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86
86화. 결전.
수련은 헌터들이 체내의 마나를 자신의 의지대로 이끄는데 중점을 뒀다.
헌터들은 기술을 사용할 때, 항상 일정량의 마나를 소모한다.
머리는 어떻게 능력을 사용하는지 이해하지 못함에도, 기술을 쓰고자하면 몸이 기억해 반응하는 식으로 마나를 사용하는 방식이다.
이는 장단점이 명확하다.
경험을 통해 각기 기술의 유지시간이나 사용횟수를 정확히 파악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긴 하지만 비효율 적이다.
1의 마나가 필요한 경우에도 3의 마나가 소모되고, 5의 마나가 필요한 경우에도 3의 마나가 소모된다.
고블린 같은 하급 몬스터와 싸울 때나, 오우거, 드레이크 등의 상급 몬스터와 싸울 때나 항상 똑같은 양의 마나를 소모하고, 똑같은 파괴력을 가진 기술을 쓸 수밖에 없다는 의미다.
1의 마나로 죽일 수 있는 고블린을 3의 마나로 죽여야 하고, 5의 마나가 필요한 오우거를 3으로 타격해 서너 번을 반복해야 죽일 수 있다.
얼마나 비효율 적인가.
나는 이 것을 바꾸고자 했다.
“일단 제가 분류한대로 모여주시기 바랍니다.”
앞서 근접, 원거리, 탱커, 보조 등의 능력 별로 헌터들을 분류했다.
지켜본 결과, 근접 딜러의 경우는 무인들과 비슷했지만 그 외의 헌터들은 마나의 운용 방식이 조금씩 다르기 때문에 가르침 또한 달리 해야 했다.
“우선은 근접 딜러들부터 제 시범을 잘 지켜보시기 바랍니다.”
우선은 근접 딜러들부터 불러 모았다.
근접 딜러들은 무인들과 마나의 사용 방식이 유사하다.
기본적인 내공의 운용을 보여주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리라 생각했고, 나는 곧장 검에 검기를 일으키는 시범을 보였다.
처음에는 특별한 점을 알지 못했다.
최소가 A급 헌터.
몸이 기억하는 것뿐일지라도 검에 마나를 덧씌우는 기술 하나씩은 가지고 있었고, 그렇게 덧씌워진 마나는 검기와 비슷했다.
자신들의 기술과 다를 바가 없었다.
“잘 지켜보시기 바랍니다.”
물론 단순히 검기를 보여주기 위한 시범은 아니다.
지금부터가 진정한 시범이었다.
내가 내공을 운용함에 따라 검을 타고 흐르는 검기가 흐릿해지기도 하고, 타오르듯 폭발적으로 일렁이기도 했다.
검을 감싸고 있는 검기의 강약을 조절해 마나의 소모 값을 다르게 함께 따라 변화를 줄 수 있음을 선보인 것이다.
그 뿐만이 아니다.
콰콰쾅!
서걱.
검에서 쏘아진 검기가 수련장 바닥에 부딪치며 폭발을 일으켰고, 또 다른 검기는 수련용 목인을 두 동강 냈다.
이번에는 같은 양의 마나를 사용하더라도 어떻게 사용하느냐에 따라 파괴력을 높일 수도, 절삭력을 높일 수도 있음을 보여주었다.
“와...”
이미 검기를 일으켰을 때부터 헌터들은 입을 다물지 못했다.
이어진 화려한 시범은 헌터들의 탄성을 자아냈다.
수련의 일환이라는 것도 잊고 멍하니 봤다.
“수련을 통해 마나를 이해하고 의지에 따라 사용할 수 있다면, 여러분도 충분히 할 수 있는 일입니다.”
나는 부드럽게 말하며 헌터들의 의욕을 고취시켰다.
헌터들이 강해지는 것은 나에게도 도움이 되는 일이다.
미안하긴 하지만 그들의 살막의 헌터들을 상대하며 내게 기회를 줄 것이고, 훌륭한 방패막이가 될 것이다.
죄책감은 없었다.
그들 또한 복수를 위해 죽음을 각오했기에 자신의 역할을 다 할 뿐이다.
물론 그 속에 자신의 죽음은 없을지라도.
“예!”
단순히 설명만을 할 때와 달리 확실히 힘 실린 대답이 들려왔다.
이미 초인적인 능력을 가지고 있다고는 하나, 그 이상으로 향상될 수 있다는 사실이 헌터들을 고무시켰다.
그들 또한 살막의 힘을 안다.
지금보다 강해져야 목표를 이룰 수 있음을 알고 있었다.
“마나를 응용하면 다양한 방식으로 방어를 할 수 있습니다.”
“원거리 공격에 있어 파괴력에 집중할 것인지, 관통력에 집중할 것인지.”
그 뒤에 탱커와 원거리 딜러 등에게도 차례로 능력에 따른 시범을 보였다.
탱커들의 경우에는 단순히 마나를 방패에 덧씌우거나, 고정된 형태의 방어막을 만들어 내는 것이 아닌, 한 점에 마나를 집중시켜 방어력을 배가 시키거나, 마나를 주위로 흩뿌려 방어 범위를 넓히는 등의 시범을 보였다.
원거리 딜러 등에게도 비슷했다.
나 또한 비수나 단검 등으로 원거리 공격을 애용했기에 시범을 보이는데, 수월했다.
“제 능력상 한계가 있으니, 이해해주기시 바랍니다.”
조금 까다로웠던 것은 마법사와 힐러 등의 보조 계열이었다.
특히, 보조 계열이 어려웠는데, 마법사의 경우에는 속성이 부여된다는 점이 여타 헌터들과 다르긴 하지만 양기와 음기를 이용해 그럭저럭 설명할 수 있었다.
그러나 보조 계열은 앞서의 시범으로 스스로 이해하기를 바랄 수 밖에 없었다.
나는 생(生)과는 거리가 먼 살수다.
치유나 이로운 버프는 내 상식 밖의 능력이었다.
그래도 처음 마나의 존재를 직접 느끼고 시작했고, 다들 각성의 영향으로 머리가 깨어있던 덕분에 어느 정도는 이해하는 모습을 보였다.
다행이었다.
힐러는 여벌의 목숨이나 다름없고, 그 외의 보조계열도 본신의 능력 이상을 발휘할 수 있게 해주기 때문에 그들의 성장은 필수였다.
“머리로 이해하는 것과 몸으로 아는 것은 다릅니다. 남은 것은 수련에 달려있습니다.”
나는 무인이었기에 무엇보다 몸의 수련을 중요시 했다.
남은 것은 헌터들의 몫이다.
우연히 부여받은 것이기는 하지만 자신의 몸속에 있는 기운이다.
노력만 뒷받침 된다면, 분명 자신의 의지대로 조종할 수 있었다.
***
수련이 삼일 차에 접어들자, 어설프게나마 마나를 제어할 수 있는 헌터들이 하나둘 생겨났다.
그리고 그 때,
“삼일 뒤, 한국에서 회담이 열릴 예정이라고 합니다.”
“회담이요?”
“예. 중국 측에서 전주 던전에서의 피해에 대한 논의를 위해 직접 요청해왔다고 합니다. 한국 정부는 이를 받아들였고, 삼일 뒤에 중국 측에서 국가주석인 여문휘를 비롯한 삼백 가량의 인원이 한국을 방문할 예정입니다.”
김원철이 중국 주도의 회담이 한국에서 열린다는 소식을 전해왔다.
기다리던 소식이긴 했지만 이렇게 대놓고 한국을 찾다니, 예상 밖이었다.
“정공법을 택했군요.”
“예.”
여문휘는 한국 방문을 숨기지 않았다.
그들의 진정한 목표는 회담이 아닌, 나다.
그럼에도 회담이라는 이름으로 공식적인 방문을 택하며, 대놓고 자신들의 전력을 드러냈다.
그만큼 자신있다는 뜻이었다.
“괜찮겠습니까?”
김원철이 물었다.
살막의 목표가 된, 내 안위를 걱정함과 더불어, 지금 전력으로 삼백에 달하는 살막을 상대할 수 있겠냐는 의미가 담겨 있는 물음이었다.
“솔직히 말하면,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피할 수는 없지 않겠습니까?”
말한 대로 해외로 도망이라도 치지 않는 이상, 피할 수는 없다.
회담 내용은 불 보듯 뻔하다.
이미 중국에 굴복한 한국 정부다.
중국 측은 수십 헌터의 죽음에 대한 대가로 나를 요구할 테고, 한국 정부는 이를 받아들일 것이다.
중국과의 마찰보다는 나 하나를 포기하는게 합리적이니까.
어차피 그들 입장에서 나는 제어가 안 되는 헌터다.
가진 무력이 아쉽기는 하지만 없어져도 크게 해가 될 것은 없는 사람이었다.
“그렇군요. 살막의 막주이자, 중국의 국가주석이 움직이는 일입니다. 그에 상응하는 전력이 올 겁니다.”
김원철이 가만히 고개를 끄덕이며 덧붙였다.
괜한 물음이었다.
지금은 걱정보다는 준비를 해야 할 때였다.
“알고 있습니다. 그래도 일단 수는 얼추 맞출 수 있겠군요.”
일전에 전주의 던전에서 원, 신의, 주작, 청룡, 네 개 길드가 살막에 맞서겠다고 결심했다.
각 길드가 보유한 A급 헌터는 삼척에서 피해를 입었던 신의 길드를 제외하면, 각 백여 명씩 삼백 가량.
신의 길드원 오십을 더 하면, 삼백 오십이다.
그러나 원래 살막의 편에 섰던 청룡 길드를 전력에 넣기는 불안한 감이 있다.
때문에 그들의 제하면, 이백 오십.
이마저도 신의 길드에서는 차예린 정도만 생각하고 있었는데, 신의 길드 전원이 합류해 온 덕분에 갖춰진 것이다.
여전히 살막의 삼백에는 미치지 못하지만 회담이라는 이름으로 방한하는 만큼, 삼백 전원이 헌터일 리는 없다.
일부 실무자들의 제외하면, 수는 크게 차이 나지 않을 것이다.
“문제는 몇 명이나 되는 S급 헌터가 있겠냐는 거겠죠.”
김원철이 말했다.
그의 말대로 문제는 S급 이상 헌터의 수다.
왕인귀라는 SS급 헌터와 마랑을 비롯한 다섯의 S급 헌터를 죽였지만 중국에는 아직 열 이상의 S급 헌터가 남아있다.
중국은 넓은 땅덩어리만큼, A급 이상의 던전도 많은 탓에 전부를 데려오지는 못하겠지만 살막은 세 번이나 실패했고, 나를 죽이기 위해 여문휘가 직접 움직였다.
충분한, 아니 그 이상의 전력을 준비했을 테고, 고작 두 명뿐인 우리 측보다는 많을 거라는 건 확실했다.
“삼일. 바쁜 시간이 되겠군요.”
약간의 변수라면, 마나를 이해하며 한 단계 성장한 신의 길드와 원 길드의 헌터들이다.
이제 막 일부가 발을 뗀 수준에 불과하지만 아직 삼일이라는 시간이 남았다.
짧지만 발전하기에는 충분한 시간이었다.
***
“여문휘. 결코 만만한 상대가 아닌 만큼, 나도 긴장해야겠지.”
김원철을 보내고 나 또한 마음을 다잡았다.
여문휘는 내가 행했던 백 번의 살행 중에 가장 어려웠던 상대였다.
살막의 막주라는 직위 상, 항시 수십 명의 살수들이 그를 지키고 있다는 점이 걸림돌이긴 했지만 무엇보다 여문휘 본신의 무력이 가장 어려웠다.
화경의 고수인 만큼, 고작 초절정 수준에 불과한 살수들의 경호는 형식일 뿐이다.
물론 경호가 허술했던 것은 아니지만 화경의 고수가 가지는 강함에 비할 바는 아니었다.
“그래도.”
양측의 전력이 동일하다해도, 여문휘를 상대할 수 있는 것은 나밖에 없었다.
하물며 아군 측이 열세인 상황이다.
내가 얼마나 빨리 여문휘를 처리하느냐에 따라, 승패와 피해규모가 결정될 것이다.
“한 번 죽였던 상대. 두 번이라고 죽이지 못할 것은 없다.”
자신은 있었다.
헌터들의 성취를 위해 시간을 투자하긴 했지만 나 스스로도 놀고 있던 것은 아니다.
김태빈의 몸을 얻고 난 이후, 여느 때보다 노력했다.
깨달음을 얻은 것이 아니기에 성취를 이룬 것은 아니었지만 내 무공을 되돌아보는 시간을 가졌다.
살혼심법과 무명검법.
무림 전체로 따지면, 이류, 간신히 일류 수준에 들 만한 심법과 검법이다.
내가 무공일 창안해낼, 대종사는 아니었기에 더 나은 무공을 만들어 낼 수는 없었지만 한 단계 발전시키는 것은 가능하다.
물론, 근소한 차이지만 고수 간의 대결은 그 차이가 승패를 가른다.
또 하나.
내 몸의 원주인인 김태빈이 앓은 마력증후군은 각성 과정에서 생겨난 과도한 마나를 몸이 감당하지 못해 가사상태에 빠지게 되는 병이다.
체질에 따라 다르긴 하지만 한 인간이 감당하지 못할 정도의 마나를 가지며 각성을 했다는 말이다.
그렇게 각성하며 얻게 된 기술이 내 비장의 수가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