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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살수다-62화 (62/150)

# 62

62화. 성장.

이상 현상은 한국은 물론, 전 세계가 골머리를 앓고 있던 문제였다.

원인을 밝혀내거나, 문제를 완전히 해결해 낸 것은 아니었지만 이를 진입 전에 판별해낼 수 있다는 것만 해도 전 세계의 이목을 집중시킬 만한 엄청난 발견이었다.

“중국을 마지막으로 모든 국가가 한국을 찾기로 결정을 내렸습니다.”

유인원이 막 도착한 서류를 확인하고는 말했다.

이상 현상이 한시 급히 해결할 문제였기에 국내 던전에 대한 판별을 시행하고, 그 결과를 공표하긴 했지만 방법 자체를 알린 것은 아니다.

오히려 철저하게 비밀에 붙였다.

국내 헌터들뿐만 아니라, 전 세계의 모든 헌터들이 알고 싶어서 안달이 날 정도의 정보다.

실제로 강대국들이 외교적 압박을 가해오기도 했다.

그러나 협회는 굳건히 버텼다.

과거 미국은 마력 측정기를 발명해 내고 각국으로부터 헤아릴 수 없을 만큼, 큰 이득을 취했고, 각국에 새로 출현하는 몬스터들에 대한 정보마저 외교를 통해 거래 되는 세상이다.

이상 현상으로 발생하는 피해를 생각하면, 안타깝긴 하지만 협회가 자선 단체도 아니고 이를 무상으로 알릴 이유는 없었다.

“정부와 함께 각국 현황 파악해서 요청할만한 사안을 확인하도록 하세요.”

김원철이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어보였다.

자신들이 직접 발견해낸 것은 아니지만 태빈과는 얘기를 끝냈다.

태빈과 이득을 나눈다고 하더라도, 협회가 얻을 이득은 금전적인 부분뿐만이 아니다.

웃음이 나오지 않을 리 없었다.

***

[ 한국의 네 번째, S급 헌터 탄생! ]

그렇게 전 세계의 이목이 이상 현상의 판별에 쏠린 순간, 협회는 조용히 한국에 새로운 S급 헌터가 탄생했음을 알렸다.

동기화가 발생한 던전에서 출현한 드레이크를 막는 과정에서 태빈의 존재가 드러났고, 소문이 퍼져가고 있는 상황이었다.

협회 입장에서는 국가의 중요한 재원인 S급 헌터의 탄생을 마냥 숨길 수 없었기 때문에 나에게 의견을 물어왔었다.

이에 나는 조용히 처리할 것을 원했고, 협회 측이 이를 받아들여준 것이다.

“김태빈 헌터가 원했다고는 해도 아쉽습니다.”

인터넷과 신문, 뉴스 등, 기사를 확인하던 유인원이 살짝 고개를 저었다.

네 번째 S급 헌터의 탄생.

원래라면, 한 달 내내 언론에서 떠들어 대기에도 부족할 만한 소식이다.

일인군단으로 표현되는 S급 헌터는 자국뿐 아니라, 외국까지도 관심을 가질 수밖에 없는 존재니까.

그러나 어느 언론 기관도 나에 대해 중요하게 다루지 않고 있었다.

물론 아예 다루지 않은 것은 아니지만 짧게 언급하고 지나가는 수준에 불과했다.

발표가 있고, 하루 이틀은 떠들썩했다. 그러나 확실히 초기 S급 헌터들이 등장했을 때와 같은 반응은 없었다.

그것도 국내에서만 반응이 조금 있었을 뿐, 외국은 한국에 새로운 S급 헌터가 등장한 것에 대해 관심조차 보이지 않았다.

하긴 고작 세 명에서 네 명으로 늘었을 뿐이다.

애초에 십 수 명의 S급 헌터를 보유한 미국, 중국 등의 강대국들은 신경조차 쓰지 않았고, 인접 국가인 일본도 여섯의 S급 헌터를 보유하고 있었기 때문에 위기의식을 느낄 정도는 아닌 탓이다.

물론 가장 큰 이유는 모든 관심이 이상 현상의 판별에 쏠려 있었기 때문이었다.

협회는 모든 국가들과 조율이 끝난 뒤에야 방법을 발표할 예정이었다. 때문에 각국은 애타는 마음으로 하루 빨리 협회의 발표가 있기를 기다리고 있는 중이었다.

다른 사안에 관심을 돌릴 만한 상황이 아니었다.

“본인이 원한 일이니 어쩔 수 없지 않나. 이미 이상 현상에 대한 문제를 일부나마 해결해준 시점에서 협회는 그에게 갚을 수 없는 은혜를 입은 것이나 다름없네. 이런 사소한 이익정도는 포기할 줄도 알아야겠지.”

답하는 김원철의 얼굴에도 아쉬움이 묻어나왔다.

태빈의 요청으로 대대적인 홍보를 통해 얻을 수 있는 이익을 포기한 것에 대한 아쉬움이다.

하지만 S급 헌터는 존재 자체만으로 국가의 위상이 높아질 만큼, 큰 힘이 된다.

한국에 네 번째 S급 헌터가 생겼다는 것만으로도 충분했다.

***

내가 이상 현상을 판별해 내는 방법을 알아낸 지도 벌써 세 달이 흘렀다.

그 사이, 협회는 각국의 헌터 협회와 협상을 벌이며 바쁘게 보냈지만 내 개인적으로는 평화로운 시간이었다.

우려했던 살막의 습격은 이어지지 않았고, 과거의 무위를 되찾는데 집중 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 결과, 나는 기존에 최소 육 개월을 생각한 화경의 경지를 목전에 두고 있었다.

기간을 삼 개월이나 단축시킬 수 있었던 데에는 영약의 도움이 컸다.

협회를 통해 일곱 개의 영약을 더 얻었다.

국내에서 발견된 영약은 모두 내 손에 들어왔다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다.

그리고 나는 그 중 네 개를 흡수했다.

내공의 양이 늘어나고, 경지가 높아질수록 영약으로 볼 수 있는 효과는 떨어지지만 네 개나 됐기 때문에 떨어지는 효과를 어느 정도는 메울 수 있었다.

자이언트 앤트의 내단부터 시작해, 지금까지 여섯 개의 영약과 내단을 집어삼킨 내 내공은 이갑자를 조금 넘어섰다.

단순히 내공양만으로 보면, 이미 과거에 내가 쌓았던 양과 비슷한 수준이었다.

그리고,

“마지막이군.”

지금 내 앞에는 협회로부터 얻은 다섯 번째 영약이 놓여있었다.

이 영약을 얻을 수 있는 건, 대략 오년 치 내공.

처음 자이언트 앤트의 내단을 통해 삼십년 가량의 내공 증진 효과를 본 것에 비하면, 턱없이 줄었다.

영약에 담긴 기운이 부족한 것이 아니라 반복된 영약 섭취로 그 효과가 줄었기 때문이다.

상관없었다.

나는 이 영약을 마지막으로 환골탈태(換骨奪胎)를 거쳐 화경의 경지에 올라설 예정이었다.

“정확하진 않지만 아마 하루쯤 걸릴 겁니다. 호법을 부탁드립니다.”

지난 세 달간, 제법 가까워진 박동석에게 호법을 부탁했다.

말이 많은 그의 입 때문에 조금 괴롭긴 했지만 지켜본 바로는 충분히 믿을 만한 사람이었다.

“알겠습니다.”

평소 같으면, 이런저런 말을 늘어놓았을 텐데, 박동석도 중요성을 인지했는지, 진중해졌다.

물론, 환골탈태 과정이 끝나고 나면, 한동안 귀찮게 하겠지만.

“...”

예상보다는 짧은 시간이었지만 잃었던 경지를 목전에 두니, 감회가 새로웠다.

감상에 빠지는 것도 잠시.

나는 곧장 영약을 들어 입에 넣었다.

벌써 일곱 번째.

저마다 맛은 달랐지만 식감은 익숙했다.

고체 상태의 영약은 입에 들어가는 순간, 액체로 변해 그대로 목구멍을 타고 몸 속으로 스며들었다.

영약을 삼킨 뒤, 운기를 시작했다.

이미 영약으로 볼 수 있는 효과가 떨어질 대로 떨어진 상태였기에 한 톨의 기운도 놓칠 수 없었다.

뚜둑. 뚜둑.

영약에 담긴 기운을 흡수하자, 내 몸에 서서히 변화가 시작됐다.

가장 먼저 무인으로서 완성에 가까웠던 육체가 괴기한 형태로 뒤틀렸다 재정립되며 뼈가 새로이 맞춰지고 근육들이 조밀하게 자리 잡았다.

동시에 온 몸에서 역한 냄새를 풍기는 액체가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탁기였다.

자연의 기 자체가 무림과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탁한 세상이다.

김태빈의 육체에는 어렸을 때부터 훈련을 해왔던 과거보다 몇 배나 많은 탁기가 쌓여있었고, 몸의 수분이 전부 빠져나온 게 아닐까 하는 착각이 들 정도로 많은 양의 액체가 흘러나와 방안을 가득 적셨다.

뿐만 아니라, 온 몸의 털이 다 빠지고 윤기 나는 털들이 새로이 났고, 어린 시절 흉터부터 눈에 보이지 않을 정도의 작은 흉들이 모두 사라지며 피부가 눈에 띄게 매끈해졌다.

번쩍.

가부좌를 틀고 앉아 있는 내 눈이 떠지며 일순 정광이 서렸다.

환골탈태를 마친 자리에 더 이상 김태빈의 육체는 남아있지 않았다. 흠 잡을 데 없이 완벽한 언의 육체만이 자리하고 있었다.

“청소부터 해야겠군.”

이를 인지하기도 전에 지독한 악취가 코끝을 찔렀다.

과거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많은 양의 오물이 방안 가득했다.

***

“오오!”

“경지를 이루신 겁니까?!”

“과연 환골탈태! 완전히 다른 사람이라고 해도 믿을 정도입니다!”

대충 정리를 마치고, 방을 나서자마자 박동석이 기다렸다는 듯 거머리처럼 달라붙었다.

수없이 봐왔던 동경의 눈빛을 한 채로, 내 대답과 상관없이 입을 쉴 새 없이 놀려댔다.

“호법은 감사했습니다. 죄송하지만 나중에 얘기해도 되겠습니까?”

나는 짐짓 피곤한 척, 그를 밀어냈다.

피곤은커녕, 활력이 넘쳐흘렀지만 박동석을 속이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았다.

“환골탈태의 영향인 겁니까?! 역시, 육체가 급격히 변한 만큼, 활력이 넘친다는 소설 내용과는 조금 다른가 봅니다.”

소설은 현실과 다르다는 말.

내가 종종 설명하기 귀찮거나, 그를 떼어내기 위해 했던 말이다.

무림에 과하다 싶을 정도로 동경을 가지고 있는 박동석이지만 경우는 알았다.

내가 피곤한 기색을 보이자, 더 이상 들러붙지 않고 한 발 물러섰다.

그렇게 박동석을 떼어낸 나는 팀원들을 찾았다.

챙! 챙!

병장기 부딪치는 소리가 들려왔다.

“후욱... 후욱...”

이를 휘두르는 이들의 거친 호흡 소리도 함께였다.

그 소리를 듣고도 내 걸음에는 여유가 있었다.

싸움이 아닌, 수련을 하는 소리라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나는 서로에게 무기를 겨누며 구슬땀을 흘리고 있는 팀원들과 형을 바라봤다.

무기를 휘두르는 세 명의 팀원들과 형에게선 어엿한 무인의 기세가 느껴졌다.

삼 개월 사이, 팀원들과 형 모두 일류 무인의 경지에 올라섰다.

이류 무인에서 일류 무인의 경지까지.

불과 삼 개월 만에 이뤄내기 힘든 성취였지만 협회를 통해 얻어낸 영약의 도움을 받았다.

내가 협회로부터 얻은 일곱 개의 영약 중, 내가 섭취한 것은 다섯 개.

나머지 두 개 중, 하나는 형에게 주고, 하나를 팀원들에게 줬다.

내가 형을 편애한다고 해서 불만은 없었다.

팀원들보다 가족을 더 신경 쓰는 게 당연하기도 했고, 살막의 위협이 있다는 사실을 모두가 알고 있었기에 형이 스스로를 지킬 힘을 가질 필요성도 있었기 때문이다.

물론 고작 일류 무인의 경지로는 살막의 암습을 피할 수 없겠지만 운이 좋다면, 팀원들처럼 목숨을 건질 기회가 생길 지도 모르는 일이니 말이다.

어쨌든, 일전에 리치가 모아놓은 생명력의 효과를 톡톡히 경험했던 팀원들은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영약을 먹었고, 이를 흡수해 일류 무인의 경지에 오른 것이다.

형 또한 배움이 늦긴 했지만 팀원들의 것보다 뛰어난 무공과 한 개의 영약을 온전히 독차지한 덕분에 일류 무인의 경지에 단시간에 도달할 수 있었다.

물론 팀원들과 형 모두 그만한 노력이 뒷받침되지 않았다면, 아무리 영약의 도움을 받았다고 해도 일류 무인의 경지에 오르는 것은 불가능했을 것이다.

“팀장님.”

그들이 수련하는 모습을 지켜보던 내가 기척을 내자, 내 존재를 알아차린 팀원들이 수련을 잠시 멈추고 나를 바라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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