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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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헤. 누나 나 꿈에서 또 뱀 봤다!”

“뱀?”

자기 전 뱀 때문에 일어났던 해프닝을 잊기라도 한 듯 말하는 지한의 말을 듣고 지연이 미묘한 표정을 지었다.

너도 꿈에 뱀이 나왔냐.

안 좋은 꿈자리를 떠올린 지연의 인상을 팍 찌푸렸다.

“뱀도 보고 또 어떤 형아 목소리도 들었는데, 뭐라 말해 줬는데. 뭐였더라? 까먹었다.”

“형? 누나가 아니라?”

“형이었는데?”

성별이 다른데? 동생은 꿈에서 다른 누군가를 봤나 보네.

저 반응을 보니 자신이 처음에 듣고, 무서워했던 목소리가 아니라 친절하고 자상한 누군가를 만난 것 같았다.

지한의 말에 안심했던 지연의 귀에 흘러 넘길 수 없는 말이 들려왔다.

“나한테 선물 줬대. 열심히 해 보래.”

“….”

같은 놈들인 거 같은데. 성별만 다르지 말한 게 똑같잖아?

성전환하고 찾아갔냐?

같은 놈이란 생각에 지연이 지한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그래. 너도 나중에 테러하러 같이 가자.”

“테러가 뭐야?”

“나쁜 짓.”

지연의 말에 지한이 화들짝 놀랐다.

“누나! 나쁜 짓 하면 안 돼.”

“그 사람들한테는 하러 가도 돼.”

“안 돼.”

“괜찮아. 그 사람들은 태워도 안 죽어.”

“왜 안 죽어?”

“사람이 아니라서 그래.”

지한이 알쏭달쏭한 얼굴을 했다.

스무고개처럼 어려운 문제였다.

확실히 무언가라 말할 수 없지만 뭔가 아닌 것 같은 느낌에 지한이 우물쭈물하며 대답했다.

“그치만.”

동생의 이해를 돕기 위해서 지연이 조금 더 쉽게 설명했다.

“지한아, 종이 쓰레기는 불에 태우는 거야, 안 태우는 거야?”

“태워?”

“종이는 사람이야, 아니야?”

“아니야.”

“그것들은 사람이 아니니까 태워, 안 태워?”

“??? 태워?”

“그래. 종이 쓰레기 같은 거니까. 태워도 돼.”

뭔가 아닌 거 같은데 반박할 말이 떠오르지 않았다.

누나의 말에서 논리적 허점을 짚어내지 못한 지한이 고개를 갸우뚱했다.

지연의 궤변에 지한의 머릿속이 혼란스러웠다.

미닫이 문 밖에서 지한을 혼돈에서 구해주는 목소리가 들렸다.

“얘들아, 인났나?”

“일어났어요!”

“밥 무러온나!”

“네!”

“네에!”

밥 소리에 지한이 벌떡 일어났다. 복잡한 생각을 다 잊은 것 같았다.

조금 전까지 끙끙거리며 머리를 붙잡고 생각하던 동생이 밥 소리에 밝은 표정으로 방을 뛰쳐나가자 지연이 피식 웃었다.

역시 머리가 복잡할 때는 밥을 먹는 게 최고다.

* * *

외갓집에 갔다 온 지도 며칠째. 지연은 도통 꿈속의 존재가 준 선물의 정체를 몰라 헤매고 있었다.

“도대체 어떻게 쓰라는 거지. 뭐든 할 수 있다니. 어떻게 하는데 그거?”

지연이 팔목을 보았다.

뱀 때문에 생긴 자국은 얼마 지나지 않아서 사라졌지만 지연의 눈에는 팔목이 붉은 자국을 두르고 있는 것이 보였다.

“누나, 뭐 해?”

“생각. 지한아 팔 보자.”

“응? 왜?”

“자국 남아 있나 보려고.”

“응!”

누나의 말에 지한이 팔을 내밀었다.

동생의 팔에도 붉은 자국이 희미하게 보였다.

“…남아있네.”

지연은 그날 뱀에게 묶였던 것처럼 지한의 손을 잡고 이리저리 돌려 보았다.

자국이 한 치도 어긋남 없이 이어졌다.

그날로부터 시간이 지났으니 조금이라도 옅어졌을 법한데 이렇게 완벽하게 일치하다니.

역시 꿈속의 목소리가 말한 대로 ‘선물’이긴 한가 보네.

“이거 안 사라져.”

“너도 보여?”

“누난 안 보여? 누나 팔에도 있잖아.”

어제 이 여사가 다 나아서 약 바를 필요 없다고 한 걸 보면 그 여자의 눈에는 보이지 않는 거 같은데.

“친구들도 안 보인대.”

“너도 물어봤어?”

혹시나 해서 오늘 유치원 아이들에게도 보이냐고 물어봤지만.

별님반 아이들 역시 보이지 않는다고 했다.

“우리 둘만 보이나 봐.”

나와 지한이만 이 선물을 쓸 수 있단 말이지?

“헤헷. 난 좋아. 누나랑 나랑 둘만 있는 거.”

이 자국이 뭔 줄 알고 그렇게 좋아해.

지연이 속 편한 동생을 보고 툭 내뱉었다.

“왜 좋아.”

“누나가 좋으니까.”

“….”

흥. 야, 네가 그렇게 아부해도 안 버리기로 결심했으니까 그만해라.

지연이 간질거리는 마음을 애써 퉁명스럽게 포장했다.

선물의 정체를 파악하기 위해서 스케치북을 폈다.

크레파스로 선물이란 단어를 쓰고 물음표를 가득 그려 ‘선물’을 가둬버렸다.

“선물?”

“꿈속에서 선물이라고 했는데 뭐가, …응?”

동생의 물음에 대답하다가 지연이 이상함을 눈치챘다.

지금 이 녀석 선물을 읽은 건가?

“지한이 너 이 글자 뭐야.”

“‘선물’이잖아.”

아니, 너 얼마 전까지 자음만 읽을 수 있었잖아.

지한의 대답에 지연이 후다닥 다른 글자를 써서 보여줬다.

“그럼 이거는?”

“오지한.”

쓱, 쓰윽

“이건 뭐야?”

“한울 아파트 305호.”

툭.

지연의 손에 들려있던 스케치북이 바닥에 떨어졌다.

세상에.

백의 자리 숫자까지?

내 동생

천재 됐네.

“과연 신이 보내준 선물. 사람 하나 천재 만드는 건 일도 아니란 거지?”

그럼 나도 똑똑해졌나?

제 판에 남아있는 붉은 자국을 보고 지연의 가슴이 기대로 두근거렸다.

“혹시 머리뿐만 아니라 운동 능력도 좋아졌다면?”

선물의 한계를 실험해보고 싶었다.

뭘 해 봐야 하지?

* * *

“자-여러분. 오늘은 그림 그리기를 할 거예요.”

유치원 선생님의 말이 지연의 상념을 가로막았다.

그림?

“자, 오늘은 ‘우리 집’을 그려 볼 거예요. 다들 소매 걷어 봅시다.”

“네에-!”

그림, 그림이라.

몸은 본능처럼 선생님의 말을 착실히 이행하고 있는데,

지연의 머릿속은 온통 다른 생각뿐이었다.

천재라는 게 꼭 공부만 잘하는 거였던가?

오히려 예체능 쪽에 스타들이 많이 나왔었지?

하원 후. 지연은 지한을 씻기고 거실에 앉혔다.

이 여사는 오늘 저녁 모임 때문에 저녁만 먹이고 나갔다.

책상을 펴 지연의 애착 아이템 스케치북을 올렸다.

“또 데스노트야?”

“오늘은 다른 거. 우리 이제 그림을 그려볼 거야.”

“좋아! 뭐 그릴까?”

“누나가 먼저 그려볼게.”

지연이 크레파스를 움직였다.

슥, 슥, 스윽,

크레파스가 생각보다 더 잘 움직였다.

손이라도 된 것처럼 선을 긋는 데 불편함이 없었고, 머릿속에 있는 이미지를 프린트하듯이 손이 움직였다.

평소와는 다른 느낌에 그림을 그리면서도 지연이 의문을 가졌다.

‘뭐지? 내가 이렇게 잘 그렸었나?’

내 미술 실력이라고 해 봤자, 미술 학원에서 일주일 동안 선 긋기 한 게 다였다.

남들 하는 것은 다 따라 해야 하는 이 여사 때문에 잠시만이라도 미술 학원에 다녔었지.

지루해서 금방 때려치웠지만.

일주일은 배웠다고 할 수도 없다. 미술 실력은 제로라고 해도 좋겠지.

그런데 지금 눈앞에는 비디오테이프에 그려져 있던 불꽃용사가 그려져 있었다.

“…이게 내 그림이라고?”

붉은 외피.

뾰족한 뿔.

날카로운 칼날.

“우와아-! 누나 멋지다. 이거 불꽃용사랑 똑같아!”

지구를 지키는 변신 로봇 불꽃용사가 스케치북 위에 모습을 드러냈다.

“뭐지, 사실 난 힘숨찐이었던 것인가. 내 손이 금손?”

제 능력에 감탄한 지연이 오른손에 흑염룡이라도 깃든 것처럼 쳐다봤다.

“누나, 누나. 블랙도 그려봐!”

동생이 프레쉬맨의 블랙을 그려보라면서 난리였다.

지한의 말에 그림을 그리려던 목적을 떠올린 지연이 동생의 손에 빨간색 크레파스를 쥐여 주었다.

“내가 블랙 그릴 테니까 넌 레드 그려봐.”

“좋아!”

남매가 바닥에 엎드려 그림을 그렸다.

스케치북 양면을 펴 한 면에는 지연이, 한 면에는 지한이 프레쉬맨을 그렸다.

“뭐지, 진짜 금손이 됐나?”

그저 손 몇 번 움직였을 뿐인데 블랙이 생동감 넘치게 포즈를 잡고 있었다.

“누나 벌써 다 그렸어?”

“어, 어어.”

“나도 다 그릴 거야!”

집중하느라 미간에 주름이 잡히는 줄도 모르고 지한이 그림을 계속 그렸다.

힐끗 본 그림을 보고 지연의 입이 떡 벌어졌다.

“…레드다.”

지연처럼 생동감이 넘치는 포즈는 아니지만,

비디오테이프에 붙여져 있던 그림에 있던 레드가 스케치북에 그대로 그려져 있었다.

꿈이 아니었다.

진짜로 자신과 지한의 미술 실력이 변했다.

그것도 어마어마하게 좋은 쪽으로.

* * *

선물의 힘을 경험한 지연은 그 능력에 감탄했다.

과연 그 목소리가 잘난 척하며 말할 법한 능력이었다.

이 능력의 끝은 어디일까?

“일단 공부머리가 좋아지는 건 맞는 거 같고.”

이전 삶에서는 동생의 학습 능력이 썩 그리 좋지 않았다.

공부하는데 가르쳐 달라며 온 동생을 자로 때려가며 머릿속에 공식을 박아 넣었던 기억이 있다.

“…때리지 말걸. 모를 수도 있지. 학원 안 다니고 학교 공부 따라가기 쉽지 않은데….”

기억 속에서 떠오르는 자신의 행동에 죄책감이 뭉게뭉게 피어올랐다.

하지만 곧 고개를 저어 그 생각을 털어버렸다.

“아냐. 지금 잘하면 됐지. 중요한 건 능력의 범위야.”

지연이 고개를 주억거리며 팔짱을 꼈다.

별님반 자신의 자리에서 짧은 팔을 요령 좋게 팔짱 끼고 있던 지연의 곁으로 여자 아이들이 다가왔다.

“있잖아, 지연아.”

“응. 왜?”

“저기. 햇님반에 오지한 네 동생 맞지?”

“저번에 햇님반 선생님이랑 올라온 남자애 네 동생이지?”

“어, 응. 왜?”

지연의 대답에 여자아이들이 꺄야, 꺄아 소리를 질렀다.

갑자기 왜 이래 이것들.

“있잖아. 네 동생 보러 가도 돼?”

“내 동생을 왜?”

“편지 주러.”

“나도!”

“나도, 지한이 주려고 편지 썼어.”

편지라니.

지연이 아이들이 내민 편지를 보았다.

알록달록한 색연필 ‘지한이에게’를 쓴 게 보통 정성이 아니었다.

얼씨구? 하트까지 그려 넣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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