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나는 살수다-149화 (149/150)

# 149

149화. 귀환.

나는 떠오른 가능성을 미뤄두지 않고, 곧장 확인에 나섰다.

“아마... 가능할 거다.”

곧바로 협회에 맡겨두었던 클레이를 찾았고, 잠시 생각에 잠겨 있던 클레이가 고개를 끄덕였다.

클레이도 확신하진 못했지만 긍정적인 반응을 보였다는 것만으로도 가능성은 충분했다.

“몬스터를 이용한다라. 좋은 생각이군.”

권왕 또한 긍정적인 반응을 보였다.

몬스터는 어차피 죽여야 할 적.

그 생명력을 이용하는데, 거리낄 것은 없다.

만에 하나 실패하더라도 죄책감을 느낄 필요 없이, 둘만 죽는 게 전부다.

어차피 이대로라면, 모두가 죽음에 직면하게 될 터.

길게 고민할 것도 없었다.

“헌데, 어떻게 그 많은 몬스터를 붙잡아 둘 생각인가.”

“헌터들의 힘을 빌릴 생각입니다.”

물론, 일천의 인간을 대신할, 몬스터를 모으는 일이 쉬운 일은 아니다.

오히려 인간을 모으는 것보다 어려운 일이다.

몬스터의 생명력이 더 강하다는 것을 감안하더라도 수백 이상의 몬스터를 한데 묶어 둬야하니.

단순히 죽이는 것이라면 모를까,

권왕이 더해진다 해도, 둘만으로는 불가능하다.

때문에 나와 인연이 닿았던 이들에게 도움을 받을 생각이다.

여러 길드들과 팀원들.

그들이 손을 빌려준다면, 충분히 몬스터들을 붙잡아 둘 수 있을 것이다.

***

“역시... 그랬군요.”

김원철이 고개를 끄덕였다.

대충 눈치는 채고 있었다.

외국에서는 손에 꼽을 정도로 간간이 발생하는 현상이 한국에서는 하루가 멀다 하고 발생하고 있었으니.

조금만 관심을 기울여 본다면, 그 중심에 태빈이 있음을 깨닫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았다.

태빈이 굳이 힘을 잃은 살막과 타이탄을 처리한 것도 같은 맥락일 것이다.

“그래서 떠나시는 겁니까?”

유인원이 아쉬운 듯 말했다.

그러나 아쉬움의 뒤로는 안도의 감정이 새어나왔다.

개인보다는 전체를 생각해야하는 협회장이기에 안도 할 수밖에 없었다.

두 사람은 떠나가지만 그로 인해 수많은 생명을 위협하는 문제가 해결될 테니.

“예. 돌아가서 해야 할 일도 있고.”

나는 순수하게 아쉬워만 할 수 없는 그들의 미안함을 덜어주기 위해 단지 그 문제 때문에 떠나는 것만은 아니라 말했다.

실제로도 돌아가면 할 일이 있기도 했다.

결정을 내리지 못했기에 생각하지 않고 있었을 뿐.

“알겠습니다. 일단 각 길드의 길드장들에게 사정을 설명하고 협조를 요청하도록 하겠습니다.”

“협회 측에서도 적극 지원하겠습니다.”

김원철과 유인원은 길게 고민하지도 않고 기꺼이 손을 빌려주었다.

“감사합니다.”

이에 내가 감사를 표했다.

나머지 길드들은 어떻게 나올지 모르지만 협회와 원 길드만 나서준다 해도, 부족함은 없을 것이다.

***

팀원들의 반응은 김원철 등과는 사뭇 달랐다.

“뭐라고요?!”

“영영 떠나신다는 말씀입니까?”

의외로 팀원들의 반발이 강했다.

무림의 사제관계와는 다르지만 팀원들은 나를 스승으로 여겼다.

홀로 모든 책임을 짊어지고, 떠난다는 사실을 납득하지 못했다.

“원래 있던 곳으로 돌아가는 것뿐이다.”

“하지만...”

팀원들은 말을 잇지 못했다.

처음에는 무감정하다 느꼈지만 지금은 누구보다 인간다워진 팀장이다.

내가 무림의 기억을 가졌다고는 하나, 다른 세계의 사람이 생각한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이렇게 갑작스러운 이별을 받아들일 준비가 되지 않았다.

“...평생 잊지 못할 것입니다.”

“그동안 감사했습니다.

처음에는 반발했지만 내뜻을 꺾지 못할 것을 알기에 김시연이 눈물을 붉히며 고개를 숙였고, 김영기가 이어 절을 하며 예를 올렸다.

장만식만 여전히 굳어진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저도... 저도 팀장님과 함께 무림에 가겠습니다!”

“뭐?!”

한참을 망부석마냥 굳어있던 장만식이 폭탄선언을 했다.

“장만식!”

“진심이냐?”

옆에 있던 김시연과 김영기가 미친놈을 보듯, 휘둥그레진 눈으로 바라봤다.

외국도 아니고, 다른 차원으로 가는 일이다.

이렇게 한순간에 결정할 문제는 아니었다.

“저는 어차피 지구에 남은 가족도 없습니다. 형님, 누님들이 가족이나 마찬가지긴 하지만 아직 부법을 다 익히지도 못했고, 계속해서 팀장님 밑에서 무공을 익히고 싶습니다!”

그러나 처음에는 조금 망설이는 기색이 있더니, 말을 내뱉은 뒤로는 일말의 주저함조차 사라진 장만식이다.

무슨 짓을 해서라도 나를 따르겠다는 듯, 그의 얼굴에는 굳게 선 결의만이 남았다.

“그래. 같이 가자.”

“팀장님!”

말려야 할 나마저 순순히 수긍하자, 김시연과 김영기는 한 번 더 소리를 질러댔다.

그러나 사실 나는 장만식의 결심을 깊이 생각하지 않았다.

순간적인 감정에 되는 대로 뱉은 말로 받아들인 탓이다.

이별의 아쉬움을 이기지 못하고, 잠시 이성이 흐릿해졌을 뿐이다.

막상 때가 되면, 바뀔 마음이라 여겼다.

“예!”

장만식은 자신을 바라보는 시선에 아랑곳 하지 않았다.

그보다는 행여 내가 거절이라도 할까봐 걱정했는지, 다시 되묻지도 않고 힘차게 고개를 끄덕이는 장만식이었다.

“화우야. 네게는 미안하구나. 동생들을 부탁하마.”

아직 많은 가르침을 주지 못한 제자에게 미안함을 표하는 것으로 인사를 마무리했다.

중국에 있는 동생들 때문인지, 장만식처럼 따라나선다는 말은 없었다.

또 다시 찾아온 이별에 말없이 눈물을 뚝뚝 흘릴 뿐이었다.

***

협회와 길드, 팀원들에게 까지 나의 귀환에 대한 설명을 마쳤지만 아직도 난관은 남아 있었다.

부모님과 형.

이제는 다시 못 볼 가족에게 이별을 고할 시간이었다.

팀원들에게 말할 때도 일부러 형만은 빼놓았다.

가족들에게만큼은 조금이라도 미루고 싶은 마음에서였다.

“그게 무슨 말이니...?”

“태빈아.”

믿을 수 없다는 듯, 어머니의 목소리는 떨려왔고, 아버지는 나지막이 내 이름을 불렀다.

두 분 다 갑작스러운 내 말에 혼란스러워 했고, 쉽게 받아들이지 못했다.

“죄송합니다.”

나는 그 말을 끝으로 곧장 자리에서 일어나버렸다.

더 있다가는 내 결심이 흔들릴 것 같았다.

나도 마음 같아서는 무한한 사랑과 믿음을 주는 가족의 곁을 떠나고 싶지 않았다.

그러나 내가 떠나지 않으면, 그들의 삶이 위태롭다.

어쩔 수 없는 선택이지만 그들에게 큰 슬픔을 남겨두어야 한다는 사실이 못내 미안했다.

“잠깐만.”

막 대문을 열고 집을 나선 나를 형이 불러 세웠다.

나는 등을 돌려 형을 바라봤다.

눈시울이 붉게 달아오른 형의 얼굴이 보였다.

“너 진짜지?”

“어.”

“그래...”

오랜 잠에서 깨어난 뒤로 단 한 번도 거짓을 입에 담지 않은 동생이다.

그렇기에 형, 태성은 믿기 힘든 사실임에도 동생의 말을 믿을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그 뜻이 결코 꺾이지 않을 거라는 것도 알고 있었다.

동생이 떠나는 것은 이제 기정사실이었다.

“...가면, 영영 못 오는 거냐?”

“아마도.”

제대로 된 귀환은커녕, 실패할 수도 있다.

성공한다 해도, 다시 돌아올 가능성은 조금도 없지만 나는 거짓으로나마 여지를 남겼다.

그래야 조금이라도 가족들이 안심하고 나를 보내줄 테니.

“그래.”

형은 별다른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비록 기약은 없지만 영원한 이별이 아니라는 것만으로도 지금은 족했다.

***

준비는 끝났다.

팀원들과 각 길드의 헌터들이 나와 권왕 두 사람을 위해 움직였다.

발을 묶어두어야 하는 만큼, 일반적인 섬멸전보다 몇 배나 위험한 작전이었지만 최소한 각 길드의 길드장들은 내 일에 기꺼이 발 벗고 나섰다.

그 결과, 수백의 헌터들이 움직였다.

“은평과 성북 일대에 출현한 몬스터들을 헌터들이 유인하고 있는 중입니다. 수는 양측을 합쳐 약 팔백. 삼십 분 후면 몬스터들이 북한산으로 모일 겁니다.”

딱히 서울에서 일을 벌일 생각은 없었다.

하지만 몬스터가 언제 나올지 알 수 없고, 나온다 해도 조건에 충족하는 경우는 드물었기에 찾아온 기회를 놓치지 않았다.

우연인지 필연인지, 성북구와 은평구에서 동시에 가깝게 몬스터가 출현했고, 그 수가 약 팔백에 달했다.

“알겠습니다. 계획대로 진행해주십시오.”

몬스터의 수가 일천에는 미치지 못하지만 인간보다 질긴 생명력을 생각하면, 큰 차이는 없을 터.

북한산에서 미리 대기 중이던 나는 계획을 예정대로 진행시켰다.

내 곁에는 마지막 인사를 위해 팀원들과 제자 화우, 그리고 부모님이 계셨고, 그 옆으로 권왕과 수아도 있었다.

포박된 채, 구석에 처박혀 있는 클레이도 있었지만 지금 그는 짐과 같았다.

어쨌든, 수아는 고민 끝에 권왕과 함께 무림으로 떠나기로 했다.

원래의 가족은 중국에서 전부 잃었고, 한국도 권왕을 따라 왔을 뿐이다.

권왕이 떠나면, 혼자 남겨질 터.

수아는 다시 혼자가 되고 싶지 않았다.

그렇기에 만약 일이 잘못되면 죽을 수 있다는 것을 알고도 망설임 없이 권왕을 따라나섰다.

예정보다 인원이 늘어났지만 사실, 수아의 경우에는 처음부터 그럴 수도 있다고 생각하고 있었기에 예정과 달라지는 것은 없었다.

“만식이는 너희에게 맡기마.”

딱 하나, 장만식이 짐을 바리바리 싸매고 온 탓에 조금 불안해지긴 했다.

하지만 나머지 팀원들에게 만약 장만식이 진심으로 나를 따라나설 낌새를 보이면 단단히 붙잡으라는 명령을 내린 뒤에야 마음이 조금은 편해졌다.

곧이어

“옵니다.”

아직 먼, 양측에서 헌터들과 몬스터들이 만들어 내는 소리가 들려왔다.

나는 마지막 준비만을 남긴 채, 몬스터들을 기다렸다.

“천천히! 천천히 물러서!”

얼마지나지 않아, 헌터들과 몬스터들이 육안으로 보일 정도로 거리가 가까워졌다.

몬스터들과 맞붙는 전선에는 팀원들을 비롯한 S급 헌터들이 방어에 치중하며 시선을 끌고 있었고, 헌터들은 조금씩 물러서며 몬스터들을 내가 있는 곳으로 유인해왔다.

자연 두 무리의 헌터들은 등지고 있었다.

헌터들은 서로 등이 맞닿는 순간, 헌터들을 우리를 중심으로 위아래로 갈라지며 몬스터들을 다시 포위할 것이다.

나와 권왕이 해야 할 일은 몬스터들이 헌터들이 포위망을 만드는 순간, 서책의 힘을 빌려 차원의 문을 여는 것이다.

클레이가 변역 해놓은 서책의 가동원리는 진과 같았다.

돌과 나무와 같은 대상은 축으로 하는 무림의 진법과 다르게 마법진이라는 인위적인 축을 사용한다는 것만 다를 뿐.

“몬스터들 무력화시키는 대로 빠져나간 뒤, 포위망 구축한다!”

김원철과 유인원 등의 외침에 따라 마법사들의 마법이 몬스터들을 향해 쏟아졌다.

수많은 마법이 쏘아졌지만 살상을 위한 공격은 아니었다.

몬스터들의 발을 얼어붙게 하고, 땅을 꺼트리는 등, 행동을 제약하기 위한 마법들이었다.

쏟아진 마법들에 의해 순간, 헌터들을 뒤쫓던 몬스터들의 발이 묶였다.

그 사이 등이 닿을 듯 거리가 가까워진 양측의 헌터들이 잽싸게 위아래로 갈라지며 빠져나갔다.

크륵?

헌터들이 빠져나가자, 두 무리의 몬스터들이 서로를 마주했다.

멍하니 서로를 바라보던 몬스터들이 일제히 서로를 향해 달려들었다.

몬스터들 간의 싸움은 나로서도 예상 외였다.

몬스터들의 흉포성은 알고 있었지만 그게 서로에게까지 향할 줄이야.

이대로 몬스터들이 맞붙어 수가 줄어버린다면, 일을 그르칠 수도 있었다.

“바로 시작하겠습니다.”

나는 지체 없이 서책의 힘을 발동시켰다.

클레이와 같이 기도를 외는 일은 없었다.

그저 서책에 마나를 불어 넣고, 내 의지를 담는 것만으로도 충분했다.

서책이 내 의지에 반응하며 찬란한 빛을 내뿜는 것을 시작으로, 헌터들이 만든 경계선 바로 앞, 몬스터들이 밟고 서있는 바닥에 마나로 된 보이지 않는 선들이 생겨났다.

‘됐다!’

빛은 인간의 것이 아닌 몬스터들의 생명력을 빠르게 집어삼켰다.

서로를 향해 이빨을 드러내던 몬스터들을 갑자기 사라지는 생명력에 흉포함을 거두고 살아남기 위해 발버둥치기 시작했다.

카악!

하지만 퇴로는 이미 헌터들이 철저하게 막아 놓았다.

수 겹으로 이루어진 원소의 장벽이 몬스터들의 주위를 둘러싸고 있었고, 빠른 속도로 생명력을 잃어가는 몬스터들은 그 장벽을 뚫어내지 못했다.

우웅!

혹, 부족한 개체수로 인해 서책이 요하는 힘이 부족하진 않을까 하는 걱정도 했지만 문제는 없었다.

팔백 몬스터의 생명력을 앗아간 빛은 제 역할을 해냈다.

기이한 진동 소리를 내는 서책의 앞으로 푸른빛을 내뿜는 차원의 문이 모습을 드러냈다.

...

떠나기 전, 나는 가족들을 한 번 바라봤다.

그리고는 팀원들과 김원철 등의 헌터를 차례로 바라봤다.

이별 앞에 특별한 인사말은 없었다.

눈빛에 담긴 감정으로 이를 대신할 뿐.

“가지. 시간이 없네.”

던전을 눈앞에 두고 잠시 머뭇거리는 내게 권왕이 말했다.

그의 말대로 주어진 시간은 그리 길지 않았다.

교황청에 생겨났던 문도 십 초를 넘기지 못했으니.

“예.”

나는 고개를 끄덕였고, 동시에 차원의 문을 향해 몸을 던졌다.

권왕과 수아가 손을 꼭 잡은 채, 그 뒤를 따랐다.

그런데, 그 뒤에도 문을 향해 걸음을 옮기는 이들이 있었다.

가장 먼저 문으로 들어섰던 나는 뒤따르는 이들의 존재를 알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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