를 보고 혀를 찼다.

어쩌다 이런 상황이 일어났는지 대략 알겠다는 얼굴이었다.

“일단 알겠습니다. 주민 여러분들은 모두 저희 통제하에 아파트 밖으로 물러나 주세요. 가까이 있다간 다칠 수도 있습니다.”

생각보다 많은 인원의 출몰에 주민들도 상황의 심각성을 인지하고 아파트를 벗어나기 시작했다.

그들도 코끝에서 이상한 냄새를 조금씩 느끼고 있었기에 서둘러 아파트를 빠져나갔다.

“자, 너희들도. 어서.”

“하지만 아직 엄마랑 아빠가.”

“지한아. 119 아저씨들이 구해 오실 거야.”

“으응.”

지연이 지한의 손을 잡고 경찰 아저씨 뒤를 따라나섰다.

이대로 저 두 사람이 콱 죽어버려도 상관없지만 다른 사람들에게 무고한 피해를 생기는 건 사양이다.

제발 오형우가 119를 알아보고 순순히 지시를 따르길 바란다.

* * *

소방관들이 열린 현관을 조심스럽게 열고 집에 들어갔을 때, 이미란은 여기저기 상처가 난 채 오형우의 앞에 무릎 꿇고 있었다.

오형우는 어디서 가져온 라이터를 들고 막 집으로 들어온 소방관들을 째려봤다.

“뭐야. 당신들 누구야. 내 집에서 뭐 하는 거야?”

“아저씨 라이터 내려놓으세요.”

“시끄러! 누구냐니까!”

“119입니다.”

“119? 119가 왜?”

“신고받고 왔어요.”

“누가 날 신고했다는 거야.”

“아저씨를 신고한 게 아니라 여기가 위험하데요. 자, 얼른 나가요.”

대원들은 출동하면서 신고 상황을 들었다.

술에 취한 아빠가 가스 호스를 건드렸고, 같이 죽으려고 한다.

그것은 어린아이들이 맨발로 뛰어나와 신고했단다.

지금 저 앞에 있는 사람은 만취 상태로 언제 터질지 모르는 폭탄이었다.

그를 진정시키고 현장에서 대피시킨다.

“살려주세요!”

미란이 뛰어나가 구급대원이 있는 곳으로 피했다.

그녀도 오늘따라 심상치 않은 남편의 반응과 실내에 떠도는 가스 냄새에 기절하기 일보직전이었다.

뛰어온 그녀를 구급대원이 보호했다.

“이리 와.”

“싫어! 내가 미쳤어?!”

“이리 안 오면 이거 켤 거야!”

제 아내가 또 자신의 말을 복종하지 않자, 오형우가 자신의 목숨으로 협박했다.

그의 손이 라이터의 휠에 엄지를 가져가려고 할 때 대원이 외쳤다.

“덮쳐!”

“어, 어? 당신들! 당장 나오지 못해?!”

라이터를 켜겠다며 위협하는 오형우를 다른 대원들이 달려들어 덮쳤다.

재빨리 라이터를 뺏은 대원이 두 손으로 라이터를 감쌌고, 다른 대원들이 오형우를 제압해서 밖으로 데리고 나갔다.

남은 대원들은 드디어 가스 누출을 조사했고, 서둘러 밸브를 잠가 더 이상의 누출을 막을 수 있었다.

가스 폭발은 일어나지 않았다.

* * *

소방대원 2명에게 붙잡혀 나온 오형우는 곧바로 밖에 있던 경찰에게 인계되었다.

“놔! 이거 놔!”

“당신은 변호사를 선임할 권리가 있고….”

오형우는 발버둥을 쳤지만 이미 빼도 박도 못하는 현행범으로 붙잡혔다.

현장에서 실제 가스 농도가 높았으니 누출되고 있었던 것은 확실하고, 가스 호스가 잘려 있었으니 원인 또한 확실했다.

거기다 출동한 소방대원이 라이터를 들고 협박하고 있는 오형우의 모습도 보았으니, 협박에 살인미수, 폭발 미수(?)로 걸릴 거다.

“잘 가라 오형우.”

만약 법정에 서게 된다면 네가 그동안 한 짓 전부 증언해 줄게.

이미란은 구급차에 태워졌다. 오형우를 막느라 여기저기 자상이 생긴데다가 가스도 좀 마셨으니 병원에 가서 검사를 받아야 했다.

이번 기회에 이미란이 오형우랑 갈라서면 좋겠다.

그녀를 동정해서?

아니다.

친가에서 우리에게 어떠한 권리도 주장하지 않게 하기 위해서다.

이미란과 함께 구급차에 타고 이동하는 사이 남은 소방대원이 주민들에게 안내했다.

“여러분 아직 가스 농도가 높으니 오늘 하루는 다른 곳에서 주무셔야 할 것 같습니다.”

“아무것도 못 챙겨 왔다구요.”

“내일 출근해야 하는데.”

“지금 들어가면 안 돼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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