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16
116화. 중국행.
일주일 후,
“정말 가셔야만 하는 겁니까?”
걱정 섞인 눈빛을 한 김원철이 말했다.
처음 말을 꺼냈을 때부터 충분히 안심시켰다 생각했지만 아직 부족한 모양이었다.
하긴 김원철이 걱정하는 것은 당연했다.
내가 가고자 하는 곳은 중국.
적지 중의 적지였고, 까닥하면 사지가 될 수 있는 곳이었으니까.
끄덕.
일주일 전, 나는 여문휘를 암살하고 살막을 와해시키기 위해 중국행에 오르기로 결정했다.
여전히 여문휘의 행방은 오리무중이지만 그렇다고 마냥 기다릴 수만은 없었다.
마나 제어법을 통해 한국의 헌터 전력이 올랐다고는 하나, 애초에 헌터 전력만으로 보면 중국에 비할 바가 못 된다.
일전의 승리도, 살막의 방심과 함정이 어우러져 일궈낸 승리지, 그들보다 전력이 강했던 것은 아니다.
중국의 힘이 하루가 다르게 강해지는 상황에서 그들이 다시 돌아온다면, 저번과 같이 막아낼 수 없을 것이다.
또한 이전의 살막과는 확연히 다른 행보에 나와 뜻을 함께하는 헌터들이 조금씩 흔들리는 모습을 보이고 있었다.
이대로 놔둔다면, 살막을 무너트리기는커녕, 한국의 헌터들이 먼저 지리멸렬할 가능성이 높았다.
그럴 바에는 차라리 먼저 움직이는 편이 나았다.
여문휘의 행방을 알 수 없다는 게 불안 요소이긴 하지만 제갈민은 대외적으로 모습을 드러낸 채 움직이고 있다.
살막의 군사 자리에 있는 인물이니 만큼, 여문휘의 행방을 알고 있을 터.
지금껏 단순히 살행만을 해왔던 것이 아니기에 그를 사로잡는다면, 충분히 알아 낼 자신이 있었다.
제갈민의 입이 내 생각보다 무겁다 하더라도, 군사를 제거한다면, 살막에게 상당한 타격을 입힐 수 있을 것이다.
물론 내가 현경의 초입에 발을 들였다 해도 적들이 가득한 곳에 제 발로 들어가는 것만큼, 위험하다는 것은 알고 있다.
그러나 백 번의 살행 중에 위험하지 않은 적은 없었다.
특히, 팔십 번 대가 넘어가고부터는 최소 초절정의 고수에 한 문파의 문주 급 인사들이 대상이었다.
나보다 강하고, 나만한 강자들에게 호위를 받는 대상들.
그럼에도 나는 모든 살행을 성공적으로 해냈고, 이번에도 다르지 않으리라 믿었다.
“팀장님. 저희도 함께 가겠습니다.”
나를 걱정하는 건 김원철만이 아니었다.
팀원들도 잔뜩 굳어진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들은 내 뜻을 꺾지 못함을 깨닫고, 자신들만이라도 데려가 달라고 했다.
그들에게는 십중팔구 사지가 될 것임이 분명한데도 망설이는 기색은 없었다.
이미 각오를 끝마친 얼굴이었다.
“헛소리하지 마라. 절대복종하겠다는 약속을 잊었나.”
이미 몇 번이고 했던 말이다.
팀원 넷 모두 절정의 경지에 오른 만큼, 일이 잘 풀린다면 도움이 될 수도 있다.
하지만 만에 하나 일이 틀어졌을 때, 팀원들의 존재는 짐이다.
절정.
S급 헌터보다 반수 위의 실력을 가졌다 하지만 실전 경험이 적은데다, 나와 같이 암습에 특화된 무공을 익히지도 않았다.
나 혼자라면, 무슨 일이 있어도 충분히 몸을 빼낼 자신이 있지만 팀원들은 아니었다.
내가 중국행을 택한 데에는 십에 하나, 백에 하나 정도는 그들을 위함도 있기에, 팀원들을 사지가 될 수도 있는 곳에 데려 갈 수는 없었다.
“하지만...”
내가 뜻을 꺾지 않았듯, 팀원들도 쉽사리 말을 듣지 않았다.
그러나 절대복종이라는 말 앞에 더 이상 고집을 부리지 않았다.
팀원들을 처음 받아들일 때, 나에게 절대복종할 것을 조건으로 달았다.
당시에는 그저 방해받지 않는 조용한 수련을 위해 내건 조건이었지만 지금도 유효한 조건이었다.
“그럼... 무사히 다녀오시길 바랍니다.”
내 단호함에 팀원들은 결국 고개를 숙였다.
걱정이 되지만, 죽더라도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고 싶지만 나와 한 약속을 어기지는 못했다.
여전히 내게 도움이 되지 못한다는 사실에 분루를 흘릴 뿐이었다.
***
나는 협회에서 마련한 배에 올랐다.
작은 어선이었다.
해양 몬스터가 걱정이 되긴 하지만 은밀히 잠입하기 위해서는 바다를 이용하는 수밖에 없었다.
어선을 타고 한국 영해 끝까지 이동한 후, 중국 영해부터는 레이더 감시망을 피하기 위해 고무보트를 타고 접근, 마지막에는 헤엄을 쳐서 중국 땅을 밟는 계획이다.
이것만해도 팀원들이 따라 붙었다면, 한둘은 낙오됐을지 모를 험난한 일정이었다.
뿌우. 뿌우.
출항을 알리는 뱃고동 소리와 함께 배가 움직이기 시작했다.
갑판 너머로 나의 무사 귀환을 기원하는 팀원들과 김원철의 모습이 보였다.
비밀을 유지해야 했기에 내 중국행을 아는 것은 저 다섯에 권왕, 그리고 지금 타고 있는 어선의 선장 정도가 전부였다.
어선의 선장은 부성현.
일전에 살막에서 문환을 내세워 처음 접촉해왔을 때, 협회 소속으로 만나 면식을 익혔고, 던전에서 사마휘가 습격했을 때도 나를 도왔던 A급 헌터였다.
“별 일 없다면 세 시간 안에 영해 끝자락에 도착할 겁니다.”
배가 출항하고 부성현이 대략적인 도착 예정 시간을 알려왔다.
어선을 타고 갈 수 있는 건 한국 영해까지.
중국의 감시망에 걸릴 수 있기 때문에 그 이상의 접근은 무리였다.
철썩. 철썩.
마나석을 연료로 하는 엔진을 단 어선은 작지만 쾌속하게 바다를 가르며 나아갔다.
세 시간.
짧은 여정이지만 언제 해양 몬스터가 튀어 나올지 알 수 없기에 부성현은 촉각을 곤두세운 채, 바다를 주시했다.
비교적 작은 해양 몬스터라도 배가 뒤집힐 위험이 있고, 커다란 기선마저 다리 하나로 침몰시킬 수 있는 크라켄이라도 튀어나온다면 꼼짝없이 죽은 목숨이다.
망망대해에 한 점밖에 되지 않는 어선 밑에 그런 몬스터들이 득실 될 걸 생각하니, 절로 등골이 오싹해졌다.
‘SS급 헌터쯤 되면, 그만큼 겁도 없어지는 건가.’
걱정과 두려움으로 신경을 날카롭게 세운 부성현의 시선이 옆에 있는 태빈에게로 향했다.
태빈은 어떤 위험이 도사리고 있는지 알 수 없는 바다건만 흥미롭다는 눈으로 바다를 바라보고 있었다.
‘장강도 끝이 없이 넓다 생각했거늘. 바다에 비할 바가 아니었구나.’
무림에서 나는 바다를 본 적이 없었다.
그리고 지금. 처음 본 바다의 광활함에 놀라는 중이었다.
부동심의 마음으로도 바다를 담지는 못했다.
끝이 보이지 않을 만큼, 넓은 장강에서 배를 탔을 때와는 달랐다.
바다는 끝이 보이지 않을 만큼이 아니라, 정말 끝이 보이지 않았다.
사방에 펼쳐진 물결이 하늘과 맞닿아 세상이 온통 푸르렀다.
몬스터가 나타날 수도 있다는 사실도 잊은 채, 나는 바다가 주는 경이로움에 젖어들고 있었다.
“후... 다 왔습니다. 여기까집니다.”
내 상념을 깬 것은 부성현이었다.
경탄에 경탄을 거듭하다보니, 세 시간이 어떻게 지나갔는지도 모르게 흘렀다.
다행히 우려하던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몬스터는커녕, 물고기 한 마리조차 보이지 않았다.
내가 은연중에 물밑으로 기세를 흘려보낸 덕이다.
그 기세는 본능이 앞서는 몬스터인 만큼, 2급, 혹은 1급이라 할지라도 이겨낼 수 없는 살기였다.
“그럼, 무운을 빕니다.”
“부성현 헌터도 무사히 돌아가시기를 바랍니다.”
나는 가볍게 포권을 취해 인사한 뒤, 바로 고무보트를 내렸다.
나도 이제 시작이지만 부성현도 끝난 것은 아니다.
그도 다시 왔던 길을 되돌아가야 한다.
올 때야 무슨 일이 생겼다면, 최대한 지켜줬겠지만 돌아가는 길은 온전히 부성현의 운에 달린 일이다.
제 아무리 A급 헌터라 해도, 바다에서는 3급, 아니 4급 몬스터만 되도 그의 목숨을 위협하기 충분하니까.
부성현은 김원철이 믿을 만한 헌터 중에, 작은 어선이지만 배를 몰 수 있는 헌터가 그뿐이었기에 반강제로 차출됐다.
나로 인해 위험한 임무를 맡게 된 만큼, 무사히 살아 돌아가길 바랐다.
이 역시 이전의 나였다면 결코 하지 않았을 생각이긴 했다.
자신의 목숨은 오로지 자신이 챙기는 법이었으니까.
***
고무보트로 옮겨 탄 뒤에는 엔진이 아닌 노질로 나아가야 했다.
지금까지는 편히 왔지만 노를 저어간다면, 하루는 꼬박 걸리는 거리다.
어떻게 보면, 중국보다 위험할 수도 있는 바다 위에 있는 만큼, 한시도 지체할 수 없었다.
처음에는 익숙하지 않던 노질도 익숙해지고 나니, 고무보트에 엔진이라도 달린 듯, 한 번에 수 미터씩 나아갔다.
내공을 사용하지 않고 있음에도 인간의 한계를 뛰어넘은 내 노질에 파도를 탈 때면, 고무보트는 수 초 간 하늘을 날기도 했다.
어선과는 또 다른 느낌이 있었다.
어찌하여 간혹 만났던 해남도나 바닷가의 무인들이 기개 넘치는 기세를 지녔는지 절로 이해가 됐다.
어선에 이어 가시지 않은 바다의 정취에 흠뻑 취한 탓에 노질의 고됨도 느낄 새 없이 저 멀리 육지가 보이기 시작했다.
그 때,
쿵!
거칠 것 없던 항해에 방해물이 튀어나왔다.
내 살기를 이겨낼 몬스터는 없다 여겼는데.
바다와 하늘을 잇는 거대한 기둥과도 같은 촉수가 고무보트의 진로를 가로막으며 솟아올랐고, 고무보트는 그 기둥에 부딪쳐 속절없이 튕겨졌다.
한참 가속도가 붙어 있던 고무보트는 허공으로 떠올라 제멋대로 뒤집히기 시작했고, 나는 망설임 없이 고무보트에서 뛰어 올랐다.
고무로 되어있는 덕에 침몰하지 않은 보트가 철벅 소리를 뒤집힌 채, 바다에 떠올랐고, 나는 그 위에 사뿐 내려섰다.
촤아악.
동시에 내 앞을 가로막은 기둥과 같은 다리가 일곱 개나 더 솟아올랐다.
나는 배에 오르기 전부터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들었던 탓에 놈의 정체를 금방 파악할 수 있었다.
김원철이 결코 맞서선 안 된다 신신당부하고, 부성현이 제발 마주하지 않기를 기원하던 크라켄이라는 1급 몬스터였다.
크라켄은 여덟 개의 다리로 내 고무보트를 포위한 채, 멀찍이 둥근 머리를 수면위로 드러냈다.
그 위에 붙은 두 개의 눈이 나를 보며 깜빡였다.
흰자위를 찾아볼 수 없는 온통 검은 눈은 놈이 내 살기를 이겨낼 만큼, 강인한 놈인지, 아니면 그 살기를 구분해내지 못할 만큼, 멍청한 놈이지 분간이 가지 않게 만들었다.
콰콰콰!
더 생각을 이어나갈 새도 없이 여덟 개의 다리가 동시에 고무보트를 향해 떨어져 내렸다.
하늘에 닿을 듯 거대한 다리가 일제히 떨어져 내리니, 순간 사방천지가 어둠으로 물들었다.
촤아악!
어둠이 걷히고 한줄기 빛이 들어왔다.
어느새 빼어든 내 검에 잘려나간 크라켄의 다리가 내 고무보트마냥 수면 위에 둥둥 떠다녔다.
나는 남은 일곱 개의 다리가 짓이겨 놓은 탓에 터져버린 고무보트를 대신해 잘린 다리 위에 올라섰다.
크아아!
고통인지, 분노인지.
놈의 남은 다리들이 요동쳤고, 그에 따라 수 미터가 넘는 파도가 일렁였다.
그러나 나는 한 점 흔들림 없이 놈의 다리 위에 서있었다.
고작 이 정도의 공격으로는 나를 흔들어 놓을 수 없었다.
키에엑...
해양 최고의 몬스터라고 하더니, 크라켄의 공격은 허망할 정도로 단조로웠다.
삽시간에 놈은 여덟 개의 다리 중, 네 개를 잃었다.
놈은 덩치만 클 뿐, 살기도 파악하지 못하는 멍청한 몬스터였다.
크라켄은 뒤늦게 자신의 다리에 붙은 빨판만한 생명체가 자신보다 강한 존재임을 파악하고 도주를 시도했다.
그러나 나는 나를 공격한 몬스터를 살려둘 만큼, 자비롭지 않았다.
갈길이 바빴지만 놈을 요리할 시간은 충분했다.
내 손을 떠난 비수 하나가 이제 막 수면 아래로 잠겨 들어가던 놈의 머리통을 파고들었다.
동시에 크라켄의 몸과 다리가 놈이 바라는 대로 수면 아래로 완전히 잠겼다.
수면 아래로 잠겨 버린 탓에 결과를 확인할 수는 없었지만 푸른 수면이 점차 검게 물들었다.
놈의 피인 듯했다.
그 양이 상당한 것으로 보아 절명했거나, 적어도 회생불능의 상처를 입었음이 분명했다.
나는 크라켄이 사라진 바다에서 시선을 거두고, 저 멀리 보이는 육지로 눈을 돌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