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28
128화. 화우.
나흘 만에 돌아온 집은 조용했다.
공항에서와 같은 환대도 없었다.
지금껏 집을 비우는 일이 많았기에 나흘 정도 비운 것은 외출 축에도 끼지 못한다.
부모님은 이제 나를 오매불망 기다리기만 하지 않았다.
아버지는 직장에, 어머니는 모임에 나갔다.
집에는 공항에 나를 마중 나왔던 형만 함께였다.
아. 여전히 내 다리 뒤에 숨어 눈치를 보는 화우도 있었다.
“고생했다.”
형은 내가 중국에서 한 일에 대해 알고 있다.
일전에 마주했던, 살막의 우두머리를 죽이기 위해 나섰다는 것을.
그렇기에 출발 전까지 함께 가겠다며 그렇데 떼를 쓰지 않았던가.
떠나보낸 뒤에도 걱정으로 밤잠을 설칠 정도였다.
지난 나흘간 걱정이 과해 행여 심마에 들까, 수련도 제대로 하지 못했다.
대련이라는 이름으로 몇 번이고 검을 맞대어 왔기에 동생의 능력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
눈앞의 동생은 결코 쉽게 당하지 않을 고수다.
그러나 일전에 보았던 여문휘란 자도 녹록치 않았다.
실제로 암습이라고는 하나, 어깨가 꿰뚫리는 위험에 처하기도 했었다.
그런 적을 상대로 이토록 멀쩡한 모습으로 돌아와 줘서 고마웠다.
“고생은 무슨.”
나는 어색한 공기에 손을 내저었다.
살수 시절에는 임무를 끝내고 복귀해도, 모두가 임무의 성패에만 관심이 있었을 뿐, 지금과 같이 나를 걱정해주는 사람은 없었다.
간혹 7호와 마주치면 안부를 물어오긴 했지만 각기 임무가 있었기에 십년 세월에 한두 번에 불과했다.
그 때도 나는 괜한 감정이 들까, 별말 없이 고개만 끄덕이고는 바로 다음 임무에 나서곤 했다.
그렇기에 공항에서의 환대도 낯설었기에 괜히 곧바로 일적인 얘기를 꺼내, 신유연에 관한 것으로 대화를 돌린 것도 있었다.
지금도 고작 한 마디지만 고스란히 전해져 오는 형의 마음이 어색했다.
비단 오늘 뿐만은 아니지만 여전히 적응이 되질 않았다.
“그래? 그럼 기념품이라도 좀 주던가?”
형도 내 감정을 느꼈는지, 실없는 농담을 하며 어색한 분위기를 환기하고자 했다.
그러나 배를 타고 움직여, 흑사회부터 여문휘까지 한 시도 쉴 새 없는 일정이었다.
기념품 따위를 챙길 여유는 없었다.
대신 나는 형에게 더한 선물을 제안했다.
“내일 무공 봐줄게.”
“진짜? 진짜지?”
내 말에 형이 반색하며 물었다.
이제 완전 한 명의 무인이 된 형에게 가르침은 그 어떤 선물보다 값진 선물이었다.
“어.”
“약속 한 거다. 무르기 없다.”
형은 몇 번이나 나에게 확인하고는 만족한 얼굴로 제 방으로 들어갔다.
지난 나흘을 내 걱정으로 밤잠을 설쳤다면, 오늘은 기대감으로 잠을 이루지 못할 것 같았다.
***
뒤늦게 돌아온 부모님에게도 화우를 소개했다.
고작 여덟 살짜리 아이를 따로 살게 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기에 집으로 데려오긴 했지만 일단 부모님의 허락은 받아야했다.
“그래. 화우라고 했니? 쉽진 않겠지만 최대한 내 집이다 생각하고 편히 지내렴.”
혹, 반대하시면 어떻게 하나 걱정했는데, 다행히 부모님은 화우를 따뜻하게 받아 주었다.
대략적인 화우의 얘기를 듣고, 눈물을 글썽이시기도 했다.
“예. 감사합니다.”
계속해서 눈치를 보던 화우도 부모님의 대가없는 따뜻함에 조금은 마음의 문을 조금은 연 듯했다.
말처럼 편히 지내는 게 쉽겠냐마는 적어도 겉으로 내색하지는 않았다.
다음날,
나는 아침을 든든히 먹인 화우를 데리고 수련장으로 향했다.
예상대로 기대감에 잠을 설친 형도 함께였다.
절정에 이른 무인이 하룻밤 잠을 못 잤다 해서 문제 될 건 없지만 형의 얼굴은 지난 나흘간의 고생이 더해져 조금 초췌해보였다.
그럼에도 편한 휴식을 포기하고 내게 가르침을 받기 위해 따라나섰다.
성취부터 무공에 대한 열망까지, 이제 어엿한 한 명의 무인이 되어 있는 형이었다.
“앞으로 네가 무공을 익힐 곳이다.”
수련장을 처음 본 화우의 눈이 반짝반짝 빛났다.
앞으로 자신이 무공이라는 강한 힘을 가지게 될 장소.
지금까지는 실감을 못하던 것들이 조금씩 와 닿았다.
이른 아침부터 검과 도끼를 휘두르며 구슬땀을 흘리고 있는 팀원들이 있기에 더욱 그렇게 느꼈을지도 몰랐다.
“오셨습니까?”
팀원들이 나를 맞이했다.
땀을 흘리는 것을 보니, 내공을 사용하지 않고 초식을 운용하는 수련 중이었던 것으로 보였다.
“계속해라.”
“예.”
내 말에 팀원들은 가볍게 포권을 취해보이고는 다시 제각기 수련에 빠져들었다.
나는 이미 초식이라는 형(形)에 구애 맞지 않는 경지였지만 팀원들에게는 기초를 다지는 중요한 수련이었다.
“우선...”
팀원들을 잠시 지켜보던 내 시선이 다시 화우에게로 향했다.
도저히 여덟 살이라는 제 나이대로 보이지 않는, 형편없는 아이의 몰골이 보였다.
때를 빼고, 깨끗한 옷을 입히고, 며칠간 부족함 없이 먹이기도 했다.
그러나 그 며칠만으로는 부진한 발육을 해결할 수 없었다.
“뛰어라.”
내 손가락이 수련장을 가리켰다.
화우가 영문을 모르겠다는 눈으로 나를 바라봤다.
그리고 이어진 내 말에 당황한 기색을 내비쳤다.
“네가 오늘부터 할 일은 수련장 외각을 따라 뛰는 것이다. 100바퀴만.”
단순 무식한 방법이다.
그러나 명문이라 불리는 무림문파에서도 쓰는 꽤나 효과적인 방법이다.
사실상, 아무런 훈련도 받지 않은 아이가 수련장을 100바퀴나 뛰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
미리 가늠하는 것이다.
이 아이가 얼마만큼의 성장을 이룩할 수 있을지.
10바퀴에 힘들다고 무너지는 아이와 걸어서라도 절반인 50바퀴를 채우는 아이, 그리고 끝끝내 100바퀴를 채우는 아이.
시작부터 다른 아이들은 그 끝도 다르다.
물론, 한 번에 수십 수백의 아이들을 제자로 받아들이는 무림문파이기에 그러한 잣대로 아이들을 평가하는 것이다.
근골을 기반으로 제자를 선별하긴 했겠지만 정신력은 또 다른 분야다.
날 때부터 가진 재능을 뛰어넘기 어렵지만 가끔 범인을 초월하는 정신력은 그 재능을 뛰어 넘는다.
그렇기에 선택과 집중을 위해 꼭 달리기가 아니더라도 비슷한 과정을 거친다.
그게 아니더라도 달리기는 체력을 길러주기에 기본적인 훈련이다.
특히나 화우같이 발육이 더뎌 체력에 문제가 있는 아이에게는 꼭 필요한 과정이었다.
“예.”
화우는 내 말에 어떠한 의문도 가지지 않고 수련장을 뛰기 시작했다.
처음부터 속도를 조절하는 것을 보니, 머리가 나쁘지도 않았다.
***
“태성.”
화우가 수련장 외각을 돌며 달리기를 시작하자, 나는 형을 불렀다.
무공을 봐주겠다는 어제의 약속을 지킬 차례였다.
수련장에서는 팀장과 팀원의 관계였기 때문에 형이라는 호칭은 생략했다.
“예.”
자신을 부르는 목소리에 형이 환한 얼굴로 답했다.
수련에 열중하는 팀원들과 달리, 괜히 내 주위를 서성이며 가르침을 기다리던 형이었다.
스릉.
형은 곧장 도를 꺼내들었다.
진도였다.
부상을 염려해 목도나, 일부러 날을 무디게 만든 도를 쓰는 경지는 지났다.
그게 아니더라도, 나와 수련할 때는 팀원들에게 항상 진검과 진도를 사용하도록 했다.
“시작해.”
내가 팀원들을 가르치는 방법은 대단하지 않았다.
대련을 통해 자신의 모든 것을 쏟아내고 스스로 부족한 점을 느끼도록 했다.
무공을 익히며 다양한 적들을 만난 팀원들이지만 전력을 다해 부딪치는 경험은 적다.
주 적이 몬스터였기에 약한 다수의 적을 홀로 상대하거나, 강한 단일의 적을 여럿이 합공하는 경험은 많지만 일대일의 경험은 적을 수밖에 없었다.
지금과 같은 지도대련은 본능에 따라 행동하는 몬스터는 채워줄 수 없는 부분이었다.
“갑니다!”
발도와 동시에 형의 몸이 내게로 쏘아졌다.
앞을 가로막는 모두를 부숴버릴 듯, 패도적인 기운이 나를 덮쳐왔다.
콰앙!
혼신의 힘을 담은 내려치기가 허망하게 막혔다.
산도 쪼개버릴 수 있을 정도의 거력이 담겨 있었지만 내 검은 산보다 단단했다.
형도 당연한 결과라는 듯, 당황하지 않고 곧바로 공세를 이어갔다.
콰쾅!
도와 검이 부딪치는 것이라고는 믿기 어려운 폭발음이 연이어 터졌다.
조용히 달리던 화우가 움찔하는 모습이 보였다.
그러나 이내 소음에 신경을 끄고 다시 달리기 시작했다.
제법 뛰어난 집중력이다.
제각기 수련을 하던 팀원들도 어느새 나와 형 주변으로 모여 대련을 관전하고 있었다.
혼자만의 수련도 중요하지만 남의 대련을 지켜보면서도 많은 것을 배울 수 있다.
특히, 제각기 다른 무기를 사용하고 있었기에 상대와 자신을 비교해가며 느끼는 것이 적지 않았다.
“허억... 허억...”
약 오 분간 쉴 새 없이 공격을 퍼붓던 형이 거친 숨을 내쉬었다,
한 차례 모든 초식을 쏟아내고, 몇 번의 연계까지 더해졌다.
내공도 아끼지 않았기에 지치는 것은 당연했다.
“다시 갑니다.”
그러나 형은 대련을 멈추지 않았다.
이번에는 스스로 느끼기에 미진했던 부분을 보완했다.
눈에 띄게 나아지는 발전은 없었지만 한결 나아진 도가 부딪쳐왔다.
몸이 달아 급했던 마음이 사라지고, 패에 부드러움이 섞였다.
그러나 그뿐.
“흡!”
자신의 빈틈을 파고드는 내 검에 형이 화들짝 놀라며 한 발 뒤로 물러섰다.
스스로 부족한 점을 메울 수도 있지만 내가 지적해야만 깨달을 수 있는 부분도 있었다.
방금 전 내 검은 반복 속에 스스로 깨닫지 못할 정도로 익숙해져버린 빈틈을 지적한 것이다.
이러한 과정이 몇 차례 반복됐다.
형은 계속 공격을 퍼붓고, 나는 방어에 집중하며 간간히 반격을 섞었다.
절정.
한 명의 완성된 무인이라고 할 수 있지만 완벽한 무인은 아니다.
현경의 경지에 오른 나조차도 스스로 완벽하다 말하지 못하는데, 절정의 무인임에야.
“후읍... 감사합니다!”
대련이 끝나고, 형은 만족스러운 얼굴로 포권을 취하며 가르침에 대해 감사했다.
고작 삼십 분 남짓한 대련이었지만 몇날며칠을 혼자 수련한 것보다 얻은 게 많다.
그렇기에 다들 내 가르침에 목말라 하는 것이다.
“김시연. 나와라.”
내 부름에 이번에는 김시연이 나섰다.
누군가와 대련을 했다고 해서 항상 팀원 전원과 대련을 해왔던 것이 아니기에 형을 부러운 눈으로 바라보던 김시연의 표정이 환해졌다.
***
“감사합니다.”
“많이 배웠습니다.”
김시연에 이어 장만식, 김영기와도 한 차례씩 대련을 가졌다.
대략 삼십 분 이상씩을 할애한 탓에 시간은 두 시간이 훌쩍 넘었다.
“근성은 있네요.”
“귀가 먹먹할 텐데 아랑곳 않는 걸 보니, 집중력도 있고.”
“체력만 받쳐주면 되겠습니다.”
팀원들이 화우를 보며 한 마디씩 주고받았다.
두 시간.
화우는 그 때까지도 계속해서 달리는 중이었다.
아니, 달리기라고 부르기에도 뭐하다.
두 다리는 바삐 움직이는 것 같지만 지칠 대로 지친 몸은 걷는 것보다 느리게 나아가고 있었다.
그럼에도 화우는 멈추지 않았다.
지금까지 45바퀴.
아직 절반도 채우지 못한 상태에서 쓰러질 듯 위태로웠지만 두 다리는 끊임없이 움직였다.
충분했다.
내가 원한 것도 100바퀴를 채우는 것이 아니다.
그러나 나는 계속해서 달리도록 나뒀다..
“그만.”
화우가 기다시피 50바퀴를 채웠을 때, 그제야 나는 화우를 멈춰 세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