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11
111화. 아길라(2).
“김태빈 헌터님. 먼저 와계셨군요.”
“방금 도착했습니다.”
유인원이 김원철, 아길라와 함께 협회장실에 들어섰다.
나도 막 유인원의 비서의 안내를 받아 도착한 참이었다.
“이분은 SS급 헌터 아길라 헌터, 이분이 마나 제어법을 창안한 김태빈 헌터님입니다.”
유인원이 앞서 나와 아길라 서로를 소개했다.
보통 아길라를 소개할 때, ‘SS급 헌터’뿐만 아니라 ‘미국의’라는 호칭이 붙곤 하는데, 유인원은 그 부분을 생략함으로써 아길라의 귀화를 바라고 있음을 드러냈다.
사실 딱히 소개는 필요하지 않았다.
나는 아길라가 오고 있음을 알고 있었고, 외국인인 아길라는 몰라볼 수 없는 외모를 가지고 있었다.
아길라를 처음 보고 든 느낌은 단단함이었다.
대부분의 마법사들은 자신의 능력을 믿고 신체의 단련을 게을리 한다.
던전 공략 시에도 탱커와 근접 딜러들의 보호를 받으며 원거리 공격을 가하는 게 전부이기 때문에 신체를 단련할 이유가 없기도 했다.
그러나 아길라는 아니었다.
자리에 맞게 정장을 입고 있음에도 그 단단함은 숨길 수 없었다.
강해지기 위해 국적을 버렸다고 하더니, 신체의 단련도 게을리 하지 않은 모양이었다.
사실은 수년간의 고행으로도 마법을 발전시킬 방법을 찾지 못해 신체로 눈을 돌린 것이긴 했지만 결과는 다르지 않았다.
“반갑습니다. 아길라라고 합니다.”
아길라가 먼저 반가움을 표하며 손을 내밀었다.
SS급 헌터가 되고 먼저 인사를 청한 적이 없던 아길라다.
미국의 대통령을 만나는 자리에서도 관심 없다는 듯 무표정한 얼굴로 고개를 까닥거리는 게 전부였을 정도.
그러나 상대는 자신을 강하게 만들어 줄, 마나 제어법을 창안한 헌터다.
때문에 먼저 인사를 했을 뿐만 아니라, 좀 더 친근함을 표하기 위해 악수를 청하기 까지 한 것이다.
“김태빈입니다.”
그러나 나는 아길라의 악수를 받지 않고, 포권을 취하는 것으로 대신했다.
상대가 불쾌해 할 수도 있지만 무인의 손을 함부로 내어 줄 수는 없었다.
손을 내어준 무방비한 상태에서는 고수도 하수에게 당할 수 있다.
무림에 악수라는 개념이 없는 이유이기도 하다.
“음...?”
자신이 내민 손이 무안해졌음에 아길라의 얼굴이 굳어지며 눈썹이 격하게 꿈틀댔다.
아길라 자신이 거절했을지언정, 지금껏 SS급 헌터인 자신이 내민 손을 거절한 사람은 없었다.
아길라는 당장 김태빈이란 헌터의 몸을 불태워버리고 싶을 정도의 화가 치밀었지만 자리가 자리이니만큼 간신히 억눌러 내고 있었다.
오로지 강해지는 데에만 몰두하고, 외부에는 신경을 쏟지 않았던 아길라는 태빈이 자신보다 강자라는 사실은 알지 못했다.
“포권이라는 인사법입니다.”
그렇게 아길라가 화를 주체하지 못할 때, 내가 입을 열었다.
내가 포권의 이름과 이러한 인사법을 취한 이유에 대해 간략히 설명을 하고 나서야 아길라의 안색이 조금 풀렸다.
실제로 헌터 간에 악수를 나누던 상황에서 발생한 사건이 매년 몇 건씩 보고되고 있을 정도다.
마법사들 간에도 서로 거리를 내어주는 것은 위험하기 때문에 아길라는 어렵지 않게 납득했다.
여전히 불쾌감은 남아 있었지만, 아길라 나름대로 SS급 헌터인 자신을 두려워하는 마음도 한 몫 했을 거라 생각한 덕분에 어느 정도는 화를 삭일 수 있었다.
“당신이 마나 제어법이라는 것을 만들었다고 들었습니다.”
“예.”
“아시다시피, 저는 그 마나 제어법을 배우고 싶어서 찾아왔습니다. 그것을 저에게 가르쳐 줄 수 있습니까?”
자칫 사고로 이어질 뻔했던 인사가 끝나고, 아길라가 곧장 본론을 꺼냈다.
한시라도 빨리 마나 제어법이라는 것을 배워 강해지고 싶은 아길라다.
쓸데없이 시간을 지체하고 싶은 마음은 없었고, 자신을 불쾌하게 만든 사람과 말을 오래 나누고 싶지도 않았다.
“마나 제어법을 통해 정말 강해질 수 있다면, 나는 한국에 제안하는 모든 조건을 수용할 준비가 되어 있습니다.”
“귀화까지도 말입니까?”
아길라의 말에 내 시선이 유인원을 향했고, 그가 대신 물었다.
나는 일이 틀어졌을 경우, 아길라를 통제하기 위해 왔을 뿐이다.
결정은 유인원의 몫이었다.
헌터 전력이 곧 국력인 세상이니만큼, 귀화는 예민한 문제다.
헌터는 원래 국가에 영원히 발을 들일 수 없을 수도 있고, 헌터를 빼간 국가는 적대국이 되는 경우가 허다했다.
물론 적대국이라 해도, 인접국가가 아닌 이상, 그 영향이 미비하긴 하지만 어쨌든 그렇다.
아길라 또한 러시아에 입국 금지 상태였고, 미국과 러시아의 관계는 냉전시대 만큼이나 차가워졌었다.
실제로 크게 변한 것은 없지만.
“미국과는 이미 얘기가 끝난 상황입니다. 계약기간이 거의 끝나기도 했고, 저를 강해지게 해주겠다는 약속을 지키지 못한 미국이니, 한국에 피해가 갈 일은 없을 겁니다. 혹, 피해가 생기더라도 제가 해결해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아길라는 애초에 한국을 찾기로 결정했을 때부터 귀화에 대해 예상했는지 막힘없이 답했다.
여차하면, 미국 대통령도 암살할 수 있는 게 SS급 헌터다.
SS급 헌터가 나서서 발생할 문제를 해결해주겠다고 한 이상, 걸릴 것은 없었다.
“효과가 없을 수도 있습니다. 그 때에는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마나 제어법을 배운 헌터 중에 그 차이는 있을지언정 효과를 보지 못한 헌터는 없다.
그럼에도 유인원이 묻는 이유는 아길라의 말 중에 미국이 약속을 지키지 못했다는 부분 때문이었다.
소문대로 강함을 약속으로 러시아를 떠났었던 듯했고, 이는 언제든 한국도 떠날 수 있다는 의미였다.
“다른 방법이 있다면, 그 방법을 찾아 떠날 겁니다. 그러나 그 이전에는 굳이 한국을 떠날 이유는 없을 겁니다.”
아길라는 강함을 추구하기 위해 언제든 한국을 떠날 수 있다는 속내를 숨기지 않았다.
숨길 이유도 없었다.
SS급 헌터. 세계 최강자임을 자부하는 아길라에게 거리낄 것은 없었으니까.
사실 국내에만 해도 나와 권왕, 멀리 보면, 여문휘와 요한까지.
아길라 위에 더 높은 하늘이 넷이나 존재했지만 그는 그 사실을 몰랐다.
“음. 최소 계약 기간은 5년입니다.”
아무리 아길라가 강함을 추구하고, 마나 제어법으로 그 욕구를 충족시켜 줄 수 있다 하더라도 평생 잡아둘 수는 없다.
그렇기에 생각한 기한이 5년이었다.
헌터들의 평균 계약기간이 3년이고, 때문에 국내의 헌터들에게도 3년을 조건으로 내걸었지만 아길라와는 상황이 달랐다.
솔직히 한국은 SS급 헌터라 해도, 크게 아쉬울 것 없었다.
“5년이라... 조금 길긴 하지만 좋습니다. 대신 효과가 없다면, 최소한 미국과 같은 조건을 맞춰줘야 합니다.”
“미국의 조건이요?”
“예. 연봉 10억 달러에, 그 외 각종 혜택들. 그 정도는 되어야 제가 한국에 남아있을 이유가 되지 않겠습니까?”
“10억 달러?!”
유인원의 눈이 커졌다.
SS급 헌터가 전술핵과 같은 가치를 지니고 있다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연봉만 10억 달러라니.
한국 돈으로 환산하며 무려 1조에 달하는 금액이다.
그 뿐인가.
아길라의 입에서 흘러나오는 그 외의 혜택들도 개인 저택부터 시작해 입이 떡 벌어질 정도였다.
“물론, 마나 제어법이 효과가 있다면, 돈과 혜택, 그 어떤 것도 필요하지 않습니다.”
아길라가 덧붙였다.
이미 돈은 미국에서 받은 것만으로도 차고 넘칠 정도다.
그는 1조를 훌쩍 넘는 연봉과 혜택 보다 강함을 원하고 있었다.
“흠... 알겠습니다.”
그제야 유인원이 신색을 회복했다.
사실, 1조라는 금액에 놀랐을 뿐, 지급이 불가능할 정도는 아니다.
협회가 정부로부터 지급받는 돈이 한 해에 50조에 달한다.
과거 국방예산 대부분이 협회로 이관된 결과다.
물론 1년 예산의 2%에 달할 만큼, 큰 금액이긴 하지만 아길라의 존재로 인해 얻을 이익을 생각하면, 감수할 만했다.
게다가 그 1조가 아길라 개인의 연봉이 아니다.
그 외에도 이십 명의 팀원들 것을 합산한 금액이다.
A급 헌터 열아홉과 S급 헌터 한 명으로 이루어진, 단일 공략 팀으로는 가히 최강이라 부를 수 있는 전력이다.
거기에 SS급 헌터인 아길라가 더해진다면?
감히 공략 불가능한 던전이 없다 말할 수 있을 것이다.
물론 한국에는 그러한 팀이 하나 더 있긴 했다.
바로 태빈의 팀.
태빈 혼자만 해도 아길라의 팀 정도는 우습게 볼 수 있을 정도니, 더 이상의 설명은 필요치 않았다.
“조건은 잘 알겠습니다. 그럼 말씀하신 바를 바탕으로 바로 계약서를 작성하도록 하겠습니다.”
유인원은 협상을 길게 끌지 않았다.
아길라의 계약이 불발되더라도 크게 아쉬울 것 없는 입장이긴 했지만 한국의 상황이 마냥 좋은 것만은 아니었다.
살막과의 충돌로 신의 길드가 해체하고, 태백 길드와 태양 길드가 와해됐다.
그 과정에서 한국은 A급 헌터의 수가 급격히 감소했다.
그로 인해 던전 공략에 차질이 생겼다.
이미 마나 제어법 등을 익힌 원 길드와 주작 길드 등의 활약으로 버텨내고 있긴 했지만 슬슬 던전 공략에 과부화가 걸려오던 시점이었다.
아길라의 공략팀이라면, 그 문제를 단번에 해결할 수 있었다.
“좋군요.”
아길라도 마나 제어법 외에는 크게 바라는 것이 없었기에 계약은 무난히 잘 마무리 됐다.
아길라는 이번에 협회에서 선발한 헌터들과 함께 마나 제어법을 배우게 됐고, 아길라의 팀은 협회의 요청에 따라 A급 던전 공략에 나섰다.
계약서에는 아길라의 팀에게도 마나 제어법을 전수해주는 것으로 되어 있었지만 이는 아길라가 효과를 보고 난 뒤의 일이었다.
만약, 아길라가 마나 제어법의 효과를 보지 못한다면, 아길라와 아길라의 팀은 계약과 별개로 한국을 떠날지도 몰랐다.
물론 나와는 상관없는 일이었다.
그의 존재가 훗날 살막 등과 싸울 때, 큰 전력이 되긴 하겠지만 그 뿐.
나는 아길라가 한국에 머물고, 말고 관심이 없었다.
***
아길라와의 계약이 끝나고 나는 다시 수련에 열중했다.
오전에는 명상에 잠기고, 오후에는 검을 휘둘렀다. 그리고 저녁에는 다시 명상에 잠겼다.
고단하고 지루한 반복의 연속이었지만 이 반복 속에 불현 듯, 무아에 빠지기도 하고, 깨달음이 찾아오기도 하는 것이다.
때문에 새로운 육체에서 깨어났을 때부터 지금까지. 벽에 막혀 진전은 없음에도 하루도 거르지 않고 해 온 수련이다.
오늘도 마찬가지.
심법을 운기하고, 내 몸을 관조하며, 무공의 구결을 곱씹었다.
그 때, 아길라가 나를 찾아왔다.
“김태빈 헌터. 한 번 겨뤄보고 싶습니다.”
아길라는 다짜고짜 대련을 청해왔다.
아길라가 마나제어법을 배운지, 열흘.
지금쯤이면, 어느 정도 효과를 봤을 시기긴 했다.
스스로 한 층 더 발전했다고 생각할 테고, 그 성과를 시험해보고 싶을 터.
그러나 헌터 중에 자신보다 강자는 없었고, 몬스터도 SS급 헌터에게는 시시한 상대다.
그렇기에 나를 찾아온 것이다.
처음 만났을 때는 마나 제어법을 창안했다는 것 외에는 관심조차 가지지 않더니, 어디선가 내 얘기를 들은 모양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