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나는 살수다-108화 (108/150)

# 108

108화. 마나 제어법.

권왕은 수아가 그나마 안전할 수 있게 협회 혹은, 나와 긴밀한 관계에 있는 원 길드 등과 가까운 곳에, 작더라도 자신을 위한 수련장이 딸려있는 집을 원했다.

그리 까다로운 요구는 아니었지만 하루아침에 권왕의 요구에 맞는 집을 구할 수는 없었기 때문에 권왕은 며칠 간 호텔에 머물렀다.

만약을 대비해 협회의 헌터 몇이 호텔의 좌우 방에 감시 격으로 따라 붙었지만 권왕은 개의치 않았다.

협회의 헌터들과는 직접적인 마찰이 없었다 해도, 한국과는 적으로 만났던 사이다.

협회에 보고된 사항이기도 하고, 권왕이 손속에 사정을 두긴 했지만 적으로 마주했던 사이에 악감정이 남지 않았을 리 없다.

감시 정도는 충분히 감수해야 할 부분이었다.

며칠 뒤,

“이곳입니다.”

나는 협회의 도움을 받아 마련한 집으로 권왕을 안내했다.

2층짜리 아담한 조립식 주택으로, 오십 평정도의 작은 마당이 딸려있는 집이었다.

도심에 가깝고, 수련을 위한 마당까지 딸린 집.

금액은 문제가 아니었지만 고작 며칠 사이에 조건에 부합하는 집을 구하기 위해서는 협회의 도움을 받을 수밖에 없었다.

매매가가 십억이 훌쩍 넘는 집이었지만 이제 나에게 그 정도 가격은 부담스러울 정도는 아니었다.

혹, 며칠 사이에 권왕의 마음이 바뀌기라고 할까, 기존의 주인에게 웃돈을 듬뿍 주기까지 했다.

내가 제시한 금액에 주인은 쉽게 볼 수 없을 만큼, 환한 미소를 지으며, 주인 또한 내 마음이 바뀌기라도 할까, 다음날 바로 집을 빼주었다.

“좋군.”

“정말 예뻐요.”

만약의 경우에 방어와 도주 등에 용의한가를 중점에 두고 집을 둘러보는 권왕과 달리, 수아는 집 자체를 마음에 들어 했다.

권왕은 우연히 몬스터에게 가족을 잃은 수아를 만났고, 딸과 똑 닮은 모습에 저도 모르게 거두어들였다 했다.

헌터 전력이 미국 다음가는 중국에 동기화가 일어나 몬스터가 활개 칠 정도의 곳에 살았다면, 없이 살았을 확률이 높다.

그러니, 대단히 훌륭한 집이 아님에도 이토록 좋아 하는 것이다.

아직은 낯선 땅에 어색함을 감추지 못하던 그녀가 해사한 미소를 지으며 순수하게 좋아하는 모습에 나 또한 마음이 밝아지는 듯했다.

“...흐윽.”

해사한 미소가 슬픔으로 바뀐 건 한 순간이었다.

수아가 갑자기 울음을 터트렸다.

말하지 않아도 그 이유를 알 수 있었다.

몬스터라는 횡액에, 이제는 만날 수 없는 가족이 떠올랐을 것이다.

“흑...죄송해요. 좋은 날인데...”

“괜찮다.”

수아가 급히 눈을 닦아내며 그 슬픔을 지워내려 했지만 쉬웠다면 터지지도 않았을 눈물이었다.

권왕이 그런 수아를 말없이 안아주었다.

모르는 이가 본다면, 영락없는 아비와 딸의 모습이었다.

수아를 안은 권왕의 눈에 설핏 후회가 스쳐지나갔다.

무림에서 자신을 잃은 딸, 화련이 지금의 수아와 같은 슬픔을 겪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에서 오는 후회였다.

“이제... 괜찮아요. 아버지.”

수아가 애써 옅게 미소를 지어 보였다.

그러나 좀 전의 해사한 미소는 사라지고 짙은 슬픔이 깃든 미소였다.

“방안도 둘러보자꾸나.”

권왕이 모르는 척, 수아를 이끌었다.

평소에는 근엄한 권왕이었지만 지금만큼은 한없이 자애로웠다.

수아는 말없이 고개를 끄덕이며 권왕의 손길을 따랐다.

“와~! 침대에, 화장대도 있어요.”

“허허. 수아, 네 방으로 하면 되겠구나. 무영살, 아니 이곳에서는 태빈이라 했던가. 고맙네.”

언제 그랬냐는 듯, 다시 밝은 모습으로 집안을 둘러보는 수아를 바라보며 권왕이 고마움을 표했다.

“대단치 않은 일입니다.”

“아닐세. 원래 대단치 않은 일이 가장 어려운 법이지. 헌데, 자네 집과 꽤나 가까운 것 같더군.”

“어쩌다보니, 권왕께서 말한 조건을 충족하는 집들 중, 조건이 좋았습니다.”

사실, 집을 구할 때, 일부러 가까운 곳으로 알아봤다.

권왕의 정권을 보고 잠시 스쳐지나갔던 깨달음을 아직 잊지 못했다.

가까운 만큼, 자주 마주치게 될 터.

다시 그 깨달음을 마주할 수 있을까 하는 작은 욕심이었다.

“뭐, 수아가 저리 좋아하니 상관없겠지. 앞으로 잘 부탁하네.”

권왕은 내 속내는 상관없는 듯 고개를 주억거렸다.

그의 모든 관심은 오로지 수아의 행복에만 맞춰져 있었다.

이는 권왕 나름의 속죄일 것이다.

“저야 말로 잘 부탁드립니다.”

권왕은 내가 놓친 깨달음의 실마리를 지니고 있는 인물.

잘 부탁해야 할 건 나였다.

***

커다란 탁자와 왕좌를 연상케 하는 황금빛 의자, 그리고 그 의자를 두른 호랑이 가죽.

그 것들이 놓여 있는 곳이 동굴 안이라는 사실이 이상하게 보일 수 있지만 익숙한 장소다.

여문휘가 국가주석의 자리에 오르기 전, 무려 5년 동안이나 거주하며 살막을 이끌던 곳이었으니.

“정말 꼴이 우습게 됐군...”

의자에 기대 두 눈을 감은 여문휘가 자조 섞인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모든 것을 내려놓은 듯, 얼핏 권태마저 느껴지는 여문휘의 얼굴이었지만 그 보다는 휑한 왼팔이 더 눈에 띄었다.

요한에게 잃은 팔이다.

잘린 팔이 있었다면 힐러의 도움을 받아 회복을 기대해 볼 수도 있었겠지만 그 팔을 대가로 목숨을 건질 수 있었다.

그 와중에 팔까지 챙기는 것은 불가능했다.

“운이 없었을 뿐입니다.”

“운이라... 군사라는 자가 운을 운운하는가.”

제갈민이 그런 여문휘를 위로해보려 했지만 오히려 쓴 소리를 들었다.

제갈민도 말이 안 되는 핑계라는 것을 알고 있었기에 곧장 말을 이었다.

“그리고, 정보가 부족했습니다. 무영살 개인이라 해서 무시했고, 서방의 세력이라 해서 과소평가했습니다. 제대로 된 평가가 뒷받침됐다면, 결코 패하지 않았을 겁니다.”

살수의 힘은 개인의 무위보다는 정보에서 나온다.

그러나 5년이라는 시간은 전 세계는커녕, 중국 내부의 정보를 수집하는 체계를 구축하기에도 벅찼다.

때문에 타이탄에 대한 정보를 나름 수집해 오고 있었지만 기사단과 요한에 대한 전력을 정확히 파악하지는 못했다.

단편적인 정보들을 취합해 기사단 전원이 A급 이상일 거라는 짐작은 가능했지만 무풍대로 충분하리라 여겼다.

그러나 실상은 백중지세.

사백의 기사단은 오백의 무풍대와 동급의 전력이었다.

공격력을 높여주는 마흘의 창이나, 웬만한 공격을 모두 무위로 돌려버리는 프긴의 가호와 같은 기사단 특유의 기술을 모르고 있었기 때문이다.

또한 그들의 교황이라는 요한.

그가 여문휘보다 윗줄의 고수일 거라고는 전혀 생각지 못했다.

아니, 여문휘의 말에 따르면, 요한은 결코 그보다 고수는 아니었다.

승패를 가른 차이는 유한과 무한.

여문휘는 무한하게 느껴지던 요한의 내공을 감당해내지 못했다.

“됐다. 무영살의 계략에 당하고, 타이탄의 힘에 밀리고. 고작 이정도로 무림일통을 꿈꿨다니...”

여문휘가 쓰게 웃었다.

제갈민의 말이 틀린 건 아니지만 이미 결과는 나왔다.

만약이라는 가정은 패자의 의미 없는 자위에 불과했다.

사실, 지금 살막의 전력만을 보면, 과거 무림에서의 살막보다 조금 우위에 있었을 뿐이다.

중국 헌터들이 더해진 덕에 아시아 전역을 아우를 수 있는 수준이 되긴 했지만 낭인들을 끌어들인 것과 다름없다.

무림에서는 무림일통은커녕, 한지역의 패자를 자처하기도 부족한 전력.

실패가 거듭되면서 스스로 헛된 꿈을 꾸었다 느껴졌다.

“아직 막주님이 있고, 제가 있습니다. 무풍대 또한 절반을 잃긴 했지만 건재합니다. 다시 준비하면 됩니다. 기다리며 힘을 기르면, 언제고 다시 때가 올 겁니다.”

꺾여버린 여문휘 앞에서 제갈민이 열변을 토했다.

무림일통은 여문휘가 원한 것이기도 했지만 제갈민의 꿈이기도 했다.

과거처럼 살막이라는 틀에 갇혀 있는 게 아닌, 세계를 상대로 마음껏 자신의 지략을 풀어놓고 싶었다.

“그만. 전부 부질없는 욕심이었어. 덧없는... 욕심...”

여문휘는 더 이상 할 얘기가 없다는 듯 눈을 감았다.

아니, 할 말이 없음이 아니었다.

감기는 여문휘의 두 눈에 설핏 현기가 감돌았다.

“막주...?”

여문휘의 마음을 돌리고자, 말을 이으려던 제갈민의 입이 굳게 닫혔다.

제갈민 또한 군사이기 이전에 한 사람의 무인.

여문휘에게서 일어나는 변화의 의미를 모를 리 없었다.

“막주가 나오실 때까지 아무도 들이지 말라. 설령 내가 돌아온다 해도 들여서는 안 될 것이다.”

제갈민은 동굴을 나서며 호위들에게 단단히 주의시켰다.

살막은 꺾이지 않았다.

더 높은 비상을 위해 잠시 웅크렸을 뿐이다.

“막주님이 다시 돌아 올 때, 세상은 살막의 발 아래 놓이게 되리라.”

제갈민의 얼굴에 독기가 서렸다.

***

“기사 팔십에, 성전사 칠백이라..”

이번 살막과의 충돌에서 타이탄 측이 입은 피해다.

살막은 배가 넘는 피해를 입었지만 요한에게 이단의 죽음은 벌레의 죽음만큼이나 중요치 않았다.

“타이탄의 품에서 영원한 안식을 누리길.”

요한이 타이탄의 뜻을 위해 스러져간 기사와 성전사들의 명복을 빌었다.

기사는 가슴께로 검을 치켜들었고, 성전사들은 심장에 손을 올려 맥동을 들으며 묵념했다.

그들의 앞에는 한데 모인 기사와 성전사의 시체가 불타고 있었다.

티탄 교인들에게 죽음 뒤에 육체의 처우는 중요하지 않았다.

영혼은 타이탄의 곁에서 영원한 안식을 누릴 테니.

“아이언. 프긴 기사단과 성전사 천을 데리고 성역화에 착수하라. 내가 돌아가는 길의 모든 이단을 척살하겠다.”

잠시 사자들을 기린 요한은 곧장 명령을 내렸다.

곧장 중국으로 진격할 수도 있었지만 요한은 급하게 움직이지 않았다.

중국 국경지대까지 오면서 지나쳐 온 러시아의 땅과 카자흐스탄.

그 땅들 또한 성역화의 대상이다.

점령을 목적으로 하지 않았기에 곳곳에서 이단자들이 날뛰고 있었고, 행군에 방해를 받지 않았을 정도로 버려진 땅이기에 몬스터들 또한 활개 쳤다.

성역을 넓히는 것도 중요하지만 내실을 다지는 것 또한 그에 못지 않게 중요했다.

“여문휘는 아니었군.”

또한 여문휘가 자신과 같은 존재가 아니라는 것을 확인한 이상, 중국은 언제고 성역화해야 할 대상일 뿐, 그 이상의 가치는 없었다.

***

태백 길드를 치고, 권왕을 일을 해결한 뒤, 나는 일전에 유인원과 약속한대로 마나 제어법을 전수하기 위해 협회를 찾았다,

굳이 내가 아니어도 상관없지만 오직 나만이 빠른 전수가 가능했다.

기를 유형화해 내뿜는 것으로 헌터들에게 직접 마나를 느끼게 해주면 마나의 이해가 빨라지기 때문이다.

“저를 포함해 오십입니다.”

최초 대상인원은 유인원을 포함한 오십으로, 전원이 협회가 창설된 때부터 봉사해 오고 있는 헌터들이었다.

처음 제안했던 조건인 5년 이상 근속에 부합하는 헌터는 더 있었지만 유인원이 거르고 거른 결과다.

계약 만료가 가까워져 길드 등으로 소속을 옮길 의사를 보인 헌터나, 과거 한 번이라도 비리를 저질렀던 헌터는 모두 대상에서 제외했다.

“비밀유지계약서입니다.”

나는 오십의 헌터 모두 비밀유지계약서를 작성하게 했다.

협회와 길드 등에서 통용되는 계약서로, 계약을 어길 시, 신호가 오는 마법이 걸려있는 계약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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