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27
127화. 귀국.
중국에서의 일을 마무리한 나는 한국으로의 귀국을 앞두고 있었다.
돌아갈 때는 올 때와 달리, 불편하게 배를 탈 필요가 없었다.
제갈민은 친히 전세기를 내어주었기 때문이다.
말은 내 편의를 위해서 라고는 하지만 한시 빨리 내가 중국을 떠나는 마음이 크지 않을까 싶다.
이륙 즉시, 피격하려는 속셈일 수도 있다.
하지만 생각은 했더라도 쉽게 실행하지는 못할 거다.
낙하산이 있는 한 내가 죽을 확률보다 살아날 확률이 높다.
만약 내가 죽는다 하더라도 공중에서 산화된 내 시체를 확인할 수 없으니, 오랜 시간 두려움에 떨며 살아야 할 테니까.
어쨌든, 제갈민 덕분에 편하게 돌아갈 수 있게 된 나는 탑승을 위한 준비를 막 마친 상태였다.
짐은 승무원들이 미리 챙겼고, 몸만 남은 나는 나를 배웅하기 위해 나온 이들과 마지막 인사를 나눴다.
“벌써 떠나신다니 아쉽네요.”
말과는 달리, 몹시 후련하다는 얼굴을 한 이은수다.
바로 돌아간다는 내 말에 ‘정말요? 관광이라도 하고, 좀 더 있다 가시지...’라며 정말 환하게 웃는 모습이 뇌리에 선명하게 남아 있었다.
“아저씨. 정말 고맙습니다.”
배웅을 나온 것은 이은수뿐만이 아니었다.
내가 구했던 아이들도 함께였다.
이은수를 통해 아이들의 부모를 찾아주려 했지만 찾을 수 없었다.
애초에 아이들 중, 절반 이상이 태어날 때부터 버려져 출신을 알기 어려운 고아였던 탓도 있지만, 간신히 찾아낸 나머지 아이들의 부모들도 전부 아이들이 살막에게 납치된 시기에 실종됐기 때문이다.
아이들에게는 말하지 않았지만 살막에 의해 살해당했을 가능성이 높았다.
그렇기에 나는 아이들을 집에 보내주겠다는 약속을 지키지 못했다.
심지어 아이 둘은 약해진 몸에 찾아온 병마를 이기지 못하고 돌아오지 못할 곳으로 떠나기까지 했다.
그렇기에 나를 배웅하기 위해 나온 것은 여덟뿐이었다.
“아이들은 걱정 마세요.”
남은 여덟 명의 아이 중, 일곱은 이은수가 돌봐주기로 했다.
그녀가 직접 돌보는 것이 아니라, 시설을 짓고 사람을 들이는 것이긴 하지만 잠깐의 동정을 끝으로 외면하지 않은 것만 해도 칭찬받아 마땅한 일이었다.
처음에는 거부반응을 보였던 아이들도 고작 하루 사이에 이은수에게 마음의 문을 열었다.
내가 시킨 것은 길잡이 역할 뿐이었는데, 의외로 보모 역할도 잘 소화해내는 이은수였다.
어쩌면, 정보원보다는 이쪽이 더 적성에 맞을지도 몰랐다.
“애들아. 아저씨랑 화우에게 인사해야지.”
남은 일곱 아이들 외에 단 한 아이만이 나를 따라가기로 했다.
화우였다.
어쩌다보니, 화우는 내가 제자로 들이기로 했다.
***
제갈민을 만나고 돌아왔을 때, 나를 가장 먼저 찾은 것은 이은수가 아닌 화우였다.
다른 아이들은 이은수의 도움을 받아 치료를 받기 위해 병원에 가있었지만 화우는 아픈 몸으로 내가 돌아오기를 끝까지 기다렸다.
“저도 헌터님처럼 강해지고 싶습니다.”
자신을 응시하는 나를 보며 화우가 내뱉은 첫말이었다.
“사람들에게 들었습니다. 저희를 납치한 나쁜 놈들을 모조리 죽이셨다고. 제발 저를 제자로 받아주세요.”
화우가 털썩 무릎을 꿇었다.
자신의 절실함을 강조하고 싶었겠지만 나에게는 그리 와 닿지 않는 행동이었다.
아이를 구한 것도 잠깐의 변덕이었을 뿐이다.
나는 제자를 들이거나 할 생각이 없었다.
팀원들이 제자나 마찬가지였지만 그들에게는 내 무공을 가르친 것이 아니니.
“제자?”
그래도 화우의 말을 듣고 보니, 자연스럽게 아이의 근골에 눈이 갔다.
영양상태가 좋지 않아 발육이 나쁘기는 하지만 당한 일을 생각하면, 근골이 나쁜 편은 아니다.
아니, 오히려 뛰어난 축에 속했다.
잘 가르친다면, 꽤나 뛰어난 무인이 될 수 있을 듯했다.
그러나 또다시 변덕을 부릴 만큼의 무골은 아니었다.
“널 납치한 이들은 모두 죽었다. 그러니, 이곳에서 더 이상 고통 받는 일 없이 다른 아이들과 평범하게 살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도 강해지고 싶으냐?”
“예.”
“네가 지금껏 겪은 것들보다 힘들 수도 있다. 아니, 확실히 더 고통스럽고 힘든 시간이 될 것이다. 몇 번이고 죽고 싶을 지도 모른다.”
“상관없습니다.”
화우는 확고하게 답했다.
어린 아이의 치기어린 생각이라고 여기기에는 그 눈빛이 진지했다.
“그렇게까지 강해지고자 하는 이유가 무엇이냐?”
“남은 살막에 잔재들에게 복수하고 싶은 마음도 있습니다. 동생들을 든든하게 지켜주고 싶은 마음도 있습니다. 허나 그보다는 앞으로 누구도 제 삶을 좌지우지하지 못하게 하고 싶습니다.”
“나는 내일 떠날 거다.”
단순히 복수심 따위를 이유로 들었으면, 고민도하지 않고 외면했을 것이다.
다른 아이들을 돕고 싶다는 이유도 마찬가지.
그러한 마음들은 고된 수련 속에서 깎여 마모 될 수밖에 없다.
내가 느끼기에 인간이 남을 위한 마음은 딱 그 정도다.
그렇기에 내가 확인하고자 한 것은 순수하게 자신을 위해 강해지고자 하는 열망이었다.
“예?...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영문 모를 표정을 지어보이던 화우는 이내 내가 허락했음을 깨닫고 고개를 숙였다.
무릎을 꿇은 상태에서 너무 깊게 숙인 탓에 머리를 바닥에 찧어 버렸지만 고통을 느끼지도 못하는지, 화우의 얼굴에는 짙은 미소가 걸려있었다.
***
“안녕히 가세요. 고맙습니다.”
“화우 형, 잘 가.”
“오빠! 우리 걱정은 하지 말고 잘 다녀와!”
일곱 아이들이 하나같이 나에게 고개를 꾸벅 숙인 뒤, 화우에게는 제각기 인사를 건넸다.
“우리 잊어버리면 안 돼! 으아앙!”
“흑... 나중에 꼭 다시 와야 돼!”
인사도 잠시. 한 아이의 울음을 시작으로 순식간에 눈물바다로 변해버렸다.
“응!...”
입술을 깨물며 억지로 참아내고 있었지만 화우의 눈에도 툭 치면 떨어질 듯, 눈물이 고였다.
익숙하지 않은 이별이기에 더 어려웠다.
“지금이라도 원한다면, 남아도 상관없다.”
화우의 머리에 손을 얹은 내가 말했다.
이별은 지체할수록 더 힘들어지기만 할뿐이다.
“아닙니다.”
화우는 일말의 고민도 없이 답했다.
그리고는 곧장 등을 돌렸다.
나와 화우는 그렇게 중국을 떠났다.
***
이은수만 배웅을 나왔던 중국에서와는 달리, 한국에는 팀원들부터 시작해 김원철, 박동석 등 꽤나 많은 사람이 마중을 나와 있었다.
나는 팀원들과 박동석 등과 짧은 해후의 시간을 가진뒤, 김원철과 유인원과 따로 자리를 가졌다.
그간의 소식을 전해 듣기 위해서다.
내가 한국을 비운 기간은 사흘 남짓.
사흘 사이에 일이 있으면, 얼마나 많은 일이 있었겠냐마는 꽤나 커다란 소식이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신유연이 청룡 길드를 해산하고 싶다고 했다고요?”
신유연은 수도권의 절반을 책임지고 있는 청룡 길드의 길드장이자, 한국에 몇 안 되는 S급 헌터다.
그런 거물이 갑자기 길드를 해산하고 은퇴하고 싶다는 뜻을 밝혀 왔으니, 협회 입장에서는 놀랄만했다.
“예, 아무래도 그간 마음고생이 심했던 듯합니다. 협회를 찾아왔을 때, 그 얼굴이 말이 아니었습니다.”
나는 김원철의 말을 단번에 이해했다.
과거 살막의 편에 섰다가 내 무위를 보고 마음을 돌린 신유연이다.
그러나 나에게 신뢰는 얻지는 못했다.
배신자가 잠시 자신의 안위를 위해 나를 따랐다고 믿음을 줄 수는 없는 노릇이다.
때문에 던전에서 나온 직후, 여러 일들이 연이어 일어나면서 존재 자체를 잊고 있었다.
S급 헌터가 다른 헌터들에게는 추앙받는 존재일지 몰라도 나에게는 있으나마나 한 존재.
무력은 없는 것보다는 나을지 모르나, 믿을 수 없기에 없느니만 못했다.
그렇게 내 기억 속에서 지워져 지금까지 방치하다시피 됐고, 그 시간동안 신유연은 전전긍긍하며 고민하고 고민하다 길드의 해산과 은퇴라는 선택을 내리게 된 것이다.
“허나 정말 애써 키운 길드를 해산하고 은퇴하려는 건 아닐 겁니다. 이제 그만 자신의 처우를 결정해 달라는 의미겠지요.”
“협회장님과 길드장님이 보기에는 어떻습니까?”
나는 유인원과 김원철의 의견을 물었다.
완전히 잊고 있던 나보다는 신유연을 더 자세히 살핀 그들이다.
이전과 같지는 않지만 여전히 S급 헌터의 위상은 낮지 않다.
그 말, 행동 하나하나가 한국 헌터계를 뒤흔들 수 있는 만큼, 계속해서 주시해 왔을 테고, 생각해왔을 테니, 그들의 의견을 들어보려는 것이다.
“그간 보인 행보로 보아, 살막과의 연은 완전히 끊어낸 듯합니다.”
“신유연과 청룡 길드까지 한 울타리 안에 묶인 다면, 한국은 한층 더 안전해 질 겁니다.”
애초에 둘이 생각하는 신유연은 한국 헌터 계를 지탱하는 거목 중 하나다.
비록 잠시 삿된 길로 빠지긴 했지만 이대로 잃기에는 아까운 인재였다.
“흠... 일단 한 번 만나봐야겠습니다.”
“알겠습니다. 빠른 시일 내로 자리를 만들도록 하겠습니다.”
내게는 있으나마나 한 존재였지만 둘이 필요로 하다면, 다시 품는 건 어렵지 않았다.
둘의 생각과 달리, 신유연의 뜻이 확고할 수도 있지만 아마 그렇지 않을 확률이 높았다.
이미 잡았던 권력을 놓기란 목숨을 포기하는 것만큼이나 어려운 일이다.
어쨌든, 한 번 만나보고 결정을 하긴 해야 할 것 같았다.
“헌데... 저 아이가 화우라는 아이입니까?”
김원철이 뒤늦게 화우에 대해 물어왔다.
비행기에서 내린 순간부터 낯선 공기에 내 다리 뒤로 숨어 얼굴만 내밀고 있던 화우다.
낯선 어른들이 가득한 탓에 더 긴장했을지도 모른다.
나로 인해 많이 나아졌지만 아직 어른은 화우에게 공포의 대상이었다.
“예.”
“각성을 한 것 같지는 않은데...”
김원철의 표정에서 의문이 새어나왔다.
이은수에게 태빈이 아이 하나를 제자로 들였다는 얘기는 들었다.
아이라고 하긴 했지만 사실 이토록 어린 아이일거라고는 생각지 못했다.
고작 해야 일고여덟 살로 보이는 아이에게서 김원철은 태빈에 제자로 택했을 만한 각성 등의 이유를 찾을 수 없었다.
“하긴, 그게 뭐가 중요하겠습니까. 필요한 것이 있다면 말씀해 주십시오. 힘닿는 대로 도와드리겠습니다.”
제자로 들였다 하여 꼭 헌터에 대해 가르쳐야 하는 것은 아니다.
그저 태빈이 불쌍한 마음에 아이 하나를 거두어 들였다 여겼다.
김원철이 아는 태빈은 겉은 차갑지만 속은 따뜻한 사내였으니까.
“신경 써 주셔서 감사합니다.”
김원철의 속내를 모르는 나는 그저 도움에 감사를 표했다.
앞으로 한국에 살게 될 아이다.
중국에서는 부모는커녕, 출생신고조차 되어 있지 않았다.
때문에 나는 김원철에게 필요한 서류 절차를 맡겼다.
이런 사소한 일을 맡기기에는 김원철의 자리가 결코 낮지 않지만 나도, 김원철도 그러한 점은 전혀 신경 쓰지 않았다.
“그럼, 청룡 길드장과 약속을 잡는 대로 연락드리겠습니다.”
김원철은 중국에서 고생했을 나를 오래 붙잡지 않았다.
이미 오래 붙잡았다 할 수 있지만 신유연에 관한 문제가 그들에게는 시급을 다투는 일이라 어쩔 수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