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나는 살수다-87화 (87/150)

# 87

87화. 결전(2).

내가 각성을 통해 얻은 기술은 신체강화 및 대검술이다.

말 그대로, 일정 시간 신체 능력을 강화하는 기술과 대검을 내려치며 폭발적인 힘을 담기도 하고, 횡으로 그어 풍압을 일으키는 등의 대검을 이용하는 기술 몇 가지다.

대검술은 평생 살수로 살아온 나와 어울리지 않았지만 사실 신체 강화는 제법 쓸 만 했다.

그러나 처음에는 깨어나는 과정에서 마나를 모두 잃어 사용할 수 없는 상태였고, 그 뒤로는 무공을 되찾으면서 필요를 느끼지 못했기 때문에 제쳐뒀던 것이다.

무공과는 달리, 노력을 통해 얻은 힘이 아니라 스스로도 알지 못하는 사이에 우연히 얻은 힘이기에 사용하기 꺼려진 탓도 있었다.

때문에 정말 위험했던 사마휘와 왕추의 습격 때도, 기술을 써야겠다는 생각은 전혀 하지 않았다.

솔직히 당시에는 기술을 사용해 신체가 강화 된다하더라도, 생사를 장담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오히려 강화된 신체능력에 적응하지 못하고 역으로 당했을 가능성이 컸다.

그러나 지금은 다르다.

대검술은 여전히 쓸 일이 없지만 신체 강화는 제법 유용했다.

때문에 나는 신체 강화 기술과 무공을 접목시키기 위해 노력했고, 며칠 사이에 유의미한 결과를 얻었다.

헌터들의 다양한 능력을 접하며 약간의 깨달음을 얻은 덕분이었다.

물론 화경의 경지를 뛰어넘어 현경에 닿을 정도는 아니다.

하지만 신체 강화에 무공이 더해진다면, 한순간 여문휘의 빈틈을 만들 정도는 되었다.

남은 삼일.

나는 헌터들을 더욱 혹독하게 가르침과 동시에 나 스스로도 조금이라도 발전하기 위해 밤낮 없는 시간을 보냈다.

***

예정대로 삼일 뒤,

중국 측 방한단이 한국을 찾았다.

대통령을 비롯한 정부 인사들부터 태백과 태양 길드의 관계자들까지.

중국 측의 방한으로 공항에는 많은 사람들이 몰렸다.

과거에는 주요 인사들만이라도 전세기를 이용했겠지만 지금 시대에는 미친 짓이다.

비행 중에 갑작스럽게 비행 몬스터와 마주할 수도 있는 만큼, 탑승한 헌터가 많을수록 비행은 안전해 지기 때문이다.

실제로 권력자나 재력가들은 헌터의 탑승 유무를 확인한 뒤에 비행기에 오르기도 했다.

물론, 여문휘 정도의 고수는 비행 마법이 가능한 마법사 한 명 정도만 대동해도 충분하겠지만 그 혼자 방한하는 것이 아니기에 방한단 전체가 한 대의 비행기로 한국을 찾았다.

“뭐야?”

“대통령 아니야?”

주변을 오가던 사람들은 수백의 사람들이 일시에 쏟아져 나오고, 또 수백이 그들을 맞이하는 모습에 해외에서 유명한 사람이라도 왔나싶어 시선을 돌렸다.

그러나 구경도 잠시.

흉흉한 기세를 내뿜은 중국의 헌터들을 보고는 바로 고개를 돌려 발걸음을 재촉했다.

“오십이 늘었습니다.”

방송을 통해 중국 측의 인원을 확인한 김원철이 말했다.

중국의 방한은 비밀이 아니다.

이미 며칠 전부터 공식적으로 알려왔다.

한국 정부 또한 숨길 것 없다는 듯, 중국의 방한을 대대적으로 알리는 방송을 내보내고 있었기 때문에 중국의 전력을 살피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인원도 친절히 자막을 통해 알려주고 있었다.

“오십이라. 더 어려운 싸움이 될 것 같습니다.”

확인된 중국의 방한단은 국가주석 여문휘를 포함해 삼백 오십으로, 예정보다 오십이 늘었다.

중국 측에서 미리 알린 정보를 토대로 대비했을 우리 측을 힘으로 누르거나, 대비를 무색케 만들려는 의도로 보였다.

확실히 늘어난 오십 또한 최소 A급 헌터들일 테니, 지금까지 준비한 것으로는 부족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허... 당장 전쟁이라도 치를 태세가 아닙니까...”

무거운 얼굴로 고개를 끄덕이던 김원철이 화면 속 방한단의 복장을 보고는 어이없다는 듯, 헛웃음을 터트렸다.

중국 측 방한단은 대부분이 곧장 전투를 치르기 위해 한국을 찾은 것처럼, 검과 갑옷 등의 무구를 갖춘 상태였다.

누가 보더라도 그들이 단순히 회담을 위해 한국을 찾은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을 정도였다.

실제로 공항에는 방송을 토해서도 느껴질 정도의 불안감이 조성되고 있었다.

날이 선 중국헌터들의 기세에 대통령 경호를 위해 배치된 군경은 긴장으로 잔뜩 굳어져 있었고, 일반 시민들은 괜한 화를 입을까, 멀어지기 바빴다.

“한국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그럼에도 한국의 대통령을 비롯한 정부 인사들은 밝은 미소로 그들을 환영할 뿐이었다.

중국 방한단을 대하는 태도 또한 상전을 대하는 듯했다.

“이미 한국 정부와는 얘기가 끝난 것 같군요.”

나는 그 모습을 지켜보며 느꼈다.

회담은 아직 시작되지 않았지만 한국 정부는 이미 나를 내어주기로 결정했다는 것을 말이다.

“으음...”

김원철도 같은 것을 느꼈는지, 굳어진 얼굴로 침음을 흘렸다.

혹시나 했지만 이제는 확실히 중국 측과의 전투를 피할 수 없게 됐다.

***

중국 측 방한단은 여문휘뿐만 아니라, 헌터 한 명 한 명이 최상급 대우를 받았다.

고작 두 시간 남짓의 짧은 비행이었음에도 하루 동안 여독을 풀도록 했고, 그들을 위해 한국 정부는 최상급 호텔을 통째로 내놓았다.

그들의 편의를 위해 투입된 인력 또한 삼백오십을 위해 천 명에 가까웠다.

다음 날, 예정된 회담이 청와대에서 시작됐다.

그러나 예상대로 회담은 보여주기 식에 불과했다.

삼백오십 명의 방한단 중, 청와대에 도착한 것은 고작 삼십뿐이었다.

나머지 삼백이십이 어디로 사라졌는지는 아무도 알지 못했다.

“저 안에 놈이 있다 했다.”

도심과 떨어진 외딴 곳에 지어진 저택을 바라보는 여문휘의 눈이 스산하게 빛났다.

그런 여문휘의 뒤에는 청와대에서 사라진 삼백이십 명의 헌터들이 마찬가지의 눈빛으로 전투를 준비하고 있었다.

“예.”

바로 옆에 있던 여인이 고개를 끄덕이며 답했다.

제갈민이 권왕과 함께 여문휘에게 붙여준 여인으로, 유송히라는 이름의 책사였다.

유송히는 지구에서 포섭해, 처음부터 살막의 인재였던 것은 아니지만 머리가 비상해 제갈민이 곁에 두고 중히 쓰고 있는 인재였다.

“그런데, 왜 기다리라는 말인가.”

여문휘의 일그러진 시선이 유송히에게로 향했다.

사실 여문휘는 김태빈이 저택에 있다는 얘기를 듣자마자, 곧장 쳐들어가 김태빈의 목을 따고자했다.

지금은 김태빈이라는 이름을 쓰고 있지만 과거 무림에서 무영살(無影殺)이라 불리며 자신의 목숨을 앗아간 자다.

당장이라도 놈의 목을 베어버리고 싶은 마음뿐이었다.

“저들도 분명 저희가 올 것을 알고 있었을 겁니다. 그에 대한 대비가 되어 있을 테니, 무작정 힘으로 몰아붙이는 것은 하책 중에 하책입니다.”

저택은 말이 저택이지, 두꺼운 시멘트 담벼락이 둘러쳐져 있어 흡사 성과 같았다.

물론 이 자리에 저 돌담을 성벽과 같이 생각하는 이는 아무도 없다.

높이가 5m는 족히 되어 보이는 돌담이었지만 그 정도는 C급만 되도 한 번의 도약이면 넘을 수 있는 높이다.

고작 수 미터의 돌담 따위로는 헌터들을 막을 수 없었다.

그럼에도 유송히가 진격을 막은 이유는 하나다.

돌담을 넘는 순간, 저 너머에서 기다리고 있던 자들이 공격을 쏟아낼 것임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아무리 걸림돌조차 되지 않는 돌담이라도, 넘는 순간에는 빈틈이 생길 테니, 그 순간에 공격을 당한다면 적잖은 피해를 입을 것이다.

물론 그렇다 해도 중국 헌터들의 승리를 의심치는 않지만 굳이 입지 않아도 될, 피해를 감수할 필요는 없었다.

제갈민이 자신을 딸려 보낸 것도 감정에 치우친 여문휘를 보필해 피해를 최소한으로 줄이라는데 있었다.

“알고 있다.”

여문휘도 그 사실을 알고 있기에 짜증을 내면서도 움직이지 않고 있는 것이다.

그 역시, 하책이라 해도 질 거란 생각은 하지 않았지만 잠시간의 기다림과 헌터들의 목숨을 맞바꿀 수는 없었다.

“원거리 딜러 분들은 준비해주십시오.”

유송히가 여문휘의 발걸음을 막으면서 내린 선택은 파괴.

막혀있으면 뚫으면 그뿐이다.

원거리 딜러들이 화력을 집중하면, 눈앞의 돌담 정도는 한순간에 날려버릴 수 있다.

돌담이 아니라, 강철로 된 담이라도 지금 전력의 화력을 견디지는 못한다.

물론 그 대가로 헌터들의 마나가 조금 소진되긴 하겠지만 전력이 깎일 정도는 아니었다.

콰콰쾅!

이어 수 미터 크기의 불덩이부터 마력이 실린 화살 등, 수십 개의 원거리 공격이 일제히 돌담에 쏟아졌다.

공격의 여파로 거대한 폭발과 함께 자욱한 흙먼지가 일며 한순간 시야가 제안됐다.

“귀찮군.”

여전히 인상을 쓰고 지켜보던 여문휘가 손을 내저었다.

날아드는 흙먼지를 털어내는 듯, 가벼운 손짓이었지만 결과는 결코 가볍지 않았다.

시야를 가릴 정도로 뿌옇게 일어났던 흙먼지가 여문휘의 손짓에 따라 한순간에 밀려나며 걷혔다.

한 시도 기다리고 싶지 않았기에 내공으로 흙먼지를 억눌러버린 것이다.

과연 화경의 고수의 힘이라 할 만 했다.

그렇게 흙먼지가 걷히고,

“돌담이...?

“어떻게...?”

눈앞에 드러난 광경에 헌터들은 당황한 기색을 숨기지 못했다.

돌담을 파괴할 것을 제안했던 유송히 또한 믿기지 않는 듯 멍하니 눈을 껌뻑였다.

1급 몬스터도 흔적도 없이 사라질 만한 공격이었다. 아니, 그 이상의 몬스터라고 해도 방금 공격은 견뎌내지 못했을 것이다.

그럼에도 기껏해야 시멘트 따위 만들어졌을 돌담은 멀쩡했다.

멀쩡한 정도가 아니라, 처음의 모습 그대로 공격이 있었던 흔적조차 남아있지 않았다.

상식적으로 이해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진인가.”

그러나 몇몇 이들은 이러한 현상을 만들어 낼 수 있는 방법을 알고 있었고, 여문휘 또한 그 중 하나였다.

여문휘의 미간이 좁혀졌다.

이러한 효과를 낼 수 있는 것은 오로지 무림의 진뿐이었다.

“둘. 돌담을 넘어라.”

“예.”

여문휘가 곁에 있던 헌터들 가운데 둘에게 명령을 내렸고, 그 둘은 곧장 돌담을 향해 몸을 날렸다.

여문휘는 그들이 돌아오지 못할 것임을 알고, 그 둘도 자신이 죽을 가능성이 높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지만 망설임은 없었다.

그리고,

“역시.”

두 헌터는 돌담을 넘는 순간, 나머지 삼백십팔 명의 시야에서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돌담을 넘었기 때문에 사라진 것이 아니다.

둘은 정확히 돌담 위로 몸이 떠오른 순간부터 보이지 않았다.

진에 대해 알지 못하는 이들이라 해도, 평범한 상황이 아니라는 것쯤은 알 수 있었다.

“군사 데려올 것을 그랬군.”

여문휘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자신이 인지하지도 못한 진이다. 당연히 파훼법도 알지 못했다.

힘으로 부수고자 한다면, 못할 것도 없다.

하지만 그 사이 태빈이 자신을 노려온다면, 목숨이 위험할 수도 있었다.

이미 한 번 죽임을 당했던 만큼, 신중하게 움직여야 했다.

“군사에게 연락하도록.”

방법이 없는 것은 아니다.

태빈이 제대로 된 진법가가 아닌 이상, 조잡한 수준의 진일 가능성이 높다.

무림을 통틀어 진으로 손에 꼽히는 제갈세가에서 나고 자란 제갈민이라면 굳이 보지 않아도 진을 파훼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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