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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살수다-118화 (118/150)

# 118

118화. 중국행(3).

“후욱...”

손에 쥔 힘을 조금 느슨하게 풀었다.

사내는 다시금 폐를 향해 쏟아지는 공기의 소중함을 느끼며 가쁜 숨을 들이마셨다.

두려움 가득한 표정으로 눈동자를 바삐 굴리는 모습이 보였다.

“네 놈은 누구지?”

“진첸입니다.”

사내가 답했다.

그러나 내가 원하는 답은 사내의 이름 따위가 아니었다.

나는 슬그머니 손에 다시 힘을 주었다.

“큭... 흑사회...”

진첸은 제법 눈치가 빠른 사내였다.

자신의 숨통이 막히기 전에 재빨리 입을 열었고, 내가 원하는 답을 말할 수 있었다.

내 시선이 이은수에게로 향했다.

“중국의 대표적인 범죄조직이에요. 과거에도 그랬지만 변혁 이후, 헌터들이 생겨나면서 더 강력해진 힘으로 중국의 밤을 지배하고 있어요. 낮의 중국과 밤의 중국은 황제가 다르다는 말이 있을 정도죠.”

“흑사회가 어째서 당신을 노리는 거지?”

“모르겠어요... 저나 흑화는 흑사회와 얽힐 이유가 없는데...”

이은수는 A급 헌터다.

정체를 숨기기 위해 작은 정보조직, 흑화를 운영하고 있기도 하고.

아무리 중국의 밤을 지배하고 있는 흑사회라 해도 A급 헌터이자, 한 정보조직의 수장을 목표로 했을 때는 그만한 이유가 있을 터.

그럼에도 이은수는 정말 영문을 모르겠다는 듯, 고개를 저었다.

“목적이 뭐지?”

나는 다시 사내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미행을 당한 이은수가 모른다면, 답을 들을 곳은 미행을 한 사내뿐이었으니까.

“모릅니다. 저는 명령을 따랐을 뿐입니다.”

“명령?”

“예. 보스에게서 샤오화라는 여자에 대한 정보를 캐라는 명령이 있었습니다.”

“이유는?”

“그것까지는...”

그러나 사내도 자신이 이은수를 미행하는 목적은 알지 못했다.

그저 그녀의 일거수일투족을 감시하라는 명령을 받았고, 그 명령을 이행했을 뿐이었다.

사내의 눈에는 두려움만 가득할 뿐, 거짓을 고하는 기색은 없었다.

혹시나 해서 사내의 목을 쥔 손에 힘을 더해봤지만 결과는 같았다.

제발 살려달라는 간절함만이 더해졌을 뿐이다.

“네 놈의 보스가 있는 곳이 어디지?”

“...”

“흑사회의 보스는 어젯밤 판구치라는 호텔에 머물고 있던 것으로 알고 있어요. 특별한 일이 없다면, 아직 호텔에 있을 거예요.”

대답은 사내가 아닌 이은수의 입에서 흘러나왔다.

그녀도 정보원인 만큼, 중국 최대의 범죄조직 보스의 동향 정도는 파악하고 있었다.

어젯밤에 확인한 정보인 만큼, 지금까지 호텔에 남아 있는 게 확실하진 않았지만 사내의 눈을 보니, 틀리지 않은 모양이었다.

연기가 아니라면, 저 세차게 흔들리는 눈동자가 거짓을 말하는 것은 아닐 테니 말이다.

“흐음...”

더 이상 사내에게 알아낼 정보는 없었다.

내 눈빛이 차갑게 가라앉았다.

“의뢰. 의뢰를 받았을 겁니다. 이전에도 이런 식으로 의뢰를 받고 상대를 미행한 적이 있습니다. 또 S급 헌터 하나를 포함한 호위 넷이 항상 보스 곁을 지키고 있습니다. 보스 스스로도 S급 헌터이기도 하고요.”

“의뢰?”

“예...”

“의뢰주는?”

“의뢰주는 보스만 알고 있습니다. 저는 시키는 대로 했을 뿐입니다. 제발 살려주십시오. 보스가 있는 곳까지 안내해드리겠습니다.”

내 눈빛에서 살의를 읽은 사내는 머리를 쥐어짜내며 자신의 필요성을 강조하기 위해 노력했다.

그러나 급한 마음에 횡설수설하며 꺼내는 것들인 만큼, 하나 같이 쓸모없는 것들뿐이었다.

굳이 사내에게서 들을 필요가 없거나, 애초에 알 필요가 없거나.

뚜둑.

손에 힘을 주자, 둔탁한 소리와 함께 사내의 목이 힘없이 꺾였다.

나는 물론이고, 이은수 또한 살인에 대한 거부감을 보이진 않았다.

그녀는 그저 시체를 처리하기 위해 전화를 들어올렸을 뿐이다.

그녀는 중국의 정보를 책임지는 총책임자.

시체하나 처리하는 것쯤은 일도 아니었다.

전화로 위치를 말해주는 것으로 가볍게 시체 처리를 끝내고, 나는 이은수는 판구치 호텔로 향했다.

***

우선 호텔의 맞은 편 건물 옥상에서 동태를 살폈다.

호화롭다는 점을 빼면, 겉으로 보이기에는 특별할 게 없는 호텔이다.

그러나 호텔의 최상층에서 확실히 S급 헌터를 포함한 다수 헌터들의 기척이 느껴졌다.

무인은 절정의 경지에 오르면, 자신의 기도를 어느 정도 감출 수 있지만 이세계의 S급 헌터들은 아니다.

자신의 존재감을 드러내다 못해 기세를 줄줄 흘려대는 탓에 벽으로 가려져 있음에도 그들의 위치가 눈에 보이는 것처럼 훤했다.

고급 호텔인 만큼, 헌터들이 숙박을 할 수는 있지만 이처럼 방 하나를 호위하듯, 한 층에 몰려있는 것은 흔치 않은 일이었다.

“갑시다.”

“네...? 잠시 만요!”

위치파악을 끝내고 호텔로 향하려는 내 발길을 이은수가 애타는 목소리로 붙잡았다.

나는 무슨 문제라도 있냐는 물음을 담은 눈으로 그녀를 바라봤다.

“그 자가 분명 S급 헌터 하나에 A급 헌터 다수가 호위를 하고 있다고 했어요. 흑사회 보스 본인이 S급 헌터이기도 하고요.”

“알고 있습니다.”

“알고 있다고요?”

이은수의 물음에는 알고도 어떻게 그렇게 무턱대고 움직일 수 있냐는 의미가 담겨 있었다.

중국에 있던 탓에 그녀는 태빈에 대한 얘기를 자세히 듣지 못했다.

그저 협회에 중요한 인물이고, 전폭적으로 지원하라는 간단한 명령만 하달 받았을 뿐이다.

그러니, 그녀의 반응은 당연했다.

미행하던 사내를 사로잡은 것으로, 태빈이 강하다는 것은 알고 있지만 S급 헌터가 포함된 다수의 헌터는 아까의 사내와는 수준 자체가 달랐다.

“예.”

나는 가볍게 고개를 끄덕인 뒤, 마저 걸음을 옮겼다.

백 번 설명하는 것보다 한 번 보여주는 게 설명하기 쉬웠다.

나는 당당하게 호텔 정문으로 들어갔다.

상대해야할 적이 나보다 강하거나, 엇비슷할 경우라면 모를까, 고작 절정 급 몇 때문에 잠입 등으로 기력을 낭비할 생각은 없었다.

“미친...”

이은수는 마치 사지로 들어가는 사람처럼 검게 죽은 얼굴로 욕설을 내뱉으면서도 결국 내 뒤를 따랐다.

미친 짓이라는 것을 알지만 협회의 명령을 어길 수도 없었고, 여차하면 도망은 칠 수 있겠지 라며 스스로를 위안했다.

“어서 오십시오!”

호텔 로비에서는 아무도 우리를 제재하지 않았다.

흑사회의 보스가 머물고 있다고는 하나, 최상층 스위트룸에 한해서지 수많은 사람들이 평범하게 호텔을 이용하고 있었다.

문제는 최상층으로 향하는 엘리베이터 앞에서부터 발생했다.

“무슨 일이십니까?”

두 명의 사내가 엘리베이터 입구를 지키고 가로 막았다.

둘 모두 B급으로, 고작 로비의 엘리베이터를 지키고 있는 만큼, 수준이 높지는 않았다.

이은수도 별다른 위협을 느끼지 못하고, 내가 어떻게 하나 지켜봤다.

툭. 툭.

내 손에서 쏘아져 나간 지풍이 사내 둘의 혈을 눌렀다.

점혈을 하는 것보다 죽이는 게 쉬울 정도로 약한 상대였지만 평범한 사람들이 오가는 로비에서 소란을 일으킬 생각은 없었다.

순식간에 점혈을 당한 사내 둘은 자신에게 일어난 일을 인지하지 못했다.

그러나 이내, 자신의 몸을 통제할 수 없음을 깨닫고, 당황과 공포를 담아 눈동자를 굴렸다.

나는 둘을 무시한 채, 엘리베이터 버튼을 눌렀다.

오로지 최상층만을 오가는 엘리베이터는 1층에 대기되어있는 상태였다.

“어떻게 한 거죠? 마법 계열 헌터셨나요?”

나를 따라 엘리베이터에 오른 이은수가 석상처럼 굳어진 사내들을 보며 물었다.

무척이나 신기한 듯, 문이 닫히고 있음에도 눈을 떼지 못하고 있었다.

띵!

이은수가 호기심에 재잘대는 사이, 최상층에 도착한 엘리베이터의 문이 열렸다.

“인사가 거칠군.”

“그러게요.”

문이 열림과 동시에 두 개의 검이 쏟아져 들어왔다.

그러나 검들은 본래의 나와 이은수의 목덜미라는 본래의 목적을 이룰 수 없었다.

각기 내 손과 이은수의 검집에 막혀 나아가지 못했다.

“아니?!”

기습에 실패한 둘 모두 놀람을 숨기지 못했지만 특히, 내 맨 손에 검신이 붙잡힌 헌터의 부릅떠진 눈이 인상적이었다.

퉁!

나는 목 바로 앞에서 막혀있는 검신 옆면을 손가락으로 튕겼다.

검신이 부러질 듯 출렁이며 그 충격이 고스란히 검을 쥐고 있는 헌터에게까지 흘러 들어갔다.

“커억.”

헌터는 피를 토하며 검과 함께 튕겨져 나갔다.

내가 운 좋게 이은수에게 검을 겨눠, 같은 일을 당하지 않은 헌터를 바라봤다.

꿀꺽.

헌터는 마른 침을 삼키며 주춤주춤 뒤로 물러났다.

우리에게 겨눈 검을 거두진 않은 것으로 보아, 본분을 잊은 것은 아니지만 자신의 상대가 아니라는 것까지 못 알아보진 않았다.

“누구냐?!”

물러나는 사내를 일견하고 엘리베이터를 나오니, 그새 환영인파가 몰려있었다.

열 명의 사내들이 병장기를 빼어들고 흉흉한 기세를 내뿜으며 우리를 맞이했다.

처음 이은수를 미행했던 사내가 말한 대로 S급 헌터도 하나 보였다.

“보스를 만나러 왔다.”

“큭큭!”

내 말에 곳곳에서 웃음이 터졌다.

로비의 헌터 둘과 기습을 나섰던 둘까지, 넷이 당했음에도 긴장한 기색은 찾아 볼 수 없었다.

엘리베이터를 지키던 넷은 고작 B급들.

그들이 무력하게 당하긴 했지만 자신들이 당할 거라고는 전혀 생각지 않는 것이다.

“왕진씨?”

이은수가 또 다시 잔뜩 긴장한 얼굴로 나를 바라봤다.

그녀는 이제 어쩔 거냐고 묻고 있었고, 나는 어깨를 으쓱이는 것으로 대답을 대신했다.

“어디서 온 연놈들인지는 모르겠지만 살아서 돌아가지 못할 줄 알아라! 쳐라!”

동시에 열 명의 헌터 중, 유일하게 얼굴에 웃음기를 찾아볼 수 없던 S급 헌터가 소리치며 우리를 향해 달려들었다.

열 명이 달려들었지만 그리 넓지 않은 호텔 복도.

한 번에 무기를 휘두를 수 있는 건, 절반가량인 네다섯뿐이다.

물론 내게 네다섯이든, 열이든 그 수는 중요하지 않았다.

푹!

검집에서 검이 뽑혀 나옴과 동시에 가장 먼저 달려들던 사내의 심장에 작은 구멍이 뚫렸다.

쾌속한 발도에 이은 섬전과 같은 찌르기.

고작 A급 헌터가 막아낼 수 있는 수준이 아니었다.

사내는 검 한 번 휘둘러보지 못하고, 심장을 부여잡은 채, 바닥에 쓰러졌다.

그리고,

푹. 서걱.

심장을 부여잡은 사내가 채 바닥에 쓰러지기 전에 두 명의 사내가 움직임을 멈췄다.

하나는 마찬가지로 심장에서 피분수를 뿜어대고, 다른 하나는 의지대로 움직이지 않는 몸뚱이에 눈을 깜박댔다.

그 깜빡임과 동시에 머리가 미끄러지며 몸에서 떨어져 내렸다.

“뭐...뭐야?!”

그제야 일이 잘못 돌아가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은 사내들이 당황한 기색을 보이며 주춤거렸지만 내 검은 멈추지 않았다.

몇 번 더 검이 휘둘러졌고, 아홉의 사내가 시체로 변하는데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이제 나와 이은수, 그리고 S급 헌터 하나. 셋밖에 남지 않은 탓인지, 소란스럽던 복도가 적막에 휩싸였다.

똑.

내 검에서 피가 떨어져 내렸다.

한 방울 피가 이미 바닥에 고인 핏물에 닿으며 만들어낸 소리가 적막을 깨트리며 요란하게 울려 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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