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3
33화. 트라우마(2).
“헌터... 그만둘까 봐요...”
침묵만이 가득한 순간, 누군가 어렵사리 입을 열었다.
힘없이 내뱉은 작은 말이었지만 팀원들의 귀에는 어느 때보다 크게 들려왔다.
시선이 한곳으로 몰려들었고, 그곳에는 이재호가 있었다.
“솔직히 다른 일해도 보통 사람들 보다는 많이 버는데, 굳이 목숨 걸고 헌터를 할 필요는 없잖아. E급이 헌터일 한다고 누가 알아주지도 않고.”
이재호가 목소리를 높였다.
팀원들을 바라보며. 그러나 나에게는 시선을 두지 않았다.
각성과 동시에 얻게 되는 인간을 뛰어넘는 신체능력은 일반인들은 하지 못하는 일을 가능케 한다. 때문에 각성자는 굳이 위험한 헌터를 하지 않아도 많은 돈을 벌 수 있었다.
실제로 수많은 각성자들이 다양한 분야에서 사회적으로 인정받으며 다른 삶을 살아가고 있기도 했다.
물론 헌터가 훨씬 많은 돈을 벌긴 하지만 목숨을 걸만한 차이는 아니었다.
“재호야...”
이재호가 하는 말에는 틀린 말이 하나도 없었다.
그럼에도 팀원들은 그런 이재호를 연민의 눈으로 바라봤다.
그가 하는 말이 본심이 아님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항상 죽음을 각오하고 있다고, 두렵지 않다고 생각했는데... 아니었나봐. 아직도 몸에 떨림이 멈추질 않아... 너무 무서웠어... 내가 막연히 생각했던 것보다 몇 배는 더.”
자신을 바라보는 연민 어린 시선에 목소리를 높였던 이재호가 고개를 숙였다.
얼굴을 감싸 쥔 그의 손바닥 사이로 물방울이 한 방울, 두 방울 새어나왔다.
두려움을 이겨내지 못한 스스로에 대한 원망이 가득 담긴 눈물이었다.
“...”
그 모습에 팀원들은 아무런 말도 할 수 없었다.
섣불리 건네는 위로 따위가 그의 마음을 달래줄 수 없다는 것을 알기에.
“일주일 주지.”
그 모습을 지켜보던 내가 말했다.
그들을 팀원으로 받아들이고, 가르침도 내렸지만 나약함까지 포용해줄 자비는 없었다.
죽음의 고비는 꼭 오늘이 아니었더라도 팀원들이 계속 헌터로 살아간다면 언젠가는 겪었을 일이다.
스스로 이겨내지 못하면 도태될 수밖에 없다. 아니 애초에 내가 도움을 줄 수 있는 성질의 것도 아니었다.
“...알겠어요.”
김시연이 무거운 표정으로 답했다.
다른 팀원들도 어렵사리 고개를 끄덕였다.
지금까지의 몇 차례 공략에서 사실상 나에게 도움이 되지 않았던 팀원들이다. 특히, 이번에는 김시연의 고집에 의해 결행된 공략이었음에도 거미줄에 갇혀 짐만 됐다.
태빈이라면 어떻게든 해줄 거라는 안일한 생각에 젖어 있었는지도 몰랐다.
후회와 죽음의 공포가 맞물려 팀원들을 괴롭혔다.
이재호만이 여전히 고개를 숙인 채, 아무런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너희의 용기가 세 사람을 살렸음을 기억해라.”
그 모습에 내가 덧붙였다.
나약함을 포용할 수는 없지만 떨쳐버릴 수 있도록 건넨 한 줌의 도움이었다.
이전이었다면 하지 않았을 짓이다. 스스로도 왜 이런 말을 하고 있는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과거와 달라진 내 모습에 나조차 흠칫 놀랄 정도였다.
어쨌든, 던전에 휩쓸렸던 세 명의 시민들은 팀원들이 아니었다면, 죽었을 이들이다.
김시연이 아니었다면, 나는 던전에 진입하지 않았을 테고, 세 명의 시민들은 사냥꾼 거미는커녕, 푸른 늑대조차 이겨내지 못했을 것이다.
팀원들이 사냥꾼 거미로부터 시간을 끌어주지 않았다면, 시민들은 진즉에 거미줄에 갇혀 질식사하거나, 사냥꾼 거미의 식사거리로 전락했을 것이다.
그들은 팀원들이 있었기에 살 수 있었다.
살아서 가족을 다시 만나고 그들의 평범한 삶을 영위할 수 있게 됐다.
이는 분명 팀원들의 용기로 인한 결과였다.
“그리고 너희가 왜 헌터가 되었는지, 기억해라.”
헌터란 각성을 통해 특별한 힘을 얻고, 그 힘으로 던전을 공략하고 몬스터와 싸우는 존재다.
그러나 목숨을 걸고 싸우는 게 쉽지 않은 일인 만큼, 각성을 했다고 해서 모두가 헌터로 살아가는 것은 아니다.
꼭 헌터가 되지 않더라도 각성을 한 이상, 일반인에 비해 돈을 벌 기회는 얼마든지 있었다.
주요 인사를 경호하기도 했고, 능력에 따라 마나 등에 대한 연구를 하기도 했다. 간혹 인간을 초월한 힘을 이용해 범법 행위를 하는 이들도 있었고.
어찌됐건, 중요한 건 각성을 했다고 해서 꼭 헌터가 되어 목숨을 걸고 싸워야 할 이유가 없다는 것이다.
그렇기에 다 같은 헌터일지라도 그들이 싸우는 이유는 제 각기 달랐다.
누군가 헌터로서 얻는 더 나은 부와 명예를 위해, 누군가는 힘에는 책임감이 따른다는 사명감으로, 또 누군가는 복수를 위해 헌터의 삶을 택했다.
팀원들은 각기 자신들이 왜 헌터가 되었는지를 떠올렸다.
E급 헌터.
헌터로 구분되기는 하지만 가진바 능력이 일천해, 대부분이 짐꾼으로 활동하는 등급이다.
같은 동료 헌터들조차 헌터라고 봐주지 않는.
위험하면서 인정조차 받지 못하기에 전혀 매달릴 필요가 없는 자리였다.
그럼에도 팀원들은 헌터가 되고자 했고, 실제로 헌터가 되었다.
김시연은 던전에 휩쓸려 사라진 동생을 찾고자 했고, 장만식과 김영기, 그리고 울고 있는 이재호 또한 위험을 무릅쓰고 헌터가 되기로 결심한 이유가 있었다.
“네.”
팀원들의 굳어진 얼굴이 조금은 풀어지는 게 보였다.
여전히 두려움이 가시지 않은 얼굴이지만 그 안에 이겨내고자 하는 의지가 보였다.
좋은 마음가짐이다.
물론 의지만으로 이겨낼 수 있는 성질의 것은 아니다.
다시 같은 상황에 놓였을 때, 머리가 새하얗게 변해 버릴 수도 있고, 몸이 따르지 않을 수도 있다.
그러나 지금의 의지를 잊지 않는다면, 새하얀 머릿속에서 길을 찾을 것이고, 굳어버린 몸을 일깨워 줄 한 줄기 빛이 될 터였다.
***
팀원들에게 일주일의 유예기간을 주고 돌아오는 길,
나는 나를 향한 시선을 느꼈다.
경지의 고하와 상관없이 평생을 죽음 곁에서 살아온 나의 감각이 보내온 경고였다.
뒤를 돌아봤을 때, 눈에 보이는 것은 통화를 하고, 주변을 살피는 등 제각기 할 일을 하며 각자의 목적에 따라 걸음을 옮기는 이들밖에 보이지 않았다.
그러나 나는 나를 향한 시선이 사라지지 않았음을 느끼고 있었다.
나는 자연스럽게 걸음을 옮기며 기감을 넓혀 시선의 정체를 찾고자 했다.
그러나 시선을 보내는 이의 존재는 절정에 오른 나의 기감에도 잡히지 않았다.
절정의 경지는 지구의 A급 헌터와 같다. 상위 헌터로 구분되는 B급 헌터보다 한 단계 위로, 이 세계에서 나보다 높은 경지의 헌터는 몇 되지 않았다.
특히, 한국에서 나의 기감에 잡히지 않을 수 있는 헌터는 딱 셋뿐이다.
이를 토대로 나는 나에게 시선을 보내는 이의 정체를 쉬이 유추해낼 수 있었다.
차예린.
불과 몇 시간 전 만났던, 한국에 셋뿐인 S급 헌터인 차예린이 나를 미행하고 있었다.
조사과정에서 자신의 질문에 명확히 답하지 않아 억하심정을 가진 것인가 하는 의문이 잠깐 들었지만 아직 정확한 이유는 알 수 없었다.
뒤따르는 시선을 달고 걸음을 옮기는 내 머릿속은 복잡해졌다.
애초에 미행이란 것이 선의를 가지고 이루어졌다고는 보기 힘들다.
무림이었다면, 망설임 없이 살수를 펼쳤을 것이다. 경지의 고하가 명확한 만큼, 선공을 취하지 않고서는 승패를 장담할 수 없으니 말이다.
그러나 이곳은 지구.
폭력과 살인이 쉽사리 정당화 되지 않는 세계였다.
물론 과거의 나라면 무림과 지구라는 장소와 상관없이 살수를 펼쳤을 것이다. 과거의 나는 혼자였고, 내가 벌인 일의 책임은 오롯이 내가 지면 그만이기에.
그러나 지금은 아니었다.
상대는 S급 헌터. 내가 만약 패배할 경우, 가족에게, 그리고 아직은 옅은 인연이지만 팀원들에게 피해를 줄 여지가 있었다.
나는 일단 인적 없는 길로 방향을 틀었다.
여차하면 S급 헌터와 싸우게 될 지도 모르기에 사람들의 이목을 피하기 위함이었다.
차예린은 내가 어디로 가는지 알지 못했고, 자신의 미행이 들켰다는 사실을 몰랐기에, 의심 없이 내 뒤를 따랐다.
“나와라.”
나는 미행자에게 경고를 보냈다. 동시에 허공에 향해있던 내 시선이 미행자가 숨어있는 곳에 닿았다.
방금 전까지는 나를 좇는 시선만 느꼈을 뿐, 정확한 위치는 파악하지 못한 상태였다. 하지만 미행을 감지한 내 말에 미행자가 감정의 동요를 드러냈고, 나는 미행자의 정확한 위치를 잡아낼 수 있었다.
“어떻게...?”
흔들림 없는 시선에 자신의 미행이 들켰음을 인정한 미행자가 결국 모습을 드러냈다.
예상대로 미행자의 정체는 차예린이었다.
내 앞에 선 차예린은 모습을 드러냈음에도 자신의 미행이 들켰다는 사실을 믿지 못하고 있었다.
나는 아무 말 없이 그녀를 바라봤다.
언제든지 그녀를 공격할 준비를 끝마친 상태였다.
“일단 미행한 건 사과드릴게요. 그렇게 경계하지 않으셔도 돼요.”
잔뜩 날을 세운 내 모습에 차예린이 사과를 해왔다.
양손을 들어 올리며 자신에게는 공격할 의사 없다는 것을 전해 보이기도 했다.
그러나 나는 경계심을 낮추지 않았다.
상대의 경계를 무너트린 뒤의 기습은 무림에서 밥 먹듯 일어나는 일이다. 나 또한 자주 써먹던 방법이기도 했고.
초절정의 끝에 달한 차예린은 내가 감당하기 어려운 강자인 만큼, 고작 손을 들어보였다 해서 마음을 놓을 수 없었다.
“단지 대화를 하고 싶었을 뿐이에요. 어떻게 말을 걸어야 할지 고민하다 보니, 미행을 하게 됐지만. 정말 죄송해요.”
자신의 잘못을 알기에 차예린이 누차 사가를 해왔지만 내 경계심은 풀어지지 않았다.
고작 말 몇 마디로 상대를 믿고 안심하기에는 내가 살아온 삶이 그리 평탄치 않았다.
“후... 대화만 가능하다면, 상관없어요. 당신은... 도대체 누구죠?”
자신을 향한 풀리지 않는 서늘한 눈빛에 차예린이 한 차례 한 숨을 내쉰 뒤, 말을 이었다.
S급 헌터인 자신의 능력은 일반인을 넘어 같은 헌터라도 감히 범접할 수 없다.
그런 자신의 미행은 고작 B급 헌터에게 발각될 수준이 아니었다.
그럼에도 태빈은 자신의 미행을 알아차렸다.
차예린의 상식선에서는 이해 할 수 없는 일이었다.
“무슨 뜻이지?”
내 입에서 그녀가 바라는 대답은 나오지 않았다. 적의 서린 반문만이 존재했다.
방금 전, 조사 자리에서는 협회 등의 시선을 생각해 예를 갖췄다. 하지만 목적이 무엇이든 간에 나를 미행한 순간, 차예린은 나에게 더 이상 예를 갖춰야 할 대상이 아니었다.
“말 그대로에요. 당신은 대체 누구죠? 대체 누구 길래 고작 B급 헌터가 일곱 명의 짐 덩어리들을 데리고 C급 던전을 무사히 공략해 내고, S급 헌터인 제 미행까지 눈치 챌 수 있는 거죠?”
차예린은 내 하대에 아랑곳하지 않고, 대답을 했다는 것만으로 대화를 할 준비가 되었다고 생각했는지, 질문을 쏟아냈다.
처음에는 정확히 어떻게 C급 던전을 공략해 낼 수 있었는지 궁금하기도 하고, 동생을 구해준 데에 대한 감사를 전할 생각이었다.
그러나 미행을 들킨 순간, 태빈의 정체에 대한 의문이 생겼다. 가뜩이나 C급 던전을 공략해 낸 것 자체도 쉬이 믿기 힘든 상태였다. 그런 와중에 S급 헌터인 자신의 미행까지 알아차렸으니, 태빈의 정체에 대해 의심이 가는 것은 당연했다.
“당신 설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