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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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산나무 아래에서 굿판을 벌이는 무당.

신빨이 영험하기로 유명한 무당이었지만 나이가 들어 신력이 떨어진다.

산으로 바다로 기도하며 치성을 드리길 며칠.

별 소득 없이 집으로 돌아온 그녀는 자신의 아이가 꽤 많은 신력을 보유하고 있는 것을 알게 된다.

제 어머니를 존경하여 그녀와 같은 무당이 되고 싶었던 아들.

어미의 말에 오밤중 그녀를 따라 나간 아이는 커다란 상자에 갇힌다.

며칠이 지났는지 모르지만 굶주림 속에서 어미를 기다린 아이가 마침내 열린 뚜껑으로 빠져나가려던 순간.

싹뚝―

좋아 이렇게 설정 잡자.

“아무튼 지한이 너는 그렇게 죽은 귀신이야.”

“귀신 불쌍해.”

“그래. 그 애기가 엄마 보면 무슨 생각이 들까?”

“미워. 하지만 그래도 좋아해. 화가 나는데 엄마가 말하는 거 잘 들을 거 같아.”

동생의 말이 지연이 잡고 있던 손에 힘을 줬다. 그리고 다른 손으로 지한의 머리를 쓰다듬어 줬다.

“하지만 귀신이랑 지한이랑은 다른 사람이야. 알았지?”

“응.”

“이제 지한이는 어른을 미워하지만 엄마 말대로 나쁜 귀신을 없애는 걸 도와주는 귀신이야.”

“뭔지 알 거 같아.”

지연이 지한의 눈을 보았다.

그녀의 동생은 벌써 자신의 뮬란을 몸에 입고 있었다.

“10분 지났는데, 더 줄까?”

“아니요. 바로 대사 할게요.”

“그래.”

마 감독이 더러운 인상을 더 구기며 두 사람의 옆에 털썩 앉았다.

촬영장의 시선이 모두 그쪽으로 향했다.

“너 잡귀가 붙었구나.”

창백한 얼굴의 아이가 푸른 안광을 빛내며 마 감독을 마주 봤다.

* * *

“어우 씨.”

“뭔 놈의 애 눈빛이.”

스태프들의 시선은 촬영장에 난입한 남매에게 집중되어 있었다.

영화판 종사자들 사이에서도 흔치 않은 비주얼로 기억될 남매들.

이런 작은 도시에 저런 원석이 있다는 것도 놀라웠지만 마 감독이 저 아이들을 보고 배역을 맡길 생각을 했다는 거 자체도 신기했다.

아역도 대충 캐스팅하는 법이 없던 감독이 현장에서 얼굴만 본 아이에게 대사해보라는 순간 모두는 오늘 촬영이 시작하기도 전에 끝날 것임을 예상했다.

하지만 두 아이들이 연기 연습을 한다며 시간을 달라고 했을 때부터 촬영장의 흐름이 달라졌다.

오늘 촬영은 끝이라며 장비를 철수하려고 아이들의 옆을 지나갈 때마다 하나둘씩 스태프들은 꺼림칙한 기분을 느꼈다.

무언가 섬찟하고, 무언가 두려운.

다가가고 싶지 않은 느낌.

주어진 10분이 지나가면 지나갈수록

두 아이 사이의 말수가 줄어들면 줄어들수록

남자 아이에게서 느껴지는 분위기가 더욱 기묘하게 변해갔다.

마치 눈앞에 죽은 자가 있는 것 같았다.

“젊은 청년. 부적 하나 받아가.”

“…꼬마야. 장난치지 말고 저리 가라. 아니, 도대체 우리 집 정원에는 어떻게 들어온 거야?”

마 감독이 딱딱한 말투로 어색하게 대사를 받았다.

“여긴 자네 집이 아니라네. 자네가 잡귀에 홀려서 내 신당이 있는 곳까지 온 거지.”

“너 이름이 뭐야. 아저씨가 경찰서까지 데려다줄게. 가서 엄마 찾아달라고 해.”

마왕석이 그렇게 말하자 동자귀의 입꼬리가 귀까지 찢어졌다.

흠칫!

착시처럼 보인 웃음에 마 감독도 덩치에 맞지 않게 깜짝 놀라며 상체를 뒤로 물렸다.

그때 동자귀가 뒤로 빠지는 마 감독의 상체를 따라왔다.

코앞에서 동자귀와 눈이 마주친 그의 두 눈이 거칠게 흔들렸다.

“내가 말했지. 너 잡귀가 붙었다고.”

그러면서 제 등 뒤를 보는 눈동자에 서늘함을 느낀 마 감독의 등이 뻣뻣하게 굳었다.

10. 첫 촬영

……

촬영장이 침묵으로 가득 찼다.

아무 말도 하지 않는 어른들을 보고 지연이 먼저 입을 열었다.

“어때요? 내 동생. 이 정도면 괜찮죠?”

“어? 어어.”

지연의 말에 메두사의 눈을 본 것처럼 굳어 있던 사람들이 화들짝 놀라며 움직였다.

아이의 말에 마 감독은 헛웃음을 냈다.

괜찮냐고?

이만한 연기를 보여줬는데 이 아이를 쓰지 않는다면 그건 눈이 삐어도 단단히 삔 사람일거다.

마 감독은 확신이 들었다. 펑크 낸 그 아역 배우보다 이 아이가 훨씬 더 동자귀에 잘 어울릴 것을.

“모두 촬영 준비해. 정승우 배우보고 스탠바이 하라고 하고.”

“저 여기 있어요.”

마 감독의 말에 스태프가 배우를 부르러 가기 전 이미 정승우가 감독의 옆에 와 있었다.

그는 지한의 연기를 처음부터 끝까지 지켜본 모양인지 기분 좋은 얼굴을 하고 있었다.

“언제부터 나와 있었나?”

“나와야죠. 저런 연기를 보려면. 저 아이가 오늘 우리를 구해 줄 구세주잖아요?”

촬영장에 필요한 이들이 모두 모였다.

감독은 왠지 오늘 촬영이 잘 될 것만 같았다.

“꺅!”

사촌동생의 옆에서 꿔다 놓은 보릿자루처럼 서 있기만 하던 세은이 정승우를 보고 비명을 질렀다.

우락부락하거나 비실대는 스태프들 사이에 갑자기 배우가 등장했으니 그럴 만했다.

물론 나도 하마터면 소리 지를 뻔했다.

이 영화의 주연이 정승우였어?

정승우가 누군가.

모델출신다운 훈훈한 비주얼에. 영화판이든 드라마판이든 흥행이 보증된 탑스타였다.

올해 그는 막 30대 초반이 되어 연기에 물이 올랐는데 내가 회귀한 20년 뒤에도 그는 드라마 주연으로 데려가려고 할 만큼 인기를 구가하고 있었다.

세상에! 그 정승우가 출연하는 영화라니.

영화 보는 거 싫어해도 좀 찾아볼걸.

이 영화도 영화관에 가서 보고 싶지만 분명히 전체이용가는 아니겠지. 크흑.

아직 9살밖에 안 된 현재의 몸을 보고 지연이 분한 듯 주먹을 꽉 쥐었다.

정승우가 마 감독과 이야기를 나누다가 자신을 초롱초롱하게 바라보는 남매와 여고생의 시선에 웃는 얼굴로 다가왔다.

“연기 잘 봤다.”

“감사합니다!”

지한도 제 눈앞에 TV에서 보던 배우가 떡하니 등장하자 볼을 붉히고 대답했다.

한눈에 반한 것 같은 얼굴이었다.

네가 봐도 멋지지?

“방금 한 연기 무슨 생각 하면서 한 거야?”

“그냥 나는 귀신이다. 하지만 엄마 말대로 사람들을 도와야 해. 그렇지만 도와주기 싫은걸. 이런 생각을 했어요.”

“벌써 그런 복잡한 감정을 연기할 줄 안단 말이지? 이야 연기는 언제부터 배웠어?”

“오늘 처음 해 봤어요. 그 전에는 유치원에서 연극 해 봤어요.”

“너 그럼 처음이니?”

“네! 그래서 누나가 도와줬어요.”

승우는 깜짝 놀랐다.

이게 유치원에서 연극만 해 본 아이의 연기라고?

연극영화과를 나온 이들 중에서도 이 아이보다 감정 연기가 약한 이들이 많았다.

‘이런 게 재능이구나.’

누나가 도와줬다고 해봤자 연예계에 관심이 많아 보이는 여고생 한 명. 한두 살 차이날 것 같은 여자아이 한 명이었다.

아마 이건 이 아이의 재능이겠지.

승우는 어쩐지 아이의 능력에 불합리함을 느꼈다.

하지만 승우 그 자신도 누군가에게 ‘연기에 대한 재능’으로 좌절시킨 적이 있으리라.

“오늘 아저씨랑 같이 연기할 텐데. 방금처럼 할 수 있겠어?”

진지한 얼굴로 묻는 말에 지한이 고개를 돌려 지연을 보았다.

누나가 고개를 끄덕이자 지한이 자신감 넘치는 얼굴로 힘차게 대답했다.

“네!”

아직은 보호자가 없으면 불안한가?

승우는 어쩐지 아이 같지 않은 연기력을 가진 아이의 아이다운 모습에 웃음이 나왔다.

“좋아. 그럼 오늘 하루 잘 부탁한다.”

* * *

촬영장이 다시 분주해졌다.

스태프들은 장비를 옮기지 않아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그랬으면 여러 번 왔다 갔다 하느라 시간을 더 잡아먹었을 테니.

“AD야! 우리 장산이 어디 갔어!”

“네! 여기 있습니다.”

“이거 살린다. 지금 저 연기 보면 너도 알겠지. 이 장면 하나로 우리 영화 분위기 확 바뀌는 거.”

최장산 AD는 감독이 가리킨 ‘동자귀’를 보고 납득한 듯 수긍했다.

“그런데 원래 동자귀 역할은 그냥 성불시키는 방법 알려주는 게 다 아니었습니까?”

“저 연기 보고도 그대로 갈 거야?”

“아니죠.”

“얘가 오싹하고 신비한 분위기를 줄 거다.”

장산이 고개를 끄덕이며 마 감독의 말에 동의했다.

감독이 마음에 들어 시나리오를 변경하고 싶어 한다면 그것을 도와주는 게 자신의 역할이었다.

“제가 아이들에게 가서 연락처 받아오겠습니다.”

“어. 그리고 제작부장한테 가서 잘 좀 말해봐.”

예정 외 촬영으로 발생되는 추가 제작비에 대해 잘 말해보란 뜻이었다.

분명 한 소리 들을 게 분명했지만 결국 감독의 뜻대로 될 거다.

커피 하나 뽑아가야겠구만.

* * *

곧 촬영이 시작되는 만큼 스태프가 지한의 분장을 위해 데려가려 했다.

지연이 지한의 손을 잡고 스태프의 뒤를 따르면서 세은에게 말했다.

“언니. 일단 집에 메모도 남겨놓고 엄마한테도 미리 말하긴 했는데 언니가 한 번 더 전화해줘.”

“아! 그렇지. 이모가 지한이 영화 찍는다는 거 알면 엄청 놀라겠다.”

놀라긴 할 거다.

아무튼 연락은 김세은에게 맡기고 나는 지한을 따라 분장실로 들어갔다.

같이 분장실로 들어가서 지한이가 분장받는 모습 보고 싶었는데.

세은이 아쉬워하면서도 지연의 말대로 이모에게 전화하기 위해서 지나가는 스태프를 붙잡았다.

“저기, 하하하. 안녕하세요. 저 지금 촬영할 애들 보호잔데, 진짜 보호자한테 전화하게 전화 한 통 빌릴 수 있을까요?”

“아! 넵.”

“감사합니다.”

스태프에게 휴대전화를 빌려 이모에게 전화하려던 세은에게 최 AD가 다가왔다.

“학생! 학새앵!”

“저요? 왜 부르세요?”

혹시 나보고 영화 출연해 달라고 하는 건가?

후훗. 역시 나도 어디 가서 빠지지 않는 미모라니까.

“네, 저 시간 돼ㅇ.”

“저 애들 집 전화번호나 보호자 연락처 좀 알려줄 수 있어?”

“…네.”

장산은 어쩐지 실망한 것 같은 여고생의 얼굴에 잠시 알 수 없는 얼굴을 했지만 곧이어 불러주는 연락처에 재빨리 들고 있던 스크립트에 번호를 받아 적었다.

“아! 그. 이제 와서 말하는 것도 웃긴데. 저 애들 이름이 뭐지?”

“이때까지 아무도 우리 동생들 이름을 몰랐다는 게 신기하네요.”

“하하하. 그러게 말이야. 감독님이 갑자기 발진하는 걸 막고, 캐스팅하고, 테스트하다보니 정신이 없어서.”

정말 난장판 그 자체였던 조금 전의 상황을 떠올린 장산은 잠시 눈앞이 아찔했다.

그 때 무사히 넘어가서 다행이다.

“그러고 보니. 다시 한번 죄송합니다. 촬영장에 멋대로 들어와서.”

“아니야, 괜찮아. 덕분에 저 애들을 만나게 해 줬잖아? 그랬으니 됐어.”

“감사합니다. 우리 애들 이름은 누나 쪽이 지연이 동생 쪽이 지한이에요. 성은 오 씨.”

“오지연, 오지한. 고마워 학생!”

원하는 정보를 입수한 장산이 쿨하게 자리에서 벗어났다.

용건만 마치고 가는 모습에 은근슬쩍 기대하면 영화 출연이 푹 꺾였다.

“그래. 수험 공부 해야 하는 고등학생이 무슨 영화 촬영이야.”

이것은 자신이 사정이 안 돼서 어쩔 수 없는 것이라며 세은이 합리화를 하며 다이얼을 눌렀다.

번호를 누르는 손가락에 어쩐지 힘이 들어가는 것 같았지만 그것은 착각이리라.

* * *

기다리고도 오래 기다리던 씬.

오기로 한 배우가 펑크를 내서 지옥에 떨어졌던 스태프들은 시작된 촬영에 천국으로 떠올랐다.

그리고 무엇보다 아까 그 연기.

그 연기라면 이 정도 시간을 기다린 건 아깝지 않았다.

“지한아 알지?”

“응. 누나. 우린 뭐든 할 수 있어.”

주문 같은 말을 하는 동생의 머리를 지연이 쓸려다가 분장한 걸 떠올리고 허공에서 멈췄다.

허공에 뜬 손을 그대로 지한의 어깨에 내려 토닥인 지연이 용기를 불어넣듯이 지한을 보고 웃어줬다.

누나의 응원에 힘이 난 지한이 카메라 앞으로 향했다.

“좋았어. 지한아 너는 거기 계속 서 있으면 돼. 아저씨가 잘 찍어 줄 테니까. 대신 정 배우 잘 부탁합니다.”

“걱정 마세요, 감독님!”

정승우가 자다가 일어난 것 같은 분장을 하고 마 감독에게 엄지를 들어보였다.

“그럼 잘 부탁한다.”

“저도 잘 부탁해요.”

“레디 큐!”

감독의 사인이 떨어졌다.

태수는 요 며칠 잠자리가 사나웠다.

꿈속에서 계속 누군가가 자신을 부르는 것 같은데 막상 깨고 나면 하나도 기억나지 않았다.

찝찝한 느낌만 계속되던 찰나, 정원에 나와 달구경을 했다.

“에휴. 힘들게 집 사 놨더니. 뭔 놈의 집이 편하질 않냐.”

달빛마저 처량하게 느껴졌다.

“너 잡귀가 붙었구나.”

오싹!

태수는 갑자기 등 뒤에서 싸늘한 한기를 느꼈다.

그리고 제 귓가에 들려오는 어린 목소리.

그는 떨리는 눈으로 고개를 돌렸다.

한참은 어린 아이가 붉은 한복을 입고 싱긋 웃고 있었다.

분명히 외양은 어린아인데 어쩐지 분위기가 서늘했다.

“젊은 청년. 부적 하나 받아가.”

아이의 입에서 나온 약장수 같은 말에 태수가 조금 전까지 긴장했던 것은 잊고 애써 아무렇지 않게 말했다.

“꼬마야. 장난치지 말고 저리 가라. 아니, 도대체 우리 집 정원에는 어떻게 들어온 거야?”

“여긴 자네 집이 아니라네. 자네가 잡귀에 홀려서 내 신당이 있는 곳까지 온 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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