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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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희들… 지한이가 좋아?”

“응!”

“지한이 좋아.”

“왜?”

늬들이 사랑을 알아?

지연은 코웃음이 절로 나왔다.

그러나 곧 이은 말에 입을 벌리고 멍청한 얼굴을 했다.

“그야 잘생겼잖아.”

“지한이 잘생겼어.”

“크면 지한이한테 시집갈래.”

내 동생.

아무래도 얼굴까지 천재가 된 것 같다.

2년 후.

“지한아. 와봐.”

“왜에?”

대답을 듣지 못했음에도 지한은 벌써 지연의 앞으로 와 있었다.

지연이 지한의 턱을 잡고 품평하듯 이리저리 돌렸다.

확실히 어린애 주제에 이목구비가 장난 아니다.

언제 이렇게 얼굴이 선명해졌지?

“에 으러는데에?

지연에게 양 볼이 잡힌 지한이 억울하다는 듯이 웃었다.

내가 아는 얼굴이다.

20년 넘게 본 얼굴인데 마지막으로 본 살이 두둑한 얼굴과 느낌이 달랐다.

언제 이렇게 콧대가 높게 섰대?

“조금 잘생겨진 것 같기도 하고?”

“애아 자새겨져썽?”

조금 더 확신을 찾기 위해서 지연이 동생의 얼굴을 놓고 앨범을 찾아 꺼냈다.

지한은 자신의 부끄러운 사진이 담긴 앨범이 등장하자 팔을 저으면서 지연에게 달려들었다.

“아아아아! 누나 보지 마!”

지한의 앨범 첫 장에 벌거벗은 애기가 정면을 바라보고 있었다.

집집마다 한 장씩 있다던 그 누드사진이군.

지연은 5살 주제에 부끄러워하는 지안을 가소로워하며 앨범을 넘겼다.

차근차근 한 장씩 넘기면서 보니 새삼 제 동생이 울보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한 장 넘길 때마다 안 우는 사진이 없네.’

한 페이지에 3~4장 들어갈까 말까 한 앨범인데 페이지마다 우는 사진이 있었다.

이렇게 유약한 놈이 용케 이 집안에서 살아남았다 싶었다.

‘아니지, 사실은 살아남은 게 아니라 갈 곳이 없었던 거지.’

똑바로 말하자면 이 집 식구 모두 지한을 버렸다.

그러니 갈데없는 놈이 이미란에게 붙어 있었는지도 몰랐다.

‘이번에는 잘하자.’

지연은 동생에 대한 죄책감과 책임감을 되새기며 앨범을 넘겼다.

최근에 찍은 사진을 봤을 때도 기억 속에 있는 모습 그대로였다.

“근데 불과 한 달 만에 조형을 너무 건너뛰었는데?”

그것도 엄청 잘 조각된 모습으로.

한 달 전에 찍은 사진과 지금의 동생을 보자니 얼굴이 매우 선명해졌다.

딱히 눈코입이 달라진 건 아닌데,

제자리에 있달까? 흐리멍덩했던 인상이 뚜렷하게 변했다.

예를 들자면.

찰흙에 얼굴을 찍어서 눈코입만 겨우 알아볼 수 있던 인상에서

갑자기 석고로 만든 아기 천사 조각상이 나온 모습이었다.

“선물 개좋은데?”

외모지상주의 대한민국에서 이만하면 웬만한 일은 전부 오케이다.

“누나 개좋은 게 뭐야?”

“엄청 좋다는 뜻이야.”

“그렇구나.”

지연은 갑자기 안 긁은 복권이 생긴 기분이었다.

그것도 당첨금 10억짜리 복권이.

내 동생.

이번에는 미래가 밝구나.

뭐든 잘 하니, 이번에는 네가 하고 싶은 것만 하게 해 줄게.

* * *

지한의 앞길에 고속도로를 깔아주기 위해서 지연은 고민했다.

커서 하고 싶은 일을 할 수 있도록 많은 것을 겪게 해 주고 싶었다.

하지만 남매의 앞에는 커다란 장애물이 있었다.

바로 그들의 생물학적 부모인 이미란과 오형우였다.

부모는 우리의 장래에 좋지 않았다.

동생이 울보에 소심한 성격을 가진 것도 이딴 부모 밑에서 자랐기 때문일지도 몰랐다.

‘쯧, 이래서 부모가 되는 것도 자격증이 필요하다니까.’

선물이 치트키긴 하지만 그 목소리들이 언제 선물을 확 뺏어 갈지도 모르고 새로운 부모를 만들어 주는 것도 아니고.

지난 삶과는 다르게 지한의 건강하고 행복한 삶을 위해서 부모에게 맡길 수 없었다.

그러니 어쩔 수 없지.

내가 부모 역할을 하는 수밖에.

“아동발달 서적 같은 게 있으면 좋겠는데. 정서발달이랑 영양도 중요하니까. 그리고 이번에는 절대 비만이 되게 두지 않겠어.”

돌아오기 전, 초고도비만으로 성인병 위험을 가지고 있던 동생이 떠오르자 지연이 결연한 표정을 지었다.

건강하게 끝까지 챙기기로 결심한 이상.

오늘부터 내 동생에게 비만은 없다.

정보가 필요했다.

아동발달과 영양학에 대한 정보가.

“나 혼자서 서점에 갈 수 없으니.”

어디서 정보를 얻을지 고민하던 지연이 한 방법을 떠올렸다.

그 여자한테 부탁해야 하나?

* * *

“선생님.”

“어라? 지연이 네가 웬 일이니?”

지연은 햇님반 교사인 선희를 찾아왔다.

이 여자를 찾아오는 건 진짜 싫지만 어쩔 수 없지.

아동에 관한 서적은 유치원 교사가 가지고 있을 가능성이 크니까.

“선생님 혹시 책 있어요?”

“책? 동화책이라면 반에도 있잖니?”

“그거 말고 아동교육이나 아동발달에 관한 건 없어요?”

“…그, 그런 건 왜 찾니?”

“책을 읽으려고 찾지 다른 이유가 있어요?”

“그렇구나….”

선희는 얼마 전부터 나이차이 많이 나는 제 사촌동생이 낯설었다.

예전이었으면 둘만 있을 때는 ‘언니이~’하고 달려들었을 텐데.

말투 역시 성숙해져서 가끔은 자신의 또래로 보일 정도였다.

“선생님이 보는 건 이런 책인데 지연이가 읽을 수 있으려나. 선생님이 읽어줄까?”

“괜찮아요.”

지연이 선희의 아동교육학 서적을 꺼냈다.

묵직한 전공 서적이지만 품에 안고 지연이 말했다.

“이거 빌려가도 되요?”

“응. 그런데 정말 읽을 수 있겠어?”

“그림만 봐도 되니까 걱정 안 하셔도 돼요.”

지연이 당황하는 선희에게 꾸벅 인사하고 교사실을 나섰다.

좋아. 이걸로 필수 아이템 겟.

원하는 게 적혀 있었으면 좋겠는데.

반으로 돌아가는 지연의 발걸음이 가벼웠다.

* * *

“두꺼워….”

유치원 가방에 억지로 넣어서 들고 온 서적을 보고 지연이 질린 얼굴을 했다.

왜 전공서적은 하나같이 두꺼운 거지?

바닥에 엎드려 목차를 훑었다.

어디보자, 영유아발달이 몇 페이지 일려나.

“누나 밥 먹으러 나오래.”

“알았다.”

지연이 책을 덮고 방을 나섰다.

거실에 나오니 이미란이 막 김치찌개를 들고 상에 내려놓았다.

“….”

또 김치찌개냐.

벌써 삼일 째 저녁으로 김치찌개 먹는 거 같은데.

심지어 물이랑 참치만 더 넣어서 계속 우려내고 있었다.

김치가 익다 못해 녹아 없어질 것 같았다.

“자, 먹자.”

“네.”

하지만 이 여사에게 반박할 수 없었다.

반찬 투정한다고 할 테고, 바쁘니까 새로 만들 시간도 없었다.

너무 짠 걸 많이 먹으면 안 좋은데.

한이 녀석은 고도비만이 된 전적도 있다고.

“엄마.”

“응?”

“많이 바빠?”

“어. 요즘 실적 쌓느라 많이 바쁘네. 계속 김치찌개 먹어서 물어본 거지? 미안해.”

이미란은 보험 설계사다.

직업의 특성상 많은 사람들을 만나는 건 이해가 간다.

그렇다고 해서 먹는 걸 대충 때우는 걸 용납할 순 없지.

“엄마 많이 바쁘면 내가 밥 할까?”

“네가? 아직 어린 애가 위험하게 부엌에 들어오는 건 안 돼.”

“엄마가 가르쳐 주면 되지. 밥은 밥솥에 해 놓고 가면 되고 국이나 구이 정도는 나도 쉽게 할 수 있어.”

“그래도 안 돼.”

쳇. 아직 7살밖에 안 됐으니 어쩔 수 없나.

초등학교 들어가기만 해 봐라.

지연이 사골도 아니고 몇 번이나 우려 낸 김치찌개를 숟가락으로 떠 입에 넣었다.

* * *

“…아이들의 성장에 단백질, 철분, 칼슘, 아연… 이거 안 필요한 영양분이 없는 거 아냐? 이걸 어느 세월에 다 찾아서 먹여?”

이래서 부모들이 어린이 영양제나 비타민제를 사 먹이는 구나.

다 챙겨 먹이려면 식단 짜는 게 만만찮겠는걸.

“그래도 포기할 수 없지. 김치찌개도 사골처럼 끓여 먹는 사람인데.”

몇 년만 참으면 이미란은 가출한다. 그러니 그때를 위해서라도 지금부터 공부해 놔야해.

지연이 애착 아이템 스케치북을 꺼내 필기하면서 책을 읽었다.

지금부터 준비해서 이미란이 가출하는 날이 올 때까지 기다린다.

초조해하지 말자.

아직 시간은 많아.

그날이 올 때까지 나는 지한이에게 최대한 많은 걸 가르친다.

“시간은 내 편이니까.”

* * *

“얘들아 일어나라~”

아침부터 이 여사의 목소리를 들으면서 일어나는 건 무척 불쾌한 일이다.

지연이 산발이 된 머리에 한껏 인상을 찌푸리고 일어났다.

맞은편 침대를 보니 지한이는 눈도 못 뜨고 침대에 걸터앉아 있었다.

동생도 정신이 아직 꿈나라에서 돌아오지 못한 게 분명했다.

“씻으러 가자.”

“으응….”

어느새 커버린 두 사람이 화장실을 비척이며 걸어간다.

이제 지한을 챙기는 것은 어느 정도 익숙해졌다.

“지한이 아.”

“아~”

눈도 못 뜬 애한테 칫솔을 물려주었다.

입에 강렬한 매운 맛이 들어가자 지한의 두 눈이 번쩍 뜨였다.

“푸흐흐.”

“매어어어.”

울상을 짓지만 그동안 착실히 교육한 덕분에 칫솔을 잡고 이를 닦는다.

“어푸어푸.”

“세수를 하는 거니, 샤워를 하는 거니.”

오늘도 윗옷은 다 젖었구나.

지연이 지한의 옷을 벗기고 수건을 꺼내 지한에게 둘러주었다.

내 동생 피부 건조하지 말라고 세면대 옆에 배치된 로션을 열어 지한의 손에 덜어주었다.

찹찹찹

얼굴에 로션을 듬뿍 바르고 남은 로션을 목까지 바른다.

흠 훌륭하군.

잘 배웠어.

“어서 밥 먹어라.”

거실에 놓인 밥상 위로 어제 지연이 미리 준비한 국과 반찬이 올라왔다.

“빨리 먹어. 오늘은 엄마가 일찍 나가야 해.”

“뒷정리는 제가 할게요. 먼저 가세요.”

“그럴래? 그럼 지연아 지한이 잘 부탁한다.”

이 여사가 가방과 차 키를 챙겨들었다.

빨리 먹는 건 비만으로 향하는 지름길이다.

이 여사가 옆에 없는 게 더 잘 소화되기도 하고.

“그래. 그럼 다 먹고 그릇은 싱크대에 담가 놔라.”

“네.”

이 여사가 집을 나섰다.

“천천히 먹어.”

“응!”

지한의 볼에 붙은 밥풀을 지연이 떼 주었다.

올해로 두 사람은 9살, 7살.

지연은 초등학교에, 지한은 병설 유치원에 다니기 시작했다.

지난 2년간 지연은 지한에게 온 힘을 다했다.

혹시라도 애 안 클까봐 우유도 달래 먹이고,

약국 지나갈 때마다 어린이 영양제 사 달라고 떼를 쓰고 버텼다.

지연은 지한에게는 최선을 다했지만 이미란과 조형우가 파멸에 가까워지는 것을 막지 않았다.

시한폭탄이 터지기까지 앞으로 1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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