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나는 살수다-61화 (61/150)

# 61

61화. 이상 현상(6).

김원철이 내어준 마력측정기가 나타내는 마력 수치는 2123.

C급 던전의 평균치인 2000보다 약간 높은 수치지만 오차 범위 내다.

이 정도 가지고는 보통의 던전과 차이가 있다고 하기는 어려웠다.

기감을 퍼트려 던전 주변을 살폈다.

그물막처럼 넓게 펼쳐진 기운이 스미터 크기의 던전 전체를 감싸 안았다.

던전 입구와 지구의 경계에서 자잘한 충돌이 느껴지긴 했지만 기운의 흐름은 동기화가 발생할 때와는 달리, 안정적인 편이었다.

순간,

꿈틀.

던전에서 새어나오던 마력이 내 기감에 반응을 보였다.

몇 번이나 경험한 숨을 쉬듯, 마치 던전이 살아있는 것 같았던 느낌은 착각이 아니었다.

내가 펼친 기감이 통제를 벗어나 조금씩 던전의 기운과 얽혀 흩어진 것이다.

아니 단순히 흩어진 게 아니라, 던전의 기운에 집어 삼켜졌다 해야 옳은 표현이었다.

삐빅.

마력 수치가 2218로 희미하게 올랐다.

95.

8급 몬스터 한 마리 정도가 가지는 마력 수치로, 아직은 의미를 부여할 수 없을 정도의 작은 차이다.

그러나 보통의 던전은 이러한 근소한 변화조차 발생하지 않는다는 사실이 중요했다.

아니, 김원철에게 듣기로는 이상 현상이 발생한 던전도 마력 수치가 변한 적은 없었다는 것을 생각하면, 충분히 유의미한 변화였다.

내가 펼친 기감 일부를 집어 삼킨 던전의 기운은 다시 안정을 되찾았다.

그러나 한 번 변한 마력 수치에는 변함이 없었다.

이번에는 기운을 던전에 직접 집중했다.

단순히 살필 목적이 아닌, 좀 더 확실히 확인하기 위함이었기에 세기 또한 이전보다 더 강하게 기운을 쏘아 보냈다.

쿠르르.

집중된 기운 탓인지, 이번에는 던전 주위가 지진이라도 난 듯 흔들렸다.

물론 던전의 기운이 만들어낸 현상일 뿐, 겉모습에 변화가 있는 것은 아니었고, 나를 제외한 다른 헌터들은 변화를 전혀 눈치 채지 못한 변화였다.

나와 조금 떨어진 거리에서 박동석과 헌터들은 아무것도 모른 채, 수다 삼매경에 빠져 있는 것만 봐도 그들이 전혀 모른다는 사실은 쉽게 확인 할 수 있었다.

“기운이.,.?”

방금 전에는 내 기운이 자연히 흩어지는 느낌이었다면, 이번에는 던전의 기운이 내 기운을 집어 삼키고 있었다.

그와 동시에 던전의 마력수치가 눈에 띄게 상승했다. 무려 800이상의 변화를 보였다.

어째서 이러한 변화를 보이는지는 알 수 없지만 던전이 기운에 반응한다는 것만은 확실했다.

“박동석 헌터.”

나는 박동석을 불렀다.

쉴 새 없이 입을 놀리던 박동석은 내 부름에 헌터들에게 양해를 구한 뒤, 곧장 내 곁으로 다가왔다.

다행히 임무를 잊지는 않은 모양이었다.

“던전의 변화가 느껴지지 않습니까?”

“...무슨 변화를 말하는 겁니까?”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물었지만 박동석은 전혀 모르겠다는 표정을 지어보였다.

던전에서 흘러나오는 마력이 50% 가까이 상승했음에도 박동석은 그 변화를 전혀 감지해내지 못했다.

초절정의 경지에 버금가는 힘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역시, 기에 대해서는 무지했다.

“던전이 기에 반응을 보였습니다.”

“이게... 어떻게...?”

나는 앞서 일어났던 변화를 설명했고, 마력 측정기를 확인한 박동석의 눈이 커졌다.

분명 처음 던전의 마력 수치는 2123으로, 박동석도 확인한 부분이다.

그러나 지금 마력 측정기가 표시하는 숫자는 2978.

무려 3000에 육박하는 수치로, 처음과는 확연한 차이를 보이고 있었다.

“기계 고장이...”

박동석이 쉽사리 믿지 못하고 마력 측정기를 툭툭 쳤다.

던전의 마력 수치가 변했다는 것보다는 기계의 고장이 훨씬 현실성이 있었다.

A급 마나석을 바탕으로 만들어졌다고는 하나, 기계인 이상, 실제로 고장이 나기도 했으니까.

“그럴 리가 있겠습니까.”

그러나 측정기에 나온 수치에는 변함이 없었다.

나는 박동석이 직접 확인 할 수 있도록 다시 한 번 기운을 끌어 올렸다.

무형의 기운이 아닌, 푸른빛의 강기가 내 손끝에서 피어올랐다.

“강기!”

박동석이 탄성을 터트렸다.

드레이크와의 전투 중에도 태빈의 검을 감싼 강기를 보긴 했지만 이렇게 자세히 보는 건 처음이었다.

박동석은 순간, 던전에 대한 것도 잊었는지, 강기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잘 보십시오.”

단순히 박동석에게 구경을 시켜주기 위해 강기를 만들어 낸 것이 아니다.

내 손짓과 함께 강기가 던전을 향해 쏘아졌다.

“뭐지?”

“저 쪽에서 뭔가 한 거 같은데.”

유형화된 기운이 만들어낸 현상이었기 때문에 다른 헌터들의 눈에도 보였고, 한순간에 시선이 쏠렸다.

때 아닌 S급 헌터의 출현에 호기심을 가지고 힐끔힐끔 보던 이들이 이제는 대놓고 주시하기 시작했다.

콰쾅.

강기가 던전에 부딪치며 폭음과 함께 불꽃이 일었고, 이내 강기가 던전에 삼켜지듯 사라졌다.

동시에 마력 수치가 급격한 변화를 보이기 시작했다.

지금까지 상승한 수치만 해도 놀랄만한 변화였는데, 강기를 집어삼킨 던전의 마력수치는 한 순간에 5000대까지 치솟았다.

마력 수치 5000은 B급 던전의 평균적인 수치다. 눈앞의 던전은 더 이상 C급이라 부를 수 없었다.

“어떻게...”

일련의 과정을 두 눈으로 지켜본 박동석은 입을 다물지 못했다.

태빈이 말대로 던전이 기에 반응했다는 사실을 믿을 수밖에 없었다.

분명 던전은 기에 반응을 보였다. 급격히 변한 마력 수치는 더 이상 고장 따위의 변명으로 현실을 부정할 수 없게 만들었다.

“아직 확실한 건 아닙니다. 보통의 던전은 확인해보지 않았으니.”

분명 이상 현상이 발생한 던전은 기에 반응을 보였다.

그러나 보통의 던전이 반응을 보이지 않은 것은 아니다. 이 또한 확인이 필요했다.

***

나는 박동석과 함께 자리를 옮겼다.

목적지는 생성된 지 하루밖에 되지 않은 D등급 던전으로, 측정된 마력 수치는 517였다.

“김태빈 헌터.”

새로운 던전 앞에는 김원철과 유인원 등이 소식을 듣고 한달음에 달려와 있었다.

결과야 후에 보고로 전해들을 수 있지만 조금이라도 빨리 알고 싶은 마음에 직접 현장을 찾은 것이다.

“협회장님 아니야?”

“협회장이 D등급 던전에는 왜?”

때 아닌 헌터 협회장의 등장에 던전 인근이 술렁였다.

그러나 지금 김원철에게는 헌터들의 술렁임 따위는 중요치 않았다.

“그럼 시작하겠습니다.”

간단한 설명 뒤에 나는 앞서의 과정을 반복했다.

평!

지켜보는 이들이 눈으로 직접 확인 할 수 있도록 유형화된 강기가 던전을 향해 쏘아졌고, 강기가 던전에 부딪치며 폭음이 터져 나왔다.

“음... 517. 마력 수치에는 변동이 없습니다.”

쏘아지는 강기와 함께 마력 측정기를 주시하고 있는 유인원의 말이 이어졌다.

이상 현상이 발생했던 던전과는 다르게, 눈앞의 던전은 강기를 집어 삼키는 모습을 보이지도 않았고, 마력 수치에도 변동이 없었다.

“이제 보통의 던전이 맞는지 직접 확인해 보면 되겠군요.”

이제 이상현상이 발생한 던전과 보통의 던전의 차이점을 증명하기 위한 확인만 남았다.

눈앞의 던전에 진입해, 보통의 던전이라는 것만 확인하면 이상 현상이 발생한 던전은 기, 바로 마나에 반응한다는 사실이 입증되는 것이다.

“부탁드립니다.”

김원철이 기대서린 눈으로 나를 바라봤다.

이상 현상은 협회가 각고의 노력을 기울였음에도 수 개월간 해결하지 못한 문제다.

이로 인해 협회는 정부와 국민, 그리고 헌터들에게까지 거센 질타를 받았다.

그러한 문제를 해결할 실마리를 발견했고, 마지막 확인만 남은 셈이다.

“예.”

나는 가볍게 고개를 끄덕이고 박동석과 던전에 발을 들였다.

***

던전 내의 몬스터는 리자드맨이었다.

수는 오십으로, 정리하는 데는 일분도 채 걸리지 않았다.

내가 검을 들기도 전에 박동석의 주먹에 모조리 휩쓸려 사라졌다.

닭 잡는데 소 잡는 칼 쓸 것 없다며 나섰는데, 박동석 또한 리자드맨을 잡을 칼이라고 보기는 어려웠다.

“김태빈 헌터의 말대로군요.”

박동석이 피가 뚝뚝 떨어지는 주먹을 닦아내며 말했다.

던전에서 나온 몬스터는 오십 마리의 리자드맨이 끝이었고, 이상 현상이 발생할 조짐은 전혀 보이지 않았다.

“어떻게 됐습니까?”

던전 핵을 부수는 것을 끝으로, 내가 원래의 장소로 되돌아오자마자, 김원철이 부리나케 달려왔다.

진입한지, 십분도 채 되지 않아 공략을 완료했다.

하나의 던전을 공략하는데 걸린 시간 치고는 말도 안 되게 짧았지만 기다리는 입장에서는 달랐던 모양이었다.

“보통의 던전이었습니다.”

김원철의 물음은 나를 향해 있었지만 박동석이 대신 대답했다.

애초에 박동석이 같이 진입한 것도 직접 확인하기 위해서다.

내가 거짓을 말할 수도 있으니.

김원철은 나를 완전히 신뢰한다 하더라도, 협회 전체 입장은 아니었다.

“정말이었군요. 고작 마나를 이용해 이상 현상을 판별해 낼 수 있다니.”

태빈은 기를 이용했지만 헌터들의 마나도 상관없었다.

던전 입구를 향해 마나를 방출하기만 하면 되니, 여태 아무도 실험해보지 않은 게 이상할 정도로 간단한 방법이었다.

마나에 관해서는 이미 확인을 마친 부분이다.

이상 현상이 발생한 던전에서 박동석이 직접 마그니스 검법을 펼쳤고, 마력 수치가 상승하는 것을 확인했다.

이미 5000이 넘는 수치를 보여준 던전이었기에 그 변동양은 미미했지만 헌터의 마나에도 수치가 변했다는 사실이 중요했다.

“지금이라도 알아냈으니, 다행입니다.

유인원이 덧붙였다.

지난 수개월 간, 이 간단한 방법을 알지 못해 발생한 피해가 적지 않았다.

하지만 앞으로 발생할 피해는 막을 수 있게 됐으니. 다행이었다.

“정말 감사합니다.”

김원철이 감사를 전해왔다.

여전히 이상 현상이 발생하는 원인은 알아내지 못했으나, 발생 유무를 구분할 수 있다는 것만 해도 엄청난 발견이었다.

“아닙니다. 저야 말로 협회의 지원에 감사하고 있습니다.”

내가 고개를 저었다.

협회에서 내게 해준 것에 비할 바가 아니다.

던전과 영약 등, 금전적인 지원도 그렇지만 무엇보다 살막의 암습이 발생한 직후, 가족을 지켜준 곳이 협회다.

실질적인 습격이 이루어지진 않았지만 만일을 대비해 발 빠르게 대처해준 것은 변함없는 사실이다.

고작 이상 현상에 대해 내가 알아낸 사실을 확인 시켜준 것쯤으로는 갚을 수 없는 빚이었다.

감사의 인사를 전해야 할 것은 김원철이 아니라, 나였다.

***

김원철은 발 빠르게 움직였다.

곧장 현재 한국에 생성된 던전들에 대한 판별을 시행해, 그 결과를 공표했다.

그 결과, 움츠러들었던 던전 공략에 다시 활기가 띄기 시작했다.

다만, 이상 현상이 발생한 것으로 판별된 던전에 대한 공략은 협회 측에서 무조건 불허했다.

평균적으로 한 단계 위에 등급의 던전과 같은 수준을 보인다고는 하지만 평균적일 뿐, 모든 이상 현상 던전이 그러한 것은 아니었다.

간혹, 두 단계 이상의 던전도 존재했기 때문에 헌터들의 안전을 위한 조치였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