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84
84화. 폭풍전야(3).
길드의 수입은 오로지 공략에서 나온다.
세 개 길드가 한정된 던전을 두고 경쟁하게 되면서 공략은 빨라졌지만 각 길드의 수입은 확연히 줄어들었다.
원 길드야 길드원들이 협회를 박차고 나올 정도로 김원철에 대한 신뢰가 두터웠기 때문에 수입이 줄어들어도 큰 타격은 없었다.
그러나 태백과 태양은 조급해졌다.
길드와 길드원들의 관계는 기업의 노사관계와 유사하다.
길드는 길드원들에게 기본급과 공략에 따른 성과급을 지급하는 데, 길드의 수입이 줄어들 만큼, 길드원들의 수입 또한 줄어들 수밖에 없었다.
상위 등급의 던전을 공략할 수 있는 건, 당연 상위 헌터.
모두가 탐내는 인재가 부족한 대우를 감수하면서까지 길드에 남아 있으려 할리 없었다.
각기 경상도와 전라도에서 지원을 받고 있었지만 언제까지 밑 빠진 독에 물 붓기 식으로 자원을 쏟아 부울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결국, 두 길드는 청룡 길드의 영역까지 침범하고, 중소 길드의 전유물이었던 C급 이하의 던전까지 공략해 나가기 시작했다.
두 길드는 C급 던전, 심지어는 D급까지 죄다 쓸어버렸다.
그로 인해 중소 길드가 E, F급 던전으로 밀려났고, 팀 단위의 헌터들은 아예 공략에 나서지 못하는 상황까지 벌어졌다.
“아니 길드가 던전을 죄다 독점하면, 저희는 어떻게 하라는 겁니까?”
중소 길드 소속을 비롯한 하위 헌터들에게서 불만이 터져 나왔다.
하위 헌터들은 대부분 생계형 헌터다.
생계가 걸려있지 않고서야 매일 같이 목숨을 걸고 공략에 나설 리 없지 않은가.
물론 F급이 아닌 이상에야 벌이가 웬만한 직장인은 우스울 정도이긴 하지만 그렇다고 마냥 놀 정도는 아니었다.
당장 돈을 벌지 않으면 생계를 위협받는 상황에서 던전을 빼앗겨 버렸으니, 그들의 불만은 예견된 일이었다.
영역을 침범당한 청룡 길드도 마찬가지였다.
아니 힘이 없기에 말로만 불만을 피력하는 하위헌터들과는 달리, 청룡 길드는 태백, 태양 길드와 똑같은 방식으로 그들의 영역을 적극 헤집어 놓았다.
그렇게 서로에 대한 적대감이 싸여갔고, 마찰도 빈번히 일어났다.
아직까지는 서로 죽고 죽이는 상황까지 치닫지는 않았지만 언제 그렇게 되도 이상할 게 없을 정도로 흉흉한 분위기가 흘렀다.
그럼에도 태백과 태양 길드의 행동을 제재 할 수 있는 방법은 없었다.
C급 이하의 던전이나, 청룡 길드의 영역에 관한 부분 모두 암묵적인 합의에 불과하다.
수년 간 법과 같이 지켜져 왔다고는 하나, 강제성은 없는 것이다.
약속을 어겼다 해서 제재를 가할 수는 없는 법이었다.
사실 협회가 두 길드의 영역을 벗어나는 던전에 한해서 공략 허가를 내주지 않으면, 간접적으로 두 길드의 횡포를 막을 수 있긴 하지만 공략 허가는 공략 성공 여부를 가늠해 승인하는 것이지, 각 길드의 영역을 고려하는 것은 아니었다.
중립적인 입장을 고수해야하는 협회가 공략 허가를 빌미로 개입하는 것은 권한 밖의 일이었기 때문에 그저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제지할 방법이 없는 상황에서 현재 수도권 헌터 계는 언제 터질지 알 수 없는 화약고와 같았다.
“고작 열흘 사이에 벌어진 일입니다.”
서울과 경기도의 공략 현황이 담긴 상황판을 집으며 현 상태를 설명한 김원철이 덧붙였다.
신의 길드의 해체와 태백, 태양 길드의 수도권 진출 뒤에 일어난 일들 전부가 장웨이가 떠나고, 열흘 만에 일어난 일이었다.
“열흘이면, 많아야 두 번에서 세 번의 공략을 진행할 수 있는 시간인데, 어째서 이렇게 빨리 서로 대립각을 세우게 된 겁니까.”
B급 이상 던전의 공략에는 적어도 하루의 시간이 필요하다.
준비와 사후수습까지 생각하면, 실제로는 한 번의 공략에 적어도 이틀에서 사흘의 시간이 소요 된다.
빠듯하게 하면 네다섯 번도 가능하기야 하겠지만 헌터들의 피로 등을 생각하면, 거의 불가능한 일이었다.
고작 열흘만에 일어난 일이라고 보기에는 그 진행 속도가 너무 빨랐다.
“태백과 태양 길드가 막 진출했을 때, 신의 길드 영역 내에 있던 던전은 A급이 하나에 B급이 다섯 개였습니다.”
김원철이 쉽사리 이해할 수 없는 상황이 일어난 이유에 대해 설명을 이어갔다.
“수도권으로 진출한 두 길드는 곧장 공략을 진행했습니다.”
수도권으로 전력을 절반을 투입한 두 길드는 곧장 공략을 진행했다.
진출을 결심한 순간, 각기 목표하고 있던 던전의 공략 허가를 따낸 상태였기 때문에 거칠 것이 없었다.
태백 길드는 곧장 유일한 A급 던전 공략을 진행했고, 태양은 투입한 전력을 반으로 나눠 동시에 두 개의 B급 던전 공략을 시도했다.
그리고 두 길드는 S급 헌터를 영입했다는 소문이 헛소문이 아님을 증명하듯, 단 한 명의 피해도 없이 하루 만에 공략을 성공시켰다.
“그 뿐만이 아니었습니다.”
태백과 태양 길드는 거기서 그치지 않았다.
첫 공략을 마치고 하루 만에 두 길드는 새로이 생긴 B급 하나를 더해, 다시 각기 두 개의 B급 던전을 공략을 시도했다.
그리고 그 공략 또한 성공으로 이끌면서 신의 길드 영역 내에 있던 상위 던전을 모두 공략해냈다.
그렇게 상위 던전이 모두 사라져 버린 탓에 두 길드가 청룡 길드 영역의 던전과 C급 이하의 던전에 눈을 돌리게 된 것이다.
“그렇게까지 두 길드가 공략에 열중하는 이유가 뭡니까?”
“돈이 당연히 주이긴 하지만 영향력을 확보해 국민들에게 인정받기 위함입니다.
수도권에는 협회가 있는 탓에 길드의 영향력이 크진 않아 모르시겠지만 국민들에게 인정받는 길드는 각 지역의 정부와 같습니다.
실제로 지방의 국민들은 헌터와 던전에 관해서는 정부보다는 길드에 의존하는 편입니다.
길드가 군경의 역할을 대신하는 것은 기본이고, 강원도의 경우에는 자경단이 도민들에게 직접 세금을 걷기도 합니다.”
1세대 길드가 괜히 영향력을 확장하고자 하는 게 아니다.
공략을 통해 벌어들이는 돈도 돈이지만 한 지역을 대표하는 길드가 되면, 권력과 명예까지 손에 쥘 수 있었다.
“원 길드는 어떻게 하실 생각이십니까?”
“일단은 상황을 지켜볼 생각입니다. 하위 헌터들의 상황이 안타깝긴 하지만 당장은 피를 보는 것 외에는 해결 방법이 없으니까요.”
“운영비를 충당하는 것도 쉽지 않을 텐데, 괜찮습니까?”
“물론입니다. 협회를 나올 때, 제 몫은 챙겨둔 덕분에 다른 길드와 달리, 급할 건 없습니다”
원 길드가 지금의 세력 다툼을 방관할 수 있는 이유는 길드원들과의 관계가 다른 길드와는 다른 것도 있지만 기본적으로 여유가 있기 때문이다.
김원철이 수년 간 협회장의 자리에서 국민과 헌터들을 헌신하긴 했지만 마냥 청렴하기만 한 건 아니었다.
자리에서 물러나며 챙긴 것이 적지 않았기 때문에 한동안 공략을 하지 않는다 해도 문제가 없었다.
“그나저나 여문휘 국가주석이 근시일 내로 한국을 방문할 거라는 소문이 있습니다.
수도권에서 발생한 세력 다툼으로 인해 크게 알려지지는 않았지만 정부 측과 비밀리에 회담을 가질 거라는 소문입니다.”
“회담은 핑계고 저를 노리는 것 같습니다.”
살막도 움직이기 시작했다.
아직은 소문일 뿐이었지만 나는 사실일 거라 여겼다.
꽤나 오랜 시간이 지났지만 과거 내가 파악했던 여문휘의 성격이라면, 자리가 어찌됐든 내 목을 따기 위해 직접 움직이고도 남았다.
“김태빈 헌터의 생각이 사실이라면, 위험한 거 아닙니까?”
“어느 정도의 전력이 여문휘와 함께 하느냐가 중요합니다.”
여문휘는 화경의 고수.
나 또한 화경의 경지이니, 여문휘 혼자라면 문제가 되지 않는다.
그러나 살막의 문주이자, 중국의 국가주석인 여문휘가 혼자 움직일 리가 없다.
여문휘와 함께 할 전력을 내 주변의 사람들이 상대할 수 있는 가가 중요했다.
“혹, 박동석 헌터를 잠시 빌려주실 수 있겠습니까?”
“알겠습니다. 박동석 헌터에게 말씀을 전하도록 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박동석은 내 주변에서 가장 도움이 되는 전력이다.
S급 헌터이자, 무공까지 익힌 박동석은 초절정 고수와도 승부를 겨뤄볼 수 있을 정도가 되었다.
물론 여문휘와 같은 고수에게는 여전히 일초지적도 되지 않는다.
하지만 여문휘가 나를 찾아오기 까지는 시간이 있다.
국가주석이 움직이는 일이다.
아무리 여문휘라도 하루아침에 한국을 찾아 올 수는 없을 것이다.
그리 길지는 않겠지만 발전의 여지는 충분했다.
“아.”
김원철이 무언가 생각난 듯, 돌아가려는 나를 붙잡았다.
“살막과 같이 양지로 모습을 드러낸 타이탄이 삽시간에 유럽 절반을 집어 삼켰다고 합니다.”
“타이탄이 말입니까?”
“예. 그로 인해 유럽이 꽤나 시끄럽다고 합니다.”
설상가상으로 타이탄까지.
아직까지는 머나먼 유럽 땅의 일이긴 했지만 타이탄이 전 세계를 목표로 하는 이상, 언제고 한국에도 마수를 뻗쳐올 것이다.
그러나 아직 유럽을 완전히 집어삼킨 것도 아니고, 독일, 프랑스, 영국을 중심으로 한 연합세력도 건재하다.
당면하지 않은 타이탄보다는 살막에 집중 할 때였다.
***
태백과 태양 길드는 중소 길드와 하위 헌터, 그리고 청룡 길드와 대립하는 와중에도 원 길드에 대한 시선을 거두지 않았다.
상황을 주시하기만 할뿐, 이렇다 할 움직임을 보이지 않음에도 그들은 원 길드를 견제할 수밖에 없었다.
원 길드의 길드원들은 한 명 한 명이 수 년 간 협회에서 활동한 정예들이다.
거기에 박동석이라는 S급 헌터의 존재까지 더하면, 충분히 1세대 길드를 위협할 만한 전력이다.
본 전력에 절반밖에 투입되지 않은 상태에서 언제든 두 길드를 위협하는 세력을 견제하는 것은 당연했다.
이는 중소 길드와 하위 헌터들도 마찬가지였다.
과거 협회장 시절에 보였던 김원철의 행보라면, 태백이나 태양 길드와 같은 일을 벌일 리 없다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돈, 권력, 명예 앞에서 흔들리지 않을 사람은 없다.
하물며 협회장의 자리에서 세 가지 모두를 취해봤던 사람이다. 그가 갑자기 길드를 차린 저의를 알지 못하니, 내심 불안할 수밖에 없었다.
청룡 길드만이 원 길드에 대한 걱정을 전혀 하지 않을 수 있었다.
청룡 길드와 원 길드는 중국 헌터를 죽이고, 그 사실을 묵인하면서 한 배를 탄 사이다.
결코 드러나서는 안 될, 비밀로 묶여있는 상황에서 서로 협력을 하면 협력을 했지, 배신할 생각은 양측 다 할 수 없었다.
‘미행이라..’
어쨌든, 지금 수도권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련의 상황에 커다란 변수로 자리한 원 길드와의 관계 때문인지 나에게 따라 붙은 시선도 있었다.
태백과 태양이 수도권에 진출한 순간부터 따라 붙은 시선이었다.
여전히 소속은 정하지 않았지만 S급 헌터로 알려진 내가 원 길드의 길드장 김원철과 긴밀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는 것은 모두가 아는 사실이다.
그로 인해 두 길드에서 나 또한 주시하고 있는 듯했다.
나는 달라붙는 시선이 귀찮긴 했지만 살의가 없는데다, 직접 접촉해오지 않고 거리만 두고 관찰하고 있었기 때문에 가만히 내버려 두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