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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살수다-102화 (102/150)

# 102

102화. 충돌(5).

여문휘가 두려워하는 대로, 여문휘의 행방을 알았다면 나는 망설임 없이 그를 죽이기 위해 움직였을 것이다.

그러나 그의 행방은 알 수 없었고, 나는 지금 할 수 있는 일에 집중했다.

우선 김원철의 조언을 받아들여 마나 제어법을 공개하기로 결정했다.

마나 제어법은 나에게 가르침을 받은 헌터들이 편의상 붙인 이름이었다.

갑작스런 김원철의 제안에 잠시 망설이긴 했지만 어차피 원 길드와 주작 길드원들을 통해 알음알음 퍼져나가고 있는 상황이었다.

살막의 위협에 맞서 급하게 전력을 강화시키기 위해 전한 가르침이다.

상황이 촉박하게 돌아갔기에 비밀 엄수보다는 눈앞의 일만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

이후, 자신들의 성장을 확인한 헌터들이 가까운 지인들에게 내 가르침에 대해 전한 것이다.

대가른 바란 것이 아닌, 현재 소속은 다르지만 한 때, 생사를 같이 했던 동료나, 죽마고우와 같은 친구들이 좀 더 강해지고 안전하길 바라는 마음을 탓할 수도 없었다.

“유인원 협회장님.”

마나 제어법과 관련한 문제로 오랜만에 유인원을 만났다.

유인원이 김원철의 뒤를 이어 협회장에 오르고 난 뒤로는 처음 가지는 자리였다.

“김태빈 헌터님. 오랜만입니다. 고생하셨다는 얘기는 들었습니다. 먼저 협회와 한국 국민들을 대신해 김태빈 헌터님께 감사의 말씀을 전합니다.”

“아닙니다.”

유인원은 나를 반갑게 맞이하는 한편, 감사의 인사를 전해왔다.

한국을 노리는 살막에 맞서며 중국 헌터들과 전투에서 승리하고, 청와대에서 일어난 테러 사건의 피해를 최소화하는데 내 역할이 컸다.

나로 인해 발생한 일들이긴 하지만 그 점에 유인원이 나에게 감사를 전한 것이다.

그러나 나는 정중히 고개를 저었다.

살막에 맞선 것은 내 개인적인 목적을 위해서지 국민을 위한다거나 하는 거창한 이유로 나선 것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감사를 받을 이유가 없었다.

“협회장님도 반갑습니다.”

“유 협회장도 잘 지냈나?”

유인원은 여전히 김원철을 협회장이라 불렀다.

김원철도 익숙한지, 그다지 신경 쓰지 않는 기색이었다.

두 사람 또한 그간의 일로 오랜만의 만남이었기에 서로를 무척이나 반가워했다.

“드릴 말씀이 있어서 찾아왔습니다.”

인사는 이쯤 해두고, 나는 곧장 본론을 꺼냈다.

성급해 보일 수도 있지만 그런 것을 따지는 사이는 아니었다.

“무슨 일 있으십니까?”

사뭇 진지한 내 표정에 유인원도 관심을 기울였다.

유인원 자신이 비서일 때부터 협회장에 오른 지금까지 태빈이 관계된 일 중에 작은 것은 단 하나도 없었다.

하나같이 협회 전체, 아니 국내에 영향을 미칠 정도의 일이었으니, 유인원이 이렇듯 집중하는 것은 당연했다.

“마나 제어법이라는 것이 있습니다.”

나는 마나 제어법에 대한 얘기만 꺼낸 뒤, 김원철을 바라봤다.

자세한 설명을 김원철에게 맡긴 것이다.

내가 직접 설명하기에는 스스로 금칠을 하는 모양새였고, 객관적인 정보로 받아들여지지 않을 수도 있었다.

“유 협회장님도 헌터들의 힘이 마나에서 비롯된다는 사실을 알고 계실 겁니다. 그 마나를 제어함으로써 헌터들은 보다 강해질 수 있습니다.”

김원철이 설명을 이어갔고,

“그게 정말입니까?!!!”

유인원은 크게 놀랐다.

헌터의 능력을 강화할 수 있는 방법이라니.

변혁 이후, 수많은 헌터들이 도전했지만 손에 꼽을 정도의 극히 일부를 제외하고는 모두가 실패한 일이었다.

한국만 봐도 처음 측정된 등급을 올려 승급을 이룬 헌터가 태빈을 포함해 고작 넷뿐이었으니, 더 말할 것도 없었다.

겉으로 드러나지는 않았지만 몇몇 국가는 국가 차원에서 비밀리에 실험을 진행하기도 했다.

비밀리에 진행한 이유는 각성자를 대상으로 하는 연구이니만큼, 결코 합법적이라 말 할 수 없기 때문이다.

“사실입니다. 이미 저희 팀원들은 A급 이상에 올라섰고, 마나 제어법을 익히고 있는 원 길드와 주작 길드 등의 헌터들도 기존보다 배 이상 능력을 끌어올린 상태입니다.”

“....!!”

이미 시험까지 끝마쳤다니, 이제는 말조차 하지 못하고 눈만 껌벅이고 있는 유인원이었다.

사실 의아하긴 했다.

태빈은 그렇다 쳐도, 원 길드와 주작 길드의 공략 시간이 믿기 힘들 정도로 단축됐다는 소식을 들었다.

보통 일주일은 걸리던 공략을 고작 삼일 만에 끝내버렸으니, 속된 말로 단체로 약이라도 빨았나 하는 생각까지 했었다.

그 의문이 이제야 풀렸다.

마나 제어법이라는 보물 같은 수련법이 존재했던 것이다.

그 방법으로 헌터들이 배 이상 강해졌다면, 경이적인 공략 속도도 불가능한 것만은 아니었다.

“그러한 방법을 무상으로 협회에 공개하겠다는 말입니까?”

“예. 일단은 협회를 시작으로 점차 그 범위를 확대해 나갈 생각입니다. 나중에 가서는 모든 헌터들이 마나 제어법을 익힐 수 있도록 말입니다.”

“아... 정말 대단하십니다.”

유인원의 입에서 작게 탄성이 흘러나왔다.

향상심이 조금이라도 있는 헌터들은 무슨 짓을 해서라도 배우고 싶어 할 마나 제어법이다.

마음만 먹기에 따라, 수많은 헌터들을 노예처럼 부릴 수 있고, 억만금을 벌어들일 수도 있다.

그럼에도 아무런 대가 없이 무상으로 공개하겠다는 태빈의 뜻에 대단하다는 말밖에 나오지 않았다.

“협회 측에 먼저 공개하는 이유는 후에는 협회가 중심이 되어 주길 바라기 때문입니다.”

“으음...”

유인원이 안색을 고치고 진중해졌다.

협회가 얻게 될 이득은 명확했다.

가장 먼저 국민들이 던전과 몬스터의 위협으로부터 보다 자유로워 질 수 있다.

던전을 공략하고 몬스터와 싸우는 것이 헌터들의 역할이다.

헌터들이 강해진다면, 그 역할을 수행하기가 수월해질 테니, 국민의 위험성이 낮아지는 것은 당연했다.

또한 협회가 중심이 된다면, 모든 헌터들이 협회를 지지할 것이다.

현재 헌터들이 협회에 보내는 지지는 미약한 편이다.

협회를 그저 공략허가나, 마정석과 몬스터 부산물을 처리해주는 대행기관쯤으로 생각하기도 했다.

협회보다는 소속 길드나 팀에 대한 의존도가 높기 때문이다.

마나 제어법을 통해 그런 인식을 단번에 뜯어 고칠 수 있었다.

뿐만 아니라, 만약 외국에까지 공개한다면, 이상 현상 문제의 해결에 이어 다시 한 번 국제 사회에 영향력을 떨치게 될 것이다.

헌터들이 강해질 수 있는 방법을 탐내지 않을 국가는 없으니 말이다.

그러나 분명 문제도 존재했다.

“헌터들이 강해진다는 것은 분명 반길만한 일입니다. 허나, 그 부작용도 무시할 수 없을 겁니다.”

“저희도 알고 있습니다.”

유인원이 걱정하는 것은 태빈과 김원철이 걱정하던 것과 같았다.

바로 힘의 악용에 관한 것이었다.

더 강해진 헌터들은 그 힘으로 더 흉악한 범죄를 저지를 수도 있었다.

칼을 든 강도가 총을 든 강도로 변할 수도 있는 일이다.

그러니 섣불리 결정할 수 없었다.

“하지만 구더기 무서워 장 못 담굴 수는 없는 노릇 아니겠습니까?”

내가 말했다.

그리고 차분히 말을 이었다.

우선 협회에 공개하기로 했지만 완전한 공개는 아니었다.

일단은 협회에 5년 이상 근속한 직원들을 대상으로 공개할 생각이었다.

협회가 던전과 몬스터에 관해서 정부를 대신하고 있긴 하지만 급여 수준은 길드에 비해 낮고, 업무 강도는 높은 편이다.

물론 일반인의 급여와 업무강도에 비할 바는 아니지만 협회 소속의 헌터들은 비슷한 일을 하고도 더 많은 돈을 벌 수 있음에도, 국민을 위해 봉사하고 있는 것이다.

그런 환경에서 5년 이상 일한 이들이라면, 성품은 믿을만하다.

자신의 이득을 포기하고 국민의 안전과 헌터들의 권익을 위해 일한 이들이니, 지금보다 강해진다고 해서 잘못된 길로 빠질 가능성이 낮았다.

물론 이후에도 협회 차원에서 지속적인 관리가 필요했다.

견물생심에, 열 길 물속은 알아도 한 길 사람 속은 모르는 법이다.

때문에 협회 자체적인 관리뿐만 아니라, 원 길드와 주작 길드, 그리고 신의 길드도 그들이 잘못된 길로 빠지지는 않을지 예의주시할 예정이었다.

“일반에도 무작정 공개할 생각은 없습니다.”

마나 제어법을 익히는 데 생각한 조건이 있었다.

그 조건은 마나 제어법을 가르쳐주는 대가로 협회와 삼 년의 계약을 맺고 협회 소속으로 일하게 하는 것이었다.

삼년이라는 시간은 협회 측에서 헌터의 성품을 살피기에 충분한 시간이다.

반대로, 악인이 기다림을 감수하기에는 결코 짧은 시간이 아니었다.

“일단 성과를 보고 결정을 하는 건 어떻겠습니까. 인원을 선발하고 가르치는데 한 달 정도면 충분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지금 길드원들이 가르침을 받은 것은 열흘 남짓.

이번에는 내가 직접 가르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한 달로 기간을 넉넉히 잡았다.

이미 가르침을 받은 헌터들이 파견될 예정이니, 한 달이면 협회 측에서도 성과를 보기 충분한 시간이었다.

대중에게 공개하는 것은 협회 측 헌터들을 대상으로 확실히 증명이 된 뒤에 좀 더 상의해 결정하면 될 일이었다.

***

내가 마나 제어법 문제로 움직이는 동안, 중국의 국경지대에서 큰 규모의 전투가 발생했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양측이 각기 수천으로 족히 만 명에 달하는 헌터들의 충돌이었다.

변혁이후, 발생한 헌터간의 전투 중에 가장 큰 규모로, 살막과 타이탄의 일이었다.

“군대를 동원한 건가.”

타이탄의 수장 요한의 눈에 수천의 헌터들과 그 뒤에 나열한 수만의 군인들이 들어왔다.

군인들뿐만 아니라, 탱크와 전투기까지 전열을 갖추고 있었다.

“아난 기사단에 연락해서 미사일 포격 준비할 수 있도록.”

요한이 곧장 명령을 내렸다.

당장 자신들은 기사단과 헌터들뿐이지만 유럽에는 수천km 거리를 격하고 적을 타격할 수 있는 미사일이 있었다.

적들의 먼저 포격을 가해온다해도 걱정은 없었다.

신의 방패라 불리는 프긴 기사단장 아이언은 설사 미사일이라 해도 막아낼 수 있는 힘이 있었다.

***

여문휘도 타이탄의 병력을 바라보고 있었다.

태빈에 대한 두려움으로 인해 몸을 숨기고 있었지만 타이탄이 중국을 노리고 있는 이상, 마냥 숨어 있을 수만은 없었다.

여문휘는 무려 오천의 헌터를 그러모았다.

던전도 막아야 했기에 중국 헌터의 전부는 아니었지만 상당한 전력임에는 틀림없었다.

그럼에도 헌터 전력만 놓고 본다면, 삼천의 타이탄에 비해 오천의 살막이 다소 밀렸다.

한국에서 삼백이나 되는 정예를 잃은 탓이다.

그렇기에 여문휘는 군대를 동원했다.

군대간의 전투로 번질 경우, 민간인들이 휩쓸릴 가능성이 높기 때문에 전 세계적으로 지탄받을 수도 있지만 여문휘는 그런 것 따위는 신경조차 쓰지 않았다.

군대를 동원한 것이 유효했는지, 거침없이 진격해오던 타이탄이 멈춰 섰다는 점이 더 중요했다.

“무림일통을 위해서는 언제고 부딪쳐야 할 적. 이번 기회에 정리를 해두는 것도 나쁘지 않겠지.”

여문휘의 눈이 서늘하게 빛났다.

지속된 실패로 화풀이 대상이 필요했는데, 타이탄은 꼭 알맞은 대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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