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9
39화. 동기화(4).
“지원군이 올 때까지 만이라도...”
임프들과 치열하게 전투를 치르고 있는 헌터들 모두 내가 켈베로스를 이길 수 있을 거라 생각지 않았다.
그러나 내 생각을 달랐다.
켈베로스가 나에게 호승심을 불러 일으켰다 뿐이지, 나보다 강한 것은 아니다.
항상 진신의 실력을 숨기고 있는 무인이라면 모를까, 자신의 모든 기세를 겉으로 드러내고 있는 켈베로스의 경지를 파악하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무인으로 치면 켈베로스의 경지는 절정.
같은 경지라면, 정면대결이라 할지라도 패하지 않을 자신이 있었다.
이제는 익숙해진 검 두 자루가 내 손에 들렸다.
일반적인 검보다 검신이 한 뼘 정도 짧은 두 자루의 검.
대부분의 몬스터보다 작은, 인간의 리치 거리를 극복하기 위한 무기로는 적합하진 않았지만 평생을 익혀온 내 무공에는 더 없이 어울리는 무기다.
카앙!
내가 검을 뽑아들자, 나를 주시하고 있던 세 개의 머리에 여섯 개의 눈동자를 지닌 괴물, 켈베로스 또한 움직이기 시작했다.
켈베로스의 네 다리가 지면을 박찼고, 3m에 달하는 던전 입구를 찢어발기며 나왔다는 표현이 어울릴 정도로 커다란 몸뚱이가 나를 향해 돌진해왔다.
쿵! 쿵!
인간의 수 배 크기의 개가 지축을 울리며 달려드는 모습은 상당히 위협적이었다. 그러나 나는 당황하지 않고, 침착하게 놈을 주시했다.
아쉽게도 2급 몬스터인 켈베로스에 대한 정보는 내 머릿속에 들어 있지 않았다.
‘김태빈’이 헌터에 관심이 있긴 했지만 일반인 수준에 불과했고, 헌터 시험과 공략 경험도 모든 몬스터에 대해 알 수 있는 것은 아니었다.
때문에 나는 일단 놈에 대해 파악하는데 주력했다.
외견상으로 켈베로스의 주 무기는 바위를 씹어 삼키고, 철근도 잘라내는 날카로운 이빨과 발톱
이다. 그러나 단순히 보이는 것이 전부라면, 켈베로스가 2급 몬스터로 분류될 리 없다.
쿠와와.
광견병 걸린 개 마냥 달려드는 놈의 입안에서 매캐한 연기가 폭포수처럼 흘러나와 주변 대기를 가득 메웠다.
내가 알지 못하는 켈베로스의 진정한 무서움은 입안에 있었다.
드래곤의 브레스와 비교할 바는 안 되지만 숨통을 옥죄이는 연기는 산소로 호흡하는 생명체에게는 치명적이다.
이는 일반인과는 비교할 수 없는 초인적인 신체능력을 가진 헌터라고 해도 별반 다르지 않다. 신체능력을 바탕으로 좀 더 오랜 시간 호흡을 참을 수는 있겠지만 아예 숨을 쉬지는 않을 수 없으니 말이다.
호흡을 방해하는 연기는 그만큼, 강력한 무기였고, 신체능력만 따지면 오우거 수준인 켈베로스가 같은 3급이 아닌 2급 몬스터로 분류되는 이유였다.
‘독?’
살행은 상황에 따라 수십 수백 가지 방법을 고려해야 한다. 때문에 대부분의 살수가 다양한 무기를 제 몸처럼 다룰 수 있도록 숙달한다. 그리고 그 다양한 무기들 가운데, 특히 독은 살수와 밀접한 연관이 있는 무기다.
잘만 사용한다면, 대상을 쉽게 암살 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유용한 무기인 만큼, 살수치고는 독을 사용하지 않는 살수가 드물었고, 수많은 살수들이 자신의 살법에 독을 우선으로 둘 정도였다.
나 또한 수차례의 살행에서 독을 사용했다.
상대를 유혹하는 최음제를 술에 타, 여인과 정사를 나누는 사이 대상을 죽인 적도 있고, 산공독으로 내공이 흩어져 무력해진 대상을 죽인 적도 있다.
그렇기에 놈의 입에서 뿜어지는 연기가 곧장 호흡을 곤란케 한다는 사실을 알아차린 것은 아니지만 독의 일종임은 쉽게 유추해낼 수 있었다.
나는 곧장 한 발 뒤로 물러났다.
연기가 주는 위험성을 알지 못하는 상태에서 무턱대고 싸울 수 없었다.
파악하지 못한 위험성이 존재함에도 공격을 취할 정도로 무모했다면, 나는 지금까지 살아있지 못했을 것이다.
다행히 켈베로스의 연기가 미치는 범위에는 나밖에 없었다.
내가 의도적으로 헌터들이 있는 곳을 피했고, 켈베로스가 내 의도를 잘 따라와 줬다.
헌터들의 안위를 걱정한 것은 아니다. 팀원들은 조금 걱정하긴 했지만 그보다는 놈과의 전투에 다른 변수가 끼어드는 것을 원치 않았다.
크릉. 크릉.
켈베로스가 수차례 나를 공격하려 했지만 네 다리를 분주히 움직여 만들어낸 재빠른 움직임도 무영보를 펼치는 나보다는 한 발 느렸다.
당연히 바위를 씹어 삼키고, 강철도 찢어발기는 놈의 이빨과 발톱 또한 단 한 번도 나에게 닿지 못했다.
쥐새끼처럼 이리저리 도망만 다니는 나로 인해 잔뜩 약이 올랐는지, 불타는 세 쌍의 눈동자가 분노로 일렁였다.
켈베로스의 이빨과 발톱은 모두 피해냈지만 연기만은 마냥 피해낸다고 피해낼 수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니었다.
어느새 나를 쫓는 놈의 입김에 따라 흘러나온 연기가 주변 대기를 가득 메워, 더 이상 내가 피해 낼 곳이 없을 정도였다.
“이제 내 차례군.”
그러나 내가 아무생각 없이 연기를 피해 도망만 다닌 것은 아니었다. 독에 대해서도 어느 정도 조예가 있는 만큼, 그 잠시간의 시간 동안 연기에 대한 파악을 끝마친 상태였다.
연기는 호흡을 통해 폐를 상하게 하지만 신체에 직접적으로 피해를 주는 성질의 독은 아닌 것으로 보였다. 호흡만 하지 않는다면, 전혀 무해하다는 의미였다. 매캐해, 시야를 가리는 것도 있긴 하지만 방해될 정도는 아니었다.
지금까지는 볼썽사납게 도망만 다니는 꼴이 됐지만 호흡하지 않는 한 무해하다는 것을 안 이상, 이제부터는 아니다.
호흡은 살수가 갖춰야 하는 가장 기본적인 소양.
잠시간 호흡을 참는 것쯤은 어려운 일이 아니었고, 마음먹는다면, 반 시진도 버틸 수 있었다.
물론 거친 움직임이 요구되는 전투 중에는 그토록 오랜 시간을 버틸 수 없겠지만 켈베로스를 잡는 데는 반 시진까지 필요치 않았다.
타앗.
나는 호흡을 멈춘 채, 살기를 폭사시키며 켈베로스를 향해 달려 나갔다.
이미 살기로 효과를 보기 힘들다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놈의 움직임을 잠시간 잡아둘 수 있다면, 그것으로 충분했다.
쾌속.
무영보를 펼치는 내 신형은 마치 바람과 같았다.
세 개의 머리, 여섯 개의 눈동자 덕분에 사각이 존재하지 않음에도, 켈베로스는 내 신형을 미처 좇지 못했다.
켈베로스는 사라진 나를 찾지 못해 눈알을 이리저리 굴려댔고, 순식간에 놈의 밑으로 접근했다.
크와와!
그러나 켈베로스도 만만치 않았다.
내 신형은 놓쳤지만 자신을 옥죄는 살기를 느끼자마자, 놈이 울부짖었다.
드래곤피어, 오크의 함성 등, 흔히 ‘몬스터 피어’라 불리는, 무인의 기세와 비슷한 유형의 기술에 의해 내 살기는 곧바로 흩어졌다.
처음 마주했을 때와 마찬가지로 비슷한 경지에 오른 몬스터에게는 살기가 큰 효과를 발휘하지 못했다.
나는 살기로 기대했던 효과를 얻지 못했지만 망설임 없이 손을 움직였고, 손에 들린 검은 머리 위에 있는 켈베로스의 머리통을 잘라내기 위해 휘둘러졌다.
카캉.
목 언저리까지 솟아오르던 검이 본능으로 위험을 감지한 켈베로스의 발톱이 막아섰다.
강철도 찢어발길 만큼, 날카로운 발톱이었지만 검기를 두른 내 검을 완전히 막아내지는 못했다.
잘려나간 발톱들이 우수수 떨어져 내렸고, 내 검은 더 나아가 켈베로스의 목 언저리에 얕은 상처를 남겼다.
부러진 발톱과 생채기에 불과하지만 피가 새어나오는 목으로 인해, 켈베로스의 피어에 담긴 감정이 분노에서 고통으로, 그리고 다시 더한 분노로 바뀌었다.
쾅!
분노를 참지 못한 켈베로스의 이빨과 발이 나를 노리고 짓쳐들어왔다.
잘려나간 발톱은 어느새 다시 자라나 있었고, 목의 상처 또한 사라졌다. 가히 트롤에 버금가는 재생력이었다.
켈베로스의 발이 떨어진 자리에는 폭탄이라도 떨어진 듯, 땅이 폭발하며 구덩이가 생겨났고, 세 개의 머리는 아가리를 벌린 채, 나를 쫓아왔다.
그러나 분노한 채, 이뤄지는 단순무식한 공격으로는 나에게 어떠한 피해도 입힐 수 없었다. 오히려 그러한 공격이 놈의 빈틈을 만들어 냈다.
놈의 발이 나를 향해 휘둘러졌다.
나는 발톱을 디딤돌 삼아, 놈의 발을 밟고 다리를 타고 올랐다. 놈이 거칠게 다리를 털어댔지만 단숨에 어깨까지 당도한 나는 그대로 눈앞에 있는 켈베로스의 가장 왼쪽 머리를 지탱하고 있는 목을 향해 검을 내리쳤다.
서걱.
고목나무만큼이나 두꺼운 목이 단숨에 잘려나갔다.
세 개 중, 하나의 머리를 잃은 켈베로스가 거친 비명을 토해냈고, 붉은 피가 대지를 적셨다.
머리 하나를 잘라냈지만 나는 놈에게 시간을 주지 않았다.
발톱과 목덜미의 상처를 순식간에 회복하는 켈베로스의 재생력은 놀라웠다. 가능하리라고 생각되진 않지만 머리도 재생될지 모르는 일이다.
남은 두 개의 머리가 차례로 잘려 나갔다. 이미 어깨 위에 나를 올려놓은 켈베로스는 변변찮은 저항도 하지 못했다.
쿵!
머리를 모두 잃은 켈베로스의 몸이 힘을 잃고 쓰러졌다.
기대에 못 미치는 싱거운 결말이다.
오우거와 비견될 만큼 강한 힘과 연기라는 무기를 지니고 있었지만 사족보행으로 운신의 한계가 명확한 짐승형 몬스터의 한계였다.
“조금만 더 힘내!”
“곧 지원군이 온다!”
나와 켈베로스의 싸움이 끝났을 때, 헌터들과 임프 무리간의 전투는 이제 막 절정으로 치닫고 있었다.
지원을 기다릴 목적으로 방어에 치중한 탓에 임프의 수를 많이 줄여 놓진 못했지만 수적 열세에도 불구하고 진형을 잘 갖춰 버티고 있었다.
“오른쪽 막아!”
그 속에는 부족한 능력으로 분투하고 있는 팀원들도 보였다.
물론 내 기준에서 부족하다 뿐인지, 무공을 열심히 익히고 있는 팀원들은 같은 등급의 다른 헌터들에 비하면 충분히 뛰어나다 할 수 있었다.
상황을 보니, 체력만 뒷받침 된다면, 충분히 이겨낼 수 있을 듯 했다.
하지만 오백과 오십이라는 수적 열세에서 오는 부담이 적지 않았고, 오백에 달하는 임프들의 파상공세도 만만치만은 않았다.
“후우.”
나는 한동안 참고 있던 탓에 불편했던 호흡을 가다듬고, 전선에 가담했다.
켈베로스를 쓰러트리는 것으로 내 몫은 충분히 해냈지만 그렇다고 마냥 지켜보고 있을 수만은 없었다.
투투툭.
임프 무리의 후방에서부터 시작된 내 공격은 은밀하면서도 신속했다.
바람이 불고 임프들의 목이 낙엽마냥 바닥에 떨어져 내렸다.
몇몇 임프들이 그 소리를 듣고 고개를 돌렸지만 그뿐이었다. 그 고개가 채 돌아가기도 전에 놈들 또한 목을 잃어버렸다.
투투둑. 투투둑.
임프들의 후미에 목 없는 몸뚱이가 쌓여갔고, 머리통이 구슬처럼 굴러다녔다.
전방에서 벌어지는 치열한 전투에 정신없던 임프들은 후미의 동족들이 죽어나가는 것도 알지 못했다.
“김태빈 헌터!”
빽빽하게 에워싸고 있던 임프의 수가 줄어들면서 누군가 놈들의 후방을 무너트리던 나를 발견하고 소리쳤다.
그 누군가는 뒤늦게 자신의 실수를 깨닫고 황급히 입을 틀어막았지만 한 발 늦었다.
누군가의 외침에 임프들이 내 존재를 알아차렸고, 놈들의 얼굴에 경악 비슷한 감정이 서렸다. 내 주위로 쓰러져 있는 수많은 동족의 시체 때문이었다.
나를 발견하긴 했지만 8급 몬스터에 불과한 임프들이 나를 막을 방법은 없었다. 내 손에 시체로 변한 임프만 해도 백에 가까웠고, 팽팽했던 전선은 빠르게 기울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