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나는 살수다-60화 (60/150)

# 60

60화. 이상 현상(5).

“박동석 헌터님.”

시체 한 가운데에서 박동석과 태빈을 발견한 류진호가 두 사람을 불러 세웠다.

온 몸에 굳은 피가 덕지덕지 달라 붙어있어 일견 지쳐 보였다. 그럼에도 두 사람은 부상자를 찾고, 옮기며 솔선수범해서 움직이고 있었다.

S급 헌터에게 편견을 가지고 있는 것은 아니었지만 높은 자리에 있는 사람에게서 쉬이 볼 수 있는 모습은 아니었다.

하긴 그러니 여러 길드에서 제안한 부귀영화를 마다하고 국민들의 안녕을 위한다는 일념 하나로 협회에 머물고 있는 것일 테지만.

물론 길드에 비해 낮을 뿐, 협회에서 지급되는 급여와 복지 수준이 낮은 것은 아니었다.

“아. 류진호 헌터.”

“주작 길드를 대표해 도움에 감사드립니다.”

류진호가 진심에 존경을 더해 고개를 숙였다.

수백에 달하는 몬스터들은 차치하고, 1급 몬스터 드레이크만하더라도 기존의 병력으로는 버거운 상대였다.

만약 박동석의 지원이 없었더라면, 지금보다 더한 피해를 감수하고 나서야 간신히 승리를 점칠 수 있었을 것이다.

“감사를 받을 만한 일이 아니네. 당연히 해야 할 일을 했을 뿐이지.”

“그 당연한 일이 저와 동료들, 그리고 수많은 헌터들의 목숨을 구했습니다.”

박동석이 고개를 저었지만 류진호의 생각에는 변함이 없었다.

사실 지원을 요청하고서도 협회에는 큰 기대를 하지 않았다.

길드와 협회 사이에 알게 모르게 알력이 존재한다는 사실은 헌터라면, 다들 알고 있는 사실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누구보다 가장 먼저 지원이 닿은 곳이 협회였다.

오히려 같은 길드들이 요청을 외면하거나 마지못해 소수의 헌터를 지원했을 뿐이다.

이권을 다투는 길드들이기에 경쟁 길드의 약화시킬 수 있는 기회를 놓치지 않은 것이다.

“흠... 류진호 헌터의 마음은 알겠으니, 이제 그만 고개를 들게.”

“예. 그리고...”

류진호의 시선이 이번엔 내게로 향했다.

“김태빈입니다.”

“네. 김태빈 헌터님, 도와주셔서 감사합니다.”

나는 고개를 가볍게 끄덕이는 것으로 대답을 대신했다.

사실 박동석에 의해 반강제적으로 딸려 왔을 뿐, 내 자의로 그들을 도운 게 아니었다.

물론 그렇다고 그들을 도왔다는 사실이 변하는 것은 아니니, 감사를 받는 건 어렵지 않았다.

“그런데... 혹시 S급 헌터십니까...?”

잠시 머뭇거리던 류진호가 참지 못하고 궁금증을 드러냈다.

무려 1급 몬스터다.

아무리 박동석이 있다고는 하지만 태빈이 같은 S급 헌터가 아니고서야 고작 둘이서 드레이크를 처치한다는 것은 불가능에 가까웠다.

그럼에도 류진호가 확신하지 못하고 묻는 이유는 한국에는 S급 헌터가 셋뿐이기 때문이다.

류진호는 그 셋의 얼굴을 모두 알고 있었고, 그들 모두 태빈과 조금도 닮지 않았다.

“맞습니다.”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조금 귀찮아 질 거란 생각은 들었지만 드레이크와 싸울 때부터 예상했다.

숨긴다고 숨겨질 사실이 아니었다.

“정,.. 정말입니까?! 우리나라에도 드디어 네 번째 S급 헌터가 탄생했군요.”

의외로 류진호는 순수하게 기뻐했다.

새로운 S급 헌터 덕분에 자신과 동료가 목숨을 부지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이상 현상으로 곳곳에서 강한 몬스터들이 출현하고 있는 만큼, 강한 헌터의 출현은 반가운 일이었다.

“자세한 얘기는 나중에 하도록 하고, 현장 정리부터 마저 하도록 하지.”

류진호의 눈이 빛나는 것을 본 박동석이 한 발 먼저 나섰다.

태빈이 자신과 함께 움직이고 있다고는 하지만 확실히 협회 소속인 것은 아니다.

협회에 소속된 헌터로서 협회를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고, 자칫 얘기가 길어져 이러한 사실이 새어나가길 원치 않았다.

“알겠습니다.”

류진호가 수긍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사상자에 대한 조치는 마무리가 됐지만 아직도 해야 할 일은 많았다.

***

부상자 27명. 사망자 15명.

이번 전투로 발생한 피해다.

근래에 가장 많은 사상자가 발생한 전투였다.

그럼에도 예상보다 적은 피해였다.

물론 사망자가 열다섯에 이르는 만큼, 마냥 적다고만은 말할 수는 없었으나, 수백에 달했던 몬스터와 드레이크까지 나타난 것에 비하면, 확실히 적은 피해라고 할 수 있었다.

몬스터의 규모로만 따지면, 사상자의 수치가 두 배가 됐어도 이상할 게 없었다.

“사망자가 생각보다 적어 다행입니다.”

“다행이라...”

게다가 몬스터와의 전투는 부상자보다 사망자가 많은 게 일반적인데, 이례적으로 사망자가 적게 발생했다.

헌터들이 부상자들을 최우선적으로 보호한 것도 있고, 늦지 않게 의료지원이 이어진 덕분이었다.

“민호...”

“하은...”

아무리 피해가 적었다고 한들, 동료를 잃은 헌터들에게는 몇 번을 겪어도 결코 익숙해질 수 없는 슬픔이 찾아왔다.

불과 몇 시간 전까지만 해도 함께 웃고 떠들던 동료들이 싸늘한 주검으로 변했다. 아니 사지가 온전히 남아있기만 해도 다행일 정도로 처참한 몰골을 한 시신들이 대부분이었다.

살아남은 헌터들은 동료의 시신 앞에서 눈물을 흘리고, 가족들에게 시신만이라도 온전한 모습으로 돌려주기 위해 잃어버린 사지를 찾아 몬스터 사체들 사이를 헤맸다.

“후...”

다수가 승리를 축하하는 와중에 찾아온 슬픔에 박동석이 탄식을 흘렸다.

이상 현상이 발생한 A급 던전이기에 헌터들은 그만한 대비를 하고 있었다.

A급 헌터 서른과 B급 헌터 백여 명.

보통의 A급 던전 두세 개는 공략할 수 있는 전력이다.

그러나 이상 현상은 그 이름에 걸맞게 대비를 무색하게 만들었다.

수백의 몬스터와 드레이크의 존재는 재앙이라 불려도 무방했고, 그 결과가 수십에 달하는 사상자였다.

“...”

박동석이 헌터들의 죽음에 안타까워하는 반면, 나는 덤덤했다.

그보다 더한 죽음도 숱하게 봐왔다.

화적떼의 손에 수백이 모여 살던 마을이 마을 사람들과 함께 불타 사라지고, 마인의 심기를 거스른 일가족이 고통 속에 죽어가는 모습을 지켜본 적도 있었다.

그들은 항거할 수 없는 절망 속에서 죽음을 맞이했다.

그에 비하면, 헌터들의 죽음은 내 감정에 작은 파문도 일으키지 못했다.

내 시선은 그들이 아닌, 드레이크의 사체에 향해있었다.

1급 몬스터 드레이크.

나는 혹여 내단을 얻을 수 있을까 하는 기대를 품었다.

오크, 트롤 등의 몬스터 583마리.

돌에 깔리거나 같은 몬스터들에게 짓밟혀 형체를 알아볼 수 없는 몬스터가 대략 50마리.

드레이크 1마리.

확인된 몬스터들의 수였다.

몬스터의 수가 많은 만큼, 발견된 마나석도 상당했다.

A급 마나석 1개. B급 마나석 52개. C급 마나석 87개. 총 140개의 마나석이 발견됐다.

값어치만 해도 수십억에 달하는 양이었다.

그러나 아쉽게도 내단은 없었다.

드래곤하트와 같은 드레이크의 심장이 있긴 했다. 하지만 브레스까지 뿜어내며 모든 기운을 짜낸 드레이크의 심장에는 한 줌의 기운도 남아 있지 않았다.

***

현장 정리가 모두 끝나고, 나는 박동석과 함께 김원철 협회장을 만났다.

몬스터들의 부산물과 마나석에 대한 배분 문제가 복잡하게 얽혔다.

온전히 박동석과 나, 둘만의 힘으로 잡아낸 드레이크에 대해서는 별 말이 없었지만 몬스터에 대해서만큼은 아니었다.

마나석만 수십억이고, 부산물까지 더하면, 백억에 달한다.

전투를 촬영한 영상이 배분의 근거가 되어주긴 하지만 사상자들에 대한 보상을 생각해야 하는 주작 길드는 인도적 차원의 양보를 바라고 있었다.

“주작 길드 및 전투에 참여한 헌터들은 팔 할 정도를 생각하고 있는 듯합니다.”

김원철이 대강의 사정을 설명하며 내 의견을 물어왔다.

헌터들의 요구를 들어주자면, 자연 내 몫에도 손을 대야 했기 때문이다.

팔 할.

백억 중에 무려 팔십억이다.

헌터들이 잡은 몬스터가 절반을 조금 넘는 것을 감안하면, 그들의 온전한 몫은 오십억 정도. 조금의 양보를 더한다 해도 육십억 정도니, 확실히 과한 요구였다.

“그렇게 하십시오.”

“정말 괜찮겠습니까?”

태빈의 경지를 생각하면, 앞으로 그가 벌어들일 돈이 적진 않겠지만 십억의 차이다.

그리고 십억은 물욕이 없던 사람도 눈이 돌아갈 만큼, 큰 금액이다.

그럼에도 한 치의 망설임도 없는 내 대답에 오히려 김원철이 놀란 눈을 해보였다.

“예. 상관없습니다.”

헌터들이 요구하는 팔 할을 빼더라도 내 몫이 족히 십억은 된다.

드레이크를 제외한 것만 셈한 것이니, 아쉬운 마음이 들지는 않았다.

“그보다 이상 현상으로 인해 협회가 곤란을 겪고 있다고 들었습니다.”

“예... 이번 일도 그렇고, 계속해서 피해가 커져 가는데, 원인조차 밝혀내지 못한 실정입니다.”

김원철이 고개를 숙였다.

이상 현상이 발생한지 몇 달이 지났음에도 여전히 해결은커녕 원인조차 밝혀내지 못한 실정이다. 헌터들이 협회가 제역할을 하지 못한다고 비난 하는 것도 무리가 아니었다.

“이상 현상이 발생한 던전은 보통의 던전과 달리, 기의 흐름에 차이가 있다는 것을 알고 계셨습니까?”

나는 이번 전투에서 발견한 이상 현상에 대해 전했다.

살막이 나를 노려왔을 때, 가족을 보호해주고, 박동석의 지원과 영약을 준비해준 것까지. 몇 번이나 협회의 덕을 봤다.

협회가 골머리를 앓고 있는 문제를 해결하는데 조금의 도움을 줄 의향이 있었다.

“기의 흐름이요?”

“예, 마나라고 하는 게 이해하기 쉬우실 겁니다. 동기화가 발생하는 순간, 던전의 마나가 상당히 불안정한 모습을 보였습니다.”

김원철은 무슨 말인지 이해하기 힘들다는 반응이었지만 내 말을 의심하지는 않았다.

“혹시, 마나를 보고 사전에 이상 현상을 알아낼 수도 있습니까?”

“동기화가 발생하기 전에 던전들을 살펴봐야 확실히 알 수 있을 것 같습니다. 확실한 건 아니니, 기대하지 마십시오.”

내가 기의 흐름을 느낀 것은 모두 동기화가 발생한 순간이다.

평상시에도 보통의 던전과 차이가 있을지는 확인해봐야 했다.

“가까운 곳에 던전이 하나 있습니다. 생성 시기도 삼일밖에 되지 않았으니, 당장 동기화가 발생하지도 않을 겁니다.”

협회장은 곧바로 직원을 통해 이상 현상이 발생한 던전을 찾아냈다.

이상 현상으로 인해 야기되는 피해와 협회를 향한 비난을 생각하면, 한 시라도 빨리 해결해야 하는 문제였다.

***

협회에서 멀지 않은 던전이었다.

던전의 등급은 C급.

언제 동기화가 발생할지는 알 수 없지만 던전이 생성된 지 얼마 지나지 않았기 때문에 대기하고 있는 헌터들에게는 여유가 있어 보였다.

“박동석 헌터!”

헌터들 중, 몇몇이 나와 함께 온 박동석을 알아보고는 놀라 소리쳤다.

S급 헌터는 다른 헌터들에게 연예인과 같았다.

물론 평범한 연예인과는 달리, 가지고 있는 무력자체가 달랐기에 쉽게 접근 하지는 못했지만 한순간 시선이 집중되기에는 충분했다.

“고생 많으십니다.”

박동석은 이러한 상황이 익숙한 듯, 헌터들에게 다가가 어깨를 두드리며 그들의 고생을 치하하기 시작했다.

“저는 던전을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그런 박동석과 한 걸음 멀어진 나는 시선을 돌려 던전을 바라봤다.

이상 현상이 발생했다고는 하나 겉보기에는 보통의 던전과 전혀 차이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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