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06
106화. 태백 길드(2).
정문을 포기하고 건물 외부로 눈을 돌렸다.
오십층 높이의 넘는 건물이지만 사실, A급 헌터만 되어도 무리 없이 올라갈 수 있는 높이다.
비행마법이 가능한 마법사는 B급이라도 가능하다.
그러나 건물 외부에는 지금은 죽고 없는 S급 전격 마법사 오기석의 마법이 둘러져 있었다.
A급 이하의 공격을 모두 막아주고, 침입자가 발생할 시에는 경보와 함께 대상을 죽일 수도 있는 강한 전류가 흐르는 마법이다.
김원철에게 듣기로 모든 1세대 길드의 건물에는 같은 종류의 마법이 설치되어 있다고 했다.
‘단순히 기의 흐름만 놓고 보면, 진과 비슷하군.’
처음 마주한 결계 형식의 마법을 보고 든 생각이었다.
기의 흐름을 비틀어 원하는 현상을 만들어 내는 진과 비슷했다.
다른 점은 진이 자연의 기를 이용하는 반면, 눈앞의 마법은 마나석의 마나를 이용해 만든 결계였다.
마법을 한 달 유지하는데, A급 마나석 하나가 든다고 했다.
현금으로 치면 한 달에 10억.
적지 않은 금액이었지만 외부에서의 침입과 공격을 완벽에 가깝게 막아주는 것을 감안하면, 오히려 싸다고 할 수 있었다.
‘하지만...’
말 그대로 완벽에 가깝게다.
막아낼 수 있는 건 공격은 A급 공격까지고, 침입자도 잘해야 설계자의 한 단계 위인 SS급까지가 한계다.
단순 전사형 SS급은 막을 수 있지만 마법사 등의 마나와 좀 더 밀접한 직업군은 막아내지 못한다.
즉, 나를 막아낼 수 있는 마법은 아니라는 얘기였다.
타닷!
나는 망설임 없이 외벽을 타고 건물을 올랐다.
진의 생로를 찾듯, 마나의 흐름을 읽어내는 건 어렵지 않았다.
아니, 이런 식의 파훼는 아예 염두 해두지 않은 건지 대비조차 제대로 되어 있지 않았다.
게다가 마법을 제외하고는 외벽을 지키는 경계 인력이 전혀 없었다.
하긴, SS급의 침입까지 감지해 낼 수 있는 마법이다.
그 이상의 헌터라면, 침입을 감지해 낸다 하더라도 막아낼 길은 없으니, 마법이 뚫릴 것을 대비한 경계는 의미가 없긴 했다.
‘여기군.’
길드장 김형석의 사무실이 있는 오십 층까지는 금방이었다.
수 미터씩 쭉쭉 나아간 나는 몇 번의 도약만으로 김형석의 사무실에 도착했다.
한 층을 전부 김형석이 사용하고 있었기 때문에 따로 방을 찾을 필요도 없었다.
‘넷?’
내 눈에 의문이 서렸다.
분명 김형석의 사무실이고, 김형석의 모습도 보였다.
그런데, 김형석은 혼자가 아니었다.
세 명의 흑의인이 더 있었다.
문제는 그 흑의인들이 김형석을 아랫사람 대하듯 하고, 김형석도 이를 당연시 하고 있다는 점이었다.
한 살수가 상석에 앉아있었고, 두 살수가 그 하나를 호위하듯 시립해 있었다.
그들이 누구인지는 생각할 필요가 없었다.
이세계의 것과 어울리지 않는 흑의 복장을 고집할 자들은 살막의 살수들뿐이다.
‘넷이라.’
A급 헌터인 김형석과 그에 준하거나 그 이상일 것이 분명한 세 명의 살수들.
다른 이였다면, 위험한 전력이지만 나는 망설이지 않았다.
와장창!
위이잉!!!
오십 층 꼭대기의 창문이 깨어져 나갔고, 동시에 건물 전체에 경보가 울리기 시작했다.
건물 전체에 내 침입이 알려졌겠지만 대기하고 있던 김원철 등의 헌터들도 움직일 것이다.
경보 자체가 신호였으니, 내가 따로 신호를 보낼 필요는 없었다.
“뭐...뭐야?!”
김형석을 비롯한 넷의 시선이 깨어진 창문으로 쏠렸다.
경보가 울리고 있음에도 김형석은 마법을 뚫고 온 침입자가 있을 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한 듯, 눈만 커다랗게 뜬 채로 소리쳤다.
반면, 세 명의 살수들은 침착함을 유지한 채, 곧장 무기를 꺼내들며 기습에 대비하고자 했다.
“커억.”
그러나 그보다 한 발 빠르게 쏘아진 한 줄기 빛이 살수 하나의 미간을 꿰뚫었다.
내가 창문을 깸과 동시에 던져낸 비수였다.
셋을 동시에 노릴 수도 있었지만 정확한 실력을 파악하지 못한 상태다.
일점에 집중해 한 명을 끊어내는 게 나았다.
“놈이다!”
남은 두 명의 살수는 곧장 흉수가 누구인지 짐작해냈다.
한국에서 이와 같은 무위를 보일 수 있는 것은 단 한 명뿐이었으니.
동료 하나가 죽었음에도 살수들의 대응은 재빨랐다.
곧장 좌우로 갈라져 나를 덮쳐왔다.
한 치의 망설임도 없는 것이 오랜 시간 합을 맞춰온 듯했다.
“큭!”
좌우로 갈라지는 양동작전은 좋은 선택이었지만 상대가 나빴다.
상석에 앉아 있던 살수가 초절정. 시립해있던 살수 둘이 절정이었다.
고작 초절정, 절정에 불과한 살수 둘로는 나를 막아낼 수 없었다.
나는 좌측 살수의 목을 찌른 채, 몸을 틀어 우측 살수의 공격을 피해냈다.
“놈! 크륵...”
수하의 죽음에 홀로남은 살수가 소리쳤지만 겁에 질린 개가 더 크게 짖는 법이다.
검을 채 회수하기도 전에 내게 심장을 찔렸다.
살수는 심장에서 역류한 피거품을 물며 빠르게 생기를 잃어갔다.
“으...어...”
일련의 과정을 모두 지켜본 김형석은 믿지 못하겠다는 눈으로 나를 바라봤다.
두려움에 질려 말조차 제대로 나오지 않는지, 이상한 신음을 흘려댔다.
저벅.
내가 한 걸음 다가가자, 김형석이 한 걸음 뒤로 물러났다.
쿵!
물러나던 김형석은 발이 꼬여 뒤로 넘어졌고, 엉덩이를 질질 끌며 두 손으로 바닥을 헤집기까지 했다.
한 길드의 길드장이자, A급 헌터의 모습이라고 하기에는 너무 볼썽사나웠다.
툭!
더는 물러날 곳이 없어진 김형석의 등이 벽에 닿았다.
물러날 곳이 있었다면, 내 손을 피할 수 있었다고 생각했음인가.
김형석의 눈이 그제야 절망으로 물들었다.
타타타닥.
계단에서 분주한 발소리가 들려오고, 엘리베이터가 가리키는 층수가 빠르게 올라가고 있었지만 김형석은 헛된 희망을 품지 않았다.
자신은 감히 올려다 볼 수 없을 정도의 힘을 가진 살수들이었다.
그런 이들이 내게는 일초지적도 되지 못했다.
백 명, 이백 명의 헌터가 길드 내에 상주중이었지만 그들로는 눈앞의 사내를 막아낼 수 없었다.
“죽이진 않겠다.”
내가 말했다.
***
“단 한 명도 놓쳐서는 안 된다.”
건물에서 울리는 경보 소리에 백 명의 헌터들이 태백 길드를 물샐 틈 없이 포위했다.
전원 A급 헌터들로 이루어진 포위다.
설령, S급 헌터가 있다 하더라도 조용히 빠져나갈 수는 없었다.
두두두두.
건물 내에서 수백 명이 움직이며 소란스러워지는 게 느껴졌다.
곧이어 정문과 저층 창문을 통해 헌터들이 쏟아져 나왔다.
대충 보기에 수는 이백 정도.
삼백 명이 상주하고 있었던 것을 생각하면, 나머지는 길드장 김형석이 있는 최상층으로 향한 듯했다.
예상보다 많은 백 명이나 되는 헌터가 태빈에게로 향했지만 지금은 믿는 수밖에 없었다.
“네 놈들은 누구냐?!”
“김원철 협회장?!”
아무것도 모르는 말단 헌터가 소리친 것을 뒤늦게 나온 헌터 하나가 받았다.
협회장 자리를 내어놓은 지는 꽤 됐지만 여전히 김원철을 협회장이라 부르는 헌터가 더 많았다.
“안병희 헌터.”
김원철도 자신을 알아본 헌터를 알고 있었다.
태백 길드의 제1공략 팀장으로, A급 헌터 중에서도 수위에 꼽히는 헌터였다.
태백 길드 내에서도 길드장과 부길드장 다음가는 자였다.
“무슨 일이십니까?”
적이 될지도 모르는 상황이었지만 안병희는 김원철에 대한 예의를 잃지 않았다.
변혁 초기부터 협회장 자리에서 물러난 최근까지 김원철이 국가와 국민의 안위, 그리고 헌터의 권익을 위해 노력했는지 알고 있기 때문이다.
“별 일 아니네. 만약을 대비했을 뿐, 싸울 생각은 없으니. 그렇게 날을 세울 필요는 없네.”
“별 일이 아닌데, A급 헌터가 백 명이나 움직였습니까?”
안병희는 날카롭게 쏘아붙이면서도 섣불리 움직이지는 않았다.
무기를 거둔 것은 아니지만 지금 상황이 누구에게 불리한지는 알고 있었다.
백 명대 이백.
수적으로는 우세해 있지만 전력상으로는 전원 A급인 김원철 측에 한참이나 부족했다.
“혹시, 김형석 길드장을 노리고 있는 겁니까?”
안병희도 길드장이 있는 최상층에서 소란이 일었다는 것은 알고 있었다.
때문에 부길드장이 헌터들을 이끌고 최상층으로 향했고, 자신이 길드를 포위하고 있는 김원철 앞에서 선 것이다.
“금방 끝날 거네.”
“으음...”
안병희가 침음을 흘렸다.
긍정의 의미를 답은 대답이다.
지금이라도 길드장에게 가봐야 하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지만 눈앞의 헌터들을 무시할 수도 없었다.
물론, 김원철이 싸울 생각은 없다고 했지만 그 말을 온전히 믿기는 어렵다.
가뜩이나 열세인 상황에서 자신이 빠진다면, 만약의 경우에 저들을 막는 것은 불가능했다.
‘아.’
이내 안병희가 무언가를 떠올리고 걱정을 지워냈다.
지금 김형석은 혼자가 아니다.
아무리 대단한 헌터가 김형석을 노린다 하더라도, 그들이 있는 한 성공할 리가 없었다.
“지금이라도 조용히 물러가신다면, 없던 일로 해드리겠습니다.”
김원철의 계획이 실패할 것을 확신한 안병희가 말했다.
그가 할 수 있는 최대한의 배려였다.
“배려는 고맙지만 그럴 순 없네. 미안하군.”
“후회하실 겁니다.”
안병희의 얼굴이 굳어졌다.
둘의 대화는 더 이상 이어지지 않았다.
안병희는 자신의 배려를 거부한 김원철에게 더 이상 할 말이 없었고, 김원철도 굳이 말을 섞고자 하지 않았다.
안병희 또한 살막과 연관이 있을지도 모르는 헌터.
삿된 감정을 키울 필요는 없었다.
***
김원철과 안병희가 대치한지도 십 분 가량이 지났다.
안병희의 시선이 김원철 너머로 향했다.
수백의 헌터들이 병장기를 꼬나든 채, 김원철과 헌터들을 포위해오고 있었다.
태백 길드를 김원철이 포위했고, 김원철을 또 다른 헌터들이 포위하는 형세다.
그럼에도 김원철은 표정하나 바꾸지 않은 채, 정면만을 응시하고 있었다.
“대체 무엇을 기다리시는 겁니까?”
이쯤 되니, 안병희는 김원철의 저의가 의심스러워졌다.
처음 수백이었던 헌터들은 빠르게 늘어 어느새 천 단위를 넘어섰다.
물론, A급은 몇 되지 않고, 고작해야 B급, C급의 헌터들로, 언제든 뚫어낼 수 있는 수준이었지만 수백에 달하는 수를 감안하면, 적잖은 피해를 감수해야 할 것이다.
분명 조급해야 할 것은 김원철임에도, 오히려 자신이 더 조급해지는 느낌이었다.
“이제 오는 군.”
김원철이 말했고, 이번에는 안병희의 뒤가 소란스러워졌다.
태백 길드의 정문에서 나는 소리였다.
“대체 네 놈은 누구냐?!”
“길드장님에게 무슨 짓을 한 거야?!”
고개 돌린 안병희의 눈에 최상층으로 향했던 길드원들이 누군가를 포위한 형태로 주춤주춤 물러나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무슨...?”
태백 길드의 최정예라고 할 수 있는 길드원들이 계속해서 소리만 칠 뿐, 섣불리 누군가에게는 다가가지 못하고 있었다.
“김태빈?”
길드원들 틈으로 누군가의 얼굴이 스쳐지나갔다.
길드원들이 포위하고 있는 대상은 최근 급부상한 헌터인 김태빈이었다.
그런데, 김태빈은 혼자가 아니었다.
그의 어깨에는 축 늘어진 김형석이 들려 있었고, 김형석의 목에는 날카롭게 빛나는 단도가 닿아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