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9
29화. 던전생성(2).
“저기요! 위험하다니까요.”
경고에도 움직이지 않는 내 행동에 박영식의 음성에서는 짜증이 묻어 나왔다.
간혹 이런 이들이 있었다. 던전이 주는 위험을 제대로 인지하지 못하고, 한낱 구경거리로만 생각하는.
당장 몬스터가 쏟아져 나오지 않는다 하더라도 괜한 호기심에 더 가까이 다가갔다가 던전에 입장하기라도 한다면, 자신에게 책임이 돌아올 수 있었기 때문에 박영식은 목소리를 높이며 나를 끌어내려 했다.
“팀장님.”
그러던 찰나, 경보를 듣고 온 팀원들이 나를 알아보고 다가왔다.
약속 장소가 인근이었기 때문에 팀원들도 경보를 듣고 의무를 이행하기 위해 온 것이다.
“이 분도 헌터이니 괜찮습니다.”
팀원들은 재빨리 나에게 손을 내미는 헌터를 제재하며 괜한 오해가 발생하는 것을 막았다.
처음보다 나아졌다고는 하나 팀원들이 보기에 나는 여전히 남들에게 오해를 불러일으키기 충분한 성격이었다.
“왔나.”
“네.”
“왜 그렇게 던전을 빤히 바라보고 계신 겁니까?”
좀처럼 던전에서 눈을 떼지 못하는 내 모습에 의아함을 느낀 팀원들이 물어왔다.
“시민 셋이 휩쓸렸다.”
초기에는 흔했지만 던전 생성에 대한 경보가 생겨난 이후, 던전에 휩쓸리는 경우는 거의 없었다.
그러나 전혀 없는 것은 아니었고, 이렇게 사람이 많은 시가지에 던전이 생성되는 경우, 종종 일반인들이 휩쓸리기도 했다.
이번에도 마찬가지.
나는 빌딩 내에서 미처 빠져나오지 못한 세 명이 던전에 휩쓸려 사라지는 것을 볼 수 있었다.
“시민이요?!”
팀원들과 나를 제지하려 했던 박영식의 얼굴이 굳어졌다.
주변에 헌터들이 속속 모여들며 현장을 통제하기 시작하긴 했지만 아직까지 상위 등급 헌터는 보이지 않았다.
게다가 제대로 공략대가 꾸려지려면 적어도 하루는 기다려야 했다.
일반인이 휩쓸렸다는 소식을 전한다면, 더 앞당겨지긴 하겠지만 던전에 휩쓸린 시민들이 그 때까지 안전하리란 보장은 없었다.
“어떻게 하실 건가요?”
팀원들이 나를 바라봤다.
헌터로서 일반인들을 구해야 한다는 마음은 있지만 눈앞에 생성된 던전은 C급이다.
E급인 팀원들은 물론이고, 자신을 C급 헌터라고 밝힌 박영식도 혼자서는 엄두조차 낼 수 없는 등급의 던전인 것이다.
그에 비해 나는 B급 헌터.
혼자서도 C급 던전을 공략할 실력을 가졌고, 충분히 던전에 휩쓸린 시민들을 구해 낼 수도 있었다.
그러나 강제할 수 있는 일은 아니었다.
아무리 내가 홀로 C급 던전까지 공략이 가능한 B급 헌터라 해도 생사가 오가는 던전 안에서 누군가 지켜야 한다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모르겠군.”
내가 여태 던전을 응시하며 움직이지 않고 있는 이유였다.
지키는 삶을 살고자 했지만 이는 내 울타리 안에 있는 이들을 뜻하는 것이지, 생면부지의 남까지 포함한 것은 아니었다.
처음 헌터가 됐을 때, 교육받은 내용을 생각하면 구하는 게 옳지만 위험을 감수하면서 까지 그들을 구할 필요가 있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기에 나는 던전에 휩쓸려 사라지는 시민들을 보면서도 아무런 행동도 취하지 않았다.
구하고자하며, 구할 수 있겠지만 굳이 그래야 할 이유를 찾지 못했기에.
“팀장님.”
안타까움이 가득 담긴 김시연의 음성이 들려왔다.
단지 나를 부르는 짧은 한 마디였지만 그 안에 담긴 뜻은 명확했다.
김시연은 시민들을 구해야 한다고 말하고 있었다.
그녀가 그리 나선 이유는 과거 같은 경험을 했기 때문이다.
김시연의 동생은 격변 초기에 던전에 휩쓸려 사라졌다.
벌써 수년이 지났으니 죽었다는 표현이 더 맞는 말이겠지만 김시연은 끝까지 동생이 죽었다하지 않고, 사라졌다 말했다.
어쨌든 그랬기에 그녀는 누구보다 강렬하게 시민들을 구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후...”
내 입에서 깊은 한숨이 흘러나왔다.
던전 안에서 몬스터들로부터 시민들을 지키며 싸우는 상황을 떠올렸다.
힘들었다.
은잠술로 놈들의 사각을 노릴 수도, 무영보로 놈들의 공격을 피할 수도 없었다.
내가 몸을 숨기면 놈들의 시선은 시민에게 닿았고, 내가 피하면 그 공격이 시민을 향했다.
알지도 못하는 시민들을 구하고자, 그런 상황을 감수하면서까지 던전 안에 들어가는 것은 비이성적인 선택이었다.
“시민들은 제가 목숨 걸고 지키겠어요. 부탁드려요.”
내가 무엇을 고민하고 있는지 알기에 김시연이 결연한 얼굴로 덧붙였다.
대답 없는 나를 바라보는 김시연의 눈빛은 어느 때보다 간절함을 담고 있었다.
E급 헌터가 C급 던전에 들어가겠다는 것은 자살 행위나 다름없다.
그럼에도 그렇게 말한다는 것은 그녀가 죽음을 각오 했다는 것을 의미했다.
‘이것이 지킨다는 건가.’
김시연의 결연한 얼굴이 나의 살수로부터 가족을, 벗을, 사형제를 지키고자 했던 수많은 이들과 겹쳐보였다.
자신이 대상이 아님에도 그들은 목숨을 걸었고, 일부는 당시의 나에게 방해물이었기에 목표물과 함께 제거 당했다.
그러나 그들의 죽음에 후회는 없었다. 자신의 힘이 부족해 지키지 못했음을 안타까워했을 뿐.
동시에 의문이 들었다.
아무리 동생의 일을 떠올렸다 해도, 생면부지의 사람들을 구하기 위해 목숨을 걸 수 있는지.
나로서는 그녀의 생각과 행동을 결코 이해할 수 없었다.
“알겠다.”
결과적으로 나는 내 울타리 안에 들어온 이의 간절함을 외면하지 못했다.
아니 어쩌면 처음부터 내 감정은 그들을 도와야 한다고 생각했는지도 모른다.
처음 느낀 감정을 확신하지 못하고 주변의 의견을 구했을 뿐.
그렇기에 무척이나 비이성적이고 어리석은 선택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공략을 결정했다.
“검 좀 빌리겠습니다.”
“예...예.”
한 시가 급한 상황이었기 때문에 무기를 챙기는 등 공략에 필요한 준비를 할 시간은 없었다.
무기가 없는 나는 옆에 있던 박영식의 검을 빌렸고, 박영식은 얼떨결에 자신의 검을 나에게 내어줬다.
팀원들도 마찬가지로 주변 헌터들에게 자신의 것과 유사한 무기들을 빌렸다.
헌터들은 던전에 시민이 휩쓸렸고, 그들을 구하러 간다는 말에 기꺼이 자신의 무기를 내놓았다.
대부분 등급이 낮은 헌터로 무기가 그리 값어치 있는 것들이 아니기도 했지만 사람 목숨 앞에서 그러한 것을 재는 이들은 그리 많지 않았다.
누군가는 사소하다 여길지 모르나, 그 사소함도 결코 쉽지 않은 일이다.
좋은 헌터들이었다.
***
본래 던전을 공략하기 위해서는 협회로부터 공략 허가를 받아야 하지만 지금과 같은 비상시에는 예외가 적용됐다.
인명 구조라는 목적을 띈 공략에는 허가가 우선시 되지 않는 것이다.
그렇기에 나와 팀원들은 공략에 필요한 절차를 거치지 않고 곧바로 던전에 진입했다.
“죽을 수도 있다. 원치 않는다면 빠져도 좋다.”
의외였던 것은 네 명의 팀원들 전부 공략에 참여하기로 결정했다는 점이다.
C급 던전에서 E급 헌터는 일반인과 큰 차이가 없다.
김시연과 장만식이 D급 수준에 올라섰다고는 하나, 자칫하면 목숨을 잃을 수도 있는 만큼, 네 명 모두 함께 하리라고는 생각지 못했다.
다들 긴장으로 몸이 딱딱하게 굳어있음에도 던전 진입에는 일말의 망설임도 보이지 않았다.
던전에 들어서니, 익숙한 자연경관이 우리를 맞이했다.
“왔다! 왔어!”
“헌터다! 구조대!”
한 데 모여 두려움에 떨고 있던 세 명의 시민들은 새로이 모습을 드러낸 우리를 발견하고 환호성을 질러댔다.
던전 생성에 그들이 휩쓸리고, 우리가 진입을 결정하기까지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음에도 그사이 마음고생이 심했는지 셋 다 상당히 지쳐보였다.
크르르..
그 때, 푸른 털을 가진 늑대 수십 마리가 슬금슬금 모습을 드러냈다.
9급 몬스터인 푸른 늑대.
4~5등급의 몬스터가 주를 이루는 C급 던전이긴 하지만 그 밑 등급의 몬스터가 아예 없는 것은 아니다.
간혹 이렇게 던전 등급보다 하위 등급의 몬스터가 나타나곤 하는데, 던전 내의 상위 몬스터의 먹잇감들이 대부분이었다.
상위 몬스터의 먹잇감이긴 하지만 몬스터는 몬스터.
나를 포함한 팀원들이 시기적절하게 던전에 진입하지 않았더라면, 시민 셋은 놈들에게 꽤나 만족스러운 한 끼 식사가 되었을지도 몰랐다.
캉! 캉!
우두머리로 보이는 푸른 늑대의 외침과 함께 놈들이 일제히 달려들기 시작했다.
“히익!”
우리를 보고 환호성을 질러대던 시민들은 흉포한 놈들의 모습에 금세 공포에 질려 벌벌 떨었다. 그러나 공포에 질린 것은 시민들뿐이었다.
E급 헌터 둘에 D급 헌터가 둘이다. C급 던전에 미치진 못한다 해도, 고작 9급 몬스터 수십에 겁을 먹을 정도는 아니었다.
“재호랑 영기는 시민들 지켜! 만식이는 나와 함께 놈들을 상대한다.”
나와 따로 활동하는 사이, 팀원들 사이에 확실한 명령 체계가 잡혀 있었다.
김시연이 아직 E급인 이재호와 김영기에게 시민들을 지키라 명령을 내렸고, 본인은 장만식과함께 달려드는 푸른 늑대들을 향해 마주 달려 나갔다.
혹시라도 시민들이 휩쓸리지 않도록 앞서 싸우는 것이다.
커엉!
김시연의 검이 단숨에 선두에 있던 푸른 늑대의 목을 쳐냈다.
뒤따르는 장만식의 도끼날이 한 마리를 두 동강 내고, 곧장 옆면으로 다른 놈을 쳐내며 피떡으로 만들어 버렸다.
깨깽.
푸른 늑대를 상대하는 데는 내가 나설 필요도 없었다.
“후우..”
순식간에 수십 마리의 푸른 늑대를 몰살시킨 김시연과 장만식이 각자의 무기에 묻은 붉은 피를 털어냈다.
내가 가르친 심법과 검술 등은 팀원들의 성장 발판이 되어주었고, 일전에 푸른 늑대와 같은 등급의 고블린을 상대로도 고전하던 팀원들은 없었다.
아직 승급만 하지 못했을 뿐, D등급 헌터라 해도 손색이 없는 김시연과 장만식은 물론이고, 이재호와 김영기에게도 9급 몬스터는 더 이상 위협적인 존재가 아니었다.
“살.. 살았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시민들은 자신을 지켜준 팀원들에게 연신 고개를 숙이며 감사를 전했다.
TV, 혹은 인터넷을 통해서만 보던 몬스터는 상상이상의 공포를 불러왔다. 속절없이 죽을 줄로만 알았다. 그러나 자신들 앞에는 그보다 강한 헌터들이 있었다.
시민들은 수십의 푸른 늑대들을 학살한 김시연과 장만식의 압도적인 무위에 안도했다.
수십의 늑대들이 흐린 피가 채 식지 않아 김이 올라오고, 사체들이 널브러져 있는 광경은 차마 눈 뜨고 보지 못할 정도로 잔혹했지만 헌터들이 있기에 두려움도 잊을 수 있었다
“안심하십시오. 저희가 책임지고 지켜드리겠습니다.”
김시연은 시민들을 다독이며 안심시켰다.
방금 상대한 것은 고작 9급 몬스터. 실질적인 던전의 위협은 시작도 되지 않았지만 굳이 시민들에게 그 사실을 알려 불안감을 조성할 필요는 없었다.
지켜야할 대상이 불안에 떨고 있는 것보다는 자신들을 믿고 있을 때가 지키기 더 수월하니까.
일부는 계산적인 부분도 있었지만 시민들을 바라보는 김시연의 눈은 진심 또한 담고 있었다.
“팀장님. 어떻게 할까요?”
시민들을 안심시킨 김시연이 내 의사를 물어왔다.
던전에 입장한 순간, 공략을 완료하지 않으면 밖으로 나갈 수 없다.
그렇기에 앞으로 어떻게 할 것인가를 결정해야 했고, 이는 팀장인 내가 선택할 일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