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나는 살수다-132화 (132/150)

# 132

132화. 요한(2).

요한과 기사단은 자신들이 모시는 신의 이름을 부르짖으며 중국 헌터들을 무자비하게 참살해나갔다.

성스럽게 느껴지는 가호가 그들을 감싸고, 검과 창을 따라 빛이 흩날리는 모습은 진짜 신의 사자들이 현세에 강림한 것과 같은 착각을 불러일으켰다.

그 신성함 앞에서 중국 헌터들의 사기는 무참히 깎여 나갔고, 강자의 부재가 더해져 전투의 양상은 일방적인 학살로 흘러가고 있었다.

사실 요한이 직접 나설 것도 없는 전투다.

중국 헌터들 측에는 요한이 아니라, 기사단장조차 막을 수 있는 헌터가 없었으니까.

“너희의 신을 원망해라.”

그럼에도 요한이 직접 선두에 선 것은 직접 이단을 단죄하기 위함이다.

자신의 검이 이단자들의 피를 머금을 때마다, 요한은 자신이 티탄의 뜻에 한 걸음 더 다가간다고 믿었다.

실제로 티탄 교인이 늘고, 이단이 줄어들면서 요한의 힘이 더 강해지고 있었다.

“어리석은 자들.”

타이탄의 기사들은 그런 요한의 옆에서 기회를 주었음에도 자신들의 창칼에 죽어가는 이단자들을 조롱했다.

주문의 형태로 가호와 같은 신의 힘을 부여받는 자신들과 달리, 본연의 능력만으로 맞서야하는 적이다.

타이탄이 아닌, 다른 신을 섬기거나, 혹은 신의 존재조차 믿지 않은 이단이기에 내려진 형벌과도 같았다.

사실, 각성이라는 불가해한 힘을 얻은 이상, 본연의 능력이라고 할 수 있는지는 의문이지만 이는 중요한 게 아니다.

이단은 신의 힘을 부여받은 자신들을 막을 수 없었다.

타이탄님을 믿었다면, 맞이하지 않았을 죽음.

죽음조차 타이탄의 신도는 영광된 것이고, 이단의 죽음은 헛된, 잘못된 신을 섬긴 죄로 맞이하는 벌과 같았다.

그렇게 타이탄의 헌터들이 눈앞의 중국 헌터들을 휩쓸던 중,

“아이언. 추격을 멈춰라.”

요한이 프긴 기사단장 아이언에게 명령을 내렸다.

“요한님?”

아이언이 의문을 표했다.

다 이긴 전투다.

적들은 반격의 의지를 잃은 채 후퇴에 후퇴를 거듭하고 있었다.

적어도 중국 측이 새로이 저지선을 구축한 지점에 도달하기 전까지는 추격을 멈출 이유가 전혀 없었다.

“명을 받듭니다.”

그러나 요한의 대답은 들려오지 않았고, 아이언은 두 번 묻지 않았다.

요한의 눈은 이미 전장이 아닌, 그 너머를 향하고 있었다.

승패가 갈린 싸움에 더는 관심을 두지 않았다.

그보다는 전선 뒤편에 새로이 나타난 적들.

제법 강한 자들이 많았다.

기사단원 중에서도 수위에 꼽힐 만한 수준에 이른 자들이 여럿.

그러나 고작 천여 명으로 뒤집을 수 있는 전황은 아니었다.

‘뭐지...?’

그럼에도 요한이 추격을 멈춘 것은 기묘한 위화감이 요한의 몸을 휘감았기 때문이다.

전율이 일고, 온 몸의 솜털이 곤두섰다.

살막의 수장, 여문휘를 마주했을 때는 느껴보지 못한 감정이었다.

스스로도 알지 못하는 내면 깊은 곳에서 보내오는 경고와도 같은 그 감정이 요한의 말머리를 멈추게 만들었다.

***

“저 자가 요한인가.”

나 또한 요한을 지켜봤다.

전장에서 내가 있는 곳까지는 5km남짓.

가까운 거리는 아니지만 선두에서서 기사들을 이끄는 요한을 못 알아 볼 정도는 아니다.

그리고

“강한 자로군.”

요한을 처음 마주한 내가 내린 평이었다.

수천의 군세를 이끌고, 중국 헌터를 유린하고 있는 요한은 과연 유럽이라는 한 대륙을 집어삼킨 단체의 수장으로 전혀 손색이 없는 강자였다.

그러나 그 뿐.

나를 위협할 만한 존재는 아니었다.

거리 탓에 정확한 경지를 가늠하긴 어렵지만 당장 보이는 모습만으로는 최근에 마주했던 여문휘보다 못했다.

“흐음?”

그런데, 요한이 갑자기 후퇴하는 중국 헌터들에 대한 추격을 멈췄다.

그리고는 내가 서있는 곳을 빤히 바라보기 시작했다.

그 행동이 의아했다.

지금 이 자리에는 나를 제하면, SS급 헌터도 없다.

그런데도 요한이 추격을 멈출 이유는 내 존재를 알아차렸다는 의미다.

내가 기세를 드러내고 있다면 모를까, 지금의 나는 평범한 사람 이하다.

범인은 직접 보고도 내 존재를 인식하지 못할 정도.

그런 나를 저 거리에서 알아보는 건, 고작 화경 급의 고수에게는 불가능한 일이었다.

“눈에 보이는 것이 전부가 아니었음인가.”

요한이 앞에 둔 중국 헌터들이 그의 전력을 이끌어 내기에는 턱없이 약하기는 했다.

그러나 아군이, 같은 교인들이 죽어가는 전장에서 전력을 숨길 줄은 몰랐다.

만약 드러난 전력이 전부가 아니고, 내 존재를 알아본 것이 사실이라면, 적어도 나와 동수, 혹은 그 이상의 고수로 봐야 했다.

유인원과 김원철의 조사, 그리고 이곳에 오기 전, 제갈민에게 들었던 것과는 다르지만 방심은 금물이다.

첩첩산중이다.

최대의 적이었던 여문휘를 죽인지 얼마나 지났다고, 더한 강자가 불쑥 튀어나왔다.

***

중국 측 지휘관들이 모인 막사.

“이번 전투에선 오백의 사상자가 발생했습니다.”

오백의 사상자가 발생했지만 분위기는 그렇게 어둡지 않았다.

그도 그럴 것이 국경에서부터 시작해 수도 코앞까지 밀리는 동안 연전연패하며 일만이 넘는 헌터를 잃었다.

이제 오백 정도는 큰 피해 축에도 끼지 못할 정도였다.

심지어 오늘은 피해가 적은 편이었다.

적들이 갑자기 추격을 멈춘 덕분이다.

그렇지 않았다면, 적어도 일이백은 더 죽어나갔을 것이다.

“안타까운 일이지만 여전히 놈들의 기사단을 막을 방도가 없었습니다.”

“요한은 둘째 치고, 기사단장들에게마저 속수무책이니...지금처럼 진군을 늦추는 것밖에는...”

패퇴의 가장 큰 원인은 요한과 기사단장이이었다.

나머지 기사단원들과 헌터들의 전력도 만만치 않지만 그들은 머릿수로 찍어 누를 수 있다.

던전의 공략을 뒤로 무르거나, 일부 지역을 포기한다면, 헌터 몇 천 정도는 우습게 끌어 모을 수 있는 나라가 중국이다.

헌터가 충원 불가한 재원이라고는 하나, 중국 전역에는 여전히 수십만에 달하는 헌터들이 있으니 말이다.

그러나 요한과 기사단장들은 단순한 수적 우위가 통하지 않았다.

고작 다섯. 그 다섯에게 지금까지 갈려나간 헌터들만 해도 천을 훌쩍 넘겼다.

중국이 지금껏 입은 피해의 일할에 해당하는 수를 고작 다섯에게 잃은 것이다.

미친척하고 포격을 가해보기도 했지만 타이탄인지 뭔가 하는 신 놈의 가호 때문인지, 도무지 통하지가 않았다.

예견된 피해였다고는 하나, 앞으로도 계속해서 맞서야 하는 지휘부 입장에서는 미치고 환장할 노릇이었다.

“그래도 오늘 이렇게 한국에서 지원군이 도착하지 않았습니까? 이제 곧 러시아와 미국에서도 지원군이 도착한다고 했으니, 조금만 더 버티면 됩니다.”

중국은 한국 외에도 러시아와 미국에 지원을 요청했고, 두 나라는 그 요청에 응했다.

러시아는 그 땅덩어리가 워낙 넓은 탓에 오래 걸리고 있을 뿐, 이미 중국에 흡수된 것이나 마찬가지다.

일전에 살막의 손에 대통령과 헌터 협회장이 암살당한 뒤로는 스스로 속국을 자처하고 있기도 했다.

그러니, 러시아의 지원은 당연했지만 미국은 의외였다.

머나먼 땅의 그들이 단순한 요청에 움직였을 리는 없다.

물론, 방법이 없는 것은 아니다.

마나 제어법의 존재를 밝혔을 때, 협박까지 불사하며 탐냈던 미국이다.

중국, 아니 살막에는 무공이라는 마나 제어법 이상의 것이 있으니, 미국을 꾀어내기는 어렵지 않았을 것이다.

“그들이 오기 전까지 이 저지선은 유지해야 합니다. 아니, 한두 번은 더 패퇴하더라도 북경만은 기필코 사수해야 합니다.”

지휘관들은 저지선 유지를 위한 결의를 다지면서도 자신들의 패배를 기정사실화 하고 있었다.

지금껏 중국 헌터들이 무력하게 패배해온 원인이었다.

결사항전의 의지를 다지고 싸워도 모자랄 판에 지휘관들이 먼저 적당히 싸우다 후퇴해 새로 저지선을 만들 생각을 하고 있으니, 제대로 된 전투가 이뤄질리 없었다.

물론, 지원군을 기다리고, 힘을 모아 적들을 일거에 소탕하겠다는 계획이 있긴 했지만.

“한국 헌터님들은 러시아와 미국의 지원군이 올 때까지 대기해주십시오. 그들이 도착하면, 총 공세를 펼쳐 적들을 격파할 겁니다.”

중국은 한국의 지원만으로는 반격은 꿈도 꾸지 않았다.

고작 천여 명이다.

나를 제외하고는 적들의 기사단장급 고수도 없는.

아길라가 있긴 하지만 아직 그가 경지를 뛰어넘었음을 아는 사람은 많지 않았다.

네 명의 기사단장들은 SS급 이상.

천 명이 더해진 것으로는 승산이 없다 판단했다.

“알겠습니다.”

나는 그들의 불신을 기꺼이 받아들였다.

무의미한 전투에서 헛된 피를 흘리지 않아도 되니, 오히려 잘된 일이다.

‘이가 없으면 잇몸이 시리다’는 제갈민의 말에 지원 요청을 받아들이긴 했지만 많은 피를 흘릴 생각은 없다.

전투가 길어지고 서로가 서로의 힘을 갉아먹을수록 한국을 위협할 힘은 약해진다.

직접 본 타이탄의 전력이 생각보다 강하긴 했지만 러시아와 미국의 헌터들이 도착하면, 어느 정도는 균형을 맞출 수 있었다.

양패구상.

내가 그리는 최상의 시나리오였다.

***

“아쉽지만 결국 여기까지 밀렸군요.”

하루에 하나씩 두 개의 저지선을 격파 당했고, 천 가량의 사상자가 추가로 발생했다.

그럼에도 지휘부에 절망은 없었다.

오히려 희망적인 분위기가 흘렀다.

드디어 반격 할 때가 됐기 때문이다.

“예상한 결과입니다. 이제부터 진정한 전쟁의 시작입니다. 아군에게 더 이상의 후퇴는 없을 겁니다.”

마침내 러시아에 이어 미국의 지원군이 도착했다.

러시아에서 삼천. 미국에서 오천.

러시아는 속국에 걸맞게 많은 헌터들을 보내왔고, 미국은 무공을 얻기 위해 충분한 성의를 보였다.

오천은 조금 무리하면, 미국의 한 개 주를 지킬 수 있을 정도.

미국이 무공을 얻기 위해 얼마만큼의 노력을 기울이고 있는지 알 수 있는 부분이었다.

그렇게 합류한 지원군이 도합 팔천.

SS급 까지는 없지만 S급이 다수 포함된 전력이다.

여기에 한국 헌터 천과 기존에 중국 헌터 이만을 더하면, 삼만에 가까운 전력이다.

중국 헌터 일만을 학살하는 동안, 조금씩 갉혀 나가 이제는 오천에 조금 못 미치는 타이탄 헌터들의 여섯 배에 달하는 수였다.

“후퇴뿐입니까. 내일이면, 저 미친 광신도 놈들을 국경 밖으로 몰아내고, 모레면, 역으로 유럽 땅을 집어삼킬 수도 있을 겁니다. 허허.”

누군가 호기롭게 웃으며 소리쳤다.

여전히 강자의 수는 전적으로 부족하다.

그러나 여섯 배에 달하는 수적 우위는 지금껏 잃어버린 자신감을 되찾을 수 있게 했다.

실제로 방금 전, 외침이 조금 과장된 면이 있지만 완전 불가능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나만 빼고.

요한이 내가 느꼈던 것만큼의 강자라면, 여섯 배의 전력으로도 위험할 수 있었다.

그도 유럽을 통합해낸 만큼, 바보가 아니고, 아군 측에 지원군이 도착한 사실을 알고 있을 것이다.

“내일 날이 밝는 대로 총공세를 펼칠 겁니다. 모두 준비해주시기 바랍니다.”

제갈민이 말했다.

현재 타이탄과의 전쟁을 책임이지고 있는 중국의 총사령이다.

지금까지는 다른 이들에게 맡겨 놨지만 저지선이 북경 코앞까지 밀리고, 지원군이 모두 합류하면서 직접 나섰다.

수장이 직접 나서며 연이은 패전으로 떨어진 군의 사기를 끌어올리려는 목적도 있었다.

“알겠소.”

“알겠습니다.”

나를 시작으로 러시아와 미국의 헌터들이 연이어 답하며, 각자 내일 있을 전투를 준비하기 위해 막사를 빠져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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