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나는 살수다-133화 (133/150)

# 133

133화. 요한(3).

중국과 타이탄의 헌터들이 평야 한 가운데에서 서로를 바라보며 마주했다.

북경이라는 중국의 수도가 바로 뒤에 있다.

한국이었다면, 시가전을 각오해야 했겠지만 중국의 넓은 땅덩어리는 수도를 바로 뒤에 두고도 개활지에서의 전투를 가능하게 만들었다.

서로의 거리는 1km 남짓.

일반인에게도 멀게 느껴지지 않는 거리인 만큼, 헌터들에게는 코앞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조금 과장해 몇 걸음이면 닿을 거리.

팽팽하게 당겨진 긴장감으로 서로의 숨소리마저 들려오는 듯했다.

“놈들도 증원을 하긴 한 모양이군요.”

타이탄 측을 바라보는 러시아의 S급 헌터 하나가 말했다.

그의 말대로 오천이 조금 안되던 수가 지금은 오천을 조금 넘어서고 있었다.

“지금까지 지나쳐온 땅이 있으니, 충원은 당연합니다. 허나 수는 중요하지 않습니다.”

제갈민이 러시아 헌터의 말을 받았다.

“중요한 건, 우리가 요한과 기사단장들을 얼마나 빨리 죽일 수 있느냐 하는 겁니다. 그 시간에 따라 이번 전쟁의 성패가 결정될 겁니다.”

제갈민이 말한 전쟁의 성패.

승리는 의심하지 않는다.

결과의 성패만이 중요할 뿐이다.

그 성패를 가르는 게 요과 기사단장을 얼마만큼의 시간 내에 죽일 수 있느냐 하는 것이다.

그 시간에 따라 수백의 피해가 될 수도, 수만의 피해가 될 수도 있었다.

그렇기에 제갈민은 타이탄의 침공 소식이 전해져오고, 중국 헌터들의 연이은 패배 소속을 들은 뒤로 오로지 하나에만 집중했다.

‘요한, 그리고 네 명의 기사단장.’

요한과 기사단장들을 죽이기 위한 계획.

몇날며칠 동안, 머릿속에서 수십 번 그리고 지워가며 계획을 세웠고, 그렇게 완성된 계획을 다시 수백 번 점검했다.

‘살수 백과 특급 살수 둘이면, 누구라도 죽일 수 있다.’

그 계획을 실행하기 위해 전 세계에 흩어 놓았던 암영대원과 포섭한 정보원들 중, 일류 이상은 모조리 불러들였다.

혈검과 독괴를 잃으면서까지 숨겨 두었던, 이제는 둘 밖에 남지 않은 살막의 특급 살수가 움직였다.

‘변수는 요한...’

그럼에도 불안감은 가시지 않았다.

요한 때문이다.

초절정 급인 기사단장들까지는 제갈민의 머리로 산정이 가능한 범주 내다.

그러나 요한과 같은 절대 고수는 인외의 존재.

인간의 머리로는 계산이 불가한 범주 밖의 존재였다.

요한의 존재가 제갈민이 몇날며칠 계획을 수정하고 또 수정하며 골머리를 앓고 있던 이유였다.

‘허나 이쪽에는 요한보다 더한 변수가 있다.’

길었던 고민은 한국이 지원요청을 수락한 순간. 그리고 그 지원군 안에 태빈이 포함된 순간, 씻은 듯 사라졌다.

태빈, 현경의 고수는 지금까지 100% 자신했던 적 없는 제갈민이 자신의 계획을 100% 자신하게 만들어 줄 수 있는 존재였다.

오천 대 삼만이라는 수적 우위에서도 완성이라 할 수 없었던 계획을 비로소 ‘완성’이라 부를 수 있게 만드는 존재.

그게 태빈이었고, 더 이상 요한이나 기사단장들이 두렵지 않게 되었다.

“오늘 타이탄은 역사 속으로 사라질 겁니다.”

제갈민은 자신감 있는 눈으로 타이탄의 헌터, 그리고 가장 선두에 서있는 요한을 바라봤다.

***

“타이탄님 위해!”

“이단을 척결하라!”

“전군. 돌격하라!”

“미친 광신도 놈들에게 중국의 저력을 보여줘라!”

양측의 우두머리, 요한과 제갈민의 외침에 이어 군단장 급이라 할 수 있는 기사단장과 S급 헌터들의 목소리가 각 진영에서 터져 나왔다.

“와~~!!”

그 외침을 시작으로 오천의 타이탄 헌터들과 삼만의 중국 측 헌터들이 서로를 향해 진격하기 시작했다.

쿵!... 쿵!.. 쿵!쿵!

처음엔 속보로 달려 나가다, 거리가 절반쯤 줄어들었을 때, 서로가 약속이라도 한 듯, 전력을 다해 달렸다.

삼만오천에 달하는 헌터들이 만들어내는 돌격 소리가 대지를 울렸다.

그 울림은 빠르게 가까워졌고,

콰쾅!

길게 늘어선 헌터들이 천지를 뒤흔들며 충돌했다.

충돌과 함께 피륙이 허공에 흩뿌려지며 유럽과 아시아의 운명을 결정지을 전투가 시작됐다.

***

“타이탄님이 우리와 함께하신다!”

“프긴의 가호가 우리를 지켜줄 것이다!”

첫 충돌의 우세는 타이탄이 점했다.

인의 파도는 인의 장벽을 뚫지 못했다.

그리고,

“크악!”

“컥!”

방어를 뚫어내지 못한 중국 헌터들은 기사들의 창칼에 빠르게 목숨을 잃어갔다.

“흠...”

그 모습을 멀찍이서 지켜보고 있던 제갈민이 침음을 흘렀다.

빠르게 기사단의 방어를 뚫어내고, 바로 후미에 있는 요한을 비롯한 기사단장들을 치겠다는 계획이 시작부터 틀어졌다.

요한과 기사단장들은 수적 열세에도 불구하고, 전과 마찬가지로 선두에 섰다.

프긴 기사단장 아이언이 포함된 프긴 기사단의 방패 너머에 바로 그들이 있었다.

“성...”

직접 확인한 프긴의 가호를 받은 기사단의 방어는 오랜 세월 무너지지 않고 적들의 공세를 견뎌낸 단단한 성과 같았다.

분명 인간과 인간이 벌이는 전투임에도 투석기의 존재가 필요하다는 생각이 절로 들었다.

물론, 중국 측 헌터들 사이에는 투석기보다 완벽하게 적들의 방어를 뚫어낼 존재가 한 명 있다.

그러나 그 존재, 태빈은 고작 지금 드러낼 무기가 아니었다.

뿌우~!!

특정 신호를 담은 나팔이 길게 울리고, 검은 깃발이 나부꼈다.

한 번에 부술 수 없다면, 약한 곳을 집중해 깨트린다.

중국 헌터들의 진형에 약간의 변화가 생겼다.

조금씩, 천천히.

전선 여기저기에서 힘겹게 균형을 맞추고 있던 S급 헌터들이 적들이 변화를 알아차리지 못할 정도로 은밀하게 한 점에 모이기 시작했다.

그 결과, 중국 헌터들의 비명 소리가 빠르게 늘어가고 있었지만 압도적인 수의 차이는 그 정도의 피해를 별거 아니라 여기게 해주었다.

“일격에 뚫는다.”

전선의 한 축 지탱하고 있는 미국을 제하고, 중국 측이 보유한 S급 헌터 절반이 왼쪽 러시아의 헌터들이 싸우고 있는 전선으로 모였다.

10명의 소규모 별동대였다.

그러나 그 10명은 자신들의 힘이라면, 기사단장도 잡아낼 수 있다 자부하는 정예 중의 정예였다.

그렇다고 진짜 기사단장을 목표로 하는 것도 아니었다.

그들의 목표는 오로지 적들의 방어선을 무너트리는 것.

그렇기에 그나마 방어가 취약한 외곽에 모였다.

한 번.

단 한 번만 적들의 방어선을 뚫어낸다면, 그 후에는 자신들의 뒤에 있는 삼만의 헌터들이 해결해 줄 것이다.

“가자!”

별동대 리더의 결의에 찬 목소리와 함께 열 명의 헌터들이 일제히 몸을 날렸다.

결의에 찬 열 명의 헌터들이 중국의 인간 공성추였다.

쾅!

S급 헌터 열 명이 뿌려댄 공격이 전선의 끄트머리를 맡고 있던 기사단원을 때렸다.

“큭!”

짧은 단말마와 함께 기사단원이 허물어졌다.

아무리 마흘의 가호를 받고 있다 해도, 기사단원 집중된 S급 헌터 열의 집중된 공세를 버텨내는 것은 불가능했다.

“됐다!”

별동대의 누군가 환호하며 소리쳤다.

작은 구멍은 균열이 되어 성벽 전체를 무너트릴 것이다.

이제 무너진 방어를 뚫고 적들을 헤집어 놓을 수 있다 믿었다.

그 순간,

푸직!

이질적인 소리가 들려왔다.

무언가 찢기고 터져나가는 소리.

그 소리에 쓰러지는 기사단원을 보며 환호했던 별동대원의 얼굴이 처참하게 일그러졌다.

“커억..”

뒤늦게 신체의 변화를 인지한 뇌가 신음을 토해냈다.

그 신음과 함께 쏟아져 나온 공기가 별동대원이 토해낸 숨의 마지막이었다.

몸의 절반이 사라진 사람이 더 이상 숨을 쉴 수는 없으니.

별동대원의 몸에 둥그렇고 커다란 구멍이 생겨나 있었고, 그 자리를 거대한 마상창이 메우고 있었다.

“마흘 기사단장!”

별동대원이 뒤늦게 마상창의 주인을 알아봤다.

타이탄에는 프긴의 가호라는 성과 같이 단단한 벽과 더불어 세상에서 가장 날카로운 창이 있으니.

그것이 바로 마흘 기사단장의 창이었다.

“네 놈들은 절대 신의 방패를 뚫어낼 수 없을 것이다!”

마흘 기사단장 아델이 재차 창을 휘둘렀다.

쾅!

“놈 하나다! 당황하지 말고, 집중 공격해!”

아델의 창을 방패로 막아낸 별동대의 리더가 호기롭게 소리쳤다.

그러나 그 호기로운 외침과는 달리, 별동대의 리더는 아델의 일격에 구겨진 종잇장마냥 우그러진 방패와 함께 몇 미터나 뒤로 밀려나 있었다.

“죽엇!”

다행히 별동대원들은 그 모습에 겁을 먹고 도망치지 않았다.

오히려 공격을 취하느라 아델의 자세가 흐트러진 순간을 놓치지 않고 일제히 공격을 퍼부었다.

두 명이 정면에서 검을 내질렀고, 좌우에서는 각기 둘씩 위아래를 찔러 들어갔다.

그리고 어느새 후미를 점한 한 명은 아델을 반으로 쪼개버릴 듯한 기세로 도끼를 내려찍었다.

그것도 모자라 나머지 둘은 암기를 내던지기까지 했다.

서로 말을 맞추지 않았음에도, 모두가 한 마음이 되어 쏟아낸 공격이었다.

‘됐다.’

아직 밀려난 고통을 해소하지 못한 리더를 제외한 별동대 전원의 얼굴에 회심에 미소가 걸렸다.

무섭게 쏟아지는 공세에 아델이 살아날 길은 보이지 않았다.

그 만큼, 완벽한 합공이었다.

“어리석은 이단자들여!”

사방에서 쏟아지는 공격에 아델이 노성을 터트렸다.

그 노성과 함께 광풍이 몰아쳤다.

콰콰콰쾅! 채채채챙!

그 광풍 속에서 도와 검, 그리고 창과 암기들까지.

아홉 개의 무기들은 목표를 잃지 않았다.

“크악!”

비명이 울려 퍼졌다.

“끄아악!”

“커억!”

그런데, 비명 소리는 하나가 아니었다.

하나는 아델의 것이라 쳐도, 나머지 것들은?

별동대원들의 시선이 빠르게 동료들을 찾았다.

“어떻게...”

주변을 확인한 별동대원들의 눈이 불신으로 물들었다.

아홉의 동료들 중, 셋이 팔과 몸이 터져나간 채, 피를 흘리고 있었다.

두 팔과 한쪽 팔을 잃은 둘은 아직 숨이 붙어있었지만 몸이 터져나간 하나는 자신이 죽은 줄도 모르고 눈을 부릅뜬 채 천천히 쓰러져갔다.

검신은 어디 갔는지, 외로이 남은 검진을 꽉 움켜쥔 채였다.

“마흘의 창은 무엇도 뚫어낼 수 있으니! 네 놈들의 무기와 함께 꿰뚫어주마!”

아델의 포효와도 같은 외침이 전장을 휩쓸었다.

그 순간,

서걱.

무언가 아델의 몸을 스쳐지나갔다.

아델의 목에 붉은 실선이 새겨졌다.

그리고,

그 무언가의 움직임에 따라 불어온 바람에 아델의 머리가 천천히 무너져 내렸다.

촤아아악!

피분수가 솟구쳤다.

동료를 잃은 별동대원들은 두 눈으로 보고도 믿기 힘든 상황에 당황했으나, 이내 환호했다.

확실치는 않지만 자신들 중, 누군가의 공격이 아델에게 통했다고 생각한 것이다.

하긴 아델이 아무리 대단하다 하더라도, 사방에서 쏟아진 아홉 개의 공격을 모두 피해냈을 리 없었다.

너무 깔끔한 절단에 잠시 결과가 늦게 나타났을 뿐이다.

아홉의 별동대원 중, 대체 누가 그만한 실력을 가지고 있느냐 하는 의문이 남긴 했지만 아델을 죽였다는 결과 앞에 그 의문은 금세 잊혀졌다.

“방어가 뚫렸다!”

“기사단장이 죽었다!!”

기사단원의 방어가 뚫리고, 아델까지 죽음을 맞이했다.

결코 무너지지 않을 것 같던 타이탄의 방어에 균열이 생겨났고, 땅으로 추락하던 중국 헌터들이 사기가 다시 하늘로 솟구쳤다.

그에 따라 전투는 새로운 국면을 맞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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