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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살수다-38화 (38/150)

# 38

38화. 동기화(3).

“그래도 이렇게 B급 헌터이신 김태빈 헌터님까지 오셨으니, 한결 마음이 놓이는군요.”

벌레를 보듯 무심한 내 얼굴을 본 강혁이 어색하게 한 발 뒤로 물러나며 말했다.

나는 어색함을 감지했지만 그래도 모르는 사람이 본다면, 나로 인해 물러서는 게 아니라, 주위 헌터들에게 내 존재를 소개하기 위해 자연스럽게 몸을 돌리는 것처럼 보일 듯했다.

‘젠장...’

속으로는 욕지거리를 내뱉고 있었지만 그렇지 않아도 안 좋은 연으로 엮여 있는 상황에서 굳이 불편해하는 내 심기를 거스를 생각이 강혁에게는 없었다.

“오오.”

“B급 헌터라고?!”

어쨌든, 강혁의 소개에 내 존재를 정확히 알지 못하던 이들이 반색하며 호응했다.

예상 몬스터가 비교적 약한 8급 몬스터, 임프로 알려져 있지만 꽤나 유명한 현기팀이 구조 및 공략에 실패한 던전이다. 어떤 변수가 발생할지 알 수 없는 상황에서 B급 헌터의 합류는 기꺼운 일이었다.

“파천 팀의 조우종입니다.”

“기순 팀, 황기순이오.”

“JH 팀의 민정후이라고 합니다.”

제각기 팀원들과 늘어져 있던 팀들의 팀장들이 무거운 엉덩이를 털고 일어나 각기 자신을 소개했다.

강한 우군의 합류를 반기는 것과 동시에 상위 헌터로 구분되는 B급 헌터와 얼굴을 익혀두기 위한 목적이었다.

민정후가 C급, 조우종과 황기순이 D급으로, 강혁보다는 떨어지긴 하지만 셋 모두 하나의 팀을 이끌고 있는 만큼, 노련한 헌터들이었다.

강혁의 스톰 팀과 민정후의 JH 팀은 일개 팀으로도 D급 던전까지는 충분히 공략이 가능한 팀이었고, 파천 팀과 기순 팀도 E급은 무난히 공략 가능하고, 두 팀이 연계한다면 D급도 노려볼 수 있는 팀이었다.

“태빈 팀의 김태빈이라고 합니다.”

그들까지 무시할 수는 없었기에 나 또한 인사를 건넸다.

물론, 그렇다고 친목도모나 하고 싶은 마음은 없었기 때문에 인사를 건넨 뒤, 곧장 던전으로 시선을 돌렸다.

동기화가 언제 발생할지 모르는 만큼, 던전을 먼저 주시하는 게 이상한 일은 아니었기 때문에 이를 불편하게 생각하는 사람은 없었다.

“당연한 말이긴 하지만 아직까지 동기화 징후는 없었습니다.”

내가 던전을 바라보자, 민정후가 간단한 설명을 덧붙였다.

나이는 민정후가 더 많아 보이기는 했지만 내가 B급 헌터라는 점때문인지, 민정후는 자연스럽게 존대를 해왔다.

동기화가 시한폭탄과 같긴 하지만 징후가 아예 없는 것은 아니다.

동기화가 발생하는 순간, 당장은 어둡기만 한 던전 입구가 몬스터가 튀어나기 직전에는 내부의 환경을 비춘다.

곧장 몬스터가 튀어나오는 탓에 몇 초에 불과한 순간이긴 하지만 전투를 준비할 정도로는 충분했고, 그렇기 때문에 헌터들이 그토록 편한 모습으로 잡담을 나누고 있을 수 있던 것이다.

민정후의 설명과 별개로, 나는 던전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눈앞의 던전은 지금까지 경험했던 던전들과는 사뭇 달랐다.

절정에 오르고 나서야 느끼게 된 것이긴 하지만 기의 흐름이 일정했던 기존의 던전들과는 달리, 눈앞의 던전은 기운이 일정 간격을 두고 팽창과 수축을 반복하는 게, 마치 던전이 숨을 쉬고 있는 것처럼 느껴졌다.

“팀장님.”

“아. 바로 진입하도록 하지.”

홀린 듯 던전을 바라보던 나는 팀원들의 부름에 정신을 차렸다.

이전과 다른 기운의 흐름이 마음에 걸리긴 했지만 내 결정은 바뀌지 않았다.

“예?! 던전에 진입한단 말입니까?”

“동기화를 대비해 온 게 아니었습니까?”

내 말에 묵묵히 고개를 끄덕이는 팀원들과 달리, 듣고 있던 헌터들의 입에서는 경악에 찬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무슨 문제라도 있습니까?”

“아니...그건 아니지만...”

내 물음에 헌터들은 아무것도 문제 될 것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사실 헌터들에게는 좋은 일이다. 최근 줄어든 수입을 메워줄 보상금은 아쉽긴 하지만 더 이상 무의미하게 시간을 허비해도 되지 않을 테니 말이다.

결국 헌터들은 나에게 아무런 말도 하지 못했고, 나는 여전히 무심한 얼굴로 던전을 향해 걸음을 옮겼다.

그러나 나는 중간에 그 발걸음을 멈출 수밖에 없었다.

***

“젠장!”

내가 막 걸음을 옮기기 시작했을 때,

민정후가 말했던, 동기화의 징후가 나타났다.

처음에는 알지 못했다. < 타락한 임프 무리 > 던전의 환경은 음습한 동굴이었고, 이는 평소의 던전 입구와 크게 다르지 않았기 때문에.

그러나 그 어둠 속에서 불이 켜진 듯 수백 쌍의 노란 눈동자가 빛나는 순간, 지켜보고 있던 모두가 동기화가 발생했음을 깨달았다.

“전투 준비!”

동기화가 발생한 이상, 더 이상 잡담이나 하고 있을 시간은 없었다.

헌터라는 이름을 노름판에서 딴 게 아님을 증명하듯, 방금 전까지 늘어져있던 헌터들이 빠르게 반응하며 각자의 무기를 꺼내들었다.

그러나 호기롭게 전투를 준비하던 헌터들의 얼굴이 파리하게 질리는 데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퀴엑..퀴엑..

동기화와 동시에 노란 눈동자를 가진 몬스터들이 던전 입구를 통해 쏟아져 나오기 시작했다.

< 타락한 임프 무리 >라는 이름에 걸맞게 모습을 드러낸 몬스터는 임프가 맞았다.

문제는 그 수에 있었다. 개미떼와 같이 쏟아져 나오는 임프는 그 수가 오백은 훌쩍 넘어 보였다.

보통 D급 던전에서 나타나는 임프는 적게는 백에서 많게는 이백 정도다. 그것도 던전 내에서 한 번에 튀어나오는 것이 아닌, 수십 단위로 쪼개져 나타나는 게 일반적이다.

이렇게 수백의 임프가 한 번에 튀어나오는 것은 이례적인 일이었다. 그렇기에 이상 현상이라 부르는 거겠지만.

“다들 정신 차려! 충분히 상대할 수 있어!”

이 자리에 모인 헌터 중, 나를 제외한 가장 높은 등급의 헌터이면서 공략 등의 전투 경험이 풍부한 강혁이 당황한 헌터들을 다잡았다.

임프의 수가 많긴 하지만 다섯 개의 팀이 모였다. B급 헌터인 태빈이 있는 팀과 자신의 스톰 팀을 제외하면, 나머지 세 개의 팀들의 수준이 조금 떨어지긴 하지만 임프에게 당할 정도는 아니었다.

“미친... 이건 아니지...”

다가오는 임프 무리를 보며 전열을 가다듬던 강혁의 눈동자가 급격히 떨려오기 시작했다.

임프 무리에 임프 주술사와 족장 등, 7급과 6급으로 분류되는 놈들이 섞여 있는 것쯤은 문제가 아니었다.

던전 입구를 찢고 나오는 지옥의 수문장, 켈베로스.

2급 몬스터로, A급 이상의 던전에서나 볼 수 있다는 머리 세 개 달린 개는 숱한 생사를 넘어온 C급 헌터 강혁마저도 몸을 떨게 만들었다.

물론, A급 이상의 던전에서는 켈베로스 수준의 몬스터가 발에 채일 정도로 흔하다는 것과 지금 강혁의 눈앞에는 단 한 마리의 켈베로스만이 존재한다는 차이가 있었다.

하지만 고작 단 한 마리라 할지라도, 자신을 포함해, 이 자리에 있는 헌터들이 어쩔 수 있는 존재가 아니라는 것만은 확실했다.

이는 B급 헌터인 태빈 또한 마찬가지다. 3급도 아니고, 2급은 결코 B급 헌터 혼자 어쩔 수 있는 몬스터가 아니었다.

“아아...”

“다 죽을 거야...”

다른 헌터들이 느끼는 감정도 강혁과 별반 다르지 않았다.

항거할 수 없을 만큼, 강한 힘을 지닌 몬스터의 등장에 하나같이 전의를 잃고 절망했다.

그렇다고 도망칠 수도 없었다. 이유는 간단했다. 켈베로스가 헌터들보다 훨씬 빠르니까. 등 돌려 도망치는 순간, 날카로운 발톱과 이빨이 자신의 몸을 갈기갈기 찢어놓을 것이다.

오십에 달하는 만큼, 동시에 산개해 도망친다면, 일부는 살 수 있을지 모르지만 먼저 움직여 미끼가 되고자 하는 헌터는 없었다.

“오호.”

모두가 절망하고 있는 것은 아니었다.

나는 오랜만에, 아니 이세계에서는 처음으로 마주한 강력한 적에게 호승심을 느꼈다.

다가오는 임프 무리. 아니, 그 너머의 켈베로스를 바라봤다.

수백에 달하는 임프는 내 관심조차 끌지 못했다. 내 시선은 홀로 수백의 임프보다 더한 기세를 내뿜고 있는 켈베로스에게 박혀 떨어질 줄을 몰랐다.

크릉.

수백의 임프 무리와 오십의 헌터들 가운데, 유일하게 자신을 위협할 만한 적.

천천히 먹잇감을 훑던 켈베로스의 불타고 있는 듯 붉은 세 쌍의 눈동자가 나에게로 향했다.

본능으로 나를 알아본 건가.

다른 이들이었다면, 오줌을 지리며 시선을 돌려버렸을 지도 모를 흉포함을 담고 있는 눈동자였지만 나는 켈베로스의 시선을 피하지 않았다.

세 개의 머리 중, 어느 머리에 달린 눈을 봐야 할지는 잠시 고민하긴 했지만 가운데 머리에 시선을 맞췄다.

내 시선에 담긴 의지는 명확했다.

살(殺).

나는 놈을 죽이겠다는 감정을 숨기지 않았다.

내 몸에서 무형의 살기가 흘러 나왔다. 살행이었다면, 마지막 순간까지 숨겨야 할 살기였지만 지금은 숨길 필요가 없었다.

내가 아무것도 이루지 못한 김태빈의 평범한 육체를 가지고 있을 때도 영혼에 새겨진 살기다.

수백의 생을 머금은 절정의 무인이 흘리는 살기에 어느새 내 앞까지 당도해 있던 임프 몇 마리가 몸을 부들부들 떨며 게거품을 물었다.

그 모습에 본능적으로 위협을 느낀 인근의 임프들은 나에게 멀어지려 급격히 방향을 선회해, 다른 헌터들에게도 향했다.

8급 몬스터를 절명 시킬 만큼, 강력한 살기.

모든 것을 씹어 삼킬 듯 응시하던 켈베로스의 눈동자에도 흔들림이 일었다. 그러나 켈베로스는 임프처럼 게거품을 물지도, 그렇다고 두려움을 느끼지도 않았다. 놈 또한 나에게 살기를 흘리며 자신의 의지를 피력했다.

“김태빈 헌터가 켈베로스를 맡는다!”

나와 켈베로스가 서로를 바라보고 있을 때,

강혁은 B급 헌터에 올라선지 얼마 되지 않은 태빈의 만용이라 생각하면서도 기회를 놓치지 않고, 헌터들을 선동했다.

태빈이 켈베로스를 이길 거라고 생각지는 않았다. B급 헌터이니 만큼, 그저 지원이 도착할 때까지 버텨주기만을 바랐다.

잠깐, 김태빈을 이용한다는 생각에, 이전부터 이상하게 관계가 꼬이는 것만 같은 생각이 들긴 했다. 하지만 이미 임프 무리가 목전까지 당도해 있었기 때문에 이것저것 생각할 겨를이 없었다. 이대로 있다가는 켈베로스는커녕, 임프 무리에게조차 당할 판이었으니.

“가만히 있다 죽을 셈이야?! 맞서 싸워!”

강혁이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며 임프 무리를 휩쓸었다.

전혀 예상치 못한 2급 몬스터, 켈베로스의 등장에 겁을 집어 먹긴 했지만 C급 헌터. 임프 따위를 두려워 할 정도는 아니었다.

“흩어지지 마!”

“방어 진형으로!”

“임프만 상대하면 돼!”

민정후와 조우종, 그리고 황기순도 강혁의 외침에 힘입어 각기 자신들의 팀원들을 정비했다.

전화위복이라고 해야 할까, 항거할 수 없는 적의 출현은 수백의 임프 무리가 쉬운 상대로 느껴지게 만들었다. 켈베로스만 아니라면, 충분히 이겨낼 수 있을 거란 용기를 심어주었다.

“만식! 영기!”

팀원들도 임프와의 전투를 시작했다. 그들을 이끌어줄, 나는 켈베로스와 대치하고 있는 상황이었지만 김시연의 주도하에 전선의 한축을 담당했다.

수백 임프와 오십 헌터들의 전투가 그렇게 시작되고 있었다.

“나와 너만 남았군.”

알아들을 리는 없겠지만 오랜만에 마주한 호승심을 불러일으키는 적을 향해 말했다.

크릉.

내 말에 응답하기라도 한 듯, 놈 또한 작게 울부짖었다.

그러나 내가 듣기에는 개 짖는 소리에 불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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