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나는 살수다-93화 (93/150)

# 93

93화. 도주(2).

여문휘의 추적은 쉽지 않았다.

흔적도 없이 오로지 추측에 의존해야 하는 일이다.

하물며 상대는 나와 같은 살수.

서로의 생리를 잘 알기에 예상 경로를 예측한다 하더라도 확신하기 어려웠다.

나는 우선 인천으로 방향을 잡았다.

인천은 부산과 함께 아직까지 유지되고 있는 항구가 있는 도시다.

과거에 비해 못하긴 하지만 한 몫 잡기 위해 목숨을 건 대형 선박이 간간히 오가고, 여전히 어업으로 생계를 이어가는 중소형 선박들도 항해를 계속하고 있었다.

해양 몬스터로 인해 헐거워진 해상 경비에 밀입국과 밀항은 전보다 활발해지기도 했다.

한국에서 범죄를 저지르고 타국으로 도망치거나, 반대의 경우이거나.

해상은 육지나 공중보다 몇 배는 위험하지만 돈은 사람의 눈을 멀게 만들기 충분했다.

물론 인천에는 항구뿐 아니라, 공항도 있긴 하다.

하지만 공항은 항구에 비해 경계 인력이 몇 배나 배치되어 있고, 수속자체도 까다롭다.

만약 여문휘가 부상을 입었고, 그 부상이 겉으로 드러나는 상태라면, 탑승 자체가 불가능하니, 공항보다는 항구로 올 가능성이 높았다.

‘청와대가 더 안전하긴 하지만.’

사실 가장 가까우면서 가장 안전한 곳이 청와대다.

청와대 내부에서 중국의 국가주석에 대한 암살을 시도할 거란 생각은 하지 않을 테니까.

그러나 내가 여문휘를 잘 알 듯, 여문휘 또한 나를 잘 안다.

내가 자신을 죽이기 위해 망설이지 않으리란 것을 알고 있을 것이다.

‘출항하는 배는 세 척.’

항구에는 세 대의 선박이 출항을 앞두고 있었다.

중대형 선박 한 척과 소형 선박 두 척.

목적은 셋 다 조업.

아무리 해양 몬스터가 나타난다 하더라도 평생을 바다와 함께 살아온 이들은 여전히 생계를 위해 목숨 걸고 바다로 나섰다.

어쩌면, 그들에게는 크게 달라진 것이 없을 지도 몰랐다.

바다는 언제나 위험을 내포하고 있었고, 그 위험해 해양 몬스터가 추가됐을 뿐이니까.

나는 멀리서 세 척의 배를 살폈다.

정원이 스무 명 가량인 중형 선박과 기껏해야 대여섯이 탈 수 있을 법한 소형 선박 두 척의 선원들은 각자의 목적을 위해 0그물을 점검하는 등 바삐 움직이고 있었다.

특이하게도 세 척 모두 기관총 등으로 무장한 상태였다. 심지어 중형 선박에는 구식이긴 하지만 함포까지 달려 있었다.

선원 중에 E급에서 D급 정도의 헌터도 몇 보이고.

해상에서의 전투는 육지와 다르겠지만 저 정도 화력이라면, 못해도 8~9급 몬스터까지는 어찌어찌 막을 수 있을 것으로 보였다.

몬스터라는 위험이 도사리고 있는 만큼, 무턱대고 항해로 나서는 것만은 아니었다.

일단 항구에서 바삐 움직이고 있는 이들 중에 여문휘로 추정되는 인물은 없었다.

하긴 아무리 경계가 허술해졌다고 해도 대낮부터 밀항을 시도하지는 않을 것이다.

나는 정박해 있는 배들을 향해 시선을 돌렸다.

과거에 비해 줄었다 해도, 항구에는 여전히 수십 척의 배들이 출항을 기다리고 있었다.

밀항을 목적으로 하는 배들은 정식으로 출항 절차를 밟지 않을 테니, 오늘 출항하는 배가 세 척이 전부일 리는 없다.

지금은 기척이 느껴지지 않는 배들도 언제든 움직일 수 있었다.

***

밤이 깊었다.

구름이 달빛마저 가려 어둠이 짙게 내려앉은 밤이었다.

나는 중형 선박 위에 올라있었다.

앞서 출항한 두 대의 소형 선박에는 선원들을 제외하고는 아무도 없었다.

지금도 시야가 닿는 거리에서 조업을 진행하고 있을 뿐, 밀항의 낌새는 보이지 않았다.

“밧줄 풀고, 닻 올려!”

뿌우. 뿌우.

중형 선박이 뱃고동을 울리며 항해를 시작했다.

선원들이 출항을 위해 움직이는 사이, 선원실부터 화물칸까지 선박 내부를 샅샅이 수색했지만 여문휘의 흔적은 보이지 않았다.

꼭 오늘 밀항을 시도할 거라 생각지는 않았기에 아쉬움은 없었다.

그 때,

항구 구석진 자리에서 조명조차 켜지 않은 채, 배 주위를 서성이는 일단의 무리가 시야에 들어왔다.

항구를 밝히는 어스름한 조명만이 어둠을 밝히고 있었지만 내 시야를 방해하지는 못했다.

나는 배 위에서 그대로 바다로 뛰어 내렸다.

이미 항해를 시작한 배는 항구와 수백 미터나 떨어져 있었지만 상관없었다.

타앗.

나는 수상비의 묘리로 수면을 박차며 빛살같이 쏘아졌고, 눈 깜짝할 새에 육지에 닿았다.

물 위를 달리는 수상비는 풀 위를 달리는 초상비에 비해 내공소모가 큰 편이다.

하지만 나에게는 둘 다 바다에서 한 바가지 물을 퍼내는 것이나 매한가지였다.

“어...?! 어..?!”

선박 위의 누군가 그 모습을 봤는지, 삿대질을 하며 소리쳤지만 나는 이미 그 누군가의 시야 밖으로 사라진 뒤였다.

“잘 찾아오셨습니다. 저는 오지석이고, 이 친구는 이시진입니다. 무려 A급 헌터죠. 왜 A급 헌터가 이런 일을 하는지 궁금하실 수도 있겠지만 이유를 묻진 마시고, A급 헌터가 함께 하는 만큼, 이 안전하고 확실하게 모셔드린다는 점만 생각하시면 됩니다. 다만, 가격이...”

“얼마가 들던 상관없다.”

“하하. 이거 말이 통하시는 분이군요. 흠... 갑자기 인근의 경비가 늘어난 탓에 위험수당까지 더해 이 정도가 될 것 같습니다.”

가볍게 항구에 닿아 일단의 무리 근처로 다가서니, 조심스러운 목소리가 들려왔다.

흥정을 하는 듯, 뺨에 난 상처가 인상적인 오지석이 손가락 다섯 개를 펼쳐 보였다.

삼십 억.

목숨을 걸고 바다를 건너는 대가였다.

물론 처음 가격을 정하는 것이니 만큼, 일부러 손가락을 한 개쯤 더 폈다.

이 가격으로 결정되면 좋고, 아니어도 원래 생각한 가격으로 깎아주면 그만이니까.

끄덕.

맞은편의 사내는 군말 없이 고개를 끄덕이며 등에 매고 있던 가방에서 마나석 몇 개를 내밀었다.

확실히 이런 거래에는 부피가 큰 현금보다는 마나석이 낫다.

가격 유동성도 낮고, 추적 우려 없이 언제든 현금으로 바꿀 수도 있는 게 마나석이다.

과거에 집안에 현금과 금괴를 쌓아두고 있던 부자들도 이제는 마나석을 쌓아둔다는 얘기도 있었다.

“으음...”

한 치의 고민도 없는 끄덕임에 손가락을 펼쳤던 오지석의 얼굴에 아쉬움이 스쳐 지나갔다.

가격을 더 불러볼걸 하는 의미가 담긴 아쉬움이었다.

“...그”

“지석아.”

오지석가 입을 달싹거리며 망설이자, 뒤에 있던 이시진이 툭툭 치며 그를 만류했다.

기상환경을 핑계 삼아 가격을 높여보려던 오지석은 이시진의 부름에 고개를 돌렸다.

“빨리 가자.”

“왜?”

“충분하잖아. 그러니까 빨리 가자고.”

오지석은 평소와 달리, 땀을 비 오듯 흘리고 있는 이시진의 모습에 의아함을 느꼈다.

A급 헌터인 이시진이다.

수년 간 함께 일하며 별의별 범죄자들을 다 만나봤고, 해양 몬스터도 수차례 마주했다.

그럼에도 이토록 긴장한 이시진을 보는 것은 처음이었다.

“알겠어. 손님 이쪽으로 가시죠.”

눈치가 빠른 오지석이다.

이시진의 긴장이 앞에 있는 사내에게 있음을 깨달은 오지석은 더 이상 허튼 수작을 부리지 않고, 사내를 자신들의 배로 안내했다.

사내는 여전히 말없이 오지석의 뒤를 따랐다.

왼쪽 다리가 불편한지 질질 끌면서도, 주변을 두리번거리며 경계를 게을리 하지 않았다.

***

나는 은밀히 그들의 뒤를 따랐다.

밀항을 위해서인지, 사내는 마스크와 모자 등으로 얼굴을 꽁꽁 감추고 있었다.

애써 얼굴을 가리고 있었지만 내 눈을 속일 수는 없었다.

사내는 아쉽게도 여문휘가 아니었다.

그러나 아예 관계가 없는 인물도 아니었다.

느껴지는 기운과 몸에 새겨진 죽음의 냄새는 사내가 초절정에 이른 살수임을 말해주고 있었다.

한쪽 다리에 부상을 입은 S급 살수.

모든 시체를 확인한 게 아니었기 때문에 일부가 살아남았을 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그 중 한 명을 이 자리에서 만나게 된 것이다.

당장 덮칠 수도 있었지만 뒤를 밟은 이유는 대부분의 밀항 업자들이 한 명만 태우지 않기 때문이다.

타국을 한 번 오가며 감수해야 하는 위험은 똑같다.

때문에 최대한 많은 이익을 얻기 위해 여럿을 태우는 것이 일반적이었고, 이는 오지석 또한 마찬가지였다.

“여기 이분들은 같이 가실 손님들입니다. 아무래도 손님 한 분만 모시기에는 수지타산이 맞지 않으니... 이해해주시기 바랍니다.”

오지석이 준비한 배는 앞서 봤던 소형선박 크기였다.

배에는 사내외에도 다섯이나 되는 사람들이 먼저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다.

다섯 모두 새로운 사내의 등장에 허리춤의 무기를 매만지며 경계의 모습을 보였다.

털썩.

사내는 그러한 반응에도 아랑곳 않고, 적당히 빈자리를 찾아 주저앉았다.

그제야 다른 다섯도 경계를 풀고 검을 갈거나, 눈을 감고 명상에 잠기는 등, 제 일에 집중했다.

다섯 중에도 여문휘는 없었다.

밀항은 홀로 살아남은 살수가 자체적인 귀환을 위해 택한 방법인 듯했다.

스릉.

목표하던 여문휘는 아니었지만 살수 또한 적.

더 이상 망설일 것은 없었다.

어둠 속에서 일어난 한줄기 빛이 그대로 살수에게 쏘아졌다.

“크악!”

빛은 살수의 숨통을 끊어 놓지 않았다.

떨어져나간 오른팔이 바닥에서 퍼덕이고, 살수의 입에서는 비명이 튀어나왔다.

고통을 참는 것은 살수의 기본 소양이었지만 눈앞의 살수는 부지불식간에 찾아온 고통을 인내해내지 못했다.

“여문휘는 어디 있지?”

콰직.

살수의 입안에서 무언가 부서지는 소리가 들려왔고, 살수는 곧장 눈을 까뒤집으며 피거품을 물었다.

애초에 대답을 들을 수 있을 거라 생각지는 않았다.

막주의 생사조차 모르는 상태에서 홀로 귀환을 택한 자이기에 한 번 물어봤을 뿐이다.

“으악! 뭐...뭐야?!”

“도망쳐!”

살수가 죽고 나서야 멍하니 바라보고 있던 이들이 현실로 돌아왔다.

팔이 떨어져 피가 튀고, 사람이 한 순간에 죽는 모습에 혼비백산해 배를 벗어나고자 했다.

“시진아!”

A급 헌터를 애타게 찾는 오지석의 목소리도 있었다.

“도망치면 죽이겠다.”

뚝.

일순, 소란스러움이 가시고 정적이 찾아왔다.

하나같이 도망치던 자세 그대로 석화라도 된 듯 굳어버렸다.

내가 살기를 숨기지 않고 뿌리고 있었기 때문이다.

온 몸을 옥죄는 살기에 도망치던 자세 그대로 굳어버린 탓에 불편한 일부는 몸을 덜덜 떨면서도 움직이지 않기 위해 안간힘을 다하고 있었다.

“모..몸이..”

나는 오지석을 포함한 일곱 모두 점혈을 통해 도망가지 못하도록 붙잡아 둔 뒤, 김원철을 통해 밀항을 신고했다.

밀항이 범죄이긴 하지만 그들을 죽일 이유는 없었다.

작은 소란을 뒤로 하고 나는 항구를 주시했다.

이미 S급 살수 하나가 실패했다.

여문휘가 이 사실을 안 다면, 밀항을 포기 할 수도 있고, 다시 한 번 노려올 수도 있다.

어떤 선택을 할지는 알 수 없지만 여전히 가장 높은 가능성이 있는 곳이 항구였다.

그리고 몇 시간 뒤,

“여문휘가 청와대의 방한단과 합류했다고 합니다.”

나는 김원철에게 여문휘의 소재를 전해들을 수 있었다.

가장 가능성이 낮다고 판단했는데, 완전히 허를 찔렸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