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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살수다-36화 (36/150)

# 36

36화. 동기화.

마지막 코볼트를 베어내고, 검에 묻은 피를 털어내는 내 모습에 팀원들은 물론이고 짐꾼 아저씨들과 형 또한 벌어진 입을 다물지 못했다.

다들 내가 B급 헌터가 됐다는 사실은 알고 있었지만 그 무위를 마주하는 것은 처음이었다.

사냥꾼 거미 때는 팀원들 전부 거미줄에 갇혀 있었다.

전투라기보다는 학살에 가까웠던 싸움은 왜 B급 헌터부터 상위 헌터로 구분되는지, 여실히 느끼게 해주었다.

현재 나의 능력은 A급 헌터와 같았지만 그것까지는 내가 말하지 않았기에 알 수 없는 부분이었다.

“마무리하죠.”

내 말에 넋을 잃고 멍하니 바라보고 있던 이들이 정신을 차렸다.

모두가 충격에서 벗어나 바삐 움직였다. 팀원들이 특히나 적극적으로 움직였다.

마나석을 수거하고 남은 것은 수련.

태빈의 무위를 보고 몸이 달아올라 1분1초가 아까웠기 때문이다.

일주일 전, 아니 던전에 들어오기 전까지만 해도 떨쳐내지 못했던 두려움은 더 이상 남아있지 않았다. 자신들도 가능하다는 성장에 대한 희망만이 남아 있었다.

마무리 작업이 끝나고, 모두가 약속이라도 한 듯, 그 자리에서 수련에 빠져들었다.

코볼트 사체가 주위를 가득 메워 일반인은 그 자리에 있는 것만으로도 구토기가 올라올 정도였지만 다들 숱하게 봐왔고, 경험한 것이다. 사람시체가 섞여있는 것도 아닌데, 거리낄 것도 없었다.

평소와 달리, 오늘은 팀원들이 있는 자리에 형도 함께였다.

조용히 팀원들 옆에 가부좌를 틀고 앉은 형은 충만한 기운을 느끼기 위해 눈을 감고 정신을 집중하고 있었다.

고작 하루가지고 기를 느끼고 내공을 쌓을 거라 기대하지는 않았다. 유수 문파의 내로라하는 자제들도 한 달은 걸리는 일이다.

뭐 충만한 기운을 감안하면 백년에 한 번, 천 년에 한 번 나온다는 무재는 가능할지도 모르겠으나, 형의 무재는 평범함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현실에서도 일주일간 노력하긴 했지만 아직은 시기상조다. 다만, 노력은 배신하지 않기에 집중하고 있는 형의 모습은 기꺼웠다.

***

그 시각.

협회는 최근 빈번하게 발생하고 있는 이상 현상으로 인해 골머리를 앓고 있었다.

오늘에서야 발생한 문제가 아니라, 몇 달 전부터 이어져오고 있는 문제였지만 여전히 해결되지 않은 상태였다.

이상 현상은 수십 개의 던전 중, 하나 꼴로 그 발생 빈도가 낮긴 하지만 그로 인해 몇 달 사이에 수천이 헌터가 죽거나 다쳤다. 그리고 그 피해는 계속해서 늘어나고 있었다.

“청주시의 게이트에서 또 다시 이상 현상이 발생했다고 합니다.”

“또 인가... 후...”

협회장에게 보고를 올리는 유인원의 표정은 좋지 못했다.

보고를 받은 협회장 또한 마찬가지. 잔뜩 인상을 쓴 채,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다행히 인명피해는 발생하지 않았습니다만, 공략을 진행한 태백 길드 측에서 측정과 관련해 협회 측에 정식으로 항의를 해온 상태입니다.”

“태백 길드도...”

태백 길드.

한국 내에서 손꼽히는 길드가 항의를 하고 있었지만 놀랄 일도 아니다.

이미 태백뿐만 아니라, 같은 1세대 길드인 주작, 신의 길드의 항의가 있었고, 중소 길드나 팀 의 항의는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빗발치고 있는 상황이었다.

이렇게 항의라도 할 수 있으면 다행이다. 상당수는 던전 공략에 실패해 목숨조차 부지하지 못했으니 말이다.

“이상 현상의 원인은 아직도 찾지 못했나?”

“외국에도 자문을 구해보고, 협회 내에서도 다각도로 연구를 진행 중이기는 하나 아직은... 시간이 조금 더 필요할 것 같습니다...”

보고를 올리던 유인원이 고개를 숙였다.

해결책은커녕, 이상 현상이 발생하는 원인조차 밝혀내지 못했다.

그로 인해 앞서 있었던 길드들의 항의는 물론이고, 협회의 능력 자체를 의심하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었다.

게다가 이 기회에 협회의 이권을 빼앗으려는 길드들의 압박은 더 이상 버텨낼 수 없을 정도였다.

“정부와 국민들의 관심도 이 문제에 쏠리고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이제는 정부의 관심은 물론, 국민들 사이에서도 이 문제가 이슈로 떠오르고 있었다.

얼마 전, 태빈이라는 헌터를 통해 잠시나마 관심을 돌려놓긴 했지만 말 그대로 시간 벌기에 불과했다.

사실 그 안에 원인을 알아내고 해결책 또한 마련할 수 있을 줄 알았다.

그러나 연구는 지지부진 했고, 결국 협회는 잠시간 벌어놓았던 시간을 잃고 다시 위기에 봉착했다.

“...문제는 그 뿐만이 아닙니다...”

고개를 숙였던 유인원 어렵게 말을 이었다.

당면한 문제도 해결하지 못한 상황에서 또 다시 안 좋은 소식을 전해야 한다는 사실이 내키지 않았지만 이 문제 또한 미뤄둘 수 없었다.

“이상 현상을 걱정하는 헌터들이 공략을 기피하고 있는 탓에, 동기화에 가까워진 던전들이 빠르게 늘어나고 있습니다.

오늘만 해도 동기화가 발생한 던전이 세종과 수원, 그리고 파주, 세 곳으로, 지시하신대로 조치를 취하고 있던 덕분에 큰 피해는 면했지만 이대로 간다면, 곧 감당할 수 없을 지도 모릅니다.”

동기화.

던전이 방생하고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면, 던전 내의 몬스터들이 지구로 쏟아져 나오는 현상을 칭하는 말이다.

등급이 높은 던전일수록 동기화가 오래 걸린다는 게 정론이긴 하나, 동기화가 정확히 언제 발생하는지는 아무도 모른다.

아직 시간이 남았다 여기던 던전에서 당장 내일 동기화가 발생할 수도 있고, 당장 내일이라도 터질 것 같았던 던전이 한 달이 지나도록 잠잠 할 수도 있다.

언제 몬스터들이 튀어나올지 알 수 없는 던전은 타이머가 없는 시한폭탄과 같았고, 정부가 공략 보상금을 지급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었다.

최대한 빠른 시간 내에 던전을 공략해, 언제 터질지 모르는 동기화의 가능성을 조기에 방비하기 위함이다.

그런데, 이상 현상으로 헌터들이 공략을 기피하면서 제 때 처리되지 못한 던전들이 하나둘 늘어났다. 대부분 이상 현상이 발생한 던전들로, 시한폭탄들이 터질 때만을 기다리고 있었다.

동기화에 대해서만큼은 각 길드들과 연계해 대비를 하고 있긴 했지만 정확히 언제 동기화가 발생할지 알 수 없기 때문에 여의치가 않았다.

“후...”

협회장의 한숨이 다시 한 번 깊어졌다.

“정부에는 공략 보상금을 상향하든 조치를 취해달라고 하고, 하위 헌터들에게 긴급 협조 연락 돌리도록 하게, 할 수 있는 선에서 최대한 대비하는 수밖에 없겠지. 당장은 방법이 없으니...”

이상 현상에 대한 원인을 밝혀내고 해결책을 강구해내지 못하는 한, 그저 헌터들의 공략을 독려하고, 동기화를 대비하는 것 외에는 당장은 방법이 없었다.

이상 현상만으로도 머리가 아픈데, 연쇄작용으로 동기화라는 문제까지 발생했으니, 협회장은 답답할 따름이었다.

***

수련을 끝으로 던전 공략을 마치고 나오니, 나를 비롯한 팀원들에게 일괄적으로 문자 한 통이 도착해 있었다.

[ 긴급 협조 요청. ]

위와 같은 제목의 장문의 문자로,

국가와 시민의 안전을 위해 불철주야 노력하고, 던전을 공략하기 위해 고생하는 헌터들의 노고를 치하한다는 식의 미사여구가 붙어 있었지만 결론은 던전 동기화를 대비해 헌터들의 협조를 바란다는 내용이었다.

“동기화 협조 요청? 우리한테?”

지금까지 동기화는 주로 공략이 어려운 A급 이상의 던전에서 발생했다. 누구도 공략에 나서기 꺼려하기 때문에 자연히 방치되다 동기화가 발생하면, 협회 주도하에 처리되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이와 같이 협회나 길드 소속이 아닌 헌터에게 협조 요청이 오는 경우는 거의 없었다.

전혀 예상치 못한 던전에서 동기화가 발생하고, 인근에 있는 헌터들에게 협조 요청을 하는 경우가 아니고서는.

“< 타락한 임프 무리 >? D급 던전이잖아. 생성 된지 2주나 됐는데, 여길 아무도 공략 안했다고?”

그렇기에 문자를 확인한 팀원들은 의아해 했다.

협회가 팀원들의 협조를 바라며 대비를 바라는 던전은 D급. 고작 D급 던전이 공략되지 않은 채, 동기화를 걱정해야 할 정도로 오래 남아 있었다는 사실이 이해가가지 않았다.

“여기 무적 팀이 공략에 나섰다 실패했대요. 구조대로 투입됐던 현기 팀도 마찬가지고.”

“뭐? 현기 팀도 실패했다고?”

김시연이 재빨리 검색을 통해 확인했고, 그 말에 놀란 김영기가 되물었다.

현기 팀은 C급 헌터 문현기가 팀장으로, 지금까지 D급 던전을 수십 번 넘는 공략해 낸, 하위 헌터들에게는 제법 알려진 팀이었다. 그런 팀이 구조대로 나섰는데도 실패했다니 믿을 수가 없었다.

“그럼 위험한 거 아니야?”

팀원들의 얼굴에 걱정이 드리워졌다.

D급 던전이다. 김시연과 장만식이 D급 수준에 올라섰다고는 하나, 등급 상으로는 김영기와 같이 E급에 불과했다. 유명한 팀도 공략에 실패한 던전의 몬스터와 싸워야 할지도 모르는데, 마음 편할 리 없었다.

그렇다고 협회의 요청을 마냥 무시할 수도 없었다.

1세대 길드쯤 되는 거대 길드에 속해있다면 모를까,

던전 공략 허가부터 시작해, 마나석과 몬스터 사체를 처리하는 일까지. 팀 단위의 하위 등급 헌터가 협회를 통하지 않고서 해결한 다는 것은 불가능에 가까웠고, 헌터로 활동하는 것 자체로 협회에 반쯤 속해, 그 영향력 아래에 있다는 것이나 마찬가지이기 때문이다.

“그래도 팀장님이 있으니...?”

팀원들이 나를 바라봤다. 그러다 이상한 낌새를 느끼고 모두 입을 다물었다.

내 등급은 B급으로, 이번 요청과 어울리지는 않았지만 팀은 팀 단위로 움직이기에 나 또한 같은 내용의 문자를 받았다.

팀원들이 여러 가지 문제로 협회의 요청을 거절하기 어려워한다는 사실 또한 알고 있었지만 나는 협회의 요청 따위에는 눈곱만큼의 관심도 없었다.

“이재호.”

내 말에 팀원들은 그제야 그를 떠올린 듯,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혹시나 이재호가 남아 있을까 하는 생각에서였다.

그러나 당연하게도 이재호는 찾을 수 없었다. 공략과 수련이 병행돼, 꼬박 하루가 걸렸을 뿐만 아니라, 이재호 스스로 팀원들 볼 낯이 있을 리 없었다.

[ 죄송합니다. ]

내 시선은 협회의 [ 긴급 협조 요청. ]문자에 앞서 도착한 문자에 향해 있었다.

결국 던전에 들어오지 못한 이재호가 남긴, 문자였다.

“흐음...”

내 입에서 작은 침음이 흘러나왔다.

결국 공포를 극복해내지 못하고, 헌터의 길을 포기한 이재호다. 팀원들은 그를 생각하며 안타까워하고, 자신들이 도움을 주지 못했다며 자책하고 있었지만 그가 헌터를 포기한 것은 나에게 어떠한 감흥도 주지 못했다.

내가 걱정하는 것은 그에게 무공을 전해줬다는 데 있었다.

비슷한 능력을 각성한 헌터들이 있긴 하지만 무공은 엄연히 이 세계에 존재하지 않는 것이다.

이재성이라는 내가 기억하는 인연들과 똑같이 생긴 사람을 만나고, 살막이라는 단체를 알게 되면서 생겨난 의문과 맞물려 내 울타리를 벗어난 이재호를 어떻게 해야 할지 고민스러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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