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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살수다-104화 (104/150)

# 104

104화. 충돌(7).

“타이탄 기사단 준비하라.”

요한이 참전을 결정했다.

눈에 보이는 전황이 승패를 짐작할 수 없다고는 하나, 아군의 승리를 의심하진 않았다.

그럼에도 요한이 나선 것은 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함이었다.

성전사는 언제든 보충이 가능하지만 기사는 아니다.

타이탄님의 품으로 귀의한 성전사들은 많았지만 그 중에서 기사 급이라 할 수 있는 이들은 그리 많지 않았다.

특히, 타이탄의 성력을 품고, 종들의 힘을 빌릴 수 있는 기사단장과 조장 급 기사들은 대체가 불가능한 인재들이다.

계속될 성전을 위해서 전력을 보존할 필요가 있었다.

“타이탄님의 뜻에 따라.”

자신이 입은 갑옷과도 같은 회색빛의 말에 올라탄 요한은 거침없이 달려 나갔다.

손에 쥔 마상용 창에서는 흘러나온 성스러운 기운은 요한의 전신을 뒤덮을 듯, 빛났다.

“타이탄을 위하여!”

아흔아홉 명의 타이탄 기사단 또한 요한의 뒤를 따르며 박차를 가했다.

앞서 세 개 기사단보다 수는 적었지만 기세는 훨씬 맹렬했다.

“군사. 지휘를 맡기겠다.”

전장에 시선을 두고 있던 여문휘가 그 맹렬한 기세에 눈을 돌렸다.

흙먼지를 일으키며 돌격해오는 백 명의 기사단이 보였다.

백 명의 기사단은 충분히 팽팽한 전황을 뒤흔들 만했고, 마냥 지켜볼 수만은 없었다.

요한과 달리, 기세를 내뿜으며 존재감을 드러낸 것은 아니었다.

살수라는 이름에 걸맞게 기척을 감춘 채, 전장으로 향했다.

그의 곁에 있던 열 명의 살수들도 함께였다.

한국에 갈 때도 숨겨두었던 여문휘의 호위들로, 한명 한명이 초절정에 오른 특급 살수들이었다.

***

히히힝!

먼저 전장에 모습을 드러낸 것은 요한과 타이탄 기사단이었다.

거친 콧김을 내뿜으며 전장에 닿은 백 마리의 전마는 속도를 늦추지 않았다.

뒤에서 들려오는 말발굽 소리에 기사와 성전사들이 홍해가 갈라지듯 길을 열었고, 요한을 선두로 한 타이탄 기사단은 그대로 살막의 헌터들을 꿰뚫었다.

성력이 덧씌워진 요한의 거창이 전방을 휩쓸며 살막의 진형을 무너트렸고, 그 뒤를 타이탄 기사단이 짓밟았다.

전장에 녹아있던 살수들의 활약으로 팽팽하게 유지되던 전세가 한순간에 기우는 듯했다.

그 순간,

“커억.”

“큭!”

히이잉!

거칠 것 없이 살막의 진형을 부숴나가던 기사단원 몇과 말들이 갑자기 비명과 함께 낙마하거나, 꼬꾸라졌다.

그로 인해 속도를 높여 돌격하던 기사단의 대열이 흐트러졌다.

“기습이다!”

살수들이었다.

완벽히 기척을 숨긴 채, 때를 기다리던 여덟 명의 살수들이 한순간에 기사와 말들의 숨통을 끊어 놓은 것이다.

화살과 마법을 완벽하게 막아주던 프긴의 가호도 초절정 살수의 강기 앞에선 무용지물이었다.

“암살자가 있다.”

돌진을 멈춘 기사들이 마상용 창을 버리고 검을 빼어들었다.

그러나 상대는 초절정에 이른 살수들이다.

기사단이라고는 하나, 고작해야 절정을 약간 상회하는 수준.

그들만으로는 살수들을 막을 방법이 없었다.

눈으로 잡을 수 없을 정도로 빠른 속도로 휘젓는 살수들로 인해 순식간에 피해가 눈덩이처럼 불어났다.

“타이탄 기사단은 뒤로 물러나라!”

“차디의 검이 어둠 속의 적을 모두 베어낼지니.”

기사들이 속수무책으로 당하는 모습을 본, 세 개 기사단의 단장들이 다급히 합류했다.

팽팽했던 전황을 타이탄 기사단이 부숴놓으며 살막의 진형을 깨트려 놓았기에 단장들의 공백에도 여유가 있었다.

“나를 노리다니, 어리석은 선택을 하였구나.”

요한을 향해 몸을 날린 살수들도 있었다.

땅에서 솟아난 살수의 검이 말의 배를 뚫고 항문을 찔러갔고, 요한의 창에 찢겨나간 시체 뒤에서 튀어나온 살수는 곧장 심장을 향했다.

말의 몸이, 갈라진 육편에서 튄 피가 잠시나마 요한의 시야를 가린, 그 찰나의 순간에 이루어진 살수들의 기습이었다.

평범한 기사, 아니 상대가 화경의 고수라도 피해 없이 막아내는 것은 불가능할 정도로 완벽한 타이밍.

카캉!

그러나 살수들의 검은 요한의 몸에 닿지 못했다.

요한은 살수들의 기습을 알고 있음에도 대응조차 하지 않았고, 살수들의 공격은 그의 갑옷조차 뚫어내지 못했다.

“어...어떻게???”

전혀 예상치 못했기에 살수들의 눈이 커졌다.

설령 드래곤 비늘로 만든 갑옷이라 한들, 강기의 위력을 약화시키는 게 고작이다.

그런데, 강기가 막혔다.

“이단이 신의 대리자인 나를 해할 수 있다 생각한 것이냐.”

싸늘한 눈빛을 한 요한이 말에서 뛰어 내리며 눈앞의 살수를 베어낸 요한이 그대로 땅을 내리찍었다.

살수의 기습이 아무리 은밀했다 한들, 요한은 공격이 자신에게 닿기 전에 알아차렸고, 피할 수도, 막을 수도 있었다.

그럼에도 요한이 가만히 있었던 것은 그들의 공격이 자신에게 닿지 못할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충격이 일부 전해질 정도로 위력이 강하긴 했지만 그뿐.

성력을 두른 자신을 해할 수는 없었다.

“컥!”

“크윽.,,”

창을 막기 위해 들어 올렸던 검과 함께 몸이 두 동강난 살수가 단말마의 비명을 토해냈고, 몸이 꿰뚫린 살수는 창대를 부여잡은 채, 고통어린 신음을 흘렸다.

촤아악!

창대를 부여잡은 살수의 얼굴이 고통으로 일그러졌지만 요한에게 자비는 없었다.

요한의 손짓에 창대가 살수의 몸을 그대로 양단하며 치솟았다.

쇳덩이로 이루어진 창대였지만 성력이 둘러져 예리함은 여느 검보다 뛰어났다.

몸통에서부터 머리까지 반으로 갈라진 살수는 붉은 피를 좌우로 뿜어내며 쓰러졌다.

아무리 기습에 실패했다고는 해도, 초절정 살수의 죽음이라고 볼 수 없을 정도로 허무한 죽음이었다.

!!

그 때였다.

검 한 자루가 요한의 등 뒤에서 나타난 것은.

공간을 가르듯 나타난 검은 섬전과 같은 속도로 요한을 찔러 들어왔다.

초절정 고수 둘은 미끼에 불과했다.

진정한 흉수는 여문휘였다.

위험한 순간이었지만 요한은 당황한 기색 없이 성력을 끌어 올리며 창을 들어올렸다.

앞서 살수의 강기를 막아낸 갑옷이 있었지만 겪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여문휘의 검은 갑옷으로도 막을 수 없다는 것을 말이다.

푸욱!

예상대로 갑옷이 뚫렸다.

그러나 딱 거기까지였다.

검이 갑옷을 꿰뚫은 순간, 창대가 검신을 때렸다.

카카카캉!!

검이 요란한 소리를 내며 갑옷을 찢어발겼다.

그러나 그 뿐,

갑옷 안에 드러난 요한의 살갗에는 작은 생채기조차 보이지 않았다.

“제법 재미있는 수였다.”

요한이 조소를 지었다.

제법 뛰어난, 기사단의 기사에 준하는 수하들을 희생해가며 자신을 노려왔지만 상대는 실패했다.

그 결과에 흘리는 비웃음이었다.

“흥, 신의 대리자라더니. 숨겨둔 한 수는 있는 놈이었구나.”

여문휘 또한 코웃음을 치며 응수했다.

단순히 종교에 미친 광신도가 아닌 줄은 알았지만 특급 살수들에 이어 자신의 기습까지 막아낼 줄을 몰랐다.

툭.

요한이 창을 내려놓았다.

그리고는 등 허리춤에 매어 놓았던 검을 뽑아들었다.

마상용 창은 적의 방어를 깨부수거나, 다수를 상대하기에는 수월할지 몰라도, 일대일 결전에서는 결코 좋은 무기가 아니었다.

물론 요한 정도의 고수에게는 큰 차이가 없을지 모르지만 굳이 단점을 안고 갈 이유가 없었다.

“네 놈이 좋아하는 신 곁으로 보내주마.”

여문휘도 기수식을 취했다.

비웃음을 흘리는 겉과 달리. 여문휘의 속은 차갑게 내려앉았다.

상대는 초절정의 살수가 뚫어낼 수 없을 정도의 호신강기를 운용할 수 있는 존재.

갑옷의 도움을 받긴 했지만 적어도 자신과 같은 화경의 경지로 봐야 했다.

“누가 이단이 아니랄까봐, 뚫린 입이라고 되는 대로 지껄이는 구나.”

요한의 몸에서 광채가 흘러나왔다.

검을 넘어 전신 새하얀 빛에 휩싸인 요한은 마친 신이 현신한 듯했다.

요한의 검에서 쏟아진 수십 갈래의 강기가 여문휘의 사방을 점하며 휘둘러졌다.

일견 새하얀 빛의 그물에 여문휘가 갇혀있는 모양새였다.

태양이 눈앞에 드리운 듯, 눈을 뜰 수 없을 정도의 빛이었지만 여문휘는 눈 하나 깜짝하지 않고, 요한을 바라봤다.

채앵!

강기가 만들어낸 그물이 깨어져 나갔다.

수십 줄기의 강기 다발이 깨어졌음에도 검과 검이 부딪치는 소리는 단 한 번뿐이었다.

극상의 쾌!

눈으로 잡을 수 없을 정도로 빠르게 휘둘러진 여문휘이 검이 일순간에 그물을 찢어발겼다.

조각조각 찢긴 강기가 바닥으로 떨어져 내리며 사그라지는 모습은 마치 별빛이 쏟아지는 듯했다.

전장과는 어울리지 않는 아름다움이었다.

쐐애액.

강기의 그물을 찢어낸 검붉은 강기가 뱀처럼 휘어지며 요한의 숨통을 노려갔다.

캉!

그러나 뱀의 사특한 송곳니는 빛에 막혀 더 이상 나아가지 못했다.

요한의 전신을 휘감은 기운은 어느새 방패의 형상을 갖춰 여문휘의 검을 막아냈다.

“이단 주제에 제법이구나.”

한 차례 공방을 주고받은 뒤, 요한이 감탄어린 표정을 지어보였다.

소드 마스터는 되어야 막아낼 수 있는 공격이었다.

물론 소드 마스터라 하더라도, 막아내는 것이 고작.

어지러워진 손발에 반격은 꿈도 꾸지 못했다.

그러나 여문휘는 자신의 공격을 막아냈을 뿐만 아니라, 반격까지 꾀했다.

제법이었다.

“...”

여문휘는 말없이 자세를 바로잡았다.

싸움이 시작된 이상, 무의미한 대화로 심력을 소비할 생각이 없었다.

“다시 가지.”

요한이 걸음을 내딛었다.

처음에는 제 자리에서 강기 다발을 쏟아냈을 뿐이지만 이번에는 직접 검을 섞고자, 움직인 것이다.

용호상박.

어느 한 쪽도 우세라 말할 수 없는 일진일퇴의 공방이 이어졌다.

그러나 싸움이 계속 될수록 요한과 여문휘의 표정은 극명하게 갈렸다.

줄곧 여유를 잃지 않고 있는 요한과 달리, 여문휘의 얼굴을 합은 거듭할수록 굳어져만 갔다.

겉보기에는 호각지세로 보였지만 직접 검을 맞대고 있는 여문휘는 느낄 수 있었다.

전력을 다하고 있는 자신과 달리, 상대는 여력을 남겨두고 있었다.

“더 놀아주고 싶지만 시간이 없구나.”

요한이 말했다.

동시에 그의 전신에서 뿜어져 나오는 빛이 한층 더 강해졌다.

계속해서 기사단과 성전사들의 피해가 발생하고 있는 상황이다.

뒤늦게 나타난 여덟 명의 살수들의 영향이 컸다.

절반인 넷이 기사단장들의 손에 숨이 끊어졌지만 더 이상의 피해를 감수할 수는 없었다.

“이런...미친!”

여문휘의 입에서 욕지거리가 튀어나왔다.

여력을 남기고 있다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전신으로 강기를 뿜어대던 요한이다.

지금까지 소모한 내공이 만만치 않을 텐데, 더 강해진 빛에 어이가 없어 튀어나온 욕이었다.

으득.

여문휘가 이를 악물고 내공을 끌어 올렸다.

정말 내공이 무한하기라도 한 것인지, 전신으로 강기를 뿜어대는 요한이었지만 그렇다고 현경의 경지는 아니다.

그냥 미친 듯 내공이 많을 뿐이다.

경지는 동수.

내공의 차이가 지금의 상황을 만들어내긴 했지만 뒤집지 못할 것은 없었다.

이번 일격에 승부를 걸었다.

요한과 달리, 여문휘는 지금까지의 공방으로 내공이 상당량 소모된 상태였기 때문에 이 이상 시간을 끌면 위험했다.

콰콰쾅!!

요한의 검과 여문휘의 검이 충돌했다.

새하얀 빛과 검붉은 빛이 뒤엉켜 사방으로 퍼져나갔다.

“음.”

빛이 가신 자리에는 요한만이 오연히 서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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