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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살수다-95화 (95/150)

# 95

95화. 도주(4).

갑자기 헌터들이 들이닥치고, 그들의 몸이 기이하게 부풀어 오기 시작했을 때, 내 머릿속에는 무림의 금기인 폭렬공이 떠올랐다.

내공을 억지로 폭주시켜 자신의 신체를 폭발시키는 마공.

가진 내공보다 몇 배의 파괴력을 발휘할 수 있지만 시전자의 죽음을 전제로 하기에 금기된 무공이었다.

세간에는 고작 이류, 일류의 무인이 절정, 초절정의 무인을 죽일 수 있도록 해주기에 금기됐다는 말도 있다.

어쨌든, 살막이 마도가 아님에도 왜 그 금지된 무공이 떠올랐는지는 모르겠지만 눈앞에서 보이는 반응은 폭렬공과 너무나 흡사했다.

“피해!”

나는 외마디 외침과 함께 몸을 날랐다.

이미 수십에 인파가 몰려들었지만 그들을 보호할 여력은 없었다.

B급으로, 고작 일류에 불과한 이들이지만 열 명이 동시에 시전 하는 폭렬공에 휩쓸린다면 나조차도 위험했다.

경고성과 함께 별채의 지붕을 단숨에 뚫어낸 내가 막 밖의 공기를 마주한 순간,

콰콰콰쾅!

풍선처럼 부풀어 오른 헌터들의 몸이 차례로 터져나갔다.

폭발과 함께 헌터들의 조각난 육신이 암기가 되어 사방에 흩뿌려졌다.

폭렬공으로 끝이 아니었다.

헌터들의 몸이 터지는 것과 동시에 별채 전체에서 커다란 폭발이 일었다.

“크아악!”

“도망쳐!”

고작 일류 수준의 헌터들이 일으킨 폭렬공이었지만 목숨을 대가로 바친 그 힘은 초절정 고수라도 감당하기 힘들다.

하물며 거기에 현대의 화력까지 더해졌으니 일반인들이 살아남을 리는 만무했다.

멋모르고 몰려있던 정부 인사들과 중국 방한단은 피할 생각도 하지 못하고 갑작스러운 폭발에 휩쓸렸다.

눈치 빠른 몇몇과 입구에 가까웠던 일부는 운 좋게 살아남을 수 있었지만 간신히 목숨만 붙어 있을 뿐, 당장 숨이 끊어져도 이상하지 않을 정도로 부상이 심각했다.

“큭!”

나 또한 지붕을 뚫고 피하면서 폭렬공의 범위에서 벗어나는 데에는 성공했지만 폭발의 여파까지 피하지는 못했다.

폭발의 불길이 나를 덮쳐왔고, 나는 급히 호신강기를 끌어 올렸다.

화르륵.

옷자락이 살짝 타들어가긴 했지만 다행히 열기는 내 호신강기를 뚫어내지 못했다.

그러나 문제는 폭발이 아니었다.

피부를 파고 들어오는 독기.

폭발과 함께 피어오른 독기가 폭발의 여파를 타고 넓게 퍼져 나에게까지 닿았다.

나는 곧바로 내공의 운용을 멈추고 호흡을 차단했다.

거센 불길이 다시 옷자락을 태우고 있었지만 이는 중요한 게 아니었다.

독기는 아주 살짝 들여 마셨을 뿐임에도 벌써 내부로 침투에 내공을 흩어놓고 있었다.

지붕을 부수고 나오길 다행이었다.

내부를 뚫고 나오려 했다면, 폭렬공이나, 독기 둘 중 하나는 피하지 못했을 것이다.

나는 호흡을 차단한 채, 무너져 내리는 지붕의 잔해를 박차 별채를 벗어났다.

***

“청와대 경호실장 정우람입니다. 이게 대체... 어떻게 된 일입니까?”

내가 막 폭발의 영향에서 벗어났을 때, 뒤늦게 청와대와 좌측 별채에 있던 이들이 몰려 나왔다.

별채에서 일어난 폭발에 상황 파악을 위해 나선 헌터들이었다.

그 뒤로 일반인들이 황급히 대피하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테러인 듯합니다.”

“피해상황은?”

정우람이 주변을 살펴봤지만 눈앞에 펼쳐진 상황은 좋지 않았다.

갑작스레 발생한 폭발에 다급히 뛰쳐나왔지만 한 발 늦었다.

허공에 버섯구름이 피어날 정도의 거대한 폭발과 함께 무너져 내린 별채 속에 살아남은 사람이 있을 리 없었다.

밖으로 빠져나온 건지, 폭발에 튕겨져 나온 건지.

간신히 숨만 붙어있는 몇몇이 보이긴 했지만 살 수 있을지 의문스러운 모습이다.

사지중 하나가 없는 것은 기본이고, 심한 경우, 상체만 남아 있는 사람도 있었다.

본인은 그 사실을 인지하지 못하는지, 살고자 두 팔을 버둥거리고 있었지만 가망은 없어 보였다.

“김태빈 헌터.”

뒤늦게 인근에서 청와대를 주시하고 있던 김원철도 도착했다.

만약을 대비해 대기하고 있었는데, 폭발은 나나 김원철도 예상하지 못한 일이었다.

나를 노린 것이 확실하긴 하지만 아무리 B급이라도 십여 명의 살수를 희생양 삼을 줄은 몰랐다.

거기에 방한단까지 휩쓸렸으니.

“별채에 있던 여문휘는 가짜였습니다.”

나는 김원철에게 대강의 사정을 설명했다.

별채 안에 있던 여문휘는 대역이었고, 준비된 함정이었다는.

폭렬공과 폭발, 그리고 독까지.

폭렬공은 아니지만 자신이 여문휘에게 선보였던 함정과 똑같았다.

“그렇군요.”

김원철이 무거운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고,

“뭘 멍하니 보고만 있어! 빨리 부상자들 수습해!”

정우람은 함께 온 헌터들을 지휘해 부상자들을 수습하려는 움직임을 보였다.

“안됩니다. 근처에 독이 퍼져 있습니다.”

하지만 그 움직임은 내 손에 의해 제지됐다.

이미 별채 주변은 독기로 가득한 상황이다.

고작 한 모금도 채 안 되게 들이마셨을 뿐인데, 화경의 경지에 오른 자신의 내공을 흩어 놓으려 할 정도의 독이었다.

무턱대고 접근했다가는 목숨을 잃을 수도 있었다.

“그럼 저들은...?”

정우람이 불안한 눈빛을 한 채 물었다.

아직 숨이 붙어 있는 몇몇이 애타게 도움을 갈구 하고 있었다.

당장 치료를 받지 않는다면, 생명이 위독한 이들이었다.

그러나 정우람은 이미 내가 무슨 대답을 할지 알고 있었다.

그렇기에 눈동자가 떨리고 있는 것이다.

절레절레.

나는 정우람의 예상대로 고개를 저었다.

당장 숨이 붙어 있다 해도 이미 독 기운에 중독된 이들이다.

저들이 어떻게 지금까지 살아 있는지는 알 수 없지만 이미 구하기에는 늦었다.

“...”

잠시 말이 없던 정우람이 고개를 털며 한 발 앞으로 나섰다.

내 말을 믿지 못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그 말만 믿고 아무것도 하지 않은 수는 없었다.

“마법으로 옮길 수 있겠나. 아니면 활로 밧줄을 연결 하던가.”

“마법으로 옮기기에는 거리가...”

“상태가 심각해 작은 충격으로도 숨이 멎을 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정우람의 결심에도 나온 의견은 부정적인 것들뿐이었다.

부상자들의 상태가 하나같이 심각하기도 하거니와, 마법 등으로 사람을 수십 미터나 옮기는 것은 불가능에 가까웠다.

“제기랄. 방독면 가져와. 내가 직접 들어가겠다.”

결국 정우람이 직접 나섰다.

“위험합니다.”

“죽을 겁니다.”

김원철과 내가 차례로 경고를 보냈지만 정우람은 듣지 않았다.

인도적인 마음보다는 청와대의 경호실장으로서의 책임감이다.

테러를 막지 못한 것도 모자라, 부상자들까지 외면할 수는 없었다.

나는 정우람을 더 이상 만류하지 않았다.

어차피 딱히 인연이 있는 인물도 아니고, 한 명이 당하고 나면 나머지 헌터들의 경각심이 올라갈 테니, 굳이 말릴 이유가 없었다.

“밧줄 연결해.”

방독면을 쓴 정우람은 부상자를 향해 나아갔다.

몸에는 기다란 밧줄을 감은 채였다.

밧줄을 연결해 놓는다면, 혹시 독에 중독돼 쓰러지더라도 다시 꺼내 올 수 있을 테니 말이다.

그 잠깐의 준비를 하는 사이에도 상태가 심각했던 부상자들은 하나둘 숨이 끊어졌고, 이제 고작 서넛만 미약한 숨을 내쉬며 생명줄을 부여잡고 있었다.

“괜찮으십니까?”

“으...”

정우람은 곧장 부상자의 의식을 확인했다.

다행히 부상자는 자신이 살아있음을 알리기라도 하듯, 미약한 신음을 내질렀다.

정우람은 곧장 들것을 이용해 부상자를 옮기고자 했다.

그러나

“이게...”

정우람은 뜻대로 부상자를 옮기지 못했다.

바위조차 우습게 들어 올리는 A급 헌터의의 팔이 힘없이 축 늘어졌다.

몸도 중력이 높아지기라도 하듯, 점차 무거워졌다.

결국 그 몸의 무게를 이기지 못한 다리가 꺾이고,

털석.

정우람은 부상자 옆에 맥없이 쓰러졌다.

“으으...”

호기롭게 나섰던 정우람은 부상자들과 똑같이 도움을 갈구하는 몸이 되었다.

그를 A급 헌터의 반열에 올려놓았던 능력도 지금은 아무런 도움이 되지 못했다.

“실장님!”

“빨리 밧줄 당겨!”

지켜보던 헌터들의 입에서 다급한 음성이 튀어나왔다.

“멈추십시오.”

그러나 나는 이번에도 그들의 행동을 막았다.

내가 호흡을 통해 독 기운을 느꼈다고는 하나, 정우람의 몸에도 독 기운이 남아 있을 것이다.

해독제가 없는 상황에서 위험을 감수할 수는 없었다.

“그럼...”

헌터들은 발을 동동 구르며 정우람의 안위를 걱정했지만 위험성을 깨달았는지, 섣불리 밧줄을 잡아당기지는 않았다.

‘산공독보다 효과가 강하긴 하지만...’

헌터들을 제지한 나는 주변으로 시선을 돌렸다.

지금까지 드러난 증상으로 보아, 별채 인근에 퍼진 독은 단숨에 절명에 이르게 하는 극독은 아니었다.

중독자를 손 하나 까닥할 수 없을 정도로 무기력하게 만들 뿐이다.

당장 숨이 끊어지지 않고 있는 부상들이나, 계속해서 신음을 흘리며 도움을 갈구하는 정우람만 봐도 알 수 있다.

결국 죽음에 이르게 할지도 모르지만 당장 눈에 드러난 효과는 딱 거기까지였다.

내공을 흩어 놓고, 대상을 무기력하게 만들긴 하지만 목숨을 위협할 정도는 아닌 독.

시간이 촉박해 제대로 된 준비를 하지 못했을 지도 모르지만 나를 노린 함정이다.

여문휘가 나를 죽이고자 했다면, 이 정도에 그칠 리가 없었다.

‘내가 중독됐을 때를 노린 살수가 있을 가능성이 높다.’

내 시선이 헌터들 사이에 섞여 있던 사내에게 닿았다.

자신들의 실장이 처한 위기에 초조함과 불안한 기색을 감추지 못하는 다른 헌터들과 달리, 차갑게 내려앉은 눈으로 나를 응시하던 사내이었다.

나와 눈이 마주치자 황급히 시선을 돌렸지만 내 손은 이미 검을 향하고 있었다.

“하압!”

동시에 사내 또한 나를 향해 몸을 날렸다.

눈을 마주친 순간, 그 또한 일이 틀어졌음을 알아차린 것이다.

“김태빈 헌터!”

뒤늦게 위험을 알리기 위한 김원철의 외침이 터져 나왔지만 경고는 무의미했다.

처음 들이마신 독 기운 때문에 내공의 수발이 원활하지 않긴 했지만 그렇다고 고작 살수 하나에 당할 정도는 아니었다.

푸욱.

굳이 쳐낼 필요도 없이 가볍게 몸을 틀어 사내의 검을 비껴냈다.

그리고 빛살보다 빠르게 뽑혀져 나온 내 검이 사내의 심장에 정확히 틀어 박혔다.

“그륵...”

역류한 피로 인해 사내가 피거품을 물었다.

숨이 꺼져가는 순간이었음에도 사내가 희미하게 미소를 짓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그 순간,

스윽.

사방에서 다섯 개의 신형이 나를 덮쳐왔다.

가장 먼저 정체를 드러낸 사내는 미끼에 불과했다.

“큭!”

나는 한 개의 공격만을 막아 냈을 뿐, 네 개는 허용하고 말았다.

막아낸 한 개가 제법 날카로운 기세를 품고 있었기 때문이다.

물론 허용한 공격도 옷자락이 잘린 정도가 전부였다.

“독에 중독된 상태다!”

수장으로 보이는 사내가 소리치며 재차 달려들었다.

내가 네 개의 공격을 포기하고 막아낼 수밖에 없었던 공격을 해왔던 사내였다.

사내는 고작 옷자락일 뿐이지만 내가 공격을 허용했다는 것만으로도 중독된 상태라는 사실을 파악해냈다.

“뭐..뭐야?! 커억!”

“으악!”

적은 다섯이 전부가 아니었다.

몰려 있던 헌터들도 곁에 있던 이들이 내지른 기습에 변변한 저항도 못하고 쓰러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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