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5
25화. 미확인 던전.
“팀장님. 우선 B급 헌터가 되신 걸 축하드립니다.”
김시연은 먼저 내 승급을 축하해줬다.
내가 E급에서 D급으로 승급했을 때와 달리, B급 승급은 이례적인 일이 아니다.
헌터 시험이 C등급까지 밖에 없는 것은 상위 등급으로 각성한 헌터가 허무하게 목숨을 잃는 일이 없도록 경험을 쌓게 하기 위함이고, 충분히 경험을 쌓은 헌터들의 승급은 주기적으로 치러졌다.
또한 승급의 결과도 협회 홈페이지에서 바로 확인할 수 있었기 때문에 오늘 내 승급 시험이 있다는 것을 알고 있던 김시연이 연락을 해 온 것이다.
물론 E급 각성자였던 내가 B급 헌터가 된 것은 무척 이례적인 일이다.
아직은 잠잠하지만 조만간 또 다시 기자를 비롯한 사람들이 관심이 끈덕지게 따라붙을 것을 생각하니, 벌써부터 머리가 아파올 정도였다.
“고맙다.”
이례적인 일이라는 것과는 별개로, 일류에 이른 나에게 있어 승급은 당연하다 여겨지는 일이었고, 축하 받을만한 일이라고 생각지 않았기에 내 대답은 건조했다.
“여전하시네요.”
“수련은 잘 되고 있나?”
김시연은 당연히 그럴 줄 알았다는 듯 답해왔고, 나는 잡다한 말들은 생략하고 곧장 팀원들의 근황을 물었다.
내 변화된 모습 중 하나다.
과거의 나였다면, 처음의 대답으로 대화를 끝냈을 것이다.
그 이상은 불필요하게 여겨졌기에.
아니 어쩌면 대답조차 하지 않았을 지도 모른다.
그러나 지금은 아니었다.
그들에게 무공을 가르친 순간, 허락한 인연이다. 이를 가볍게 여겨 지나간 뒤에 후회하고 싶지 않았다.
“그렇지 않아도 만식이가 기를 느끼고 내공을 쌓기 시작했어요.”
마침 김시연이 연락을 해온 이유도 내 물음과 관련이 있었다.
나를 제외한 그들은 어느새 형, 누나, 동생하며 많이 가까워졌다.
단순한 명상으로도 어렴풋이 기의 존재를 느낄 정도로 재능을 보였던 장만식이다.
그런 장만식이 내가 심법을 가르쳐 준지, 얼마 지나지 않아 기의 존재를 느꼈고, 내공을 쌓아나가기 시작한 것이다.
“오늘 D급 헌터의 수준에 올라섰기 때문에 연락드린 거예요. 팀장님만 괜찮다면, 만식이가 D급 헌터로 승급하고 저희들끼리 팀을 구성해 공략을 진행했으면 하는데,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김시연은 앞으로 팀원들의 활동방향에 대해 내 의견을 구했다.
그들은 나와 달리, 심법을 수련한다고 해서 살기가 들끓지는 않지만 지구의 미약한 기운을 느끼고 내공을 쌓기란 쉽지 않다. 때문에 팀원들이 현재 심법을 수련할 수 있는 방법은 던전에 들어가는 것뿐이다.
그러나 짐꾼 일을 하면서 수련을 하기에는 제약이 많았다.
공략이 끝나 시간이 남았다 하더라도 다른 헌터들이 짐꾼들의 수련을 배려해 줄 리 없다. 그렇다고 짐꾼들끼리 던전에 남아 있겠다고 할 수도 없는 노릇이다.
결국 이동 중에 잠시간만 가능할 뿐인데, 아직 기조차 제대로 못 느끼는 상태에서의 행공은 효과가 지구에서 수련하는 것보다 조금 나은 수준에 불과했다.
때문에 팀원들은 장만식의 승급을 통해 이전의 나와 같이 공략을 빠르게 진행하고, 남은 시간 동안 제대로 된 수련을 원했다.
사실, 지금 팀원들의 수준이라면, 장만식의 승급 여부를 떠나 충분히 E급 던전 공략을 시도 할 수 있다.
그러나 팀에 D급 헌터가 없는 경우, 공략 허가를 받는 게 불가능에 가까우니, 장만식이 승급하는 것 외에는 다른 방도가 없었다.
“승급이라...”
나는 잠시 말을 멈추고 생각에 잠겼다.
무공을 가르친 입장에서 장만식의 성취는 기꺼웠으나 승급은 별개의 문제였다.
장만식의 각성 등급은 E등급. 헌터 등급 또한 E등급이다.
나에 이어 장만식까지.
비록 D급이긴 하나 고작 한 달도 되지 않는 사이에 연이어 최초 각성 등급을 뛰어넘는 승급자가 나타난다면, 내가 D급 헌터로 승급했을 때와 마찬가지로 세간의 관심을 끌 수밖에 없다.
나만해도 이번 B급 승급으로 이번에는 얼마나 주목 받게 될지 벌써부터 걱정인데, 장만식의 일까지 겹친다면, 승급에 대한 관심은 몇 배로 커질 것이다.
그리고 그 관심은 장만식과 나의 연결고리를 발견해낼 가능성이 높았다.
혹, 내가 헌터를 승급시킬 수 있다는 소문이 나돌기라도 한 다면, 전 세계의 헌터들이 나에게 가르침을 청해 올지도 모를 일이다.
“일단 나와 함께 움직이는 게 좋을 것 같다.”
“정말요?”
김시연이 살짝 상기된 목소리로 되물었다.
장만식이 D급에 올라섰고, 나머지 셋도 아직 기를 느끼고 내공을 쌓지는 못했지만 검법을 조금 가다듬은 것만으로도 향상된 실력을 느끼고 있었다. 그럼에도 E급 던전을 고작 네 명이 공략하기에는 부담스러운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태빈이 함께 한다면, 얘기가 달라진다.
E급 던전 쯤이야, 조금 과장하면 태빈 혼자서도 눈 감고 공략이 가능할 정도니, 걱정할 게 없었다.
“대신 C급 던전 공략에 나설 거다.”
“C급 던전이요?!”
이번에는 다른 의미로 김시연의 목소리가 높아졌다.
사람 말은 끝까지 들어봐야 한다고, 나는 팀원들과 함께 한다고 해서 E급 던전을 공략할 생각이 없었다.
E급 던전 공략에 최대로 부여되는 시간은 6시간. 반면, C급 던전은 삼일이 주어진다.
C급 던전을 공략하면, E급 던전 공략에 비해 월등히 긴 시간 수련에 집중할 수 있다는 말이다.
던전을 공략하는데 필요한 시간을 제외하더라도 족히 이틀 이상.
아무리 내가 과거와 달리, 주변 인연을 소홀히 하지 않는다 해도, 이런 기회를 저버릴 정도는 아니었다.
“위험하긴 하겠지만 너희들의 수련에도 도움이 될 거다.”
물론 일부로 팀원들을 위험에 빠트리려는 것은 아니다.
B급 헌터라면, C급 던전까지는 혼자서도 충분히 공략이 가능한 만큼, 팀원들의 안전도 책임질 생각이었다.
“알겠어요. 팀원들과 상의해 볼 게요.”
수련에 도움이 된다는 말에 김시연은 어느 정도 수긍한 듯했다.
심법 수련은 며칠 간격으로 몇 시간씩 끊어서 하는 것보다는 한 번에 몰입도 있는 시간이 더 중요하다는 사실을 며칠간의 경험으로 느끼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그녀 혼자 결정할 수는 없는 노릇이기에 팀원들의 의견을 구하기로 했다.
물론 E급 헌터로 살아가기로 결심한 순간부터 위험은 감수하기로 한 것이나 마찬가지기 때문에 거부할 이는 없을 것이라 여겼다.
***
다음 날,
나는 C급 던전 하나의 공략 허가를 따냈고, 던전이 있는 장소로 향했다.
B급 헌터로 승급하자마자 공략에 나설 수 있을 거라고는 생각 못했었는데, 운이 좋았다.
미확인 던전이었기에 쉽게 허가를 따낼 수 있었다.
미확인 던전은 던전 내 몬스터를 알 수 없는 던전을 말한다.
공략이 시작되기도 전, 던전에 이름이 지어지는 것은 각각의 몬스터는 고유의 마력 파장을 가지고 있고, 그 파장이 던전의 등급과 출현 몬스터를 유추 가능하게 해주는 덕분이다.
예를 들어, 마력 측정기라는 도구를 이용해 측정한 던전 마력이 2200에, 마력 파장이 오우거의 것과 같다면, 오우거의 마력 보유량이 개체 당 200이니, 던전 내에 대략 11마리 내외의 오우거가 존재함을 짐작할 수 있다.
협회는 이러한 측정 결과를 토대로, 던전 등급을 B등급으로 지정하고, < 흉포한 오우거 무리 >라는 식의 던전 명을 부여하는 것이다.
최근 헌터들이 협회를 비난 했던 이유 또한 던전 내에 이러한 협회의 측정값 보다 많은 몬스터가 나타나고 있는데 있었다.
어쨌든, 미확인 던전은 측정된 마력 파장이 기존에 등록된 몬스터의 것이 아닌 던전으로, 새로운 몬스터의 출현을 의미했다.
출현 몬스터의 특성도, 수도 알 수 없는 던전.
헌터들이 공략을 꺼리는 것은 당연했고, 그 덕분에 내가 어렵지 않게 공략허가를 받을 수 있었던 것이다.
내가 허가 받은 던전의 마력 측정치는 500가량으로, 일전에 짐꾼으로 경험했던 < 난폭한 리자드맨 군락 >과 비슷한 수준이다.
본래 D급에 불과한 마력양이지만 미확인 던전은 몬스터의 수를 알 수 없는 만큼, 한 단계 높은 등급으로 책정되곤 했다.
마력양만 보고, D급 던전이라고 생각했다가 소수의 상위등급 몬스터가 나오기라도 한다면, 돌이킬 수 없는 결과를 초래할 수 있기 때문이다.
“준비도 다 했으니, 이제 가야겠군.”
“무사히 다녀오시길 바랍니다.”
어제 김시연에게 했던 말과 달리, 이번 공략은 팀원과 함께 하지 않았다.
C급 던전은 처음 경험하는 것이기 때문에 정확한 수준을 파악하는 게 우선이었다.
뿐만 아니라, 미확인 던전인 탓에 예상 외로 상위 등급의 몬스터가 나타나는 혹시 모를 상황에 대비하기 위함도 있었다.
팀원들의 안전을 고려한 결정이었기에 그들도 불만을 가지지는 않았다. 내 안위를 잠시 걱정했을 뿐이다.
또한 솔로잉의 경우, 짐꾼과도 동행 할 수 없었다.
다수의 몬스터가 나타났을 때, 짐꾼을 지켜줄 수 없기 때문이다.
그로 인해 공략을 준비하는 것까지 전부 내가 다 해야 했다.
나는 마정석과 사체 수거를 위해 작은 아공간 가방을 마련했고, 식량도 이틀 치를 준비했다.
마정석과 사체로 벌어들이는 돈에 욕심이 있는 것도 아니고, 이틀 정도야 끼니를 걸러도 크게 상관은 없었지만 준비해둬서 나쁠 건 없었다.
사실 팀원들이 구해온 것을 나는 챙기기만 했을 뿐이다.
“이틀 뒤에 보지.”
나는 미확인 던전이라는 이유로 조금은 걱정스러운 눈빛의 팀원들을 뒤로 한 채, 던전에 들어섰다.
***
던전 안은 황량했다.
잎사귀를 찾아 볼 수 없을 만큼, 말라버린 나무들만 드문드문 보이는 회색 빛 대지.
환경만으로는 몬스터를 특정하기 어려웠다. 애초에 기존에 나타나지 않았던 새로운 몬스터이니, 다른 환경이었다 해도 마찬가지였겠지만.
칙칙한 환경에 메말랐던 지난 삶이 절로 떠올랐다. 기계마냥 오로지 살인만을 반복했던.
“이쪽인가.”
나는 떠오르는 잡념에 머리를 털고 기감을 넓혔다.
희미하게 남아 있는 마나의 흔적이 한 방향을 가리켰고, 나는 그 흔적을 따라 걸음을 옮겼다.
내가 옮긴 걸음의 수가 늘어 갈수록 마력의 흔적은 짙어졌다. 내가 느낀 마나는 몬스터의 것이 확실했다.
그리고 내가 이동을 시작한 지 삼십 분쯤 흘렀을 때, 나는 계속해서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고 걸음을 멈추었다. 아니 멈출 수밖에 없었다.
지금까지 내가 느낀 마력의 흔적은 하나였고, 앞에서 느껴지는 기운 또한 하나였기에.
‘최소 절정.’
우려했던, 예상외의 일이 발생했다.
내가 진입한 미확인 던전은 D급 던전 수준의 마력이 측정됐지만 내부에 있는 몬스터는 단 한 마리였다.
둘레가 족히 수십 미터에, 뻗어있는 가지만 해도 웬만한 나무보다 굵고 커다란, 주변의 모든 생기를 빨아들인 듯 홀로 푸르름을 자랑하고 있는 거대한 나무가 나를 맞이했다.
단일 몬스터로, 마력 측정치 500.
2급 몬스터에 해당하는 마력 수준이며, 이는 A급 던전 가운데서도 높은 수준에 해당했다.
B급 헌터 홀로는 결코 상대할 수 없는.