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0
40화. 살막.
전세가 확연히 기운 전투가 끝난 것은 지원이 도착한 후였다.
오백에 달하는 임프는 차치하고, 켈베로스 한 마리만 하더라도 이곳에 대기하고 있던 헌터들만으로는 막아낼 수 없는 몬스터다.
켈베로스가 출현했다는 소식에, 협회는 인근 A급 던전에서 동기화에 대비하고 있던 A급 헌터 둘을 급히 파견했다.
“협회소속, 박우석입니다. 켈베로스는?”
전장에 도착한 A급 헌터, 박우석은 곧장 켈베로스부터 찾았다. 임프들과 전투가 한창이었지만 자신들이 개입해야 할 정도는 아니었고, 무엇보다 켈베로스를 처리하는 게 급했다.
“켈베로스는 이미 처리했습니다.”
“뭐?!”
전장을 책임지고 있던 강혁의 설명에 박우석은 자신의 귀를 의심했다.
지원요청을 듣고 파견돼, 이곳에 도착하기까지 30분도 채 걸리지 않았다.
최대한 빨리 오긴 했지만 D급 던전에서 2급 몬스터인 켈베로스가 출현한 상황.
자신이 도착하기까지, 30분 동안, 헌터들이 살아 임프들과 전투를 치르고 있다는 것도 기적이나 다름없다. 그런데, 켈베로스를 처리하기까지 했다고 하니, 믿을 수가 없었다.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립니까? 임프 무리가 버거워 거짓으로 지원을 요청 한 거 아닙니까?”
화가 난 박우석이 소리쳤다.
상황이 종결된 뒤, 책임이 따르긴 하지만 목숨보다 중한 것은 없는 법이다.
짐짓 피해가 커질 것을 우려해 상황을 부풀려 보고 하는 거짓 요청은 자주 있는 일이었고, 박우석은 이번 또한 같은 경우라 생각했다.
“아닙니다. 켈베로스를 처리한 것은 사실입니다.”
그러나 이어진 강혁의 말과 그의 손끝이 향한 곳을 확인한 박우석은 그의 말이 모두 사실임을 믿을 수밖에 없었다.
임프 무리와 조금 떨어진 자리에 세 개의 머리가 모두 잘려다간 켈베로스의 시체가 떡하니 놓여 있었기 때문이다.
“상황이 정리 되는대로 설명 드리겠습니다.”
“...거들겠습니다.”
충격으로 침묵에 잠겨있던 박우석이 어렵사리 입을 열었다.
사실 당장 어떻게 된 일인지 확인하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다. 그러나 아직 임프와의 전투가 한창이었다.
태빈의 활약으로 전세가 아군 쪽으로 기울긴 했지만 한가하게 설명이나 하고 있을 만큼, 마냥 여유롭지만은 않았다.
고작 둘.
수는 적었지만 A급 헌터의 압도적은 무력은 이미 기울어진 전투의 종지부를 찍었다.
박우석의 대검은 일검에 수 마리의 임프들을 갈라냈고, 그와 함께 온 마법사의 마법 한 방에 수십의 임프들이 휩쓸려 사라졌다.
특히 마법사의 마법이 만들어낸 임팩트는 앞서 백여 마리의 임프를 학살한 태빈의 활약조차 헌터들의 머릿속에서 지워버릴 정도였다.
“이제 설명해 주시죠.”
A급 헌터들의 활약에 힘입어 오백에 달하던 임프들이 한 마리도 남김없이 고깃덩어리로 화하고, 박우석은 숨돌릴 틈도 주지 않고 강혁을 재촉했다.
“그러니까, 켈베로스를 고작 B급 헌터 혼자 처리했다는 말인가?”
박우석은 강혁의 설명에도 여전히 믿기 힘든 사실을 쉽사리 받아들이지 못했다.
믿지 못하는 것도 당연했다. B급 헌터가 켈베로스를 처리했다는 것보다는 차라리 갑자기 운석이 떨어져 켈베로스가 맞아 죽었다는 게 더 신빙성 있을 정도니까.
“김태빈 헌터. 정말 당신이 켈베로스를 처치한 게 맞습니까?”
협회 소속인 박우석은 나와 일면식이 있는 헌터였다.
그렇기에 더 믿기 힘들었는지도 모른다.
김태빈은 불과 얼마 전, 자신이 직접 D급 헌터자격증을 전해준 헌터다.
이후에 B급 헌터가 됐다는 얘기는 들었지만 켈베로스를 처치했다는 것은 그가 그 짧은 시간에 또 다시 B급 이상으로 올라섰다는 말이나 다름없었다.
“그렇습니다.”
내가 고개를 끄덕였다.
숨길 생각도 없었고, 수십이나 되는 목격자가 있는 만큼, 숨길 수 있는 것도 아니었다.
“허... 알겠습니다. 그렇게 보고를 올리도록 하겠습니다.”
박우석은 작은 탄성으로 자신의 감정을 대변했다.
확실한 증거인 켈베로스의 사체가 있는 이상, 믿지 않을 수도 없는데, 도저히 믿을 수가 없으니, 자신이 바보가 된 기분이었다.
갑자기 A급 헌터 몇이 튀어나와 ‘몰래 카메라였습니다.’라고 말하는 예능 프로그램이 생각날 정도.
물론 전투 상황을 가지고 그런 장난을 칠 리는 없었고, 결국 박우석은 믿기 힘든 사실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
***
“김태빈 헌터가 단신으로 켈베로스를 처치했다고?”
올라온 보고서를 살피던 협회장이 살짝 굳어진 얼굴로 소식을 전해온 유인원을 바라봤다.
“네. 그렇습니다. 여러 헌터들의 증언이 일치하는 바, 사실로 확인됐습니다.”
“흠... 유인원 헌터는 단신으로 켈베로스를 이길 수 있나?”
“자신은 있지만 쉽지는 않은 것으로 생각됩니다.”
유인원은 근접 계열의 A급 헌터.
강한 신체능력과 더불어 호흡을 방해하는 연기로 인해, 까다롭다고는 하나 자신은 있었다.
물론 2급 몬스터를 상대함에 있어 최소 둘 이상의 A급 헌터가 필요하다는 게 정설인 만큼, 쉽지 않다는 것 또한 사실이었다.
“그렇지. 그런데, 고작 B급 헌터가 켈베로스를 죽이다니, 이게 가당키나 한 소린가?”
“그의 한계가 B급이 아닌 까닭이겠죠.”
유인원이 짧게 덧붙였다.
“역시였나...”
협회장이 짧게 침음을 흘렸다.
이례적인 성장을 보이는 김태빈에 대해 일전에도 논쟁이 있었다.
하지만 당시에는 마력증후군이라는 특수성과 아직 속단할 수 없는 일이라는 이유로 그를 주시하는 정도에 그쳤다. 이는 협회장인 자신이 직접 지시한 상황이었다.
그러나 A급 헌터 이상의 힘을 지니게 된 이상, 이제는 단순히 지켜보고만 있을 수준을 넘어섰다.
지금까지 지켜본 바로는 김태빈이 단편적인 것이 아닌 온전한 이계의 기억을 얻었음이 확실했다.
“흠... 어느 쪽이라 생각하나.”
“확신하긴 이릅니다만, 김태빈 헌터가 주로 사용하는 무기가 살막의 무인 일부와 유사하다는 내용의 보고가 있었습니다.”
유인원의 입에서 일전에 차예린이 태빈에게 언급했던 ‘살막’이라는 이름이 흘러나왔다.
그러나 말을 하는 유인원도, 듣는 협회장도 이미 알고 있었다는 듯 전혀 표정의 변화를 보이지 않았다.
“그 쪽에서도 알고 있겠지?”
“안타깝지만 저희보다 정보력이 월등한 그들입니다. 나아가 이미 확인 절차에 들어갔을지도 모릅니다.”
일국의 헌터를 총괄하는 협회이긴 하나, 세계적으로 악명을 떨치고 있는 살막의 정보력에 비할 바는 아니다.
한국이 작은 나라이긴 하지만 헌터 전력은 여타 국가들에 결코 밀리지 않는 만큼, 살막도 한국을 주시하고 있었고, 김태빈에 대한 정보 또한 한 발 먼저 파악했을 가능성이 높았다.
“보호 인력 투입하고, 상황 주시하도록 해. 이번에도 빼앗기거나 잃을 수는 없으니까.”
과거의 일을 떠올린 협회장의 얼굴이 살짝 굳어졌다.
한국에서 김태빈과 같이 기존의 등급을 뛰어넘어 승급한 존재는 고작 셋뿐이라고 알려져 있다.
그러나 알려진 것 외에 총 다섯 명의 헌터가 승급을 한 적이 있었다.
그 다섯은 대부분의 헌터들이 힘만을 각성하는 것과 달리, ‘기억의 혼재’라 불리는 이계의 기억을 가지고 있는 이들이었다.
이는 협회장을 비롯한 극히 일부 관계자들만 알고 있는 사실로, 이를 비밀에 붙인 이유는 그들 중, 지금까지 한국에 남아 있는 헌터가 단 한명도 없기 때문이었다.
다섯 중, 네 명이 살막과 타이탄의 회유와 협박에 전향했고, 나머지 한 명은 그들 손에 죽음을 맞이했다.
그렇기에 일전의 회의에서 이계의 기억이라는 단어가 언급됐을 때, 가장 신빙성 높은 의견이었음에도 외면당한 것이다.
“알겠습니다.”
협회장의 조치에 유인원이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
차예린은 동생이 던전에 휩쓸렸던 사건 이후로, 태빈을 주시하고 있었다.
그렇기에 태빈이 D급 던전에서 발생한 동기화에 출현한 켈베로스를 단신으로 물리쳤다는 소식 또한 접할 수 있었다.
“허..? 이번엔 켈베로스를 단신으로 처치했다고?”
소식을 들은 차예린의 반응은 같은 소식을 접한 다른 이들과 별반 다르지 않았다.
당시에 있던 일은 믿기 힘들긴 해도 상식선에서 납득할 수 있는 수준이었다. 그러나 이번 일은 상식 밖의 일이었다.
“하긴 그라면...”
믿기 힘든 일이다. 아니 보통은 믿지 못했을 일이다.
그런데도 차예린은 그 일을 행한 이가 태빈이기에 왠지 모르게 납득하게 됐다.
S급 헌터인 자신을 보고 조금도 주눅 들지 않았던 이는 같은 두 명의 S급 헌터를 제외하면, 태빈이 유일했다. 아니 당시 태빈에게는 여차하면 자신을 공격하겠다는 의지 또한 엿보였다.
“그래도, 참... 이걸 어떻게 생각해야 할지...”
헷갈렸다.
연이어 상식을 벗어난 힘을 보여주는 헌터의 존재를 반겨야 할지, 경계해야 할지.
일전에 자신이 실수로 살막과 타이탄에 대해 언급했을 때, 태빈이 보인 반응 때문이다. 당시 태빈이 살막을 향해 보인 경계심은 보통의 헌터가 보일만한 감정이 아니었다.
살막은 자신의 신의 길드는커녕, 한국 헌터 전체로 봐도 감당하기 힘들 정도로 거대한 힘을 가진 단체다.
그런 살막과 태빈이 악연으로 얽혀있다면, 그 영향으로 살막의 시선이 한국에 조금이라도 시선을 집중한다면, 한국은 이상 현상이 발생하고 있는 지금보다 더 큰 위험을 맞이하게 될 수도 있었다.
“악연이 아니길 바라지만... 아무래도 직접 확인해 보는 게 낫겠지.”
이렇게 책상에 앉아 머리로 생각하는 것은 자신과 어울리지 않았다. 몸으로 직접 부딪치는 게 편했다.
오죽하면, 헌터 협약도 무시한 채, 앞뒤 재지 않고 던전에 진입하려 했을까. 그 때문에 항상 침착한 구본승이 항시 동행하는 것이기도 했지만.
“김태빈 헌터 위치 파악 해주세요.”
차예린이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핸드폰을 꺼내들었다.
***
단 한 명의 헌터로 인해 협회와 한국에 세 명뿐인 S급 헌터 중, 한 사람이 움직이고 있었지만 당사자인 나는 그 사실을 알지 못했다.
협회에서 보낸 인력들과 함께 전장을 수습하고, 돌아온 나는 지난 전투를 복기하고 있었다.
2급 몬스터인 켈베로스는 나에게 호승심을 불러일으켰지만 실제 전투는 의외로 싱겁게 끝이 났다.
놈의 연기가 나에게 통하지 않았다는 게 가장 큰 이유였지만 이빨과 발톱이라는 한정적인 공격수단 탓도 있었다.
내가 놈의 다리를 통해 어깨까지 올라선 순간, 실질적인 전투가 끝난 것이나 다름없었다. 켈베로스가 나를 공격할 수단이 없었기 때문이다. 몸을 뒤흔들며 나를 떨쳐내려고 하긴 했지만 고작 그게 전부였다.
오우거 때와 마찬가지로 가진 힘에 비해 실제 전투에서 보인 능력은 기대에 미치지 못했다.
“아쉽군.”
오랜만에 느낀 호승심을 충족시키지 못했다.
아쉬움이 남았지만 그뿐. 더 생각할 건 없었다.
수확이 아예 없는 것도 아니다.
켈베로스의 몸에서 나온 A급 마나석.
돈에 큰 관심은 없었지만 10억을 호가하는, 어른 주먹 크기의 마나석이 내 책상 앞에 놓여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