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43
143화. 비밀(4).
잠시 후,
“크크. 이 얼마 만에 느껴보는 고통인지. 분골착근이라. 정말 재미있는 수로구나.”
요한의 입이 열렸다.
그러나 내가 기대하던 답은 아니었다.
고통에 정신이 나가버린 건지, 나를 바라보며 웃음을 터트렸다.
“네가 이 세계에 온 이유를 알고 싶다 했는가?”
내가 다시 손을 쓰려는 찰나, 요한의 말이 이어졌다.
말투가 거슬리긴 했지만 내가 원하던 말이었다.
“그렇다.”
“나는 신에 가장 근접했던 인간이다.”
“신?”
“그렇다. 인간이면서 신에 가장 근접했던 것이 바로 나 요한이다.”
신이라니?
허황된 얘기에 내 눈이 가늘어졌다.
요한의 말을 믿지 못하고 의심하는 것이다.
확실히 정신이 망가져버린 것은 같았다.
다만, 미쳐버린 것치고는 요한의 눈이 초점을 잃지 않고 또렷했다.
“믿지 못하는 건가? 네 놈 세계에도 나와 같이 신에 근접했거나, 신이 된 자들이 없지는 않을 텐데?”
“근접하거나... 신이 된 자들...?”
요한의 말에서 나는 세 사람의 이름이 떠올랐다.
마교의 천마, 소림의 달마, 그리고 무당의 장삼봉.
셋 모두 자연경의 경지에 올라 우화등선해 신선이 되었다 알려진 이들이다.
그 외에도 무림에는 역사를 자랑하는 문파들이나, 비인부전, 혹은 일인전승 문파의 개파조사부터 시작해, 심산유곡에서 홀로 수양을 쌓아 등선한 기인이사들에 대한 전설이 수없이 많았다.
무림뿐만 아니라, 이 세계에도 비슷한 존재들이 있다.
그리스도나, 석가모니와 같은.
요한이 말하는 신이 그러한 이들을 말하는 거라면, 그저 허황되다 치부할 만한 일은 아니었다.
물론, 신을 운운하기에는 그의 경지가 낮긴 했지만.
“네 놈은 타이탄이란 신을 믿는 것이 아니었나?”
“스스로가 신이 된다하여 믿음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아니 오히려 그 믿음이 더 강했기에 나 스스로 타이탄님과 같은 존재가 되어 그의 뜻을 더 깊이 이해하고 싶었다.”
신을 믿기에 그 신과 같은 존재가 되고 싶다라.
“그런가.
선뜻 이해가 가진 않았지만 나는 대충 고개를 끄덕였다.
처음에는 믿지 못할 이야기였지만 듣다보니, 안 될 것도 없다.
그리고 중요한 것은 요한이 신이 되고, 되지 못하고가 아니다.
“됐고, 내가 이 세계에 온 이유나 말해라.”
내가 이 세계에 오게 된 이유.
내가 알고 싶은 건 오직 하나뿐이었다.
“쯧, 참을성 없기는.”
요한이 재촉하는 나를 보며 혀를 찼다.
지금은 아무렇지 않은 척하고 있긴 하지만 방금 전까지만 해도 분골착근의 고통을 참지 못하고 소리를 질러대던 주제에 참을성을 운운하다니.
나는 다시 한 번 그 고통을 되새겨주고 싶었지만 조금이라도 빨리 답을 듣기 위해 인내심을 발휘했다.
“신에 가장 근접했지만, 나는 신이 되지 못했다. 한 걸음, 딱 한 걸음이 부족했지.”
요한은 정녕 안타깝다는 듯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여전히 내 답과는 거리가 먼 이야기였다.
요한의 아랑곳 않고 계속해서 말을 이었다.
“타이탄님을 비롯한 네 명의 종들. 타이탄님은 새로운 신의 탄생을 원치 않았고, 오히려 나를 자신의 자리를 위협 한다 여기고 방해했다.
이미 타이탄님의 뜻으로 가득한 세상에 새로운 신의 자리는 존재하지 않았다. 나는 믿음으로 대했건만, 신은 그가 오히려 옹졸하게 나를 밀어낸 것이다.
그래서 나는 새로운 세계로 눈을 돌렸다. 신이 존재하지 않은 세계. 타이탄님의 뜻이 아직 전해지지 않은 세계를 찾아.
그러한 세계라면, 타이탄님도 나를 방해하지 못할 테니까. 그 때도 변함없는 내 믿음을 보신다면, 더 이상 내 존재를 부정하지 못하실 테니까.
그리고 나는 찾아냈다.
신이 존재했으나, 가장 사랑하는 존재들의 타락에 끝내 신이 떠나버린 세계. 이곳 지구를 말이다.”
“결국, 네 놈 스스로 신이 되기 위해 신의 방해를 받지 않는 이 세계로 넘어 왔다는 말인가?”
“이해는 빠르군.”
요한이 고개를 끄덕였다.
믿기 힘든 얘기였다.
신이 되고 안 되고를 떠나, 한낱 인간이 세계를 넘나들다니.
“신에 근접했던 나로서도 모험이었다. 소멸을 각오해야 할 정도로. 뭐, 그 탓에 본래의 힘을 대부분 잃어버리고 네 놈에게 이렇게 사로잡혀 버렸지만.”
“기사들 또한 그런 식으로 넘어 온 것인가.”
“아니. 그들은 아직 인간의 굴레를 벗지 못했기에 안타깝지만 본래의 육신을 버리고, 영혼만을 가져올 수밖에 없었다.”
요한은 나와 달랐다.
의도치 않게 이 세계에서 깨어난 것이 아닌, 스스로의 의지로 이 땅에 현신했다.
자신의 세력까지 이끌고.
“그럼, 나는?”
“네 놈들은 내 실수였다. 신에 근접했지만 신은 아니었기에 전지하지 못했고, 내 존재가 세계의 균형을 깨트릴 수 있다는 사실을 알지 못했다.
나라는 존재가 깨트린 균형으로 인해 이 세계는 붕괴되기 시작했다. 던전과 몬스터가 등장한 것이 그 붕괴의 전조지.
헌터는 이 지구가, 신이 떠나버린 세계가 스스로 살아남기 위해 내놓은 자구책이다.
너희 또한 마찬가지.
나로 인해 무너진 균형을 맞추기 위해 가장 가까운 세계의 인간들을 불러들이는 것이다.
내 생각이 맞다면, 더 큰 균열을 불러일으키지 않기 위해 이미 죽은, 그리고 한 인간의 인연들만을 불러들였겠지. 맞나?”
“그게 내가 이 세계에 오게 된 이유란 말인가?”
“그렇다. 이것이 나와 같이 신에 가장 근접한 인간인 네가 이 세계에 오게 된 이유다.”
요한의 말이 끝나고...
나는 한동안 아무런 말도 할 수 없었다.
단숨에, 듣는 대로 이해하기에는 그 내용이 허무맹랑했다.
그러나 믿지 않을 수는 없었다.
거짓으로 꾸며내기에는 인과가 명확했고, 그로 인해 현실에서 풀리지 않았던 의문들이 해결되었으니.
“정말... 네 말이 사실이냐?”
그럼에도 나는 다시 한 번 물었다.
그만큼 받아들이기 힘든 얘기였다.
“그래.”
내 물음에 요한은 어깨를 으쓱거렸다.
자신이 할 말은 다 했다다는 듯.
믿고 안 믿고는 네 자유라는 듯.
“나는 네가 준 고통을 참아낼 수 있었다. 오랜만에 느껴본 고통이긴 했다만.
그럼에도 이 이야기를 해준 이유는 아까 말했든 비록 힘을 잃었다고 해도 신에 근접한 나를 이긴 상이다.
나는 이제 미뤄두었던 죽음을 맞이할 것이다. 신이 되진 못했지만 타이탄님이 계신 안식의 땅에서 영원한 안식을 맞이할 수는 있겠지.
그리고 내가 사라지면, 다시 균형을 잃은 세계는 결국 붕괴되고 사라질 것이다. 네 놈은 이 세계와 함께 종말을 맞이하거라. 이 또한 내가 너에게 내리는 상이니라.”
요한은 생각에 잠겨 있는 나를 두고 처음 모습 그대로 조용히 눈을 감았다.
“요한!”
종말이라니.
어떻게 일궈낸 삶인데.
내가 그의 이름을 불렀지만 요한은 감았던 눈을 뜨지 않았다.
“대답해라!”
내가 소리쳤다.
그러나 요한은 움직이지 않았다.
그의 숨소리가 서서히 옅어졌다.
옅어지는 숨 사이로 생기가 흘러나왔다.
하늘에서는 빛이 내려왔다.
전등만이 주변을 밝히고 있는 밀폐된 공간임에도 찬란한 빛이 요한을 비췄다.
여느 때보다 신성함이 느껴지는 빛이었다.
마치 신이 그의 마지막 순간을 지켜보듯.
그리고.
사라락.
빛에 뒤덮인 요한의 몸이 잘게 흩어지기 시작했다.
손끝, 발끝부터 천천히.
붙잡으려고도 해봤지만 잡히지 않았다.
오히려 내 손에 닿은 부분은 더 빠르게 흩어질 뿐이었다.
투두둑.
요한은 그렇게 빛과 함께 먼지가 되어 사라졌다.
요한이 사라짐과 동시에 빛도 사라졌다.
묶여 있는 밧줄과 널브러진 옷가지만 방금 전까지 요한이 이 자리에 있었음을 말해주고 있었다.
***
나는 요한이 떠나간 자리에 한참이나 멍하니 서있었다.
요한이 말한 종말.
그가 떠난 자리에서 잘게 떨리는 자연의 기가 종말을 예견하듯, 울고 있는 것처럼 느껴졌다.
“김태빈 헌터님.”
나는 나를 부르는 소리를 듣고 나서야 정신을 차릴 수 있었다.
요한이 가져다준 충격이 완전히 가신 것은 아니다.
단지 정신을 차렸을 뿐, 머릿속은 여전히 터질 듯 혼란스러웠다.
“괜찮으십니까?”
나를 부른 것은 제갈민이었다.
길어진 독대에 걱정이 되어 찾아온 것이다.
내 안위가 아닌, 요한의 안위가.
제갈민은 요한에게 알아내고 싶은 것이 많았다.
“헌데... 요한은?”
“죽었다.”
주변을 둘러보았지만 역시나 요한은 없었다.
덩그러니 남은 옷가지만 내가 듣고 본 것이 현실이었음을 다시 한 번 자각하게 해주었다.
“예?!”
“분골착근에도 입을 열지 않았다. 결국 숨이 끊어졌고, 먼지가 되어 흩어지더군.”
“시체를 남기지 않고 흩어졌다는 말입니까?”
제갈민은 내 말을 믿지 못했다.
분골착근이야 원래 지독한 고문이니, 견디지 못하고 숨이 끊어진 것은 그렇다 쳐도 시체가 사라지다니.
시체를 녹여버리는 화골산을 뿌렸다 해도 그 흔적은 남는다.
중국을 견제할 유럽이 무너지는 것을 원치 않는 내가 몰래 빼돌렸다고 보는 게 타당했다.
“그렇다.”
“...알겠습니다.”
뻔뻔한 얼굴로 거짓을 늘어놓는 내 행태에 제갈민은 분노했지만 그 분노를 있는 그대로 표출해내지는 못했다.
조용히 속으로 삭힐 뿐이었다.
요한에게 정보를 얻으면, 유럽을 무너트리는 게 더 수월하겠지만 꼭 얻지 못하더라도 결과는 다르지 않을 것이라 스스로를 자위하며.
***
요한의 죽음과 제갈민의 분노를 뒤로하고 한국으로 돌아왔다.
나와 함께 떠났던 일천 명의 헌터들과 함께였다.
비록 그 중, 일부는 시체가 되어 돌아올 수밖에 없었지만...
사망자 대부분이 나와 요한의 싸움에 휩쓸려 목숨을 잃었다.
그 탓에 시신도 제대로 남기지 못한 이들이 부지기수였다.
안타깝지만 돌이킬 수 없는 희생이다.
도합 일만이 넘는 피해를 입은 중국, 러시아, 미국 등에 비하면, 타이탄이라는 거대한 적을 처치한 것치고는 적은 피해이기도 했다.
부상자를 더한 사상자의 수가 백도 채 되지 않았으니.
“고생하셨습니다.”
유인원과 박동석 등이 나와 헌터들을 맞이했다.
이미 승전 소식을 전해들은 탓에 그들의 표정은 밝았다.
“별일 없었습니까?”
전투가 끝난 뒤부터 유독 말이 없는 나를 대신해 김원철이 말했다.
김원철 등은 침묵하는 나를 보며 의아해 했지만 그 이유를 캐묻지는 않았다.
“예. 별일 없었습니다.”
의례적인 말을 주고받는 목소리들이 들려왔다.
그러나 그 목소리들은 내 귓가를 맴돌 뿐, 머릿속에 남지는 않았다.
지금 내 머릿속은 요한이 남긴 얘기로 가득 차 다른 것들이 들어올 자리가 없었다.
이 세계가 종말을 맞이할 거라는 것은 그만큼 충격이었다.
살막에 이어 타이탄까지.
나에게 복수의 칼날을 가는 여문휘를 죽였고, 전 세계를 집어삼키려는 야욕을 드러낸 요한을 막았다.
둘 다, 한 번의 죽음 뒤에 어렵게 얻게 된 삶을 위협하는 적들이었다.
그런데, 더한 적이 생겨났다.
아직 눈앞에 나타난 것은 아니지만 여문휘와 요한을 합친 것보다 더욱 위협적이고 거대한 적이었다.
실체를 드러내지 않은, 하지만 그 실체가 드러난 순간, 먹먹해져 올지도 모를 적의 존재에 내 머릿속은 복잡해졌고, 고민은 깊어져만 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