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0
30화. 던전생성(3).
시민들의 안전을 고려했을 때, 던전을 공략하는 방법은 두 가지가 있다.
하나는 팀원들로 하여금 시민들을 보호하게 하고 나 홀로 공략을 진행하는 것이다.
일전에 경험한 자이언트 엔트( 던전 공략 후, 내 보고에 따라 거대 나무는 자이언트 엔트라 명명됐다.)의 경우처럼 단일 개체에 광범위 공격이 가능하다면 팀원과 시민들의 존재는 방해만 될 뿐이다.
혼자 움직이는 게 전투 중에 시민들의 안전을 신경 쓰지 않아도 되는 만큼, 몬스터들을 상대하는 데는 수월했다.
그러나 문제도 있었다.
내가 놓치거나 예상치 못한 곳에서 나타난 몬스터가 팀원과 시민들에게 향할 경우, 몰살당할 위험이 크다는 점이다.
팀원들도 헌터인 만큼, 맞서기는 하겠지만 C급 던전의 몬스터를 상대하기에는 아직 한 없이 부족했다.
다른 하나는 다 같이 움직이는 방법이다.
내가 팀원들과 시민들의 안전까지 책임져야 하는 만큼, 신경이 분산되긴 하겠지만 내가 없는 상황에서 몬스터를 만나 아무것도 못하고 몰살당하는 최악의 상황은 피할 수 있었다.
“일단 내가 주변을 살펴보도록 하지.”
내가 선택한 방법은 전자였다.
푸른 늑대가 나타났다는 것은 이곳이 상위 몬스터의 영역은 아니라는 의미다.
적어도 이 일대는 던전 안에서 안전한 축에 속하는 지역이라는 뜻이다.
“알겠습니다.”
푸른 늑대의 경우 9등급 몬스터였기에 팀원들이 활약할 기회가 있었지만 더 이상 그들이 나설 자리는 없었다..
팀원들은 시민들 곁에서 그들을 보호하는데 집중했고, 전투는 오롯이 나의 몫이었다.
***
“사냥꾼 거미.”
정찰을 나선 나는 이번 던전의 몬스터를 확인 할 수 있었다.
사냥꾼 거미.
일반적인 거미들이 거미줄을 쳐놓고 먹잇감이 걸리길 기다리는 반면, 사냥꾼 거미는 직접 움직이며 먹잇감을 찾아다니는 놈이다.
소만한 몸에 길이가 2m도 넘는 여덟 개의 다리가 달린 사냥꾼 거미는 적게는 대여섯에서 많게는 십 수 마리까지 몰려다니는 탓에 숲의 최상위 포식자인 오우거라 할지라도 쉽게 볼 수 없는 몬스터였다.
키이익.
내가 사냥꾼 거미를 발견한 것에 이어, 놈도 나를 발견했다.
한 마리의 사냥꾼 거미가 눈을 번뜩이며 나에게로 다가왔다.
무리에서 떨어져 나온 것인지, 아직 다른 사냥꾼 거미는 보이지 않았다.
먼저 공격을 시도한 것은 사냥꾼 거미였다.
먹잇감을 발견한 사냥꾼 거미는 이름에 걸맞게 사냥을 망설이지 않았다.
사냥꾼 거미가 혀를 날름거리며 자신의 항문을 들이 밀었고, 항문에서 쏟아져 나온 한 뭉텅이의 새하얀 거미줄이 그물처럼 벌어지며 덮쳐왔다.
촤아악.
오우거도 붙잡을 수 있을 정도의 점성을 자랑하는 사냥꾼 거미의 거미줄이었지만 내 검기에는 너무도 쉽게 잘려나갔다.
반으로 잘린 거미줄은 나를 좌우로 빗겨 지나쳐갔다.
취익?
예상치 못한 상황에 사냥꾼 거미가 당황한 기색을 보였다.
영역 내에서 어떤 생명체도 피해내지 못한 거미줄을 피하는 것도 아니고 순식간에 잘라버렸으니 놈이 놀라는 것은 당연했다.
타앗.
사냥꾼 거미의 거미줄을 단칼에 잘라낸 나는 곧바로 용수철처럼 자리를 박차고 튀어나갔고, 그대로 놈의 미간에 검을 꽂아 넣었다.
당장 눈에 보이는 것은 한 마리에 불과했지만 무리지어 다니는 사냥꾼 거미의 특성상, 인근에 남은 놈들이 있을 가능성이 높았다.
단일 개체는 방금도 그랬듯, 단칼에 죽일 수 있을 정도로 약하다.
내가 보통의 B급 헌터들에 비해 비정상적으로 강한 것도 있었지만 사냥꾼 거미가 C급 던전에 출현하는 다른 몬스터들보다 약하다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무리 지어진 사냥꾼 거미는 그 숫자 이상의 힘을 발휘하기에, 놈들이 합류하기 전에 한 마리라도 줄여 놓는 편이 좋았다.
쿵...
부지불식간에 미간에 검이 꽂히고 그 검에서 흘러나온 기운이 뇌를 헤집어 놓았다.
미간이 꿰뚫리고 뇌가 곤죽이 된 사냥꾼 거미는 그대로 단말마와 함께 꼬꾸라졌다.
거대한 몸체가 땅에 처박혔고, 긴 여덟 개의 다리가 축 늘어졌다.
“이런!”
내 판단은 틀리지 않았다.
한 마리의 사냥꾼 거미를 처치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사냥꾼 거미들이 내 기감에 걸려들었다.
기감으로 파악 된 사냥꾼 거미의 수는 여덟.
적지 않은 수지만 상대하지 못할 것도 없었다.
문제는 그 사냥꾼 거미들이 동족을 죽인 내가 아닌 팀원과 시민들이 있는 곳으로 향하고 있다는데 있었다.
나는 곧장 팀원들이 있던 곳을 향해 몸을 날렸다.
***
네 명의 팀원들이 굳을 얼굴로 무기를 들어 올렸다.
전방에 나타난 여덟 마리의 사냥꾼 거미를 보는 순간, 일이 잘 못 됐다는 것쯤은 알 수 있었다.
팀원들에게는 한 마리만 해도 버거움을 넘어 죽음을 각오해야 할 정도의 몬스터다. 그런 사냥꾼 거미가 여덟이나 나타났으니, 승산은 단 1%도 없었다.
그렇다고 도망칠 수도 없었다. 그들의 뒤에는 자신들만 믿고 있는 시민들이 있었다.
아니 어차피 도망치기에도 늦었다.
키익. 키익.
사냥꾼 거미들이 포위하듯 사방에서 나타난 것도 문제였지만 어느새 놈들이 뿌린 거미줄에 퇴로가 완전히 막혔다.
거미줄로 퇴로를 차단한 뒤에 직접 먹잇감을 옥죄여 오는 놈들의 사냥 방식이었다.
“어떡하지?”
팀원들의 얼굴에 절망이 스쳐갔다.
헌터의 삶을 택하고, C급 던전에 진입한 순간부터 죽음을 각오했다고는 하나, 진짜로 죽고 싶을 리는 없었다.
“어떡하긴 뭘 어떡해! 무조건 버텨! 공격은 포기하고, 방어에만 집중해!”
그런 와중에 김시연만이 정신을 부여잡고 빠르게 판단을 내렸다.
공격한다고 해서 놈들의 단단한 껍질을 뚫어 낼 수 있을 리 없다.
불필요하게 힘을 소모하기보다는 태빈이 돌아올 때까지 최대한 시간을 끄는 것만이 유일한 방법이었다.
“제발...”
시민들도 팀원들의 얼굴에 서린 절망감을 알아챘다.
묻어두었던 두려움이 다시 마음을 빠르게 잠식해 나갔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다들 두려움에 다리가 풀려버린 탓에 무턱대고 도망쳐 버린 이는 없다는 점이었다.
케에엑.
괴성과 함께 사냥꾼 거미의 사냥이 시작됐다.
사냥꾼 거미들은 처음에 가볍게 거미줄을 내뿜었다.
웬만한 먹잇감들은 제대로 피하지도 못하는 속도의 거미줄이다. 눈앞의 작은 생명체들도 별반 다르지 않을 거라 여겼다.
놈들의 항문에서 쏘아진 여덟 개의 거미줄 뭉텅이가 펼쳐지며 허공을 가득 메웠다.
“윽... 안 떨어져!”
“제기랄!”
피하고자 하면, 피할 수도 있었겠지만 뒤에 시민들 때문에 여의치 않았다.
팀원들은 각자 무기를 휘두르며 거미줄을 잘라 내거나 쳐내려했다.
그러나 오우거도 잠시간 묶어 놓을 정도의 점성을 자랑하는 거미줄을 고작 팀원들이 어떻게 할 수 있을 리 없었다.
거미줄은 무기를 휘감은 것도 모자라 팀원들의 팔과 다리에 늘러 붙어 그들의 움직임을 제약했다.
사냥꾼 거미들은 거미줄을 한 번만 쏘아대지 않았다.
몇 번의 거미줄 공격이 더 이어졌고, 순식간에 팀원들은 거미줄에 묶여 꼼짝도 할 수 없는 상태가 되어버렸다.
키엑. 키엑.
사냥꾼 거미들이 그런 팀원들을 보며 비웃듯 소리를 내며 다가왔다.
***
“늦었군.”
뒤늦게 팀원들과 시민들이 있던 곳으로 돌아온 나는 온통 거미줄에 휩싸여있는 팀원들과 그런 팀원들을 향해 서서히 다가가고 있는 사냥꾼 거미들을 볼 수 있었다.
다행히 그 뒤에 있던 시민들은 무사했지만 그들 또한 거미줄에 묶인 것 마냥 움직일 생각을 하지 못하고 있었다.
이도저도 못하는 팀원들과 시민들을 본 나는 고개를 가로저으며 곧장 놈들을 향해 몸을 날렸다.
사냥꾼 거미들이 당장이라도 팀원들을 잡아먹으려 하는 탓에 놈들을 상대할 전략을 생각하고 할 틈도 없었다.
키에엑.
내 검이 가장 후미에 있던 사냥꾼 거미의 허리 부분을 파고들었다.
소만한 몸체를 단번에 잘라내지는 못했지만 검기에 의해 절반쯤 잘린 놈의 허리가 덜렁거리며 체액이 흘러나왔다.
갑작스런 공격에 놀란 사냥꾼 거미가 여덟 개의 다리를 바삐 놀리며 뒤로 물러났다.
그러나 내 검은 집요했다.
허리를 잘라냈던 검이 어느새 경로를 틀어 횡으로 그어졌고, 뒤로 물러나던 사냥꾼 거미 다리 하나를 잘라냈다.
촤악.
잘려나간 다리에 균형을 잃고 휘청거리는 사냥꾼 거미의 입에서 나온 녹색 빛깔의 침이 나에게로 쏟아졌다.
사냥꾼 거미의 공격 수단은 거미줄만이 아니었다.
놈들의 침에는 고블린이 주로 사용하는 마비독과 같은 성분이 있었다. 물론 그 효과는 고블린의 마비독에 비할 바가 아니었다.
다른 몬스터들을 마비시키기 위한 독인만큼, 인간 정도는 소량만으로도 즉사시킬 수 있는 강력한 마비독이었다.
그런 마비독이 균형을 잃은 탓에 정확하지는 않았으나 나를 향해 쏟아진 것이다.
치이익.
내가 놈의 침을 피한 자리가 검게 물들며 연기가 피어올랐다.
그것만으로도 사냥꾼 거미의 마비독의 위험성은 충분히 느낄 수 있었다.
키익. 키익.
짧았던 공방이 지나가고 여덟 마리의 사냥꾼 거미 모두 내 존재를 알아차렸다.
여덟 마리의 사냥꾼 거미들의 시선이 일제히 나에게 쏠렸다.
그들에게 팀원들과 시민들은 다잡은 먹잇감이기에 더 이상 신경 쓰지 않았다.
나로서는 다행이었다.
놈들이 나를 우선적으로 노린다면, 그들의 안전을 신경 쓰지 않아도 되기에.
곧이어
나와 사냥꾼 거미들 간의 본격적인 전투가 시작됐다.
***
호랑이는 토끼를 사냥할 때도 최선을 다한다는 말이 있다.
사냥꾼 거미는 이 말을 실제 행동으로 보여주는 몬스터였다.
나는 사냥꾼 거미들이 이미 손쉽게 사냥을 마친 일곱의 생명체들과 같은 종, 한 마리에 불과했지만 놈들은 결코 방심하지 않았다.
다리를 다친 동족을 한 마리가 지키고 섰고, 나머지 사냥꾼 거미들이 나를 둥글게 에워쌌다.
놈들은 나에게 틈을 주지 않았다. 곧장 여덟 개의 거미줄 뭉치가 각기 다른 방향에서 나를 향해 쏘아졌다.
다리 하나를 잃은 놈 또한 거미줄을 쏘아내는 데는 지장이 없었다.
촤악!
그물처럼 넓게 펼쳐진 거미줄은 서로 뒤엉킬 만도 한데, 여덟 개가 맞물리며 한 치의 빈틈도 없이 나를 덮쳐왔다.
시야를 가득 메운 거미줄은 이미 내가 그 안에 갇혀있는 느낌마저 들게 만들었다.
보통의 헌터라면 꼼짝 없이 당할만한 공격이다.
실제로 거미줄에 감겨있는 팀원들이 그 것을 증명하고 있기도 했다.
서걱. 서걱.
그러나 검기를 자유자재로 사용하는 나에게는 통하지 않았다.
팀원들이 손도 써보지 못할 정도로 끈끈한 거미줄도 나에게는 평범한 천 수준에 불과했다.
내 검으로부터 흩뿌려진 검기가 사방에서 날아든 거미줄을 수 갈래로 조각내며 더 이상 그물로써의 구실을 못하게 만들었다.
후두둑.
검기에 의해 찢겨진 거미줄들이 내 주위로 힘없이 떨어져 내렸다.
거미줄은 나라는 목표에는 미치지는 못했지만 삽시간에 주위를 새하얗게 물들였다.
나는 곧바로 거미줄이 떨어져 내린 자리를 확인했다.
사냥꾼 거미의 거미줄은 사냥감을 포획하는 목적도 있지만 실패했을 경우, 움직임을 제약하는 함정으로서의 역할도 한다.
바닥에 흩뿌려진 거미줄은 여전히 끈끈함을 잃지 않았고. 자칫 발을 잘못 디디는 순간, 그대로 묶여 버리는 것이다.
그러나 거미줄은 내 발을 묶어 놓지 못했다.
무영보를 펼치는 내 발걸음에 풀을 밟으며 달려도 풀이 꺾이지 않는 초상비(草上飛)의 묘리가 담겼다.
풀조차 꺾이지 않는 가벼움에 바닥에 지천으로 깔린 거미줄은 무용지물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