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8
28화. 던전 생성.
내단의 힘으로 임독양맥을 타통하고, 일대의 생명력이 집약된 기운까지 온전히 흡수하고 나니, 한 층 더 정순해진 내공에 충만감이 몰려왔다.
나는 아직 가시지 않은 여운을 만끽하며 시간을 확인했다.
C급 던전에 머물 수 있는 시간은 최대 삼일.
아직 던전에 머물 수 있는 시간이 이틀이 조금 넘게 남았다.
나는 곧바로 예상치 못한 급격한 성장을 완전히 내 것으로 만들기 위한 수련을 시작했다.
이미 과거에 밟아본 경지라고는 하나, 내가 절정에 오른 것은 거의 십년 전의 일이다.
단순히 경지에 오르는 것과 그 힘을 온전히 자신의 것으로 소화해 다루는 것은 별개의 문제였고, 적응을 위한 시간이 필요했다.
이틀이 지나고,
내 손에 들린 검에서 푸른빛의 기가 일렁였다.
일류 무인이 억지로 짜낸 거친 검기와 달리, 내 검을 에워싼 기는 한 점 흐트러짐도 보이지 않았다.
이제 막 초입에 발을 들인 것이 아닌, 완숙한 절정의 경지에 이른 무인만이 보일 수 있는 진정한 검기였다.
“좋군.”
B급 마정석부터 구슬까지.
이번 공략으로 기대했던 것 이상의 소득을 얻었다.
무림에서는 화경의 경지에 오르기까지 구경조차 못해봤던 기연이다.
그로 인해 나는 만족스러운 기분으로 던전을 나설 수 있었다.
***
내가 던전에서 보낸 삼일.
그 사이, E급 헌터에서 B급 헌터까지 단기간에 승급한 나로 인해 국내가 다시 한 번 떠들썩해졌다.
이번에는 협회에서 의도적으로 내 승급에 대해 퍼트리지 않았다. 그러나 이미 내가 D급 헌터로 승급했을 때부터 많은 이들이 주목하고 있었다. 때문에 내가 B급 헌터로 승급했다는 소식은 빠르게 퍼졌고, D급 때 이상의 관심을 받았다.
“김태빈 헌터.”
막 공략을 마치고 나오자마자, 이전보다 몇 배는 많은 기자들이 몰려들었다.
기자들 너머로 돗자리와 텐트 등이 설치된 것으로 보아, 내가 공략을 마치고 나올 때까지 기다리고 있었던 듯했다.
아무리 취재가 중요하다지만 던전 바로 앞에서 숙식을 해결할 정도라니.
언제 무슨 일이 벌어져도 이상하지 않은 게 던전인데, 겁도 없다.
“...”
수십의 기자들이 저 마다 고함에 가깝게 소리치며 질문들을 해왔지만 나는 이전과 마찬가지로 무시로 일관했다.
나는 막 공략을 마치고 나왔다.
지금의 나는 그렇지 않지만 보통의 헌터라면, 휴식이 간절한 상태.
오직 특종만을 위해 상대에 대한 배려 없이 들러붙는 기자들에게 친절할 생각은 들지 않았다.
“지금 막 공략을 끝낸 헌터에게 너무 한 거 아닙니까?!”
그래도 수십 명 중에 제 정신이 박힌 사람이 한 사람은 있는 모양이었다.
뒤쪽에서 기자 하나가 잡아먹을 듯 나에게 들러붙는 기자들에게 소리쳤다.
물론 특종에 눈이 먼 다른 기자들에게는 씨알도 먹히지 않았다.
나는 귀찮음에 무영보로 기자들의 손길을 피해내며 걸음을 옮겼다.
일반인에 불과한 기자들은 내가 마음먹고 무영보를 펼치자, 옷깃조차 스치지 못했다.
목표 잃은 손길과 마이크들이 허망하게 늘어졌다. 카메라만이 멀어지는 내 신형을 담아 낼 뿐이었다.
나를 위해 소리쳤던 기자가 그런 나를 보며 엄지를 치켜세웠다.
그 기자 또한 특종을 얻을 기회를 놓쳤지만 개의치 않아 보였다.
내가 슬쩍 포권을 취해 마음을 전했고, 기자도 나를 따라하며 웃어보였다.
기자들을 따돌린 나는 곧바로 집으로 향했다.
집 앞 또한 기자들이 진을 치고 있었지만 절정에 이른 내 은잠술은 그들의 이목을 속이기에 부족함이 없었다.
기자들은 내 그림자조차 보지 못했고, 이미 내가 집 안으로 들어갔다는 사실을 알지 못한 채, 기약 없는 기다림을 계속할 뿐이었다.
***
집으로 돌아오니, 지난 삼일 간 받지 못했던 연락이 쌓여 있었다.
일단 장만식에 이어 자신이 D급에 올랐다는 김시연의 메시지가 보였다.
배움이 늦어 크게 기대치 않았는데, 제법 열심히 노력한 듯했고, 가르침을 내린 입장에서 보람이 있었다.
그리고 어떻게 알았는지, 수많은 길드에서 나를 영입하고 싶다는 의사를 전해왔다.
단기간에 B급까지 승급을 한 나는 언론뿐만 아니라 길드들에게도 매력적인 존재였다.
영입만 한다면, 나와 함께 길드의 이름을 널리 알릴 수 있는 기회였다.
그러나 나는 길드에 가입할 의사가 없었기 때문에 모든 연락을 무시했다. 일일이 거절 의사를 전하기에도 그 수가 너무 많았다.
다음 날,
나는 D급에 오른 장만식을 비롯해 팀원들의 성과를 확인하기 위해 집을 나섰다.
약속시간보다는 조금 이른 시간이었는데, 먼저 마나석을 처리하기 위함이었다.
이전까지는 팀원들이 하던 일이다.
그러나 이번에는 마나석의 값어치가 상당했고, 헌터들이 가진 마나석을 노리는 흑도 무리와 같은 헌터들이 존재했기 때문에 팀원들에게 맡길 수 없었다.
마나석을 판매하기 위해서 나는 헌터 백화점을 찾았다.
정부는 마나석을 일괄적으로 구매해, 필요한 곳에 공급하는 방식을 취했고, 그 매매가 헌터 백화점을 통해 이루어졌기 때문이다.
백화점 안으로 들어서자, 마나석을 팔기 위해 백화점을 찾은 수많은 헌터들이 보였다.
셋에서 열까지, 팀 단위로 모인 헌터들은 저마다 가방 하나씩을 메고 있었고, 가방 안에는 마나석이 가득했다.
거래되는 마나석은 E급과 D급이 대부분이었다.
팀 수준에서 공략할 수 있는 던전은 C급이 한계이니 만큼, 그 이상의 마나석은 보기 힘들었다.
“김태빈 헌터님이시군요. 감정 결과, B급 마나석으로 확인됐습니다. 판매하시겠습니까?”
내 헌터 자격증을 확인한 직원은 기기를 통해 마나석을 감정했고, 곧장 판매 의사를 물어왔다.
“네.”
내가 매매의사를 밝히자, 직원은 바로 세금 명목의 수수료 10%를 제한 마나석 대금을 이체해줬다.
거래가 번거롭지 않아서 좋았다.
“B급 마나석이래.”
“어느 팀이지? 길드에서 나왔나?”
“어?! 김태빈 이다?!”
번거로움은 다른 헌터들로 인해 생겨났다.
보기 드문 B급 마나석의 등장에 헌터들의 관심이 쏠렸고, 개중에는 나를 알아보는 이들도 있었다.
하긴 하루가 멀다 하고 나에 대한 기사가 쏟아져 나왔으니, 지금까지 몰라 본 게 오히려 더 이상한 일이다.
다행히 자기들끼리 수군댈 뿐, 나에게 다가오는 헌터는 없었다.
내가 그들보다 등급이 높기도 하거니와, 나에게 무시를 당한 기자들이 나에 대해 썩 좋지 않게 기사를 작성해놓은 덕분이었다.
그래도 혹시 귀찮은 일이 생길까, 나는 마나석 판매가 끝나자마자 자리를 벗어났다.
마나석을 판매한 다음으로 내가 향한 곳은 무기를 구매할 수 있는 3층이었다.
헌터 백화점은 마나석 뿐만 아니라, 헌터들과 관련된 모든 물품에 대한 거래가 이루어지는 곳이기도 했고, 처음 장만한 검은 그간의 전투로 더 이상 쓸 수 없을 상태였기 때문에 온 김에 들른 것이다.
2층에 방어구도 있었지만 과거 평생 무인으로 살아오며 방어구에 의존한 적은 없었다.
이번 생도 마찬가지.
신체의 움직임을 방해하는 방어구는 거추장스러울 뿐, 크게 필요성을 느끼지 못했다.
“과연 자신의 이름을 걸만 하군.”
전시된 무기에는 그 무기를 만든 이의 이름이 적혀 있었고, 장인의 손길이 닿아 있는 무기들은 내가 전에 사용하던 기계로 찍어낸 검과는 수준 자체가 달랐다.
아직 무기를 고르지 않았음에도 좋은 검을 얻을 수 있을 것 같아 만족스러웠다.
기연 덕분에 절정의 경지에 올라서긴 했지만 아직 무기에 구애 받지 않는 경지에 오른 것은 아니다.
무기에 구애받지 않는 화경의 경지에 오르기 전까지는 좋은 무기를 마다할 이유가 없었고, 무인에게 있어 무기는 목숨과도 같기에 나는 새로운 검을 고름에 있어 신중했다.
헌터들이 가장 선호하는 무기가 검이었고, 당연히 백화점 내의 무기들 또한 검이 절반을 차지할 정도로 많았다.
언뜻 봐도 족히 수천 자루.
그 많은 검들 가운데, 쓸 만한 검을 고르는 것도 일이었다.
“미스릴과 드레이크의 뼈.”
고르고 고른 끝에 내가 선택한 것은 김문수 장인과 이호진 장인의 검이었다.
각기 소량의 미스릴이 함유된 검과 드래곤의 아류라는 1급 몬스터 드레이크의 뼈를 가공해 만든 검.
A급 이상의 던전에서만 구할 수 있는 미스릴은 지구의 어떤 금속보다 단단했고, 드레이크의 뼈 또한 미스릴에 버금간다고 알려져 있었다.
직접 확인해보진 못했지만 예기로 보아 그 말이 거짓은 아닌 듯했다.
그 뿐만 아니라. 두 장인의 실력도 장인이라는 이름에 걸맞게, 검의 균형부터 시작해 모든 면에서 여타 검들보다 뛰어났다.
가격은 각각 5천만 원과 4천5백만 원.
이번에 마나석을 처분한 돈과 지금까지 모아 놓은 돈까지 수중에 1억이 넘게 있었다.
그간 가족의 고생을 생각하면 무기보다는 집안에 도움을 주는 게 옳은 선택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나는 무기를 택했다.
앞으로 벌어들일 돈을 생각하면, 1억은 우습다.
부모님은 전혀 내색하지 않았고, 형에게 넌지시 물어본 결과, 다행히 집안에 빚은 없는 상태였다.
때문에 나는 망설임 없이 값을 치르고 새로운 두 자루의 검을 손에 넣었다.
물론 검을 든 채로 거리를 활보할 수는 없기 때문에 집으로 배달을 시키고, 나는 팀원들과의 약속 장소로 향했다.
***
약속 장소는 백화점에서 멀지 않은 번화가였고, 처음 찾은 번화가에는 많은 사람들이 오가고 있었다.
태빈의 기억 속에 존재하는 장소였지만 나에게는 새로웠다.
몬스터와 던전에 대한 걱정 없이 일상을 누리는 그들의 모습은 살고 있는 세계만 다를 뿐, 무림의 평범한 사람들과 큰 차이가 없었다.
나는 높게 솟은 건물들과 그 사이를 자유로이 오가는 사람들, 그리고 이 세계에서 본 것들 중, 가장 놀라운 문물 중 하나였던 자동차를 바라보며 한가로이 걸음을 옮겼다.
오랜만에, 아니 어쩌면 처음으로 느껴보는 여유로움을 즐겼다.
내가 원하던 평범함이 이곳에 있었다.
위이이잉~~!!
< 던전 생성 경보입니다. 예상되는 던전 등급은 C급입니다. 현보 빌딩 인근에 계신 시민 여러분은 신속히 대피해주시기 바랍니다. 다시 한 번.. >
갑자기 울린 시끄러운 경보음이 그런 나의 여유로움을 깨트렸다.
경보음 뒤로 이어진 안내 음성에 평화로이 거리를 거닐던 사람들의 발걸음이 급해졌고, 차들도 속도를 높였다.
모두가 다급히 움직이는 와중에 나만 옮기던 걸음을 멈추고 한 곳을 응시했다.
내 시선이 닿은 곳에는 안내 음성에서 언급했던 현보 빌딩이 있었다.
주변의 마나가 현보 빌딩을 중심으로 응집되고 있는 게 느껴졌다.
마나의 응집과 함께 생겨난 균열이 빌딩 입구를 집어삼키며 던전 입구가 모습을 드러냈다.
“천하 길드의 C급 헌터 박영식입니다. 이곳에 있으면 위험합니다.”
던전 생성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어디선가 나타난 헌터가 던전을 바라보고 있는 나에게 위험을 알려왔다.
던전이 생성됐을 때, 인근에 있는 헌터는 주변을 통제하고 일반인들의 안전을 책임질 의무가 있었다.
의무를 이행하지 않은 사실이 적발됐을 경우, 벌금 등의 제재가 따랐기 때문에 대부분의 헌터들이 그 의무를 다했고, 박영식도 마찬가지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