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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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기서 TV보며 시간이나 때울 생각인거다.

건방진 오형우.

“밥 때니까 아버지도 금방 오시겠지. 반찬 뭐 있어요?”

“놔둬라. 내가 차릴그마.”

“괜찮아요. 연이랑 한이 좀 봐 줘요, 엄마. 안 그래도 어제부터 할머니 보러 갈 거라고 잠도 늦게 잤어요, 이 애들.”

“아이고 그랬나?”

“네!”

“네! 할머니 보고 싶었어요.”

지연과 지한이 또다시 할머니의 품에 안겨들었다.

아아. 치유된다.

할머니 냄새 좋아.

“누구 왔나?”

현관에서 할아버지의 목소리가 들렸다.

“할아버지다!”

“할아버지이~”

지연과 지한이 현관으로 지게를 메고 들어오는 할아버지에게 달려갔다.

“연이 한이 왔나. 잠시만 물렀거래이.”

아이들이 다치지 않게 떨어트린 할아버지가 조심스럽게 몸을 낮춰 지게를 벗었다.

지게가 쓰러지지 않게 작대기로 받치고 나서야 할아버지, 동수가 두 손자들을 바라봤다.

“어이쿠, 녀석들 많이 컸네?”

“할머니도 많이 컸다고 해 줬어요.”

“할아버지. 나도, 나도.”

“읏차.”

할아버지가 지한이를 들어올렸다.

크흑, 분하다.

다음은 내 차례야.

“자 이제 지연이 차례.”

“와아!”

아, 돌아오길 잘 했다.

* * *

할아버지 할머니와 함께 다 같이 늦은 점심을 먹었다.

하 행복하다.

이게 이너피스지.

“누나 배불러.”

지연의 옆에 함께 통통한 배를 위로 하고 누워있던 지한이 말했다.

“이 녀석들 먹고 바로 누우면 안 돼.”

“네에.”

할아버지의 말에 지연이 허리의 반동을 이용해 일어났다.

옆에서 지한이 지연을 따라하려고 했지만 요령이 없어 버둥거렸다.

뒤집어진 거북이 같은 꼴에 지연이 지한을 비웃으며 손을 내밀었다.

“자, 손.”

결국 지연의 손을 잡고 일어난 지한이 시무룩한 얼굴로 말했다.

“나도 누나처럼 일어나고 싶은데.”

“좀 더 허리 반동을 이용해.”

“반동?”

“근육을 쓰란 소리.”

“근육?”

….

그래 말보다는 행동이지.

네 몸에 반동이란 단어를 새겨주마.

지연이 지한을 다시 눕혀 반동이란 단어를 근육에 새기려던 때, 동수가 손자들을 불렀다.

“느그덜 할아버지 따라서 논에 안 가 볼래?”

“갈래요!”

“갈래!”

“오야. 따라 온나.”

할아버지의 말에 지연과 지한이 신발을 신었다.

신발을 신은 두 사람의 머리에 동수가 넓은 짚 모자를 씌웠다.

“얼굴 탄다. 잘 쓰고 있어라.”

“네!”

“누나아. 앞이 안 보여.”

하여튼 이 녀석은 왜 이렇게 손이 많이 간담.

지연은 지한의 모자를 뒤로 당겨 미끄러지지 않게 끈을 고정시켜 주었다.

“안 조여?”

“안 조여.”

동수는 제 동생을 챙기는 지연을 보고 기특하다는 듯이 웃었다.

“자 가자.”

“누나 손 꼭 잡아.”

“응.”

할아버지의 뒤를 따라 논으로 향했다.

오랜만에 온 외갓집 동네는 신기하기 그지없었다.

‘여기 있는 밭 전부 펜션으로 바뀌었는데 지금은 풀밖에 안 보이네.’

지금은 펜션이 없어서 전부 논밭이었다. 여름이라 작물들이 파릇파릇했다.

그림 같은 펜션이 있던 모습도 꽤 괜찮았지만, 역시 외갓집에 와서 초록색 논밭을 보는 게 더 편안했다.

쏴아아―

바람에 풀들이 스치는 소리가 들렸다.

귓가에 스치는 소리가 시원했다.

“누나 저건 뭐야?”

“저건 옥수수.”

“저거는?”

“음, 무 같은데.”

“저건 뭐야?”

“저건 고구마.”

“저거는?”

5살 어린애는 정말 무섭구먼.

이게 바로 모든 애 가진 부모들이 무서워한다는 ‘왜?’ 시기인가?

물음표 살인마가 지연을 잔인하게 몰아붙였다.

외갓집 동네에서 심는 채소들이 다 똑같아서 다행이야.

“와! 개구리다!”

“와아. 개구리네.”

초록색이라 못 보고 지나칠 뻔 했는데.

용케 찾았네.

“너무 다가가지마. 독 있는 개구리가 있을 수 있으니까.”

“독? 독이 뭐야?”

“나쁜 거. 죽을 수도 있어.”

“개구리가 독 가지고 있어?”

“개구리만 가지고 있는 게 아니라 뱀도 있고, 곤충도 있고, 풀도 있어.”

“히익!”

“그래도 산이나 깊은 바다 그런데 아니면 사람 사는 데는 잘 없어.”

“그럼 저 뱀도?”

“그래, 저 뱀도….”

뱀?!

지한의 말에 지연이 고개를 홱 돌렸다.

동생이 가리킨 곳에서 하얀 뱀이 그들을 바라보고 있었다.

* * *

“움직이지 마!”

지연이 뱀에게 손을 내미는 지한의 팔을 거세게 잡아채며 말했다.

여기서 백사라니.

백사라니!?

그 뭐더라.

백사가 독이 있던가?

뱀술로 담가 먹는다는 얘기만 생각나지 백사가 독이 있는지 없는지 전혀 생각나지 않았다.

‘이럴 땐 어떻게 하더라. 독이 있는지 없는지 보려면 머리 모양을 보랬지?’

저 머리는….

삼각형이냐? 아니면 몸통이랑 일자형이냐?

저걸 보고 어떻게 독이 있는지 없는지 알아?!

지연이 침을 삼키고 뱀과 눈싸움을 했다.

“누나, 왜 그래?”

“쉿, 독 있을지도 모르니까 조용히 도망치자.”

“독 있으면 어떻게 되는데?”

지연이 아직도 상황파악 못 하고 있는 지한을 으스스하게 바라봤다.

“콱 물어버릴 거야.”

“히이이익!”

지한에게 겁을 준 지연이 재빨리 시선을 옮겨 할아버지를 찾았다.

할아버지가 저어만치 앞서 있었다.

할아버지. 어느 틈에 저기까지?

혹시나 큰소리로 할아버지를 부르면 뱀을 자극할까봐 지연이 천천히 동생의 팔을 잡고 움직였다.

그들의 움직임에 백사의 고개가 따라갔다.

‘보지 마라. 보지 마라. 보지 마라. 보지 마라. 보지 마라.’

지연이 뒤도 돌아보지 않고 지한의 팔을 붙잡고 걸음을 빨리했다.

누나에게 순순히 끌려가던 지한이 뒤를 돌아보고 말했다.

“누나, 뱀 따라오는데?”

“뭐어?”

지한의 말에 지연이 고개를 돌렸다.

정말 지한의 말대로 뱀이 S자를 그리며 자신들을 따라오고 있었다.

“뛰어!”

“어어?”

다다다다다!

지연이 지한의 팔을 꽉 붙잡고 달렸다.

‘꿈에 백사가 나오는 건 좋다고 알고 있지만 현실은 다르지!’

현실의 뱀은 그냥 돌연변이다.

“누나, 그만. 나, 못 뛰, 으앗!”

“악!”

철푸덕!

다리에 힘이 풀린 지한이 넘어졌다.

덕분에 동생의 팔을 잡고 뛰던 지연도 넘어졌다.

“괜찮아?”

“미안해, 누나.”

“아니야, 얼른 일어나. 자, 손.”

지연이 후다닥 일어나 지한을 살피고 손을 내밀었다.

쉬익―

그때 뒤따라오던 백사가 넘어져 있던 지한의 몸을 타고 순식간에 손까지 기어올랐다.

“히이익!”

“이게!”

기겁한 지한을 대신해서 지연이 나머지 손을 이용해서 뱀을 떼어내려고 했다.

백사는 지연의 손을 잽싸게 피하고 마주 잡고 있던 남매의 손을 8자로 꽈악 묶었다.

“아야. 아파아. 누나아.”

“떨어져! 떨어져!”

지연이 지한의 손을 꽉 잡고 팔을 털어냈다.

크게 휘두르자 뱀이 힘을 풀고 스르륵 땅으로 내려갔다.

“저리 가!!”

지연이 길가에 있던 돌멩이를 집어 던졌다.

뱀이 다시 풀숲으로 사라질 때까지 지연은 두 눈을 부릅뜨고 뱀을 지켜봤다.

“으아아앙. 누나아.”

“어디 봐. 괜찮아?”

아이의 여린 피부에 빨갛게 자국이 났다.

저놈의 뱀 새끼.

내가 조금만 더 컸어도 푹 고아 먹었을 텐데.

“뭐꼬. 무슨 일이고!”

멀리 떨어져 있던 할아버지가 지한의 울음소리를 듣고 허겁지겁 달려왔다.

“괜찮아. 뚝. 누나가 뱀 쫓아 보냈어.”

“흐어어어어엉.”

동생을 품에 안고 달랬다.

팔목에 남은 자국이 붉은 매듭처럼 보였다.

* * *

할아버지를 따라 나갔던 애들이 뱀한테 물릴 뻔했다는 소식을 듣고 집에 있던 사람들 전부 식겁했다.

“허이고, 이게 무슨 일이고.”

“아니 웬 뱀이래?”

“느그덜 괘안나?”

“우린 괜찮아요.”

“할머니이. 나 아파아.”

지한이 퉁퉁 부은 얼굴로 울먹이며 말했다.

또 울음이 터질 것 같았다.

지연이 동생의 부은 얼굴을 쓸고 땀에 젖은 머리카락을 넘기며 말했다.

“괜찮아. 누나가 지켜줄게.”

“으응.”

지연의 말에 지한이 애써 울음을 삼켰다.

자신을 다독이는 누나의 손길에 지한이 안정을 찾아갔다.

그런 두 아이를 보고 할머니가 기특하다는 듯이 말했다.

“허이고. 그래도 누나라꼬. 장하다, 장해.”

“엄마! 장하기는. 지연이 너 위험하게! 다음에는 절대 그러지 마. 알았어?”

“네.”

“와 아를 다그치노!”

“그치만!”

“이럴 때는 잘했다고 해 주면 된다.”

어이구, 내 새끼들. 할머니가 나와 지한을 끌어안았다.

포근한 할머니의 품에서 지연도 겨우 억누르고 있던 울음이 터지려는 것을 느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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